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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어쩌다 이런 가족
전아리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8월
평점 :
전아리의 10번째 소설. 전작은 뮤지컬로도 유명한 '김종욱 찾기'가 있고,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소장하고는 있는 '간호사 J의 다이어리'가 있다. 각종 청소년 문학상을 휩쓴 전아리가 이번엔 ‘첫째딸 동영상 유출 사건’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들고 찾아왔다.
잘 나가는 대기업 대표인 아빠. 교수집안 딸에 미술을 전공한 엄마. 둘의 유전자를 잘 물려받은 첫째 혜윤. 그리고 그런 이상적인 가족 안에 어울리기 힘들어하는 둘째 혜란. 그래도 겉보기엔 그린듯한 가족은 아침식사는 꼭 함께 해야한다는 룰이 있다. 대화는 거의 첫째와 아빠가 주도하고 엄마는 거드는 역할. 둘째는 거의 말이 없다. 그러던 어느날 첫째가 평소와 다르게 말수가 적더니 폭탄발언을 한다. 첫째는 섹스 동영상이 찍혔고 협박을 당하고 있었다.
아무리 가족사라지만 사람 입에서 말로 오르내리다보면 자연히 일은 커지고 쓸데없는 분노가 증식되어 감정을 주체할 수 없게 되기 마련이다. 사람 일이란 자고로 없었던 듯 지내다보면 기억 한구석으로 밀려나게 되고 종국엔 정말 없는 일처럼 되는 법이었다. - p.25
챕터는 각각 가족들의 시선에서 전개된다. 처음은 둘째딸의 시선에서 두번째는 어머니 그리고 세번째는 아버지. 어머니인 미옥은 사랑을 했다. 그녀는 유학시절 구한과 연애를 했고 그의 집이 주식과 도박으로 파산하자 그와의 미래가 없다는걸 인정하고 마음을 접는다.
마음의 문은 놀라울 만큼 빠르게 닫혔다. 무엇에도 중독되지 않았던 것처럼. - p.36
구한의 가족은 희망이 없다는 듯 가족 모두가 렌터카로 자살시도를 한다. 구한만이 살아남지만 코마상태에 빠진다. 미옥은 그의 생명장치를 유지하는 조건으로 남편과 중매로 결혼한다. 그녀는 27년째 그를 일주일에 두어번 방문하면서 자신의 이런 저런 일상을 들려준다.
함께 추락하는 삶은 비극이다. 가족이라면 서로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라도 다시금 각자 품위있는 삶의 궤도에 올라야만 한다. - p.38
미옥은 그의 어머니로부터 품위있게 살라는 교육을 받았고 혜윤을 그렇게 교육시켜왔다. 숨막히는 가족의 분위기는 미옥이 주도해서 만들어 나갔고, 그의 남편은 미옥을 필요로 하지만 숨막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딸들 또한 미옥에게서 각자의 상처를 받는다.
최선을 다하고 자시고는 관심도 없으니 제발 내 기대에 미치게만 살란 말이다. - p.51
아버지 용훈은 혜윤과 이야기를 하고 줄곧 두통에 시달린다. 혜윤은 랜덤 어플로 삼십만원씩 받고 다섯명과 잠자리를 가졌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연이 닿아있는 흥신소로 의뢰를 하지만 그의 집에는 동영상이 없다. 감시를 붙였으나 그는 홀연히 사라졌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이상적인 유전자만 물려받고 세상에 나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이면을 지닐 흔치않은 가능성. 그녀는 그 또한 품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 - p.53
드디어 첫째의 시점으로 넘어온다. 불안과 초조한 심정에 죽을 듯 힘들어하고 있으리라 예상했던 그녀는 예상과 다르게 침착하다. 그녀의 챕터 제목은 '설계맞춤, 내 인생'. 전혀 달라진 내용으로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집안의 어느 견고한 벽보다도 가장 단단하게 서로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적막의 벽이었다. - p.55
소음이 없는 가족. 그들은 싸우지 않으며 문제가 생기면 각자의 방식대로 해결하거나 회피했다. 마더 테레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그녀에게는 이면의 얼굴이 존재했고 그럴 때의 그녀는 행복하다. 정말 랜덤어플을 사용해 사람들을 만나왔지만 진욱을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그녀는 사랑을 잡기로 결심한다.
소외되었다는 사실을 자기방어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스스로를 방관자라고 여기는 것이다. - p.91
계획되지 않은 둘째 혜란. 그는 어렸을 때부터 깊은 외로움을 가지고 있다. 외할머니는 그녀를 지우라고 했으며 엄마는 그녀를 포기했고 아빠는 관심도 없고 언니 혜윤이 그녀를 보는 눈에서는 희미한 경멸을 읽을 수 있다. 언니에 관한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스스로 방관자라고 여기며 가족의 시간인 조식에서도 입다물고 있던것과 다르게 처음으로 적극적으로 사건에 관여하게 된다.
감정이 어떤 형태로든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때, 우리는 소리를 내야만 한다. - p.226
이 책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정확히는 소통 없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 소음이 없는 가족에 대해 의문을 가진 첫째는 자신이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방식으로 가족들이 소통할 수 있도록 계획을 짠다. 벌써 수십년이 되도록 소통이 부재한 가족. 집은 소음이 없는 기묘한 공간이 되었다. 우아하고 품위있어야한다는 엄마의 교육방침에 따라 집안은 적막했다. 첫째 혜윤의 계획에 의해 각자의 행동은 달랐지만 그 계획에 혜윤이 사랑하는 남자가 작은 틈을 만들고 그 틈으로 인해 모든 계획이 어그러지게 된다. 일은 잘못되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결정한 행동으로 결국은 모든 일이 원만하게 풀리게 되고 집안엔 소음이 찾아온다.
품위를 지키며 갈등 없이 회피하던 가족들은 품위는 잠시 내려놓은채 서로에게 느끼던 것들을 소리지르며 다툰다. 그들은 감정을 쏟아부은 후 서로에게 좀더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들을 이해하게 되고 또 더 사랑하게 된다. 조금 더 짜임새 있고 납득 가는 계획과 해결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과 소재가 예상과 다른 방식으로 쓰여 해결방법도 기대와 달랐다는 점이 있지만 공감하기 쉬운 소재인 가족의 소통을 주제로 삼고 있기에 찾아서 봐도 괜찮을 책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