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소재원 지음 / 작가와비평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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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널이 무너졌다. 딸의 생일날 생긴 사고. 금세 구조될 거라 믿는 이정수는 부인과 통화하며 와인을 사가겠다는 약속을 한다. 하지만 금세 전해진 소식. 터널을 조금이라도 건들이면 완전히 와해될 가능성이 있다!


  개통된 지 5개월만에 무너진 터널. 그 안에는 3일째 갇혀 구조를 기다리는 이정수가 있다. 그 시간동안 대한민국의 모든 시선은 이 사건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그에게는 딸의 케이크를 사며 서비스로 받은 빵 5개와 생수 2개가 있다. 차량용 충전기가 없기에 하루에 구조대와 3분 아내와 3분 통화만이 허락되었고 그마저도 2주일만 버틸 수 있을 뿐. 여름이라 빵이 상할 수 있는 우려가 있다는 점을 숙지하고 그나마 물은 구조대측에서 호스로 흘려보내주기로 한다. 30도가 넘는 무더위 앞에 인간은 무력하다.


시간은, 모두를 집으로 돌아가게 하는데 왜 나만 여기 있는 거지? - p. 98


  먹을 게 없는 그는 자신의 오줌을 그대로 받아내 들이킨다. 아내 김미진은 도로공사. 경찰서. 소방서. 시공사를 쫓아다니며 터널이 무너진 책임을 묻는다. 하지만 모두 자신의 담당이 아니라고 하며 그녀를 내쫓는다. 원칙을 따랐다고 할 뿐이다. 인명구조가 시급한 상황에 인간은 책임소재를 먼저 따졌다.


관련 없다 이야기한 모든 기관이 연루된 모습에 김미진은 어이없는 웃음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 p. 84


  땅엔 암석이 많고 그걸 뚫기위한 진동으로 터널이 무너져내릴 위험성이 있다. 구조작업을 벌이던 5일째. 돌덩이를 찍어내리던 포크레인이 부러져 인부에게 부상을 입혔다. 시공사를 찾아간 그녀를 경비가 쫓아내려하자 그녀는 울분을 토해낸다. 그 사건은 동영상으로 찍혀 여론조성에 도움이 된다. 네티즌들은 연일 의문을 제기하고 결국 하청업체 사장은 양심선언을 한다.  정부에서 주는 공사대금으로는 설계도면대로 만들 수 없기에 쓰인 설계와는 다른 시멘트와 철근. 공사대금의 70퍼를 제외한 사라진 30퍼센트.


서로가 동문서답과 같은 말들을 내뱉었다. 마지막 통화. 처절한 전쟁 속에서 서로의 손을 놓지 않으려 하는 모습과 같았다. - p. 101


  한편 패닉에 빠진 이정수는 아내에게 전화를 한다. 공포에 빠진 둘은 서로를 향해 동문서답을 하며 울부짖는다. 그는 전문가가 일러준대로 본능에 따라 아내에게 전화를 한다. 마지막 통화가 끝나고 이제 바깥에서는 이정수의 생사를 알 수가 없다.


어느 사무실네서는 단체로 기도를 했다고 했다. 몰래 듣고 있었는데 자신과 같이 도둑 라디오를 청취하는 직원들이 기도를 드렸다고 했다. 어느 주유소 사장은 라디오를 듣다 기도를 올리는데 직원들과 주유소를 찾은 손님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1분이라는 시간을 간절하게 빌었다고 했다. 도로에서는 파란불이 바뀌어도 출발하지 않는 차들로 1분 동안 클락션 소리러 요란했다고 했다. - p. 124


  배터리가 다 된 패닉상태에서 갓 벗어난 남편이 걱정된 아내는 방송국으로 직접 찾아간다. 처음엔 문전박대를 당했으나 터널 관련 가족이라는 것을 알고나서 10시에 사연을 전해주기로 결정이 난다. 모두가 그를 위해 기도한다. 아름다운 1분의 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줌과 비타민이 들어간 물만으로 버티는 그를 두고 생존에 대한 도박판을 벌이기도 했다.

내가 말했지? 기억은 과거를 머릿속에서 다시 한 번 살아보는 거라고. 떨어져 있는 시간 동안 우리 과거를 머릿속에서 거듭 살아보도록 하자. 그리웠던 그 시절을 새롭게 살아보는 거야. - p. 134


  그러던 중 터널 보수작업으로 인한 차량통제로 구급차가 돌아가게 되면서 사상자가 두명이나 생기자 여론은 급격하게 돌변하기 시작한다. 배터리도 끊어져 그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상황. 인근 주민들은 그를 구조하기 위해 또다른 희생자가 생기는 상황이 옳은 것이냐며 여론을 조성한다.


