쉽게 보는 난중일기 완역본 - 한산·명량·노량 해전지와 함께
이순신 지음, 노승석 옮김 / 도서출판 여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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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보는 난중일기 완역본

 

16일 영화 한산 리덕스, 감독확장판을 보았다. 재관람인 택이다. 7월에 개봉하자마자 한산을 본 터였다. 7월에 개봉한 영화 한산을 보면서 뭔가 연결이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한산 리덕스를 보고 나서야 왜 그런지 알았다.

영화 한산은 처음부터 감독확장판으로 개봉을 했어야 할 영화였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20여분의 분량이 편집된 채 상영이 되었던 모양이다. 영화를 보면서 새삼 이순신이 얼마나 힘겹게 전쟁을 준비했고, 싸움에 임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순신 장군의 마음에 더 가까이 다가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난중일기>는 이순신 장군이 전란의 와중에 쓴 개인의 기록이다.

개인의 날을 기록한 일기도 시간이 지나면 역사가 될 수 있다.

난중일기는 다른 일기 책들과는 달리 매우 특별한 기록이다. 임진왜란 당시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이순신 장군의 시선으로 본 당시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전쟁으로 인한 백성들의 참상은 물론, 공문에 기록된 다른 지역 전쟁터 상황, 조선 수군의 훈련 상황, 왜군들과 해전 등등 그 어떤 자료 보다 생생한 기록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의 마음과 활약을 읽는 일 또한 <난중일기(亂中日記)>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자료를 통해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의 상황을 이순신의 붓 끝으로 감지할 수 있다.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 일본의 기습 침략으로 발발한 이 전란은 조선이라는 나라에 엄청난 재앙과 비극을 그리고 막대한 피해를 가져다주었다.

조선의 전 국토가 일본에 유린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일본군의 손에 목숨을 잃었으며, 살아남은 이들은 전쟁고아가 되거나 가족 중에 누군가를 잃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뜻하지 않게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되었다. 귀가 없거나 코가 없는 이들, , 다리가 잘리거나 몸에 상해을 입은 이들도 있었다. 온 나라가 일본군에 짓밟혀 조선이라는 나라 전체가 존망의 위기라는 큰 어려움에 봉착했고, 1592년 임진년에 발발한 전쟁은 7년이나 지속되었다.

 

壬辰(임진) 4

12일 맑음. 식후에 배를 타고 거북선의 지자포와 현자포를 쏘았다. 정오에 동헌으로 옮겨 앉아 활 10순을 쏘았다. 관아에 올라 노대석을 보았다.

13일 맑음.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뒤에 활 15순을 쏘았다.

14일 맑음.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뒤에 활 10순을 쏘았다.

15일 맑음. 해질 무렵에 영남우수사(원균)가 보낸 통첩에, “왜선 90여척이 와서 부산 앞 절영도(부산 영도)에 정박했다.”고 한다. 이와 동시에 또 수사의 공문이 왔는데, 왜적 350여 척이 이미 부산포 건너편에 도착했다고 하였다.

16일 밤 10시경에 영남우수사의 공문이 왔는데, “부산의 지휘 군영이 이미 함락되었다.”고 하였다. 분하고 원통함을 참을 수가 없다. 즉시 장계를 올리고 또 삼도에 공문을 보냈다.

 

선조 251592년 이순신 48, 임진년 사월에 전쟁이 일어났다.

이순신은 전쟁 발발 일 년 전에 전라좌수사가 되어가서 조선 수군을 정비하고 훈련시켰으며, 전선을 수리하고 새로 만들었다. 그리고 돌격선인 거북선 또한 만들었는데, 이 모든 게 근 일 년 동안에 이루어진 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옥포, 당포, 한산, 부산 해전의 대승이 모두 이 해에 있었다.

그때 만약 구국영웅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과연 지금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쉽게 보는 난중일기 완역본>을 통해 이순신 장군의 내면을 엿볼 수가 있었다. 놀라운 게 전란의 와중에 어떻게 이렇게 일기를 쓸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이 책은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란 책과 함께 봐도 좋을 것 같다.

영화 한산를 보면서 아군의 피해는 최소화하면서 적군에서 막강한 피해를 주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노심초사 끊임없이 고뇌하고 매사에 신중을 기하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보았다. 그런 와중에 원균 같은 이들은 적군인지, 아군인지 분간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작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전략을 내며 고집을 부리고, 무모하고 무리한 판단을 하며 이순신 장군을 힘들게 하였다.

<난중일기> 속에는 한산도대첩에 관한 내용도, 한산도 대첩이 있었던 임진년 7월의 일기 전체가 빠져있다. 아마도 싸움이 매우 긴박하고 위급한 상황이다 보니, 일기를 쓸 여력이 없어서였던 것 같다. 한산도대첩을 전후로 이순신의 심경이 어떠했는지 보고 싶었는데, 기록이 없으니, 알 수 없다. 하지만 굉장히 어려운 싸움을 대승으로 이끌었으니, 속으로 굉장히 기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정유년 717일 원균의 패전을 듣고 통곡함을 참지 못했다.

정유년 916

초요기를 세우니, 김응함의 배가 점차 내 배로 가까이 오고, 거제현령 안위의 배도 왔다. 나는 뱃전에 서서 직접 안위를 불러, “안위야, 감히 군법에 죽고 싶으냐? 물러나 도망간들 살 것 같으냐?”라고 했다. 이에 안위가 황급히 적과 교전하는 사이에 곧장 들어가니, 안위의 배 위에 있는 군사들은 결사적으로 난격하고...

 

<난중일기>는 성웅 이순신이 임진왜란 중에 쓴 7년간의 일기로, 임진왜란이 일어난 해인 15921월부터 그가 전사하기 전 달인 1598107일까지의 기록이다. 이순신 장군은 전쟁 대비를 위해 붓을 잡고 기록을 남겼던 것이다. <난중일기>를 읽고 나서 영화 한산을 보았더라면, 이순신 장군의 내면에 보다 더 가 닿았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쉽게 보는 난중일기 완역본>를 통해 영화에서 미처 다 느낄 수 없었던 이순신의 마음에 가 닿을 수 있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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