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모션증후군을 가진 남자
안현서 지음 / 박하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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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세에 등단한 소녀 작가 안현서. 그녀의 두 번째 소설 '민모션 증후군을 가진 남자'는 그녀가 18세에 집필한 작품이다. 다양한 예술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그녀는 이번 소설의 표지를 자신이 그렸다고 한다. 자신에게 표지의 여인은 아픈 사람이고, 그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이 책을 인상 깊게 읽었기 때문에 작가의 나이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녀의 앞으로의 작품활동이 정말 기대된다.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본인 스스로에게 확신이 없어서 그럴거예요. 저도 한때 그랬거든요. 모든 것에 불확실한 태도로 적당히. 애매모호하게. 그게 편하니까요. 그런데 오히려 그게 독이더라구요. - p. 16


  민모션 증후군을 가진 남자. '민모션 증후군'이란 '울고 싶은데도 소리내어 울지 못하는 증후군'. 이는 마음이 많이 슬퍼 울고 싶을때 소리 내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거나 손으로 입을 막는 행동으로 자신의 울음소리를 내비치지 않으려는 심리 상태의 현상이라고 한다. 한 남자가 있다. 사랑받지 못 하고 자라나 누구에게 사랑을 쉽게 주지도 못하고 그 자신 또한 사랑하지 못하는 남자 서윤. 그는 홀린 듯한 감정으로 어느날 자신의 사비를 털어 전시회를 열게 된다. 하지만 화려하고 기교있는 그림일 뿐 그림에 감정이 없다는 평이 대부분. 모두가 혹평을 일삼는다.


나 같은 사람이 저렇게 아름다운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어도 괜찮을까. - p. 57 


  마음에 생채기만 쌓여가던 나날. 그러던 어느날 유안이 나타난다. 자신의 그림에 감동을 받았다는 그녀. 그녀는 그의 상태를 정확히 짚어내었고, 텅빈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어준 유안은 서윤의 뮤즈가 된다. 자신의 사진을 그려달라고 부탁하는 자신의 뮤즈. 그런 그녀를 위해 그는 그녀를 좀 더 알아가고 싶어했고, 가까워질수록 그의 작품들은 이름지어짐으로써 생명을 갖게 된다. 점점 서윤은 자신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되고 그녀를 더욱 사랑하고 의지하게 된다.


아무리 가해자를 미워해봤자 사랑하는 존재를 잃은 슬픔은 덜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조금 더 쉬운 선택지를 골랐다. 차라리 가슴 깊이 좋아했던 누군가를 원망하는 편이 내가 덜 아파도 되는 길이었다. 아꼈던 누군가를 미워하다보면 그 존재를 향한 사랑도 무뎌질 것이고, 그러면 내가 그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사실도 언젠가 잊힐 것이다. - p. 58 


  세상이 불운하다고 생각했던 서윤. 상처 입고싶지 않아 도망만 친 서윤. 유안은 그런 그를 알아챘고 알려줬다. 그러나 유안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알려준 후 그는 생각을 달리하게 된다. 그를 구원한 여인은 마냥 긍정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아픈 과거를 가지고 그 과거를 딛고 일어난 그녀가 그에게 살아갈 의지를 줬다. 그 점에 또 한 번 매료되지만 유안은 그런 그를 떠난다.


  그리고 작품은 '환생'이라는 장치를 이용한다. 장르소설에서 많이 접한 '환생'코드는 주로 지나간 자신의 전생을 후회하고 인생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장치로써 많이 이용되지만, 이 소설에서는 '용서'를 이야기한다. 과거에 사랑했던 사람들로부터 관계의 끊어짐을 많이 겪은 서윤은 사랑하는 일에 많이 주저하고 용기를 내지 못 하지만 환생을 경험함으로써 달라지게 된다. 그는 많이 괴롭고 힘든 증오의 시간을 겪지만 그로 인해 '용서'를 하게 되고, 주변의 제 2의 서윤을 발견하고 그 인물이 자신과 같이 허무만 남게 되지 않도록 돕기도 하며 그로 인해 자신을 성장시켜나간다.


