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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도토리는 없다 - 도서관 소설집 ㅣ 꿈꾸는돌 33
최상희 외 지음 / 돌베개 / 2022년 8월
평점 :
도토리는 없다.
재밌다. 도서관, 책과 관련된 소소한 추억담과 에세이 성격의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 책 속의 또 다른 책을 발견하는 재미도 솔솔하다.
“너 왜 도토리 숨겼어”
“어떻게 알았어? 언제부터 안거야?”
“도서관 다람쥐는 당연히 도서관에 빈번히 드나드는 사람이야. 우리보다 더 도서관에 오래 있는 사람은 사서 선생님 말고는 없어. 선생님은 예외로 했지. 이상한 점은 도토리를 발견하는 건 언제나 우리 셋이라는 거였지. 다람쥐는 반드시 우리가 도토리를 발견할 줄 알았던 거야.”
90년대 후반 별다른 오락거리가 없었던 시절, 강의를 마치거나 강의가 비는 시간이면 줄곧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에서 그날 배운 내용을 복습하기도 하고, 미리 다음 강의 내용을 예습하기도 했다. 2학년 때부터 4학년 졸업할 때까지 이런 도서관 생활 패턴은 반복이 되었다. 하두 빤질나게 드나들다 보니, 내가 처음 앉았던 그 자리는 대학 졸업할 때까지 내 자리가 되었고, 보기 위해 꺼내 놓은 책도 사서 선생이 나를 위해 일부러 치우지 않고 그냥 그대로 두셨다. 도서관이 밤 10시까지 운영했는데, 사서 선생님과 도서관을 함께 나올 때가 많았다. 그리고 내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하더라도 토요일도 13시까지 학교와 공공기관들이 모두 근무를 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토요일도 오전에도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거나 책을 보는 게 자연스런 일과 중 하나가 되었다.
복학을 하고 대학을 졸업하기 까지 대략 3년의 시간 동안 나는 인생에서 거의 절반에 해당되는 량의 독서를 이때 했던 것 같다. 태백산맥, 장길산, 임꺽정, 삼국지, 열국지 등 호흡이 긴 소설은 물론, 이문열, 조정래, 박경리 선생의 소설 컬렉션, 마쓰모토 세이초 의 일본 미스터리 장르소설, 하루키 소설들, 그 외 여러 외국 문학 작품들 등 국적, 장르를 가리지 않고 탐독을 했었다.
그 당시에는 특별한 오락거리도 없었고, 인터넷도 보급이 안 되었던 때라 책을 통해서 지식을 얻을 수 밖에 없는 시절이기도 했다. 아마, 그 때 막연하게 대학 졸업 후에 출판사 취직이나 작가에 대한 꿈을 키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도서관 직원으로 일하는 것도 책을 좋아하는 이로써는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작가에 대한 꿈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로망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지어낸 글의 시작은 늘 도서관이었다. 무언가 쓰기로 마음 먹으면 자료부타 찾고 봐야 발을 뗄 수 있었다. 지금도 그렇다. 책이 빽빽하게 꽂힌 책장과 책장 사이에 서 있으면 안심이 된다. 이곳에는 분명히 내가 필요한 것이 있으리라.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 대형 마트에 들어선 기분과 같다.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고, 미래가 있다.
안도감, 내가 대학 다닐 때 도서관에 내 쉴 곳을 마련 이유 또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빈한한 처지에 값비싼 책을 보고 싶다고 함부로 마음대로 살 수 없었기에 나는 최대한 내 선에서 저비용 고효과를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도서관이었다. 사실 전공학과가 있는 대학 도서관에는 그 학문과 관련된 모든 종류의 책이 다 구비되어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 자료의 방대한 가치는 아마 돈으로 환산할 수가 없을 것이다.
몇 날 며칠 공들여 쓴 글을 전부 지워 버렸다. 새 마음으로 처음부터 다시 써 내려 갔다. 어긋나는 부분을 수정하고 빈약한 이야기에 살을 붙이고, 덜어내고 붙이기를 수차례 반복한 끝에 그제야 한 페이지를 채울 수 있게 됐다. 이런 반복이 모여, 비로소 한 권의 책이 완성되는 것이다.
뭐랄까?
책을 읽는데 옛 생각도 나고, 뭔가 따뜻한 위안 같은데 느껴지기도 하고, 학창 시절 ‘책의 밤’ 행사 같은 이런 행사를 도서관에 건의해서 한 번 못해 본 그런 아쉬움도 남는 것 같다. 책은 지식의 보고이자, 인생의 동반자이고, 삶의 지혜를 주는 참 좋은 선생이기도 하다. 언제나 책들로 가득차서 뭇 사람들에게 희노애락을 가져다주는 힐링이 공간 도서관, 그 곳에서 있었던 작가들의 소소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아주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