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아이
샤를로테 링크 지음, 강명순 옮김 / 밝은세상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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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소설 : 다른 아이

  독일 소설은 정말 오랜만에 읽어본다. 샤를로테 링크가 쓴 이 작품은 2부작 TV드라마 시리즈로 제작되었을 정도로 인기리에 판매되었다고 한다. 인간의 관찰력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는 평을 듣는 만큼 이번 소설 또한 인간 내면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으로 등장인물들의 감정 변화에 대해 세밀하게 표현해 서늘함을 보여주었다.


  1970년에 농장주에게서 달아나는 여인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소설은 6페이지만에 2008년으로 건너뛴다. 그리고 또 불과 몇페이지만에 에이미라는 여성이 살해된다. 그 여성이 일하는 집의 주인은 프라이어레이지 스쿨의 프랑스어 강사. 그리고 그곳의 또다른 프랑스어와 스페인어 강사 데이브와 그웬이라는 농장주의 딸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웬은 매력없는 여자였고 그녀의 주위사람들은 모두 그녀와 결혼하려고 하는 잘생긴 강사인 데이브를 미심쩍어한다. 그웬의 아빠 채드. 그의 친구 피오나는 익명의 전화로 신경이 곧추서있던 차에 그를 알게되고 사랑이 아니라 경제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냐며 약혼식에 쏟아붙여 분위기를 파토낸다.


그는 사회적 모순을 지적하는데 몰두하느라 정작 사회의 일원이 될 기회를 놓쳐버렸다. - p. 215 


  그리고 피오나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녀는 채드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에게 메일로 회고록 비슷한 문서를 보낸다. 그 과거이야기의 챕터 이름은 '다른 아이'. 책의 제목과 같다. 아주 어렸을 적 그녀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이 이야기에서 그녀는 독일군의 공습으로 인해 부모가 위탁가정에 맡기는게 안전하다고 판단해 시골로 내려보내진다. 그리고 그 위탁가정에서 채드를 만나게 된다. 이 이야기는 그녀와 채드에 관한 '죄책감'에 관한 이야기이며 책의 중간중간 삽입되어 사건과 맞물려 진행된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피오나는 살해당한다. 영국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일어난 2건의 살인. 그 살인은 방식이 흡사해 동일범의 소행일 수 있다는 사실에 경찰이 주목한다.


언제나 착하고 순진한 사람으로 보였지만 실제로는 증오심에 불타는 괴물이었지. 인간 심리를 잘 파악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눈에 보이는 모습만 기억하니까 - p. 537


  이 소설은 결국 한 사건으로 인해 두 사람이 불행해진 후 그들의 가족까지 대를 이어 내리 불행해졌다는 이야기를 하며 '과연 우리는 가까운 누군가에 대해 잘 알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죄책감이란게 어떻게 사람을 짓누르는지, 증오가 가득 쌓이면 사람은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생각보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얼마나 무관심한지에 대해 보여준다. 소설을 다 읽고나면 표지만 굉장히 새롭게 다가온다. 가까이 붙어 서로를 신경쓰는 듯한 두 남녀와 얼굴이 까맣게 표현된 한 아이. 살인사건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로 전개되지만 다 읽고나니 그 아이에 대한 연민만이 진하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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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어처리스트
제시 버튼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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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작가 겸 배우라는 제시 버튼이 쓴 '미니어처리스트'. 그녀는 국립박물관에서 '미니어처 하우스'에 대해 발견하고 그 소유자에 대해 상상하다가 그 상상을 글로 써보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발간된 이 소설은 온갖 타이틀을 석권했고, 드라마화가 확정되었다고 한다. 고딕 풍의 매혹적인 표지 안에 화려한 내지가 돋보이는 이 책은 그저 소장하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도서일 듯 하다.

여자는 사랑을 원해. 복숭아를 원하고 거기에다 크림까지 원하는 게 여자야. - p. 114

  ​급하게 치러진 결혼. 집에 도착했으나 부재한 신랑. 처음보는 남편의 여동생. 시작부터 흥미롭다. 넬라는 새 집의 안주인이지만 안주인으로서의 역할을 기대받지 못하고, 남편 요하네스의 여동생 마린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상태였다. 다른 세상같은 저택과 묘한 분위기의 남매. 남편은 집에 늦게 도착한 걸 사과하지 않고 대화는 여동생과만 한다. 넬라는 투명인간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낀다.


