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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
셀레스트 응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신예 작가 셀레스트 응의 장편 소설인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은 출간되자 온갖 상을 휩쓸며 주목을 받게 된다. 첫 페이지, 첫 문장부터 강렬한 소설! '리디아는 죽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이 사실을 모른다.' 이 문장은 책의 마지막에 다다를 때까지 리디아의 죽음에 관한 궁금증을 유발하며 책을 덮을때까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메릴린은 리디아의 머리에 얼굴을 묻고 조용히 맹세했다. 리디아에게는 절대로 바르게 앉아라, 남편을 찾아라, 집을 지켜라, 같은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네가 할 수 없는 직업이 있다는 말은, 네가 살 수 없는 인생이 있다는 말은, 네가 들어갈 수 없는 세상이 있다는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의사'라는 말을 듣고 남자만 떠오르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남은 평생, 엄마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리디아를 격려해 줄 것이다. - p. 201
스릴러 소설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소설은 혼혈가족의 비극에 관한 이야기이다. 엄마인 메릴린은 전도 유망한 학생이었다. 그녀는 똑똑했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었다. 그녀의 엄마는 전형적인 '여자'였으며 여자는 남편에 의해 지위가 결정되고, 결혼만 잘 하고 아이를 잘 낳고 내조하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하며 메를린에게 그것을 강요한다. 그러나 메릴린은 꿈이 있었다. 그녀는 의사가 되고싶어하고, 실제로 능력도 있었다. 그녀는 꿈을 위해 캠브릿지 대학에 들어가 남자들의 얕보는 시선에서 노력해 자신의 자리를 지켜낸다. 그리고 3학년이 된 그녀는 제임스를 만나게 된다.
네스는 리디아를 밀었다. 그리고 네스가 리디아를 구해냈다. 평생 동안 리디아는 그 사실 가운데 한 가지만을 기억할 테고, 네스는 평생 동안 그 가운데 다른 한 가지만을 기억할 거다. - p. 212
그녀는 제임스를 사랑하게 되고 임신을 하게 된다. 그로 인해 자신이 원한 꿈을 접은 메릴린. 그녀는 네스와 리디아를 낳게 되고 점점 꿈에서 멀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때가 아니면 자신은 더 이상 꿈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그녀는 가정을 버리고 대학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학기를 보내던 중 쓰러지고, 자신이 다시 임신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가정으로 돌아온 메를린. 그녀는 이제 자신이 더 이상 꿈을 이루지 못할 것임을 직감한다. 그리고 자신의 기대를 안은 딸과 관심받지 못한 아들. 아들은 딸을 밀었고 부모의 기대에 버거워하던 딸은 기꺼이 저항하지 않았다.
리디아는 부모의 꿈을 흡수한 채 내부에서 솟아니오려는 거부반응을 조용히 억눌렀다. - p. 218
메를린은 백인이었고 제임스는 동양인이었다. 이 당시 세계는 혼혈을 경계했고 어느 곳에서는 불법이었다. 제임스는 항상 '다름'으로 인해 차별을 받아왔고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그와 꼭 닮은 네스를 보며 언제나 격려하고 싶었지만 동시에 언제나 동족혐오와 같은 감정이 솟아나 예뻐하질 못 한다. 그런 그가 사랑한 딸 리디아. 리디아는 파란 눈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분신이며 '이 세계'에 잘 속해있다고 생각하고 또 그것을 자신에게 보여주도록 강요했다. 사실 리디아는 친구가 없었기에 모든 것은 위장이었으나 제임스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2학년이 되면서 아이들은 더는 리디아에게 함께하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아무 상관없다고, 리디아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했다. 왜냐하면 엄마가 집에 있으니까. 중요한 건 그것뿐이니까. - p. 226
또한 리디아는 과학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엄마, 메를린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리디아가 메를린이 돌아오기만 한다면 그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겠다고 맹세한 날, 그 날 메를린은 돌아온다. 어린 리디아에겐 그것이 기적이었다. 리디아는 기념일에 그녀의 아버지에게서 '인간관계론' 책을 받았으며, 어머니에게서는 '여성 과학자들'에 관련된 책을 선물받았다. 그녀는 그녀 자신이 갖고싶은 것이 아닌 부모가 그녀에게 바라는 것들을 항상 받아왔고, 그것에 점점 질식해간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부모에 대해 알고 있는 유일한 다른 사람이었던 네스는 리디아의 불행을 그대로 흡수해 말없이 동정해줬고, 가만히 어깨를 꼭 잡아줬고, 어색하게 웃어줬다. - p. 229
리디아를 밀었고, 또 구해준 네스. 그에게 그녀는 친밀감을 느끼고 유대감을 느껴 그가 자신을 질식으로부터 구해내주길 항상 바래왔다. 하지만 네스는 나가고 싶어한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경멸의 눈초리를 느끼는 것에 질려했고, 자신을 공기처럼 여기는 집안에 진절머리가 났다. 그는 메를린이 리디아에게 답을 구하는 문제에 있어 리디아보다 빠르게 답을 낼 수 있었지만 메를린은 리디아만 쳐다봤다. 그리고 아빠인 제임스 또한 자신이 사교성이 없고 친구들에게 동양인이기 때문에 차별을 받는다는 것을 알자 관심을 주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네스는 우주에 관심을 가지고, 망원경을 사달라는 요청을 거부당하자 자신의 힘으로 그것을 사고, 하버드 교수가 되지 못한 제임스에게 인정받기 위해 하버드에 합격한다. 그제서야 메를린과 제임스에게 관심을 받지만 리디아의 물리낙제로 인해 또 다시 관심 밖으로 벗어나게 된다. 그런 그도 화가 나 리디아를 멀리한다.
웃고 싶지 않을 때는 웃지 않는 거야. 꼭 기억해야 해. - p. 360
어느 운수 좋지 않은 날. 리디아는 아버지에게 충격적인 선물을 받고 어머니에게 시험과 관련된 강요를 듣고 아버지에게 또다른 큰 충격을 받고 네스에게 위로받고싶어하지만 거부당한다. 리디아는 사라진다. 그리고나서 가족은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된다. 리디아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자신 또한 원하는 그런 아이가 아니었다. 리디아는 그저 가족을 사랑했을 뿐이다. 하도 무시를 당하는 것에 익숙해 조정자나 다름 없는 한나에게서 또다른 리디아의 모습을 본 그들은 리디아에게 다시는 그런 일을 강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새로운 관계를 다시 맺게 될 것이다. 네스와 제임스는 서툴지만 서로를 향해 손을 뻗을 것이다. 메를린 또한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한나는 리디아처럼 크지 않을 것이다.
대를 이어 온 불행. 부모에게 아픔을 받은 아이들은 부모가 되어 또 다시 자식들을 상처입혔다. 차별과 다름으로 인한 아픔은 세대를 넘어 상흔을 남겼다. 자신이 이루지 못하는 것에 대해 자식에게 강요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내가 못한 것을 후대에서 이뤄주었으면 하는 바람. 그 바람은 때로 자식이 바라는 것과 맞물려 순풍이 부는 듯 행복한 미래로 나아갈 때도 있지만 보통은 그러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 책은 그런 부모의 욕망이 자식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기대를 받은 자식과 그렇지 못한 자식이 어떻게 커가는지, 그런 상황에서의 소통의 부재가 얼마나 안타까운 불행을 몰고오는지에 관해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 이 제목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