모두가 옳았다. 틀린 부분은 전혀 없었다. 이정수의 구조를 반대하는 쪽도, 찬성하는 쪽도 정의에 반대되는 입장은 전혀 없었다. - p. 142


  어려운 일이다. 하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다른 한쪽에서는 위급한 환자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한 쪽은 한 명. 살아 있는지 죽어있는지도 알수가 없다. 그리고 또 한 쪽은 눈에 직접적으로 보이는 인명피해가 나날이 수를 더해가고 있다. 이런 경우에 어떤 쪽에 무게를 실어야 할지는 참 어려운 문제. 소설에서도 갑론을박이 펼쳐진다. 모두가 철학자고 모두가 맞는 말을 한다. 이정수는 동정받는 피해자에서 점차 자리를 벗어난다.


  그러다 음주트럭이 교통사고를 내고, 그 트럭이 구조차량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아내는 목숨의 위협을 받을만큼 위태로운 상황에 치닫는다. 가해자는 따로 있건만 피해자는 또다른 피해자를 핍박하고 단죄한다. 그러기를 여러날. 결국 그녀는 구조를 중단해달라 한다. 그리고 구조가 중단되고 터널을 허무는 작업이 시작된지 2일만에 자살한 이정수가 발견된다. 자살추정시간은 2일전. 이 사실이 밝혀지자 그가 죽었다고 말하던 여론은 침묵하고 그녀를 자살하게 된 원인으로 몰아 마녀사냥을 시작한다.


한 가족에게 칼날을 겨누었던 누군가는 가장이 되었다. 자식을 낳았다. 취직을 하고 승진을 하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 p. 231


  이 소설을 불편한 소설이라고 말했다. 맞다. 불편한 책이고 한편으로는 꼭 봐야 할 책이다. 영화 보기 전 책을 보고 봐야지 생각하고 그저 그런 재난소설이겠거니 여겼는데 실체는 생각과 달랐다. 손가락의 무서움에 대한 이야기다. 인터넷의 발달로 익명성에 기대 사람들은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가. 정작 가해자는 따로 있거늘 사람들은 끝끝내 피해자에게 가혹해진다. 잘잘못을 물어야 할 곳엔 조용하고 그 책임을 피해자에게 묻는다. 그들의 목소리가 한 가정을 죽였다. 마지막 김미진의 선택에서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또한 그 선택에 대해서도 대중은 얼마나 잔인한지.


  어쩌면 나는 또다른 터널의 가해자가 아닐런지. 사실을 정확히 알지 못한채 기사만 믿고 누군가에게 함부로 말한 적이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지는 않은지. 강요와 마녀사냥 챕터는 자아성찰을 하게 만든다. 책에서 말한 말마따나 '그럴수도 있지'라는 면죄부는 함부로 자신에게 주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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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라스트 레터
조조 모예스 지음, 오정아 옮김 / 살림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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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을 잃은 여자가 있다. 이름은 제니퍼. 그녀는 교통사고를 당했고 기억을 잃었다. 서서히 되찾아가는 기억엔 로런스라는 남편과 보통 남편에게 찾을 수 있는 익숙함이 없다. 몸상태가 좋아져 퇴원을 했지만 집도 처음 보는 집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낯설다. 자신조차 낯설다. 그녀는 자신을 보고 예쁘장하게 생겼다는 감상을 느끼고 집안을 둘러보고 자신은 외모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잔가 봐 - p. 24라고 느낀다. 처음 시작이 스릴러 같아 흥미로웠다.


내 기억엔 커다란 구멍이 있어. 내 삶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난......난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 p. 34


  챕터는 과거인 1960년 8월과 현재인 1960년 10월 이후를 번갈아 보여준다. 과거의 그녀가 어땠는지 현재의 그녀는 어떤지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다. 과거와 현재의 그녀는 각각 다른 인격같은 느낌도 든다.  현재의 제니퍼는 모든 것이 기억나지 않고 마치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말을 남편에게 했을 때 그는 표현하지 않지만 분노한다. 그는 통제하길 좋아하는 사람이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 - 책 속에서


  그러다 그녀는 우연히 책 사이에서 편지를 발견한다. 그녀에게 온 편지였다. 그리고 과거 앤서니와 제니퍼의 이야기가 나온다. 편지로 인해 현재의 제니퍼는 과거의 제니퍼가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졌음을 알게 된다. 그녀는 편지를 총 세통 찾아낸다. B라는 서명을 쓴 사람이 보낸 편지는 정확히 누구인지 알 수 없고, 기억이 불완전한 현재의 제니퍼는 B라는 단서로 관련된 사람을 떠올리지 못한다. B라는 사람도 의문이지만 제니퍼는 사고 당시의 일도 기억하지 못해 그 사고에 관해 알고싶어한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제니퍼의 엄마. 남편. 친구까지도 그 일에 관해 언급을 회피한다. 그리고 남편과 그의 비서는 그 일에 관해 어쩐지 수상쩍다.


