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과 배신의 시대 - 격동의 20세기, 한·중·일의 빛과 그림자 역사의 시그니처 1
정태헌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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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과 배신의 시대

 

제목이 자극적이다. 혁명과 배신은 딜레마인 것 같다.

반란이 성공하면 혁명가가 되지만, 반란이 실패하면 배신자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에 재직하고 있는 정태헌 교수가 쓴 <혁명과 배신의 시대>는 구한말 암울했던 시대, 한국, 중국, 일본의 대표적인 지식인이었던 한국의 조소앙과 이광수, 중국의 루쉰과 왕징웨이, 일본의 후세다쓰지와 도조히데키 등 각기 다른 삶을 살았던 실존 인물들의 삶을 통해 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준다. 1900년대를 기점으로 혼란과 격동, 격변의 시기에 서로 다른 사상과 이념으로 서로 다른 미래를 꿈꾸었던 한중일의 지식인 6. 이 책은 혁명과 배신의 경계 사이에 있었던 6명의 지식인들의 행적을 따라가면서 시대상황과 이데올로기가 격변의 시기를 만나게 되면, 지식인들의 사유와 내면이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잘 보여준다.

 

불과 100년 전,

누군가는 독립을 외쳤고,

누군가는 조국을 버렸다.

혁명과 배신, 이 두 양극단의 사상과 대립, 이데올로기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중국 현대문학의 문을 연 루쉰의 시작은 문학이 아니라 의학이었다. 유학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그곳에서 제국주의 국가의 실체를 몸소 체험하며 20대의 7년을 보내게 되는데, 당시 그가 학습한 근대지식 중에는 과학을 통한 계몽이 큰 부분을 차지하였다고 한다. 제국주의 폭력과 중국인의 무기력함을 목도하면서 루쉰은 육체를 고치는 의학보다 정신을 뜯어고치는 일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중국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게 된다. 나는 루쉰을 보면 우리나라에 연상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안중근 의사다. 비록 루쉰과 방법은 달랐지만, 안중근 의사 대한 독립을 위해 자신은 물론 집안의 모든 것을 다 바쳤다. 하여 그는 죽어서도 영원한 이름, 불멸이라는 명예를 얻었다.

반면 왕징웨이는 이런 격변기 속에서 쑨원의 측근으로서 정치운동에 나서기 시작하였다. 왕징웨이는 신해혁명의 리더로서 중화민국 임시대총통을 지낸 쑨원과 함께 혁명의 길에 나섰고, 한 때 혁명의 영웅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장제스와 권력투쟁을 하며 일본의 국민단 분열 책동에 놀아나면서 중국의 대표적인 한간(漢奸), 한족 간신이 되어 버렸다. 원래 한간은 중국의 송명(松明) 시대 여진족과 내통하던 한인을 가리킨 말이었는데, 근대에 와서는 일제의 침략에 협조한 부역자를 통칭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고, 왕징웨이가 그 대명사가 되면서 지울 수 없는 오명을 영원히 역사에 남기게 된 것이다.

묘한 대비이다. 한 사람은 제국주의 맞서 중국 인민들에게 위대한 인물로 칭송을 받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잘못된 판단과 이념으로 영원히 지울 수 없는 간인, 즉 간악한 인간이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우리나라에도 이처럼 묘하게 대비되면서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조소앙과 이광수이다.