  결국 소설은 용서와 화해,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담고 있다. 마치 재난을 당한 것 같이 아무 잘못 없이 배신을 당한 사람과 그 사람이 겪게 되는 증오, 분노, 살의와 같은 감정들. 그리고 새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로 인한 변화. 그리고 또한 그 사람들을 변화시켜 나가는 자신. 그리고 자신이 삶을 다시 살게 된 참된 의미. 미워하는 것이 힘든 일이기 때문에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용서를 한다는 말. 그렇기에 용서와 화해라는 말은 결국 나 자신의 치유와 성장이라는 말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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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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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은 누구에게나 다가오지만 그것을 어떻게 느끼느냐는 다른 문제다. 이 책은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한 의사에 관한 에세이다. 이제 곧 전문의가 될 레지던트였던 폴 칼라니티. 그에게는 사랑하는 아내도 있고, 다음 년도에 전문의가 되게 되면 수입의 여섯 배가 늘어난다며 즐거운 미래계획을 세우고 있었으나 그는 자신의 병을 알게 된다. 폐암 말기.

진단은 명확했다. (중략) 하지만 이번 검사 결과는 이전과는 다른 의미를 지녔다. 그 사진은 내 것이었다. - p. 17


  병에 대한 이야기를 서두에 내보이고 나서는 그의 인생 전반에 대한 전개가 이어진다. 그의 병에 관련해 죽음에 관한 고뇌와 그의 절망, 희망과 극복 그리고 삶의 의지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책의 절반 정도는 그가 살아온 환경과 인생관에 관한 이야기였다. 의사였던 그의 아버지. 그의 아버지를 보고 의사가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일. 그가 순간순간마다 충분한 고민을 가지고 결정했던 선택들.


최고가 되는 일이란 아주 쉬운 일이란다. 최고인 사람을 찾아서 그 사람보다 1점만 더 받으면 돼. - p. 39


  ​아버지는 지역사회에서는 존경받았으나 집안에서는 얼굴도 잘 볼 수 없는 바쁜 의사였다. 의사가 되면 잃을 수 있는 가정의 많은 것들에 대해 생각한 그는 의사가 될 마음이 없었다. 폴은 어머니의 교육열로 인해 많은 책을 보았고, 그 중 몇몇 작품은 그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문학에 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되고 도덕철학의 기초를 쌓기도 한다. 그러던 중 여자친구인 애버게일에게서 저속하다고 일컬어지는 책을 추천받았고, 그 일을 계기로 생물학과 신경과학 강의를 듣게 된다.


나는 무언가를 성취하기보다는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일에 더 끌리는 편이었다. - p. 50

우리는 두뇌 덕분에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삶을 의미있게 만든다. 그러나 때때로 두뇌는 망가져버린다. - p. 59


  그는 문학에 관해 깊이 탐구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길과는 다른 방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는 신경과학 강의로 인해 한 시설을 방문하게 되고, 많은 고민 끝에 의과대학원을 다니기로 결심한다. 대학원을 다니며 그는 삶과 죽음의 관계와 의미에 관해 더 이해하게 되었고, 환자들을 대면하며 의학과 도덕성에 대한 갈래에서 아파하기도 하고 고뇌하기도 한다. 그는 그렇게 의학에 매진하며 생물학과 도덕, 삶과 죽음에 대해 이해하고 서로 연결하며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한다.


환자는 의사에게 떠밀려 지옥을 경험하지만, 정작 그렇게 조치한 의사는 그 지옥을 거의 알지 못한다. - p. 127


  그는 병에 걸리고, 자신이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의사와 환자에 관해 생각한다. 그는 환자를을 많이 만나고, 그들에게 많은 말을 했지만 실제로는 병에 관해, 혹은 죽음에 대해 명확하지 않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느낀다. 그런 깨달음을 가지고 그는 수술 후 병세가 호전되자 다시 레지던트 과정에 복귀한다. 그리고 1년 뒤 다시 재발을 알게 된다. 