그는 지금처럼 욕망과 가능성이 하나가 되는 순간을 사랑했다. - p.  152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기에 초반부터 그녀가 사랑에 빠진 사람이 누구인지가 명확하다. 그러나 의외로 과거파트는 남자위주의 서술이고 현재파트는 제니퍼 위주의 서술이어서 그런지 현재의 자신이 과거를 더듬어 나가는 파트가 전혀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다. 초반부에서는 과거의 제니퍼와 현재의 제니퍼가 각각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지만 그녀는 의외로 자신의 과거에 대해 이질감을 금세 떨치고 적응을 한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만났고, 고요한 몇 분 동안 그녀에게 모두 말했다. 그녀는 지금껏 마주한 어떤 것보다도 놀라운 존재라고. 그가 깨어있는 순간에는 그녀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그때까지 경험한 모든 일과 모든 감정은 이 엄청난 사실과 비교하면 시시하고 하찮아진다고. 그는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 pp. 164-165


  그들의 관계는 어찌됐든 불륜이니만큼 내 기준에서 전혀 로맨틱하지 않지만 묘사만큼은 날 설레게 하기 충분했다. 그것도 편지로 이루어지는 로맨스라니 얼마나 은밀하고 그들의 사랑에 적합한 방식인지.


그 편지들은 그녀가 알았던 사랑을, 그 사랑으로 변화한 그녀의 모습을 펼쳐 보여주었다. 손으로 쓴 그 문장들 속에서 제니퍼는 다양하게 비춰진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 p. 173


  그렇게 1부는 과거 교통사고 나기까지의 진상과 현재의 제니퍼의 혼란을 보여준 채로 끝난다. 이어지는 미래는 1960년 12월으로부터 3년정도가 지난 1994년 여름이다. 남편인 로런스는 여전히 자신이 어떤 행동이나 옷을 입어도 흠집을 잡고 자신을 깎아내린다. 그녀는 남은 평생을 그의 분노를 감당하며 이렇게 살아야하는지에 관해 생각한다. 1년 전부터 로런스는 변덕스러워졌고 그녀는 로런스에게 정부가 생겨서 그렇다고 추측했으나 괴롭지 않고 안도감이 들 뿐이다. 그리고 그녀는 로런스와 함께 참석한 칵테일 파티에서 편지의 그를 만나게 된다.


로런스는 그녀가 불쾌하게 한 점들을 하나하나 떠올리게 만드는 것으로 비뚤어진 쾌감을 느꼈다. 그는 매일 수천 가지 방식으로 그녀의 실패를 일깨웠다. - p. 275


  지지부진하게 오해가 얽혀 그들이 서로의 진심에 대해 알기까지 오래 걸릴거라고 생각했으나 오해는 그들이 만나자마자 시원하게 풀린다. 그녀는 그가 누군지 이름이 뭔지 모든 걸 잊었지만 그를 보는 순간 심장이 멈춘 듯한 충격을 받는다. 그녀는 그를 알아봤다. 하지만 이제 그녀에게는 딸이 있다.


  모이라라는 비서는 로런스를 사랑한다. 그는 그와 세번 사랑을 나눴으며 그걸로 만족하고 살아가지만 로런스는 그녀를 비서자리에서 내쫓는다. 모이라는 제니퍼를 찾아간다. 모이라는 제니퍼에게 로런스를 파멸시킬 수 있는 석면에 관한 자료를 건네주고 그녀에게 그 '마지막 편지'를 전한다. 그녀는 그 서류들로 남편에게 자신의 요구를 전하고 그를 찾아가지만 딸을 보고 충격을 받은 그는 벌써 아프리카로 떠났다. 그녀는 그에게 꼭 전달해달라고 파일을 전하지만 그 파일은 전달되지 않고 40년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1964년으로부터도 한참 지난 2003년. 엘리라는 여자가 나온다. 그녀는 아내가 있는 남편과 사랑에 빠져있다. 그녀는 자료를 뒤지다가 그 편지를 발견한다. 흥미를 갖게 된 그녀는 1960년대 신문을 뒤진다. 그리고 이 것과 관련된 단서를 찾아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칼럼을 쓰면 어떻겠냐고 제안하고 긍정적인 반응을 얻는다. 엘리는 사서함 13호를 찾아가 당시 사서함 주인을 찾으려 하지만 주인에 대한 정보를 알 수는 없었다. 단지 40년동안 편지를 한 통도 받지 않았음에도 같은 사람이 그 사서함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그 사서함 주인에게 연락을 바란다는 서신을 남긴다. 이틀 후 전화벨이 울렸다.


