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강사입니다 배민 합니다 - 2022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걷는사람 에세이 16
이병철 지음 / 걷는사람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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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강사입니다. 배민 합니다

 

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연구재단 연구원에 선정됐을 때만 해도 내 앞날이 장밋빛으로 보였다. 2년간 고정 급여가 지급되고, 4대보험의 혜택도 받았다. 덕분에 10년 동안 살던 서울 남현동의 반지하 원룸을 벗어나 경기도 안양의 야외 테라스가 있는 전셋집으로 이사했다. 하지만, 박사 후 국내 연수가 종료되면서 월 고정 수입의 60%가 없어졌다. 인문학 연구자들은 대학에 자리 잡지 못하면 그야말로 잉여인간이 된다. 시간강사는 강의 시수대로 급여를 받는다. 이번 학기에 세 학교에서 강의 다섯 개를 맡았는데, 시간당 강의료는 35천원에 불과하다. 강의료를 다 합쳐도 월 200만이 채 되지 않는다.구직 사이트를 한참 뒤져보다가 배달 대행아르바이트 기사를 봤다. 그날 바로 당근마켓에서 2006년씩 낡은 스쿠터를 40만원 주고 샀다. 그렇게 배달 라이더 부업을 시작하게 됐다.

 

책 제목을 대하는 순간, 짠한 마음이 들었다. 뭔가 동병상련의 짠함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이병철 시인은 솔직하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직업에 귀천이 없고, 세상에 하지 못할 일이 없다는 사실을 이병철 시인에게서 배웠다. 사실 대학의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 일을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배민을 하며 있었던 소소한 일상을 글로 엮어 당당히 책으로 출간하였다. 그러면서 시인에서 작가로 또 한 번 발돋움하고 성장을 하였다.

사실 배달 음식을 많이 시켜 먹지만, 배달 일을 하시는 분들의 하루 일과, 일상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저 이 일이 좋아서 적성에 맞아서 하겠거니 막연하게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 배민 일을 하시는 분들의 에로사항과 고충 또한 알게 되었다.

일요일 오전 10, 출근 준비를 한다. 배달 주문이 증가하는 점심 피크타임은 11시부터 2, 저녁 피크타임은 5시부터 8시까지다. 아무리 피곤하고 때로 귀찮더라도 피크타임만큼은 놓칠 수 없다. 출근하기 전 샤워를 오래하는 편이다. 집을 나서면 하루 종일 매연과 미세먼지를 온몸으로 맞아야 한다. 목덜미와 손등이 끈적끈적 까매지고, 손톱에 검은 때가 낀다. 온종일 헬멧 안에서 떡질 머리카락을 위해 샴푸와 트리트먼트, 린스까지 빼놓지 않는다. 아침 겸 점심을 간단히 먹는다. 종일 길 위에서 일하려면 든든하게 먹어야 하지만 배달 중에 화장실이 급하면 안 되므로 과식은 금물이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배달 일은 특히나 날씨와 기온에 민감한 일이다. 그리고 시간과 속도가 생명이다 보니, 음식이 식기 전에 배달을 완료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라이더보다 한 건이라도 더 많이 배달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배달을 해야 한다고 한다. 날씨가 더울 땐 더워서 힘들고, 추우면 추워서, 비가 오면 또 길이 미끄럽고, 옷이 젓고, 헬멧에 빗방울이 맺혀 시야가 방해되기 때문에 더 위험하고 힘이 든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달린다.

 

배달 2시간에 4만원 번 것보다 1년 동안 시집 50권 팔아서 4만원 번 게 더 기쁘다. 콜 하나에 음식 하나 싣고 배달하고 완료하면 곧장 다음 콜 받아서 또 배달하고, 그렇게 반복하면 한 시간에 서너 건 해서 15천원~2만원쯤 벌었다. 작년부터 배달 라이더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뒤로는 더욱 그렇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그리고 이 일은 내 본업도 아니지만 대학 시간강사를 전전하며 파트타임 배달 라이더 아르바이트하는 삼십 대 후반 시인에게 연애나 결혼은 언감생심이라는 객관적 진실을 스스로 체감하고 있는 것이다.참 열심히 공부했는데, 참 열심히 글 썼는데, 내가 해 온 공부와 문학이 돈과 거리가 먼 분야인 거지.....바보같이 문학 같은 건 왜 해가지고....배달은 나를 지키기 위해 시작한 일이고, 나는 사랑도 문학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한 가지 일을 하기도 힘이 드는데, 저자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배달 일을 하고, 또 시를 쓰고 또 글 까지 쓴다. 이 책의 저자의 직업은 5가지인 셈이다. 시간강사, 배달 라이더, 시인, 문학평론가, 거기에 더하여 이젠 작가란 직업까지!!

공부를 많이 해서 할 일이 이것 밖에 없는 게 아니고, 공부를 많이 했기에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만능엔터테인먼트가 된 것 같다. 그리고 저자는 결코 꿈을 접거나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에 도전을 거듭하고 있는 것 같다. 마치 오뚜기처럼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고, 떨어지면 다시 도전하고 그렇게 포기 하지 않고 하다보면 언젠가는 자신의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시인의 자존심, 박사의 콧대, 시간강사의 허울을 아랑곳하지 않고 세계의 이면을 들여다보며, 세상살이의 안과 밖을 온몸으로 경험하고 있다는 류근 시인의 표현에 나 또한 깊이 공감하며 내 영혼에도 모처럼 아주아주 고귀하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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