나의 부를 실제로 만질 수는 없어요, 넬라. 그건 허공에 떠 있거든요. 때론 부풀어오르고 때론 쪼그라들죠. 그러다 다시 부풀어오르고 말이죠. 부유함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은 단단하겠지만 막상 손을 뻗어보면 구름처럼 공허한 거예요. - p. 132


  넬라의 엄마는 넬라에게 현모양처가 되기 위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가르쳐 주었지만 그것은 남편이 넬라에게 원하는 것과는 달랐다. 그는 넬라에게 매우 정중하고 예의바르지만 그녀에 대한 애정은 한 톨도 없는 듯 보인다. 


넬라는 관념 속 결혼과 현실 속 결혼 사이에서, 아름답지만 쓸모없는 캐비닛과 그 캐비닛이 암시하는 섬뜩한 진실 사이에서 난파되어 표류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 p. 159


  그런 남편 요하네스는 그녀에게 결혼선물로 캐비닛집을 선물한다. 정말 집을 축소시켜 놓은 듯한 정교한 집. 그 집은 실제 대저택과 동일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한 선물이 자신을 놀리는 것 같다고 느끼지만 여하튼 넬라는 그 집을 쓸모 없는 것으로 만들지 않아야 할 의무를 갖게 된다. 넬라는 광고에서 미니어처리스트를 발견하고 그에게 3가지의 물건을 주문한다. 그리고 배송이 온 물건은 자신이 주문한 것이 틀림없지만 그 외에도 3가지 물건이 들어있다. 침대와 요람 그리고 개. 침대와 개는 자신의 집에 있는 것과 완벽하게 같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과 완벽히 똑같은 침대는 결혼했음에도 자신이 아직도 처녀임을 비웃고, 모욕하기 위한 악질적인 장난같이 보인다. 넬라는 불안에 휩싸인다.


넬라는 문득 누가 사냥꾼이고 누가 표적인지 궁금해진다. - p. 252


  그리고 저택의 사람들의 의뭉스러운 구석들이 전개되는 가운데 미니어처리스트는 8개의 인형을 보내온다. 실제하는 사람들. 넬라와 닮은 인형은 속옷까지 꼭 같다. 넬라는 소름이 끼친다. 인형들에는 무언가 깃들어 있는 듯하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아 실제로 점점 불행한 일들이 벌어지고, 그 일이 벌어지고 난 후 넬라는 인형들에게서 벌어진 일과 같은 표식을 발견한다. 저주를 받은 것 같은, 혹은 불길한 예언을 이제야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넬라. 인형을 버려보기도 하지만 다시 되돌아 올 뿐이다.


달콤한 무기를 방치하지 마세요. - p. 360

 

  미니어처리스트에게 게임 미니어처를 주문하려고 가는 순간 만난 잭. 그는 불만을 토로하고 집안 사람들과 싸운 후 요하네스가 사랑하는 개 레제키에게 칼을 꽂는다. 사실을 뒤늦게 알고 울부짖는 요하네스. 그런 잭이 넬라에게 건넨 소포에는 게임 미니어처가 들어있다. 그러나 자신은 사건에 휘말려 편지를 미니어처리스트에게 보낸 적이 없다. 점점 더 미니어처리스트에게 불길한 기분이 드는 넬라. 그리고 붙잡힌 요하네스. 하나도 팔리지 않은 설탕과 분노한 프란스. 넬라는 이제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 지 깨닫는다. '설탕'!


상황은 바뀔 수 있다. 모든 여자는 자신의 운명을 설계하는 건축가다. 나는 떠오르기 위해 싸우리라. - p. 275 


  배경은 인종 차별이 성행하고 기독교적 사상이라는 종교적 믿음 아래서 성 소수자들이 무려 익사당하는 그런 시절. 여성이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기 힘든 시대 상황에서 넬라는 쭉 순응해 오다가, 미니어처리스트의 의뭉스럽고 불길한 선물들로 비밀과 진실을 하나하나 알게 되며 주체성을 찾아간다. 결혼이 미덕이라고 여겨지고 가정을 위해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며 '의견을 내는 여자'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던 때, 마린은 결혼을 하지 않고 오빠의 사업에 관여한다. 결혼을 해서 주체성을 찾아가는 넬라와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언제나 당당하게 의견을 내는 마린을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미니어처하우스와 미니어처리스트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비밀들이 매혹적인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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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박연선 지음 / 놀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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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로 데뷔하고 드라마 '연애시대'로 수많은 시청자를 울렸다던 박연선 작가! 드라마 '화이트 크리스마스'로 2012 국제 휴스턴영화제에서 대상 수상까지 했다는, 드라마 '청춘시대' 방영을 앞두고 있다는 그녀가 이번엔 의외로 소설을 써서 돌아왔다. 이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는 박연선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자 첫 추리소설이다. 그럴싸하게 2겹으로 책띠까지 둘러져 있어 마치 선물같아 보이는 이 책이 과연 나에겐 어떤 느낌을 주게 될런지 기대하며 첫 장을 넘겼다.