  그렇게 삶과 죽음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해 왔던 그는 죽음과 마주하며 자신은 계속 나아갈 수 없지만, 그래도 나아갈 것이라고 다짐한다. 부인과 레지던트 후반에 잠시 좋지 않았던 때도 있었으나 그의 부인과 상의 끝에 건강할 때 자신의 정자를 채취하여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그는 죽기 8개월 전 딸을 만날 수 있게 된다. 불치병에 대한 자세로 그는 서로 깊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완벽함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당신이 끊임없이 다가가고자 하는 완벽함의 점근선은 믿을 수 있다. - p. 266 


  서른 여섯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마딱뜨리게 된 유망한 의사. 삶의 마지막 순간. 삶을 영리하게 살아오며 지식을 탐구하고 선택의 순간마다 충분한 고민을 하고 삶의 가치와 도덕 철학에 대해 연구하던 재능있는 그는 자신의 죽음과 마주하게 된다.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맞이하여 노력하는 그는 죽는 순간까지 삶을 놓지 않고 인생에 대한 또 다른 가치를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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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어쩌다 이런 가족
전아리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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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아리의 10번째 소설. 전작은 뮤지컬로도 유명한 '김종욱 찾기'가 있고,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소장하고는 있는 '간호사 J의 다이어리'가 있다. 각종 청소년 문학상을 휩쓴 전아리가 이번엔 ‘첫째딸 동영상 유출 사건’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들고 찾아왔다. 


  잘 나가는 대기업 대표인 아빠. 교수집안 딸에 미술을 전공한 엄마. 둘의 유전자를 잘 물려받은 첫째 혜윤. 그리고 그런 이상적인 가족 안에 어울리기 힘들어하는 둘째 혜란. 그래도 겉보기엔 그린듯한 가족은 아침식사는 꼭 함께 해야한다는 룰이 있다. 대화는 거의 첫째와 아빠가 주도하고 엄마는 거드는 역할. 둘째는 거의 말이 없다. 그러던 어느날 첫째가 평소와 다르게 말수가 적더니 폭탄발언을 한다. 첫째는 섹스 동영상이 찍혔고 협박을 당하고 있었다.


아무리 가족사라지만 사람 입에서 말로 오르내리다보면 자연히 일은 커지고 쓸데없는 분노가 증식되어 감정을 주체할 수 없게 되기 마련이다. 사람 일이란 자고로 없었던 듯 지내다보면 기억 한구석으로 밀려나게 되고 종국엔 정말 없는 일처럼 되는 법이었다. - p.25


  챕터는 각각 가족들의 시선에서 전개된다. 처음은 둘째딸의 시선에서 두번째는 어머니 그리고 세번째는 아버지. 어머니인 미옥은 사랑을 했다. 그녀는 유학시절 구한과 연애를 했고 그의 집이 주식과 도박으로 파산하자 그와의 미래가 없다는걸 인정하고 마음을 접는다.


마음의 문은 놀라울 만큼 빠르게 닫혔다. 무엇에도 중독되지 않았던 것처럼. - p.36


  구한의 가족은 희망이 없다는 듯 가족 모두가 렌터카로 자살시도를 한다. 구한만이 살아남지만 코마상태에 빠진다. 미옥은 그의 생명장치를 유지하는 조건으로 남편과 중매로 결혼한다. 그녀는 27년째 그를 일주일에 두어번 방문하면서 자신의 이런 저런 일상을 들려준다.


함께 추락하는 삶은 비극이다. 가족이라면 서로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라도 다시금 각자 품위있는 삶의 궤도에 올라야만 한다. - p.38


  미옥은 그의 어머니로부터 품위있게 살라는 교육을 받았고 혜윤을 그렇게 교육시켜왔다. 숨막히는 가족의 분위기는 미옥이 주도해서 만들어 나갔고, 그의 남편은 미옥을 필요로 하지만 숨막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딸들 또한 미옥에게서 각자의 상처를 받는다.