  결말부까지 엘리로 인해 그들이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들의 감정은 어떤 것이었는지에 관해 나온다. 그로 인한 엘리의 감정변화와 관계의 변화까지. 처음엔 부정적으로만 느껴졌던 그들의 관계도 책의 후반부까지 읽어나가며 점차 둘이 잘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편지를 통한 사랑은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와 '일곱번째 파도'에서 접한 적이 있는데 이건 정말 편지로만 이어지는 내용이고 '더 라스트 레터'는 편지를 통해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가고, 또 관계가 어긋나는 내용이라 차이가 있지만 모두 어딘가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마음을 울리는 데가 있다. 나는 언제 편지를 써봤는지에 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마침 1년 전 내일로를 갔을 때 느린 우체통으로 1년 후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는 서비스를 이용한 적이 있는데 근래 도착했다. 그 엽서를 받아 느꼈던 감정을 생각하니 편지를 통한 감정 교류가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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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눈부신 친구 나폴리 4부작 1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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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소설 : 나의 눈부신 친구

 

  여자아이들의 관계란 얼마나 미묘한지. 서로 좋아하면서도 시기하고, 견제하면서도 신뢰한다. 나폴리 4부작은 나폴리를 배경으로 릴라레누라는 두 여자의 60년 우정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시리즈의 첫 권인 '나의 눈부신 친구'는 그 중 유년기와 사춘기를 다루고 있다. 나와 릴라는 오래된 친구이다. 그런 릴라는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지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녀는 실제로 그 일을 해낸다. 화가 난 나는 기억을 더듬어 이야기를 써내려나간다. 그렇게 시리즈가 시작된다.


  유년기의 소제목은 '돈 아킬레 이야기'이다. 유년기의 가장 강렬한 사건을 응축시킨 제목. 어릴때 무언가 실체 없는 공포에 시달릴 수 있다. 릴라와 '나'에게는 그것이 돈 아킬레였다. 그는 고리대금업자였고 정당하지 않은 방식으로 부를 축적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상상속의 그는 몸집이 크고 못생겼고 또 괴물 같다. 그런 그가 어느날 살해당한다. 그것은 유년기에 가장 끔찍한 사건이었으며 릴라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나는 릴라와 초등학교 1학년때 만나게 된다. 당시는 모두에게 죽음이 가까운 시대였다. 파상풍, 전쟁, 폭탄에 결핵 등으로 죽을 수 있던 시절.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이 학교에서 뛰어난 것을 동기로 삼아 여자아이들에게 돌팔매질을 한다. 모두가 도망가지만 릴라만은 침착하게 관찰하고 따라한다. 릴라는 못 된 아이라고 생각하는 '나'. 그렇지만 그런 그녀를 내버려둘 수 없던 '나'. 어느 순간 '나'는 릴라와 함께 돌팔매를 하고 있다.


  그렇게 함께하게 된 릴라는 거침없고 자신이 하는 일에 확신이 가득하다. 심지어 머리가 좋아 모두가 알파벳과 숫자를 배울 때 글자를 이미 깨우쳤다. 누가 가르쳐줬냐는 말에 그녀는 말한다. "제가요." '나'의 어머니는 '나'에게 아빠의 입을 빌어 말한다. 1등이 아니라면 넌 일을 해야하게 될거야. 줄곧 최고였기에 선생님 옆자리였던 나는 그 자리를 릴라에게 빼앗긴 후 질투하게 된다. 나는 질투나 증오와 같은 감정에 대응하기 위해 릴라를 인정하는 노선을 취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삼총사가 되았지만 전교 1등인 내가 이 그룹 안에서는 언제나 3등이었다. 나는 릴라가 카르멜라 쪽으로 몸을 더 가까이 할 때마다 고통스러웠고 당장 집으로 돌아가버리고 싶었다 - p. 100


  '나'는 중학 진학을 위한 라틴어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으나 집안형편으로 인해 릴라는 수업참여도, 중학진학도 불가능하게 된다. '나'의 중학진학 결정 후 릴라는 '나' 뿐만이 아니라 카르멜라와 사귀게 된다. 친한 친구가 다른 친구와 친해져서 자신과 소원해지면 얼마나 서운하고 분노하고 자신이 못나게 느껴지는지에 관한 감정들이 잘 나타나 있다. 중학 진학을 못 하게 된 릴라는 고통받고 악랄해져갔고 '나'는 처음엔 불편했지만 그녀에게 우월감을 과시하게 된다. 릴라도 그것을 눈치채지만 그녀의 분노를 감당하는 대상은 내가 아니라 그녀의 가족들이 된다. '나'는 점점 더 공부해 몰입해가고 성실한 모범생이 되어간다. 처음엔 지지부진했으나 릴라와 공부를 시작한 후 전교1등을 하게 된다. 그 사실을 전하지만 릴라는 자신이 있었으면 1등은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진정한 1등이 없는 상태해서의 1등이라고 자괴감에 빠지는 '나'. 