  처음 시작은 할아버지의 죽음. 그로 인해 첩첩 산중의 두왕리에 홀로 남은 노모가 걱정된 부부는 노모가 배우자를 따라갈까 두려워 손녀인 잠많은 백수 강무순을 몰래 두고 떠나버린다. 잠을 자느라 할머니인 홍간난 여사와 남겨진 무순! 그녀는 시종일관 유쾌하다. 때문에 분명히 추리소설이 맞고, 실종된 4명의 여자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책의 분위기는 밝다.


  그녀는 심심함에 몸부림 치던 와중, 어릴 때의 자신이 남긴 '보물지도'를 발견하게 된다. '보물지도'! 흥분되는 단어다. 무순은 폰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상황에 재미있는 놀이를 발견했다며 신나서 보물을 찾으러 나선다. 그 곳에서 발견하게 된 세 가지 물건! 그 물건들에 네 소녀의 실종과 관련된 물건이 있었다. 그 소녀들의 죽음과 자신이 관련될 수도 있었다는 직감이 들면서, 흥미로웠던 보물찾기는 꼭 알아내고 싶은 어떤 것으로 변하게 된다. 심지어 실종 된 4명의 소녀 중에는 자신과 친한 언니도 있다!


  그렇게 그녀는 어린 시절의 자신과 대면하기도 하고, 실종된 자식의 부모와도 만나며, 전문가들도 해결하지 못한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나간다. 추리가 막히면 홍간난 여사의 기막힌 입담으로 힌트를 찾기도 하고, 실종된 아이들 중 한 명의 동생인 입양된 꽃돌이 도련님과도 함께 사건을 알아가는 파트너가 되면서 사건은 점점 윤곽을 드러낸다. 중간중간 '주마등'이라는 파트로 인해 독자들만이 추리할 수 있는 영역도 존재해 책은 더욱 흥미롭게 전개된다. 그렇게 무순은 실종사건의 진실을 파헤친다. 그 각각의 사연은 참 기구하고 안타깝다.


  사건과 사체가 나오지만 어딘가 분명히 유쾌하고 반전의 매력도 있는 소설,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든다고 하지만 과연 박연선 작가가 추리 장르까지 맛깔나게 뽑아냈을까 궁금하다면 기대하며 읽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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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
셀레스트 응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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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예 작가 셀레스트 응의 장편 소설인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은 출간되자 온갖 상을 휩쓸며 주목을 받게 된다. 첫 페이지, 첫 문장부터 강렬한 소설! '리디아는 죽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이 사실을 모른다.' 이 문장은 책의 마지막에 다다를 때까지 리디아의 죽음에 관한 궁금증을 유발하며 책을 덮을때까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메릴린은 리디아의 머리에 얼굴을 묻고 조용히 맹세했다. 리디아에게는 절대로 바르게 앉아라, 남편을 찾아라, 집을 지켜라, 같은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네가 할 수 없는 직업이 있다는 말은, 네가 살 수 없는 인생이 있다는 말은, 네가 들어갈 수 없는 세상이 있다는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의사'라는 말을 듣고 남자만 떠오르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남은 평생, 엄마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리디아를 격려해 줄 것이다. - p. 201


  스릴러 소설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소설은 혼혈가족의 비극에 관한 이야기이다. 엄마인 메릴린은 전도 유망한 학생이었다. 그녀는 똑똑했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었다. 그녀의 엄마는 전형적인 '여자'였으며 여자는 남편에 의해 지위가 결정되고, 결혼만 잘 하고 아이를 잘 낳고 내조하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하며 메를린에게 그것을 강요한다. 그러나 메릴린은 꿈이 있었다. 그녀는 의사가 되고싶어하고, 실제로 능력도 있었다. 그녀는 꿈을 위해 캠브릿지 대학에 들어가 남자들의 얕보는 시선에서 노력해 자신의 자리를 지켜낸다. 그리고 3학년이 된 그녀는 제임스를 만나게 된다.