최선을 다하고 자시고는 관심도 없으니 제발 내 기대에 미치게만 살란 말이다. - p.51


  아버지 용훈은 혜윤과 이야기를 하고 줄곧 두통에 시달린다. 혜윤은 랜덤 어플로 삼십만원씩 받고 다섯명과 잠자리를 가졌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연이 닿아있는 흥신소로 의뢰를 하지만 그의 집에는 동영상이 없다. 감시를 붙였으나 그는 홀연히 사라졌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이상적인 유전자만 물려받고 세상에 나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이면을 지닐 흔치않은 가능성. 그녀는 그 또한 품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 - p.53


  드디어 첫째의 시점으로 넘어온다. 불안과 초조한 심정에 죽을 듯 힘들어하고 있으리라 예상했던 그녀는 예상과 다르게 침착하다. 그녀의 챕터 제목은 '설계맞춤, 내 인생'. 전혀 달라진 내용으로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집안의 어느 견고한 벽보다도 가장 단단하게 서로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적막의 벽이었다. - p.55


  소음이 없는 가족. 그들은 싸우지 않으며 문제가 생기면 각자의 방식대로 해결하거나 회피했다. 마더 테레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그녀에게는 이면의 얼굴이 존재했고 그럴 때의 그녀는 행복하다. 정말 랜덤어플을 사용해 사람들을 만나왔지만 진욱을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그녀는 사랑을 잡기로 결심한다.


소외되었다는 사실을 자기방어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스스로를 방관자라고 여기는 것이다. - p.91


  계획되지 않은 둘째 혜란. 그는 어렸을 때부터 깊은 외로움을 가지고 있다. 외할머니는 그녀를 지우라고 했으며 엄마는 그녀를 포기했고 아빠는 관심도 없고 언니 혜윤이 그녀를 보는 눈에서는 희미한 경멸을 읽을 수 있다. 언니에 관한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스스로 방관자라고 여기며 가족의 시간인 조식에서도 입다물고 있던것과 다르게 처음으로 적극적으로 사건에 관여하게 된다.


감정이 어떤 형태로든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때, 우리는 소리를 내야만 한다. - p.226

  이 책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정확히는 소통 없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 소음이 없는 가족에 대해 의문을 가진 첫째는 자신이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방식으로 가족들이 소통할 수 있도록 계획을 짠다.  벌써 수십년이 되도록 소통이 부재한 가족. 집은 소음이 없는 기묘한 공간이 되었다. 우아하고 품위있어야한다는 엄마의 교육방침에 따라 집안은 적막했다. 첫째 혜윤의 계획에 의해 각자의 행동은 달랐지만 그 계획에 혜윤이 사랑하는 남자가 작은 틈을 만들고 그 틈으로 인해 모든 계획이 어그러지게 된다. 일은 잘못되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결정한 행동으로 결국은 모든 일이 원만하게 풀리게 되고 집안엔 소음이 찾아온다.


  품위를 지키며 갈등 없이 회피하던 가족들은 품위는 잠시 내려놓은채 서로에게 느끼던 것들을 소리지르며 다툰다. 그들은 감정을 쏟아부은 후 서로에게 좀더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들을 이해하게 되고 또 더 사랑하게 된다. 조금 더 짜임새 있고 납득 가는 계획과 해결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과 소재가 예상과 다른 방식으로 쓰여 해결방법도 기대와 달랐다는 점이 있지만 공감하기 쉬운 소재인 가족의 소통을 주제로 삼고 있기에 찾아서 봐도 괜찮을 책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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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 놓지 마
미셸 뷔시 지음, 김도연 옮김 / 달콤한책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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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베스트셀러 1위라는 내 손 놓지마. '그림자 소녀'와 '검은 수련'으로 유명한 미셸 뷔시가 지은 소설이다. 소설은 시간으로 챕터를 구분하고 있다. 처음은 여자가 사라지고 난 뒤에 사라지기 전 그녀를 목격한 사람들이 그녀에 대해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마샬이 침대에 주저앉았다. 얼빠진 얼굴에 당혹스러운 표정이 드러났다. 하지만 그의 표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상하게도 남자의 반응은 자연스럽지 않아보였다. 네보는 경찰에게 이런 느낌을 표현할 길이 없어 장면만 묘사하고 말 것이다. - p. 21

 

  오랜만에 보는 3인칭 관찰자 시점이 흥미롭다. 사라진 여자는 작은 키에 호리호리한 몸의 마치 새같은 여자. 이름은 리안. 그녀가 사라지고 난 뒤 그녀를 찾아 헤메는 남편 마샬 벨리옹. 그리고 그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호텔로 수사나온 아자 푸르비.

