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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수리공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강렬하고 섬뜩한 묘사, 충격적인 결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기묘한 작품이라는 문구에 끌려 보게 된 장난감 수리공. 220페이지 밖에 안 되는 소설이라 정말 2시간도 안 되어 금세 읽을 수 있었다. '장난감 수리공'과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 두 가지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특히 '장난감 수리공'은 굉장히 짧은 단편 소설로 제 2회 일본호러소설 대상 수상작이자 세이운상을 비롯한 각종 문학상에 노미네이트된 작품이라고 한다. 영화와 연극, 만화로 제작되었다고 하니 찾아볼 수 있으면 찾아봐야겠다.
일본 미스테리 소설은 그로테스크한 면이 있다. 대학 시절 한창 일본 호러, 미스테리, 스릴러 소설에 심취해 유명한 작가의 소설은 닥치는대로 읽어보았었는데 특히 '오츠 이치', '기리노 나쓰오' 등의 작품을 좋아했다. 대학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했던 단편집 ZOO. 그 안의 첫번째 소설인 세븐 룸이라는 단편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 후 오츠이치의 작품은 전집을 거의 모았다. 그런 오츠 이치가 '나의 인생을 바꾼 호러 소설'이라고 평했으니 당연히 흥미가 갈 수 밖에. 보통 영화, 도서 등 한국 감성을 좋아하는 편인데 역시 공포, 미스테리는 일본 소설이 취향에 맞다. 그 잔인한 묘사와 기괴함, 뒤틀린 심리 묘사와 독특한 설정이 압권이다.
두 소설 모두 재미있게 읽었지만 개인적으로 '장난감 수리공'이 더 좋았다. 제목 자체가 장난감 수리공이니만큼 딱히 예상 불가능한 전개는 아니었지만 묘사와 결말이 흥미롭다. 소녀는 동생인 미치오를 돌봐야 했다. 그 아이를 실수로 상처입힌 날, 소녀는 어머니에 의해 기둥에 이마를 찧게 되었고 아버지에 의해 기둥에 묶였다. 그러던 어느날 육교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동생 미치오가 죽게 된다. 그가 죽은 걸 어떻게 숨길 수 있을까? 그가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게 어떻게 만들지? 그녀는 그때서야 장난감도 인형도 없어 머나먼 존재였던 장난감 수리공을 찾아간다. 그녀는 얼굴살점이 떨어지는데도 통증을 호소하지 않는다. 장난감 수리공을 만나러 가는 길. 그녀는 죽은 고양이를 고쳐달라고 갈 것이라던 여자애를 만난다. 장난감 수리공은 장난감이 어느정도 모여야 수리를 시작한다고 말하며 고양이를 고치는 일은 아직이라고 했다. 여자아이는 장난감수리공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설명하면서 그들의 상태를 묻는다.
...그거 피야? ...옷에도 피가 묻었네. ...미치오 입에서 뭔가 나왔다. ..네 얼굴에서 뭔가 떨어졌어. ...둘 다 왜 귀에서 우유같은게 나와? ...왜 아기 두 팔 길이가 이렇게 달라? - pp. 24-26
그렇게 소녀는 장난감수리공을 찾아간다. 그는 우선 미치오의 옷을 벗긴다. 그리고 그를 해부한다. 마치 정말 사람이 아닌 것을 대하는 양 즐거운 듯 노래를 부르며 해부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이 묘사로 인해 소설이 유명해진 게 아닌가 싶다. 섬뜩한 묘사와 즐거운 듯한 장난감 수리공..그렇게 되살아난 미치오는 잘못된 수리 주문으로 성장하지 못하게 된다. 다시 데려가 수리주문을 하자 이번엔 산채로 해부한다. 미치오가 운다.
시계에는 생명이 있고 인간에게는 생명이 없을지도 모르잖아. - p. 40
기계를 점점 정밀하고 복잡하게 만들다 보면 결국은 생물에 도달한다고. 그 사이에는 아무런 경계선도 없어. - p. 42
이에 이어지는 생명과 무생물에 대한 서로의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그 이야기에 대해 설전을 벌이다가, 문득 이야기의 시초가 된 선글라스의 이야기로 돌아가고 나서 이어지는 마지막 대화에 소름이 돋았다. 이 작품이 1995년 제2회 일본호러소설대상을 수상했다니 얼마나 오래 된 이야기인지. 이 작품이 지금 와서도 이런 감정을 이끌어 낼 정도면 당시엔 정말 파격적이었을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는 단편이라기엔 살짝 긴 중편 소설. 시간여행에 물리학을 접목시켜 쓴 SF 호러 소설이다. 작가 본인이 공학도라고 하니 놀라운 일은 아니다. 물리학적인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정독했음에도 사실 내가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했는가하면 그건.. 아니다.ㅋㅋ 여러번 더 읽어봐야겠다. 시간의 연속성과 그것을 연결하는 기관, 대체기관으로써의 대뇌의 역할. 파동함수의 수렴, 파동함수의 발산. 현재로 돌아와 확정을 시킨 시간와 미래로의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지누 소지는 동기들과 술을 마시고 돌아가는 길에 시노다 다케오라는 남자를 만난다. 자신이 의사이지만 의사였던 적이 없다는 그는 자신과 소지가 절친한 사이었다는 기억은 존재하나 그러한 사실은 없다고 말한다. 그가 정신병자라고 생각했지만 자신밖에 모르고 있는 사실까지 알고있자 소지는 찝찝함에 택시까지 보내고 돌아가 납득이 가는 설명을 해달라고 청한다.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둘은 한 여자를 사랑했다. 자신이 먼저 사귀었고 후에 소지가 그녀를 만났다.