드디어 릴라가 자신도 나만큼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내게 증명할 필요성을 느낀 것 같았다. - p. 212

 

  사춘기는 '구두이야기'라는 소제목을 가지고 있다. 릴라는 먼저 여성화되는 '나'의 신체와 진학을 함에 따라 릴라보다 뛰어나질 것을 경계하듯이 '나'를 앞지르려한다. '나'는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고 그 곳에서는 라틴어 뿐 아니라 그리스어를 배우는데 그 사실을 릴라에게 말하자 릴라는 그 날로부터 '나'에게 말하지 않고 그리스어를 공부하기 시작한다. '나'는 그것을 알고 언제나 릴라는 나에게 앞지르려고 하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여전히 릴라와 함께 공부를 했고, 고등학교에서도 여전히 우수하고 남자친구까지 생기자 릴라는 서글퍼하는 듯 보인다. 릴라 얘기를 떠올릴 때면 비교대상 중 하나였던 '나'의 여드름도 가라앉기 시작한다. 


 원래 알던 사상이 깨어지거나 지식의 폭이 넓어질 때 혹은 알던 사람이 낯선 이로 보일 때 경계의 해체라는 표현을 쓴다. 릴라가 신발을 만들면서 상상한 미래가 현실로 다가오지 않자 릴라의 오빠가 그녀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던 양 폭력적으로 변하게 된다. 릴라는 충격을 받고 경계의 해체를 겪게 된다. 그로 인해 '분해되는' 듯한 경험을 하는 릴라는 그에게 헛된 바람을 불어넣은 것을 후회하며 구두를 하나 만든 것으로 족하고 독서와 공부에도 흥미를 잃게 된다. 그러자 '나' 또한 그 일들이 별 것 아니고 그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인 것처럼 여기게 된다.


동네의 범주를 벗어난 외부세계의 사물과 사람, 풍경과 책에 쓰인 사상을 대하면서도 릴라를 일종의 정신적 지지대이자 자극제로 간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의미한다. - p. 246

 '​나'는 선생님의 권유로 이스키아섬에 휴가를 가게 된다. '나'는 거기서 꽃처럼 피어난다. 머리는 다시 금발로 변했고 여드름은 사라지고 온몸이 태닝되어 매력적인 여자가 된다. 그리고 '나'는 그 곳에서 끔찍한 일을 겪게 된다. 다시 돌아온 '나'는 처음으로 릴라에게 우위일 수 있는 사건임에도 감추고 다시 여드름이 난 모범생으로 돌아간다.


이 일은 내게 없는 것이 그녀에게 있고 그녀에게 없는 것이 내게 있다는 생각을 더욱 강하게 뒷받침해주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계속되는 이 게임은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괴로웠지만 우리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만들었다. - pp. 343-344

​ '나'는 고등학교에서 모범생의 역할에 충실하고, 릴라는 구두를 만들던 것을 중단하고 집안일에 충실한다. 그러던 중 아름답고 매혹적인 릴라에게는 여럿이 계속 대시를 해오는데 그 중 릴라가 혐오하는 인물이 약혼자처럼 굴고 부모님도 흡족하게 여기자 다른 사람과 친해지고 결혼을 약속하게 된다. 그리고 릴라는 결혼식을 올리고, 그 곳에서 충격적인 진실을 접하게 된다. 결혼식은 정말 모두의 욕망이 드러나는 곳이었다. 다들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가 가장 명확하게 드러났고, 그리고 마지막의 반전으로 인해 다음권이 기다려지게 만든다.