 

  여자가 세시에 올라간다. 15분 뒤 남편이 쫓아올라간다. 그리고 10분정도 뒤 남편은 나오고 청소부인 에브마리에게 카트를 빌려줄 수 있는지 묻는다. 남자는 카트를 들고 다시 방에 들어갔다가 2분 후 나온다. 그리고 남자는 네시에 다시 올라가고 실종신고를 한다.

 

시신도 없고 무기도 없고, 살해동기도 자백도 없어요! 모든 정황이 그 남자가 범인이라거 말하지만 법정에서는 자신의 운을 시험할 수 있는 거죠. 비귀에 사건 기억 안 나세요? 자크 비귀에가 와이프의 살해범이란 사실은 명백했어요. 수잔 비귀에가 사라졌고 그 여자가 간통을 했다는 건 살해동기로 충분했고 다툰 흔적도 있었고 남편이 침대 시트를 빨았다는 사실도 밝혀졌고 소각장에서 매트리스까지 발견했으니까요. 모든 사람은 자크 비귀에가 살인자라고 확신했지만 시신도 살인무기도 자백도 없었어요. 그리고 2010년에 무죄를 선고받았죠. - p.61

 

  모든 정황은 남편을 가리키고 있다. 아내는 사라졌거나 죽었고 그녀의 혈흔이 있는 칼이 다른 사람의 심장에서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 칼에는 남편의 지문이 있다. 그는 딸과 함께 도망치려 하지만 그의 차에는 어디로 오라는 누군가의 글이 있다. 오 이상하다. 모든 정황은 남편을 가리키는데 그가 범인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남편은 딸을 실수로 알렉스라고 부른다. 알렉스. 남자아이를 가리키는 말인 것 같아 보인다. 그가 사건과 관계가 있다.

 

  딸은 얌전하고 조용하다. 그녀는 말을 잘 듣는다. 그러나 그녀는 아빠가 엄마를 죽였음을 확신한다. 그러나 정말 그가 아내를 죽인 것일까? 그와 아내에 대해 증언한 가뱅과 에브마리가 수상쩍다. 그들 외에 탕기와 네보도.

 

  사라질 수 없는 곳에서 사라진 아내. 밀실 살인인가 생각했는데 정황이 수상하다. 아무리 남편을 범인인 것 같이 모든 상황이 몰아가도 초반부터 남편은 범인이 아닐 것 같은 낌새를 계속해서 내비친다. 그렇다면 누가 범인인가? 소설은 남편이 범인인지 혹은 또 다른 사람이 있는지 후반부가 될 때까지 알려주지 않으며 수상쩍은 남편의 행적만을 계속 보여준다. 섬이라는 특수한 상황이어서 금방 잡힐 것으로 보이지만 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미셸은 온갖 방식을 동원하여 도주로를 확보한다. 과연 무슨 이유에서 남편은 자수를 하고 도주하고 있는 것일까.

 

  지리학 교수이기도 한 미셸 뷔시는 레위니옹 섬을 소설의 배경으로 설정하여 흥미진진한 스릴러를 전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레위니옹 섬에 대한 아름다운 풍경과 정보를 함께 묘사하고 있다. 그가 지리학 교수라는 이점은 결말부분에 극명하게 드러난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의 화산섬의 변화는 정말 상황이 급박함에 더욱 전율이 일고 자연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사건이 일어난 섬이지만 휴가를 이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휴양하기 좋아 보이는 그림으로 그린 듯 한 아름다운 휴양지 레위니옹 섬. 휴가를 가서 시원한 곳에 늘어져서 읽기 좋을 듯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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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통 - 죽음을 보는 눈
구사카베 요 지음, 김난주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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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미로운 소재로 쓰인 미스터리 소설 무통! 후지TV 인기 방영 드라마였던 무통-진찰하는 눈의 원작소설이기도 하다. 아직 출간이 되기 전 출판사에서 7월 초쯤에 부제목 설문조사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이렇게 만나보게 되어 매우 반갑다. 사회파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로, 무통 작가인 구사카베 요는 현역 의사이며 제3회 일본의료소설대상 수상 작가로 활발하게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현역 의사이기 때문인지 수술 장면이 굉장히 리얼하게 묘사되어 있어 섬뜩하다.