조소앙은 강제병합 직후 생긴 심리적 우울과 좌절을 종교와 철학에 몰입하면서 내면의 힘으로 이겨낸다. 한 때는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고 그 후 유교, 불교, 이슬람교 등 동서양의 모든 종교와 철학을 탐구하며, 이런 숙고의 시간은 결국 이들을 통합한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 와중인 1917년 조소앙은 자신이 초안을 작성한 대동단결선언을 상하이에서 신규식, 박은식, 신채호 등과 공동 명의로 발표하고 다시 약 2여년의 시간이 지난 뒤인 1919년 김교헌, 김규식, 김동삼 등 39명의 명의로 대한독립선언서를 작성하게 된다. 이 글은 일제의 탈법, 무도한 점령을 끝내고 대한민주의 자유를 선포함으로서 3.1 운동에 도화선 역할을 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조소앙의 대척점에 춘원 이광수가 있다. 근대를 힘으로 인식하고 조선인이 일제에 귀의할 것을 주장했다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낙인이 찍혀 버린 비운의 지식인 춘원. 이 낙인은 아마도 인류의 역사가 지속되는 한 영원히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안중근 의사는 독립운동가로서 영원한 이름, 죽어서도 결코 잊혀지거나 지워지지 않을 불멸이라는 명예를 얻었는데, 춘원 이광수가 한 평생 살면서 얻은 것은 불명예, 친일반민족행위자, 친일파다. 사실 문학적으로 그는 벽초 홍명희, 육당 최남선과 함께 구한말의 3대 천재로 불리우던 지식인이었다. 하지만, 그의 친일 행위가 드러나면서 민족의 반역자가 되고 만 것이다.

격동의 시기를 지나오면서 누군가는 민족과 겨레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고, 온 몸을 불사하는데, 또 다른 누군가는 나라를 팔고 이적 행위를 하면서 매국노가 되고 간적이 되어 버리는 것 같다.

 

조소앙이나 홍명희도 상하이에서 궁핍한 생활을 면치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들은 어렵더라도 꿋꿋하게 자기가 생각한 길을 걸어갔다. 하지만 잠시 분위기에 편승한 이광수로서는 견디기 어려웠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국제적 지위는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었고, 특히 군사력은 3강 대열에 들 정도였다. 독립의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느껴졌다. 당연히 독립운동 또한 아무 희망 없는 헛수고 일 수밖에 없었다.

 

이광수는 여기까지였던 것이다. “나의 친일은 민족을 위한 희생이었다.” 이건 추잡한 자기 변명일 뿐이고, 그저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과 중국의 근대문학에서 이광수와 루쉰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다. 그리고 이광수는 한국의 친일파를 거론할 때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혁명과 배신, 매국과 애국의 그 확실한 경계에 이들 지식인들이 있었던 것이다. 한 사람은 애국자로 또 다른 한 사람은 친일파 간적으로 말이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전범 중에 도조히데키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정말 최악의 인물이었다. 1941년 전진훈을 통해 황군은 포로가 되면 안된다면서 병사들에게 옥쇄, 즉 대의를 위한 죽음을 강요했지만, 정작 본인은 이를 지키지 않았다. 한마디로 언행이 일치되지 않는 최악의 지식인이자 일본의 역대 총리였던 인물이다.

애당초 일본의 조선 침략은 부당한 것이었다.”

 

그런데 암울한 시대였지만, 일본에도 정의로운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후세다쓰지이다. 그는 일본인이면서 조선의 독립운동가를 위해 자신의 조국 일본과 법률 전쟁도 마다하지 않았던 일본의 지식인이자 변호사였다. 그에게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고 공정한 것이었다. 최근에 영화 한산을 보다보니, 왕왜 장수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 그는 왜군 장수로 조선 침략군이었지만, 전쟁 중 일본군의 만행과 조선군의 의()를 보면서 갈등하다가 결국은 자신의 조국인 일본을 버리고 조선으로 귀화하여 자신의 동족이었던 일본군에게 칼을 겨누며 싸우는 장면이었다. 준사에게서 후세다쓰지의 모습이 보였다.

책장을 덮으면서 책 말미에 주석을 보게 되었는데, 책을 쓰기 위해 엄청난 자료를 수집하고 그 수집한 자료들을 꼼꼼히 공부하고 분석하여 이런 좋은 결과물을 낸 저자의 노력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식인이라면, 아니 꼭 지식인이 아니더라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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