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소재원 지음 / 작가와비평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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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널이 무너졌다. 딸의 생일날 생긴 사고. 금세 구조될 거라 믿는 이정수는 부인과 통화하며 와인을 사가겠다는 약속을 한다. 하지만 금세 전해진 소식. 터널을 조금이라도 건들이면 완전히 와해될 가능성이 있다!


  개통된 지 5개월만에 무너진 터널. 그 안에는 3일째 갇혀 구조를 기다리는 이정수가 있다. 그 시간동안 대한민국의 모든 시선은 이 사건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그에게는 딸의 케이크를 사며 서비스로 받은 빵 5개와 생수 2개가 있다. 차량용 충전기가 없기에 하루에 구조대와 3분 아내와 3분 통화만이 허락되었고 그마저도 2주일만 버틸 수 있을 뿐. 여름이라 빵이 상할 수 있는 우려가 있다는 점을 숙지하고 그나마 물은 구조대측에서 호스로 흘려보내주기로 한다. 30도가 넘는 무더위 앞에 인간은 무력하다.


시간은, 모두를 집으로 돌아가게 하는데 왜 나만 여기 있는 거지? - p. 98


  먹을 게 없는 그는 자신의 오줌을 그대로 받아내 들이킨다. 아내 김미진은 도로공사. 경찰서. 소방서. 시공사를 쫓아다니며 터널이 무너진 책임을 묻는다. 하지만 모두 자신의 담당이 아니라고 하며 그녀를 내쫓는다. 원칙을 따랐다고 할 뿐이다. 인명구조가 시급한 상황에 인간은 책임소재를 먼저 따졌다.


관련 없다 이야기한 모든 기관이 연루된 모습에 김미진은 어이없는 웃음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 p. 84


  땅엔 암석이 많고 그걸 뚫기위한 진동으로 터널이 무너져내릴 위험성이 있다. 구조작업을 벌이던 5일째. 돌덩이를 찍어내리던 포크레인이 부러져 인부에게 부상을 입혔다. 시공사를 찾아간 그녀를 경비가 쫓아내려하자 그녀는 울분을 토해낸다. 그 사건은 동영상으로 찍혀 여론조성에 도움이 된다. 네티즌들은 연일 의문을 제기하고 결국 하청업체 사장은 양심선언을 한다.  정부에서 주는 공사대금으로는 설계도면대로 만들 수 없기에 쓰인 설계와는 다른 시멘트와 철근. 공사대금의 70퍼를 제외한 사라진 30퍼센트.


서로가 동문서답과 같은 말들을 내뱉었다. 마지막 통화. 처절한 전쟁 속에서 서로의 손을 놓지 않으려 하는 모습과 같았다. - p. 101


  한편 패닉에 빠진 이정수는 아내에게 전화를 한다. 공포에 빠진 둘은 서로를 향해 동문서답을 하며 울부짖는다. 그는 전문가가 일러준대로 본능에 따라 아내에게 전화를 한다. 마지막 통화가 끝나고 이제 바깥에서는 이정수의 생사를 알 수가 없다.


어느 사무실네서는 단체로 기도를 했다고 했다. 몰래 듣고 있었는데 자신과 같이 도둑 라디오를 청취하는 직원들이 기도를 드렸다고 했다. 어느 주유소 사장은 라디오를 듣다 기도를 올리는데 직원들과 주유소를 찾은 손님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1분이라는 시간을 간절하게 빌었다고 했다. 도로에서는 파란불이 바뀌어도 출발하지 않는 차들로 1분 동안 클락션 소리러 요란했다고 했다. - p. 124


  배터리가 다 된 패닉상태에서 갓 벗어난 남편이 걱정된 아내는 방송국으로 직접 찾아간다. 처음엔 문전박대를 당했으나 터널 관련 가족이라는 것을 알고나서 10시에 사연을 전해주기로 결정이 난다. 모두가 그를 위해 기도한다. 아름다운 1분의 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줌과 비타민이 들어간 물만으로 버티는 그를 두고 생존에 대한 도박판을 벌이기도 했다.

내가 말했지? 기억은 과거를 머릿속에서 다시 한 번 살아보는 거라고. 떨어져 있는 시간 동안 우리 과거를 머릿속에서 거듭 살아보도록 하자. 그리웠던 그 시절을 새롭게 살아보는 거야. - p. 134


  그러던 중 터널 보수작업으로 인한 차량통제로 구급차가 돌아가게 되면서 사상자가 두명이나 생기자 여론은 급격하게 돌변하기 시작한다. 배터리도 끊어져 그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상황. 인근 주민들은 그를 구조하기 위해 또다른 희생자가 생기는 상황이 옳은 것이냐며 여론을 조성한다.


모두가 옳았다. 틀린 부분은 전혀 없었다. 이정수의 구조를 반대하는 쪽도, 찬성하는 쪽도 정의에 반대되는 입장은 전혀 없었다. - p. 142


  어려운 일이다. 하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다른 한쪽에서는 위급한 환자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한 쪽은 한 명. 살아 있는지 죽어있는지도 알수가 없다. 그리고 또 한 쪽은 눈에 직접적으로 보이는 인명피해가 나날이 수를 더해가고 있다. 이런 경우에 어떤 쪽에 무게를 실어야 할지는 참 어려운 문제. 소설에서도 갑론을박이 펼쳐진다. 모두가 철학자고 모두가 맞는 말을 한다. 이정수는 동정받는 피해자에서 점차 자리를 벗어난다.


  그러다 음주트럭이 교통사고를 내고, 그 트럭이 구조차량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아내는 목숨의 위협을 받을만큼 위태로운 상황에 치닫는다. 가해자는 따로 있건만 피해자는 또다른 피해자를 핍박하고 단죄한다. 그러기를 여러날. 결국 그녀는 구조를 중단해달라 한다. 그리고 구조가 중단되고 터널을 허무는 작업이 시작된지 2일만에 자살한 이정수가 발견된다. 자살추정시간은 2일전. 이 사실이 밝혀지자 그가 죽었다고 말하던 여론은 침묵하고 그녀를 자살하게 된 원인으로 몰아 마녀사냥을 시작한다.


한 가족에게 칼날을 겨누었던 누군가는 가장이 되었다. 자식을 낳았다. 취직을 하고 승진을 하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 p. 231


  이 소설을 불편한 소설이라고 말했다. 맞다. 불편한 책이고 한편으로는 꼭 봐야 할 책이다. 영화 보기 전 책을 보고 봐야지 생각하고 그저 그런 재난소설이겠거니 여겼는데 실체는 생각과 달랐다. 손가락의 무서움에 대한 이야기다. 인터넷의 발달로 익명성에 기대 사람들은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가. 정작 가해자는 따로 있거늘 사람들은 끝끝내 피해자에게 가혹해진다. 잘잘못을 물어야 할 곳엔 조용하고 그 책임을 피해자에게 묻는다. 그들의 목소리가 한 가정을 죽였다. 마지막 김미진의 선택에서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또한 그 선택에 대해서도 대중은 얼마나 잔인한지.


  어쩌면 나는 또다른 터널의 가해자가 아닐런지. 사실을 정확히 알지 못한채 기사만 믿고 누군가에게 함부로 말한 적이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지는 않은지. 강요와 마녀사냥 챕터는 자아성찰을 하게 만든다. 책에서 말한 말마따나 '그럴수도 있지'라는 면죄부는 함부로 자신에게 주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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