네스는 리디아를 밀었다. 그리고 네스가 리디아를 구해냈다. 평생 동안 리디아는 그 사실 가운데 한 가지만을 기억할 테고, 네스는 평생 동안 그 가운데 다른 한 가지만을 기억할 거다. - p. 212


  그녀는 제임스를 사랑하게 되고 임신을 하게 된다. 그로 인해 자신이 원한 꿈을 접은 메릴린. 그녀는 네스와 리디아를 낳게 되고 점점 꿈에서 멀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때가 아니면 자신은 더 이상 꿈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그녀는 가정을 버리고 대학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학기를 보내던 중 쓰러지고, 자신이 다시 임신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가정으로 돌아온 메를린. 그녀는 이제 자신이 더 이상 꿈을 이루지 못할 것임을 직감한다. 그리고 자신의 기대를 안은 딸과 관심받지 못한 아들. 아들은 딸을 밀었고 부모의 기대에 버거워하던 딸은 기꺼이 저항하지 않았다.

리디아는 부모의 꿈을 흡수한 채 내부에서 솟아니오려는 거부반응을 조용히 억눌렀다. - p. 218


  메를린은 백인이었고 제임스는 동양인이었다. 이 당시 세계는 혼혈을 경계했고 어느 곳에서는 불법이었다. 제임스는 항상 '다름'으로 인해 차별을 받아왔고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그와 꼭 닮은 네스를 보며 언제나 격려하고 싶었지만 동시에 언제나 동족혐오와 같은 감정이 솟아나 예뻐하질 못 한다. 그런 그가 사랑한 딸 리디아. 리디아는 파란 눈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분신이며 '이 세계'에 잘 속해있다고 생각하고 또 그것을 자신에게 보여주도록 강요했다. 사실 리디아는 친구가 없었기에 모든 것은 위장이었으나 제임스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2학년이 되면서 아이들은 더는 리디아에게 함께하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아무 상관없다고, 리디아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했다. 왜냐하면 엄마가 집에 있으니까. 중요한 건 그것뿐이니까. - p. 226


  또한 리디아는 과학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엄마, 메를린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리디아가 메를린이 돌아오기만 한다면 그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겠다고 맹세한 날, 그 날 메를린은 돌아온다. 어린 리디아에겐 그것이 기적이었다. 리디아는 기념일에 그녀의 아버지에게서 '인간관계론' 책을 받았으며, 어머니에게서는 '여성 과학자들'에 관련된 책을 선물받았다. 그녀는 그녀 자신이 갖고싶은 것이 아닌 부모가 그녀에게 바라는 것들을 항상 받아왔고, 그것에 점점 질식해간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부모에 대해 알고 있는 유일한 다른 사람이었던 네스는 리디아의 불행을 그대로 흡수해 말없이 동정해줬고, 가만히 어깨를 꼭 잡아줬고, 어색하게 웃어줬다. - p. 229


  리디아를 밀었고, 또 구해준 네스. 그에게 그녀는 친밀감을 느끼고 유대감을 느껴 그가 자신을 질식으로부터 구해내주길 항상 바래왔다. 하지만 네스는 나가고 싶어한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경멸의 눈초리를 느끼는 것에 질려했고, 자신을 공기처럼 여기는 집안에 진절머리가 났다. 그는 메를린이 리디아에게 답을 구하는 문제에 있어 리디아보다 빠르게 답을 낼 수 있었지만 메를린은 리디아만 쳐다봤다. 그리고 아빠인 제임스 또한 자신이 사교성이 없고 친구들에게 동양인이기 때문에 차별을 받는다는 것을 알자 관심을 주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네스는 우주에 관심을 가지고, 망원경을 사달라는 요청을 거부당하자 자신의 힘으로 그것을 사고, 하버드 교수가 되지 못한 제임스에게 인정받기 위해 하버드에 합격한다. 그제서야 메를린과 제임스에게 관심을 받지만 리디아의 물리낙제로 인해 또 다시 관심 밖으로 벗어나게 된다. 그런 그도 화가 나 리디아를 멀리한다.


웃고 싶지 않을 때는 웃지 않는 거야. 꼭 기억해야 해. - p. 360


  어느 운수 좋지 않은 날. 리디아는 아버지에게 충격적인 선물을 받고 어머니에게 시험과 관련된 강요를 듣고 아버지에게 또다른 큰 충격을 받고 네스에게 위로받고싶어하지만 거부당한다. 리디아는 사라진다. 그리고나서 가족은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된다. 리디아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자신 또한 원하는 그런 아이가 아니었다. 리디아는 그저 가족을 사랑했을 뿐이다. 하도 무시를 당하는 것에 익숙해 조정자나 다름 없는 한나에게서 또다른 리디아의 모습을 본 그들은 리디아에게 다시는 그런 일을 강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새로운 관계를 다시 맺게 될 것이다. 네스와 제임스는 서툴지만 서로를 향해 손을 뻗을 것이다. 메를린 또한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한나는 리디아처럼 크지 않을 것이다.


