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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라스트 레터
조조 모예스 지음, 오정아 옮김 / 살림 / 2016년 7월
평점 :
기억을 잃은 여자가 있다. 이름은 제니퍼. 그녀는 교통사고를 당했고 기억을 잃었다. 서서히 되찾아가는 기억엔 로런스라는 남편과 보통 남편에게 찾을 수 있는 익숙함이 없다. 몸상태가 좋아져 퇴원을 했지만 집도 처음 보는 집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낯설다. 자신조차 낯설다. 그녀는 자신을 보고 예쁘장하게 생겼다는 감상을 느끼고 집안을 둘러보고 자신은 외모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잔가 봐 - p. 24라고 느낀다. 처음 시작이 스릴러 같아 흥미로웠다.
내 기억엔 커다란 구멍이 있어. 내 삶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난......난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 p. 34
챕터는 과거인 1960년 8월과 현재인 1960년 10월 이후를 번갈아 보여준다. 과거의 그녀가 어땠는지 현재의 그녀는 어떤지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다. 과거와 현재의 그녀는 각각 다른 인격같은 느낌도 든다. 현재의 제니퍼는 모든 것이 기억나지 않고 마치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말을 남편에게 했을 때 그는 표현하지 않지만 분노한다. 그는 통제하길 좋아하는 사람이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 - 책 속에서
그러다 그녀는 우연히 책 사이에서 편지를 발견한다. 그녀에게 온 편지였다. 그리고 과거 앤서니와 제니퍼의 이야기가 나온다. 편지로 인해 현재의 제니퍼는 과거의 제니퍼가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졌음을 알게 된다. 그녀는 편지를 총 세통 찾아낸다. B라는 서명을 쓴 사람이 보낸 편지는 정확히 누구인지 알 수 없고, 기억이 불완전한 현재의 제니퍼는 B라는 단서로 관련된 사람을 떠올리지 못한다. B라는 사람도 의문이지만 제니퍼는 사고 당시의 일도 기억하지 못해 그 사고에 관해 알고싶어한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제니퍼의 엄마. 남편. 친구까지도 그 일에 관해 언급을 회피한다. 그리고 남편과 그의 비서는 그 일에 관해 어쩐지 수상쩍다.
그는 지금처럼 욕망과 가능성이 하나가 되는 순간을 사랑했다. - p. 152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기에 초반부터 그녀가 사랑에 빠진 사람이 누구인지가 명확하다. 그러나 의외로 과거파트는 남자위주의 서술이고 현재파트는 제니퍼 위주의 서술이어서 그런지 현재의 자신이 과거를 더듬어 나가는 파트가 전혀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다. 초반부에서는 과거의 제니퍼와 현재의 제니퍼가 각각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지만 그녀는 의외로 자신의 과거에 대해 이질감을 금세 떨치고 적응을 한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만났고, 고요한 몇 분 동안 그녀에게 모두 말했다. 그녀는 지금껏 마주한 어떤 것보다도 놀라운 존재라고. 그가 깨어있는 순간에는 그녀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그때까지 경험한 모든 일과 모든 감정은 이 엄청난 사실과 비교하면 시시하고 하찮아진다고. 그는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 pp. 164-165
그들의 관계는 어찌됐든 불륜이니만큼 내 기준에서 전혀 로맨틱하지 않지만 묘사만큼은 날 설레게 하기 충분했다. 그것도 편지로 이루어지는 로맨스라니 얼마나 은밀하고 그들의 사랑에 적합한 방식인지.