눈부신 친구잖아. 너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되어야 해. 남녀를 통틀어서 말이야. - p.416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시선으로 릴라를 '나의 눈부신 친구'로 바라보고 있지만 결국 릴라 또한 나에게 은밀한 열등감과 질투를 가지고 '나'를 '눈부신 친구'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둘은 서로에게 가장 친한 친구로 허물을 드러내고 고난을 알릴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정말 '애증'이라는 것이 딱 알맞아 보이는 관계. 두 인물이 각각 어떤 성장배경을 지니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서로를, 혹은 세상을 대하는지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서로의 가장 신뢰하는 지지자이자 더 나은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은밀한 라이벌이었던 둘. 첫 독서에는 둘의 관계에 중점을 뒀지만 격동의 시기였기에 책에는 나치, 파시즘, 전쟁, 고통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고 있으니 시대 배경을 고려해서 다시 한 번 읽어봐도 재미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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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알레르기
고은규 지음 / 작가정신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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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 알레르기'는 고은규의 단편 소설집이다. 이 단편집에는 등단작인 '급류타기'와 표제작인 '오빠 알레르기'를 비롯해 총 7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순서는 '오빠 알레르기', '차고 어두운 상자', '맥스웰의 은빛 망치', '엔진룸', '급류 타기', '딸기', '명화'. 각각 다른 나이대의 여성들이 주인공인 이 단편집은 어딘가 왜곡되고 결핍되어 있는 사람들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오빠 알레르기'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왠지 웃음이 나는 로맨스 소설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예상 외로 굉장히 묵직한 이야기 모음집이다. 화자들은 모두 다 누군가의 죽음. 혹은 부재에 관해 경험하고 그에 관해 어딘가 굴절된 모습을 지닌다. 무언가의 상실이나 고통에 관한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기에 작품의 분위기도 매우 어둡다. 마치 전체 이야기에서 어딘가 한 부분을 뚝 떼어 놓은 것처럼 그들이 그 이후에 어떻게 살아갈지에 관한 이야기들도 분명치 않다.


 '오빠 알레르기'에서는 자신에게 오빠 알레르기를 갖게한 원인인 소영이라는 선배와 은수, '차고 어두운 상자'에서는 사채업자와 멀리 살고있는 어머니, '맥스웰의 은빛 망치'에서는 전 애인에 대한 굴절된 사랑으로 인한 모임과 이웃집, '엔진룸'과 '급류타기', '딸기'와 '명화'에서는 가족에 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안타깝거나 어딘가 섬뜩한 이야기들.

 

  단편집에서 '딸기'와 '맥스웰의 은빛 망치'도 좋았지만 특히 표제작인 '오빠 알레르기' 기억에 남는다. '오빠 알레르기'는 중년의 직장인인 '나'가 화자로 나오는 소설이다. 경력 없는 신입사원 c와 j. C와 j는 속눈썹 모양으로 붙인 별칭으로, 그들은 호칭 하나 제대로 부르지 못하고 각각 김대리와 황대리에게 오빠라고 부르는 실수를 한다. 그 날 회식자리에서 오빠를 연발하는 노래를 부르며 대리들에게 묘한 손짓을 보내는 것을 보고 나서 본인 스스로도 꼰대라고 인정하는 '나'는 굉장히 불쾌해져 어깃장을 놓는다. 사장에겐 사석에서 언니라고 부르면서도 오빠 아닌 오빠들에게 오빠라고 말하는 것에 진저리를 치는 '나'. 그 배경에 소영과 은수라는 사람이 있음을 알려준다.


개강 때 엄청난 모멸감을 느꼈어. 공대에 웬 치마들이 이리 많이 보이냐고. 학과장이란 사람이 그러는 거야. 타 대학보다 치마들이 많아 우리 학굔 이제 망했다고 실실 웃으면서 말했어. 나중에 따졌더니 농담이었대. 그때 그 심정 너는 이해할 수 있겠니. - p. 26


선배라고 나를 부르던 어떤 후배가 어느 날 오빠라고 불렀는데, 이상하게 걔한테 잘해주고 싶고 보호해주고 싶은 생각이 드는거아. 웃기지? 걔는 내 보호 아래에 있어야 할 것 같고 나는 걔보다 힘이 세져야 할 것 같은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그 관계는 동등한 게 아니잖아. - p.29


​  성 정체성을 부정함으로써 동등해지려는 노력을 했다는 소영. 그녀는 동등해지지는 않았어도 그들 마음대로 되는 여동생은 아니란 걸 보여줬다고 말한다. 후에 은수와 사귀게 되고 충격을 느낄 상황이 벌어지고 나서 '나'는 오빠의 의도적 남용에 대해 생각한다. 관계의 불평등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여혐과 남혐이라는 용어가 남발하고 있는 지금 이 시대. 남녀평등에 관한 주제는 현재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화두로, 현대 사회는 여성의 권리 의식에 대해 일반인까지도 생각을 해 볼 수 있게 만드는 과도기가 아닌가 싶다. 오빠과잉시대에 대해 꼬집고 있는 이 소설 또한 이러한 시대에서 나올 수 있는 작품이지 싶어 깊은 인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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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수리공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강렬하고 섬뜩한 묘사, 충격적인 결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기묘한 작품이라는 문구에 끌려 보게 된 장난감 수리공. 220페이지 밖에 안 되는 소설이라 정말 2시간도 안 되어 금세 읽을 수 있었다. '장난감 수리공'과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 두 가지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특히 '장난감 수리공'은 굉장히 짧은 단편 소설로 제 2회 일본호러소설 대상 수상작이자 세이운상을 비롯한 각종 문학상에 노미네이트된 작품이라고 한다. 영화와 연극, 만화로 제작되었다고 하니 찾아볼 수 있으면 찾아봐야겠다.