  대를 이어 온 불행. 부모에게 아픔을 받은 아이들은 부모가 되어 또 다시 자식들을 상처입혔다. 차별과 다름으로 인한 아픔은 세대를 넘어 상흔을 남겼다. 자신이 이루지 못하는 것에 대해 자식에게 강요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내가 못한 것을 후대에서 이뤄주었으면 하는 바람. 그 바람은 때로 자식이 바라는 것과 맞물려 순풍이 부는 듯 행복한 미래로 나아갈 때도 있지만 보통은 그러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 책은 그런 부모의 욕망이 자식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기대를 받은 자식과 그렇지 못한 자식이 어떻게 커가는지, 그런 상황에서의 소통의 부재가 얼마나 안타까운 불행을 몰고오는지에 관해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 이 제목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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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포기한 여자들이 사는 집
카린 랑베르 지음, 류재화 옮김 / 레드스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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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들을 유쾌하게 거부한 잘나가는 여자들의 매력적인 일상을 담고 있으리라 짐작했던 예상과는 달리 이 소설은 남자들에게 상처를 받은 여자들, 그러나 사랑을 갈구하는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네가 차차 알아가겠지만, 그 곳 여자들은 다 매력적이야. 서로 아주 다르지. 우릴 하나로 묶어주는 건 같은 선택을 했다는 점이야. 우리 인생에 남자는 없어, 바로 그거야. 그게 우리에게 적절해.' 줄리엣은 '적절하다'라는 단어 선택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 p. 21


  남편에게 배반당한 여자들. 집안 남자들에게 하찮은 취급을 당한 여자. 그리고 가장 마지막엔 남자를 더는 유혹할 수 없고 다른 여자들이 그렇게 하는 것도 싫어 남자를 금지한 여왕이 있다. 그들이 사는 집의 이름은 카사 셀레스티나. 행복의 집. 남자들에게 상처입은 그녀들은 남자를 거부하고 견고한 벽을 세워 그들만의 성을 만든다.


세상이 그렇다. 괜찮은 남자는 이미 임자가 있다. 반에 만족하느니 차라리 혼자가 낫다. - p. 119


  그리고 새로 들어온 줄리엣은 반기를 든다. 싼 집세. 여왕의 마음에 들고 그녀의 규칙을 지킨다면 얻을 수 있는 보상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들의 규칙을 온전히 이해하지 않고 따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남자를 집안에 들이지 않는 대신 미팅사이트를 뒤진다. 그녀는 여왕이 그들을 억압한다고 생각하고 사랑을 원하며 남자들과 만나고 싶어한다.


"그들은 피난처에 와 있는 거야. 나는 그들을 보호하는 거고." "아니에요! 당신은 그들을 가두는 거예요. 그들은 잠깐 휴식기를 갖는 거예요. 자기 상처를 돌보고, 힘을 추슬러 다시 떠날 수도 있어요. 여기선 다들 유배중인 거 같아요.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세요. 사랑, 그건 모든 거예요." - p. 137


  여왕과 줄리엣은 많은 대화를 나눈다. 여왕이 가진 생각들과 줄리엣이 가진 생각들은 상충되는 면이 있지만 그들은 어쨌든 만나고, 대화를 나눈다. 그러는 중 줄리엣 뿐만이 아닌 다른 여자들도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들은 옛 남자를 기억하고 새로운 남자를 만나고 그리고 그들의 과거를 추억하며 현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사랑을 다시 찾고 싶어하는 마음과 옛 상처를 기억하고 두려워 하는 마음이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린다.


이제 나의 왕국은 종말을 고합니다. 새로운 규칙을 정하세요. 그러나 우리를 이렇게 온화한 삶으로 이끌어준 광기의 씨앗은 결코 포기하지 마세요. - p. 237


  빛났던 발레리나. 화려했던 과거를 잊지 못하고 현재의 자신을 씁쓸하게 받아들여 규칙을 만들어 온 여왕은 그녀만의 세계로 떠나간다. 남겨진 이들은 여왕을 그리워 하면서도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카사 셀레스티나'는 이제 진정 '행복의 집'으로 변모해 나갈 것이며 그녀들은 또 다른 사랑을 찾게 될 것이다. 그로 인해 상처를 받게 될 수도 있겠으나 훌륭히 극복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녀들의 앞으로의 행복한 삶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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