옛날 책에 나와요. 전설인가 뭔가에. 하지만 이미 변했을지도 모르겠네요. - p. 66
전에는 알았는데 일일이 기억하는게 귀찮아서... - p. 67
아아 그랬죠. 그렇게 됐다는 걸 깜빡했어요. 맞아요, 이제 돌에서는 냄새가 안 나죠. - p. 68
그녀는 어딘가 독특한 매력이 있다. 그녀에게 매료된 그들은 데고나가 둘에게 선택에 대한 대답을 해주겠다고 했던 날 데고나의 죽음을 알게된다. 시노다 다케오는 진작 포기를 하지만 지누 소지는 달랐다. 그는 그녀의 살점을 얻어 다케오에게 유전자를 채취해 복제인간을 만들라고 하고 자신은 시간의 역행에 대해 연구한다.
시간의 흐름은 의식의 흐름이아. 의식의 흐름을 조종하면 시간의 흐름도 조종할 수 있어 - p. 115
그는 시간의 방향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믿고 시간 감각이 이상해진 환자를 찾는다. 그 사람들의 공통된 같은 기관 장애를 찾고 자신의 그 영역을 파괴해 시간의 흐름에서 해방되고자 한다. 그는 스스로에게 시술을 하고자하나 뇌를 건드렸음에도 프로그램에 버그가 있어 실패한다. 그는 죗값을 치를 때가 왔다며 시노다 다케오 또한 시술을 받도록 만든다. 그리고 둘은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
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과거에서 미래로 이동하듯이 그와 같은 속도로 우리가 미래에서 과거로 이동할 수 있을거라고만 생각했어. 하지만 네가 체험했듯이 잠든 사이에 갑자기 시간을 건너뛰었지. 스스로는 도착점을 선택할 수 없어. 분명 내 생각이 얕았던거야. 아무 근거도 없이 시간이 연속체라고 믿었어. - p. 146
시간은 연속되지 않은 점의 집합이야. 하지만 모두가 제멋대로 그 점에 순서를 매기면 뒤죽박죽이 되겠지. 그래서 뇌가 물리현상의 연속성이 충족되도록 시간의 점에 순서를 매기는거야. 우리는 시간에 순서를 매기는 뇌기능을 파괴했어. - p.147
그들은 현재에서 미래로 연속되어 가듯, 그 시술로 인해 현재에서 과거로 연속해 갈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모든것이 뒤죽박죽이 된다. 육체가 미래로 이동하는 게 아니라 이동하는건 의식뿐. 그들의 어느 모든 것도 확정적이지 않으며 그들의 '시간여행 시술을 받은 의식체'로서의 둘이 만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적다. 수백 수천 수만의 반복이다. 다시 같은 날로 돌아가도 어떤 것도 자신이 알고 있던 상황과 꼭 들어맞지 않는다.
그것은 가까운 시일 내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기에 자신이 쌓아올린 어떤 것도 의미가 없다. 의미가 없어 미래를 위해 노력하지 않기에 인생은 점점 악화되어가고, 죽어봤자 죽지 않았던 과거로 의식이 이동될 뿐. 모든것을 듣고 나서 소지는 다케오에게 데고나를 되찾았냐고 묻지만 그는 어리석은 질문이라 답한다. 그 후 소지 또한 자신의 상태가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고 인지한다. 그는 내면의 목소리와 대화를 한다. 섬뜩함은 바로 이 마지막 페이지에 있다. 시간의 개념이 완전히 달라진 상태란 어떤것인가에 대해 흥미롭게 전개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보통 이런 장르의 소설은 마지막에 반전이 있기 마련인데 언제나 대비를 하고 읽음에도 거하게 뒷통수를 맞는다. 두 작품의 마지막 부분이 인상깊다. '장난감 수리공'은 단편소설이니만큼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잔인한 묘사가 강렬했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는 이해를 하면 몰려오는 섬뜩함이 있었다. 작가의 또다른 작품으로는 '밀실살인'과 '커다란 숲의 자그마한 밀실', 그리고 최근 국내에 출간된 '앨리스 죽이기'라는 소설이 있다는데 그 작품들 또한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