  일본 미스테리 소설은 그로테스크한 면이 있다. 대학 시절 한창 일본 호러, 미스테리, 스릴러 소설에 심취해 유명한 작가의 소설은 닥치는대로 읽어보았었는데 특히 '오츠 이치', '기리노 나쓰오' 등의 작품을 좋아했다. 대학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했던 단편집 ZOO. 그 안의 첫번째 소설인 세븐 룸이라는 단편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 후 오츠이치의 작품은 전집을 거의 모았다. 그런 오츠 이치가 '나의 인생을 바꾼 호러 소설'이라고 평했으니 당연히 흥미가 갈 수 밖에. 보통 영화, 도서 등 한국 감성을 좋아하는 편인데 역시 공포, 미스테리는 일본 소설이 취향에 맞다. 그 잔인한 묘사와 기괴함, 뒤틀린 심리 묘사와 독특한 설정이 압권이다. 


  두 소설 모두 재미있게 읽었지만 개인적으로 '장난감 수리공'이 더 좋았다. 제목 자체가 장난감 수리공이니만큼 딱히 예상 불가능한 전개는 아니었지만 묘사와 결말이 흥미롭다. 소녀는 동생인 미치오를 돌봐야 했다. 그 아이를 실수로 상처입힌 날, 소녀는 어머니에 의해 기둥에 이마를 찧게 되었고 아버지에 의해 기둥에 묶였다. 그러던 어느날 육교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동생 미치오가 죽게 된다. 그가 죽은 걸 어떻게 숨길 수 있을까? 그가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게 어떻게 만들지? 그녀는 그때서야 장난감도 인형도 없어 머나먼 존재였던 장난감 수리공을 찾아간다. 그녀는 얼굴살점이 떨어지는데도 통증을 호소하지 않는다. 장난감 수리공을 만나러 가는 길. 그녀는 죽은 고양이를 고쳐달라고 갈 것이라던 여자애를 만난다. 장난감 수리공은 장난감이 어느정도 모여야 수리를 시작한다고 말하며 고양이를 고치는 일은 아직이라고 했다. 여자아이는 장난감수리공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설명하면서 그들의 상태를 묻는다.


...그거 피야? ...옷에도 피가 묻었네. ...미치오 입에서 뭔가 나왔다. ..네 얼굴에서 뭔가 떨어졌어. ...둘 다 왜 귀에서 우유같은게 나와? ...왜 아기 두 팔 길이가 이렇게 달라? - pp. 24-26


  그렇게 소녀는 장난감수리공을 찾아간다. 그는 우선 미치오의 옷을 벗긴다. 그리고 그를 해부한다. 마치 정말 사람이 아닌 것을 대하는 양 즐거운 듯 노래를 부르며 해부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이 묘사로 인해 소설이 유명해진 게 아닌가 싶다. 섬뜩한 묘사와 즐거운 듯한 장난감 수리공..그렇게 되살아난 미치오는 잘못된 수리 주문으로 성장하지 못하게 된다. 다시 데려가 수리주문을 하자 이번엔 산채로 해부한다. 미치오가 운다.


시계에는 생명이 있고 인간에게는 생명이 없을지도 모르잖아. - p. 40
기계를 점점 정밀하고 복잡하게 만들다 보면 결국은 생물에 도달한다고. 그 사이에는 아무런 경계선도 없어. - p. 42


  이에 이어지는 생명과 무생물에 대한 서로의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그 이야기에 대해 설전을 벌이다가, 문득 이야기의 시초가 된 선글라스의 이야기로 돌아가고 나서 이어지는 마지막 대화에 소름이 돋았다. 이 작품이 1995년 제2회 일본호러소설대상을 수상했다니 얼마나 오래 된 이야기인지. 이 작품이 지금 와서도 이런 감정을 이끌어 낼 정도면 당시엔 정말 파격적이었을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는 단편이라기엔 살짝 긴 중편 소설. 시간여행에 물리학을 접목시켜 쓴 SF 호러 소설이다. 작가 본인이 공학도라고 하니 놀라운 일은 아니다. 물리학적인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정독했음에도 사실 내가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했는가하면 그건.. 아니다.ㅋㅋ 여러번 더 읽어봐야겠다. 시간의 연속성과 그것을 연결하는 기관, 대체기관으로써의 대뇌의 역할. 파동함수의 수렴, 파동함수의 발산. 현재로 돌아와 확정을 시킨 시간와 미래로의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지누 소지는 동기들과 술을 마시고 돌아가는 길에 시노다 다케오라는 남자를 만난다. 자신이 의사이지만 의사였던 적이 없다는 그는 자신과 소지가 절친한 사이었다는 기억은 존재하나 그러한 사실은 없다고 말한다. 그가 정신병자라고 생각했지만 자신밖에 모르고 있는 사실까지 알고있자 소지는 찝찝함에 택시까지 보내고 돌아가 납득이 가는 설명을 해달라고 청한다.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둘은 한 여자를 사랑했다. 자신이 먼저 사귀었고 후에 소지가 그녀를 만났다.