  일가족이 잔인하게 살해된다. 나다 구 교사 일가족 살인사건으로 발표된 이 사건의 범인은 인격장애로 보인다.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는 어른이 쓸 수 없는 s사이즈 모자와 27~28센티미터의 남자어른으로 짐작되는 신발자국뿐. 이 모순된 증거는 과연 무엇을 알리고 있는가. 수사는 용의자를 잡지 못하고 8개월이 지난다.


  다메요리 에스케는 사람의 겉모습(징후)만 보면 병명을 진단내릴 수 있는 천재의사. 그는 우연히 잃어버린 지갑을 다카시마 나미코에게서 건네받고 이상 징후를 보이던 아이를 향한 무차별 살인마에게서 그녀와 아이를 대피시켜 구해주게 된다. 그 일을 계기로 나미코는 에스케에게 찾아가 자신이 돌보는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경계성 인격장애를 앓고 있는 미나미 사토미라는 14살 여자아이가 자신이 일가족 살인사건의 범인이라고 주장한다며 에스케에게 도움을 청한다. 사토미의 6학년때 담임이었던 살인사건의 피해자. 그녀는 자신이 그들을 죽였고 신발 위에 큰 신발을 겹쳐신었다고 말한다.


  나미코는 두 번 결혼을 했다. 그녀는  첫 번째 남편과 사별한 후 아이를 위해 급하게 재혼을 서두르다가 사다라는 남자에게 잘못 걸려 이혼을 한다. 아이에게 담배로 지지던 남자는 이혼 후 그녀를 스토킹하며 정신병력을 위장한다. 그는 에스케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그를 해치려하다가 오히려 도망을 치지만 그에 대한 적개심을 나미코에게 덧씌우고 스토킹을 계속한다. 한편 나미코의 예전 시설에서 돌보던 무통환자 이바라는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 무통에 첨두증을 가지고 있는 그는 단련하여 강한 육체를 지니고 있는데 나미코를 만나러 갔다가 사다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바라에게 고마운 사람인 시라가미 유지. 그도 다메요리 에스케와 같이 징후로 병명을 판단할 수 있다.


  살인자와 죽음을 가려낼 수 있는 두 천재의사는 서로 알게되고, '능력'을 둘 다 가졌음을 짐작한다. 그렇게 모든 등장인물이 얽히게 된 후 '누가' '어떻게' '왜' 살인을 했는지가 밝혀진다. 무통. 자신의 아픔도 알지 못 하기에 남의 아픔에 둔감하다. 자신이 느낄 수 없는 '통증'을 타인의 아픔에서 알고자 하는 이는 고통으로 인해 호소할 수도 없기에 얼마나 섬뜩한가.


  책은 그렇게 무통증과 첨두증, 의처증에 걸린 스토커, 아동학대, 묻지마 살인, 정신장애자의 살인 등으로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써내려간다. 또한 두 의사의 징후로 병명을 판단하는 천재적인 능력은 잊을만 하면 나와 흥미를 끈다. 그렇게 무통은 다양한 인간군상과 사건들로 한 가지에 의문을 던진다. 바로 형사 하야세가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형법 제 39조 조항. 우리나라 형법 10조와 유사하다고 하는 이 법은 심신상실자와 심신박약자에게 유죄를 선고하지 않는다.


  사람이 만든 법에는 참 허점이 많다. 그렇기에 이 법을 악용하려 하는 사람들이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실제로 이 법은 정신장애 뿐 아니라 술과 같은 방식에도 적용이 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말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책에서 이 법이 정상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는 사례와 악용되는 사례에 대해 언급하며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는 전개를 이어간다. 이 법이 과연 적용이 되어야 하는가와 적용이 되어야 한다면 그 적용 범주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대해 의식하게 만들어 준다.

 

형법 제 39조. 심신상실자의 행위는, 이를 벌하지 않는다. 심신박약자의 행위는, 그 형을 경감한다. - p. 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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