그 편지들은 그녀가 알았던 사랑을, 그 사랑으로 변화한 그녀의 모습을 펼쳐 보여주었다. 손으로 쓴 그 문장들 속에서 제니퍼는 다양하게 비춰진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 p. 173
그렇게 1부는 과거 교통사고 나기까지의 진상과 현재의 제니퍼의 혼란을 보여준 채로 끝난다. 이어지는 미래는 1960년 12월으로부터 3년정도가 지난 1994년 여름이다. 남편인 로런스는 여전히 자신이 어떤 행동이나 옷을 입어도 흠집을 잡고 자신을 깎아내린다. 그녀는 남은 평생을 그의 분노를 감당하며 이렇게 살아야하는지에 관해 생각한다. 1년 전부터 로런스는 변덕스러워졌고 그녀는 로런스에게 정부가 생겨서 그렇다고 추측했으나 괴롭지 않고 안도감이 들 뿐이다. 그리고 그녀는 로런스와 함께 참석한 칵테일 파티에서 편지의 그를 만나게 된다.
로런스는 그녀가 불쾌하게 한 점들을 하나하나 떠올리게 만드는 것으로 비뚤어진 쾌감을 느꼈다. 그는 매일 수천 가지 방식으로 그녀의 실패를 일깨웠다. - p. 275
지지부진하게 오해가 얽혀 그들이 서로의 진심에 대해 알기까지 오래 걸릴거라고 생각했으나 오해는 그들이 만나자마자 시원하게 풀린다. 그녀는 그가 누군지 이름이 뭔지 모든 걸 잊었지만 그를 보는 순간 심장이 멈춘 듯한 충격을 받는다. 그녀는 그를 알아봤다. 하지만 이제 그녀에게는 딸이 있다.
모이라라는 비서는 로런스를 사랑한다. 그는 그와 세번 사랑을 나눴으며 그걸로 만족하고 살아가지만 로런스는 그녀를 비서자리에서 내쫓는다. 모이라는 제니퍼를 찾아간다. 모이라는 제니퍼에게 로런스를 파멸시킬 수 있는 석면에 관한 자료를 건네주고 그녀에게 그 '마지막 편지'를 전한다. 그녀는 그 서류들로 남편에게 자신의 요구를 전하고 그를 찾아가지만 딸을 보고 충격을 받은 그는 벌써 아프리카로 떠났다. 그녀는 그에게 꼭 전달해달라고 파일을 전하지만 그 파일은 전달되지 않고 40년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1964년으로부터도 한참 지난 2003년. 엘리라는 여자가 나온다. 그녀는 아내가 있는 남편과 사랑에 빠져있다. 그녀는 자료를 뒤지다가 그 편지를 발견한다. 흥미를 갖게 된 그녀는 1960년대 신문을 뒤진다. 그리고 이 것과 관련된 단서를 찾아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칼럼을 쓰면 어떻겠냐고 제안하고 긍정적인 반응을 얻는다. 엘리는 사서함 13호를 찾아가 당시 사서함 주인을 찾으려 하지만 주인에 대한 정보를 알 수는 없었다. 단지 40년동안 편지를 한 통도 받지 않았음에도 같은 사람이 그 사서함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그 사서함 주인에게 연락을 바란다는 서신을 남긴다. 이틀 후 전화벨이 울렸다.
결말부까지 엘리로 인해 그들이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들의 감정은 어떤 것이었는지에 관해 나온다. 그로 인한 엘리의 감정변화와 관계의 변화까지. 처음엔 부정적으로만 느껴졌던 그들의 관계도 책의 후반부까지 읽어나가며 점차 둘이 잘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편지를 통한 사랑은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와 '일곱번째 파도'에서 접한 적이 있는데 이건 정말 편지로만 이어지는 내용이고 '더 라스트 레터'는 편지를 통해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가고, 또 관계가 어긋나는 내용이라 차이가 있지만 모두 어딘가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마음을 울리는 데가 있다. 나는 언제 편지를 써봤는지에 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마침 1년 전 내일로를 갔을 때 느린 우체통으로 1년 후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는 서비스를 이용한 적이 있는데 근래 도착했다. 그 엽서를 받아 느꼈던 감정을 생각하니 편지를 통한 감정 교류가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