옛날 책에 나와요. 전설인가 뭔가에.   하지만 이미 변했을지도 모르겠네요. - p. 66
전에는 알았는데 일일이 기억하는게 귀찮아서... - p. 67
아아 그랬죠. 그렇게 됐다는 걸 깜빡했어요. 맞아요, 이제 돌에서는 냄새가 안 나죠. - p. 68


  그녀는 어딘가 독특한 매력이 있다. 그녀에게 매료된 그들은 데고나가 둘에게 선택에 대한 대답을 해주겠다고 했던 날 데고나의 죽음을 알게된다. 시노다 다케오는 진작 포기를 하지만 지누 소지는 달랐다. 그는 그녀의 살점을 얻어 다케오에게 유전자를 채취해 복제인간을 만들라고 하고 자신은 시간의 역행에 대해 연구한다.


시간의 흐름은 의식의 흐름이아. 의식의 흐름을 조종하면 시간의 흐름도 조종할 수 있어 - p. 115


  그는 시간의 방향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믿고 시간 감각이 이상해진 환자를 찾는다. 그 사람들의 공통된 같은 기관 장애를 찾고 자신의 그 영역을 파괴해 시간의 흐름에서 해방되고자 한다. 그는 스스로에게 시술을 하고자하나 뇌를 건드렸음에도 프로그램에 버그가 있어 실패한다. 그는 죗값을 치를 때가 왔다며 시노다 다케오 또한 시술을 받도록 만든다. 그리고 둘은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

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과거에서 미래로 이동하듯이 그와 같은 속도로 우리가 미래에서 과거로 이동할 수 있을거라고만 생각했어. 하지만 네가 체험했듯이 잠든 사이에 갑자기 시간을 건너뛰었지. 스스로는 도착점을 선택할 수 없어. 분명 내 생각이 얕았던거야. 아무 근거도 없이 시간이 연속체라고 믿었어. - p. 146
시간은 연속되지 않은 점의 집합이야. 하지만 모두가 제멋대로 그 점에 순서를 매기면 뒤죽박죽이 되겠지. 그래서 뇌가 물리현상의 연속성이 충족되도록 시간의 점에 순서를 매기는거야. 우리는 시간에 순서를 매기는 뇌기능을 파괴했어. - p.147


  그들은 현재에서 미래로 연속되어 가듯, 그 시술로 인해 현재에서 과거로 연속해 갈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모든것이 뒤죽박죽이 된다. 육체가 미래로 이동하는 게 아니라 이동하는건 의식뿐. 그들의 어느 모든 것도 확정적이지 않으며 그들의 '시간여행 시술을 받은 의식체'로서의 둘이 만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적다. 수백 수천 수만의 반복이다. 다시 같은 날로 돌아가도 어떤 것도 자신이 알고 있던 상황과 꼭 들어맞지 않는다.


  그것은 가까운 시일 내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기에 자신이 쌓아올린 어떤 것도 의미가 없다. 의미가 없어 미래를 위해 노력하지 않기에 인생은 점점 악화되어가고, 죽어봤자 죽지 않았던 과거로 의식이 이동될 뿐. 모든것을 듣고 나서 소지는 다케오에게 데고나를 되찾았냐고 묻지만 그는 어리석은 질문이라 답한다. 그 후 소지 또한 자신의 상태가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고 인지한다. 그는 내면의 목소리와 대화를 한다. 섬뜩함은 바로 이 마지막 페이지에 있다. 시간의 개념이 완전히 달라진 상태란 어떤것인가에 대해 흥미롭게 전개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보통 이런 장르의 소설은 마지막에 반전이 있기 마련인데 언제나 대비를 하고 읽음에도 거하게 뒷통수를 맞는다. 두 작품의 마지막 부분이 인상깊다. '장난감 수리공'은 단편소설이니만큼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잔인한 묘사가 강렬했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는 이해를 하면 몰려오는 섬뜩함이 있었다. 작가의 또다른 작품으로는 '밀실살인'과 '커다란 숲의 자그마한 밀실', 그리고 최근 국내에 출간된 '앨리스 죽이기'라는 소설이 있다는데 그 작품들 또한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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