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어처리스트
제시 버튼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영국의 작가 겸 배우라는 제시 버튼이 쓴 '미니어처리스트'. 그녀는 국립박물관에서 '미니어처 하우스'에 대해 발견하고 그 소유자에 대해 상상하다가 그 상상을 글로 써보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발간된 이 소설은 온갖 타이틀을 석권했고, 드라마화가 확정되었다고 한다. 고딕 풍의 매혹적인 표지 안에 화려한 내지가 돋보이는 이 책은 그저 소장하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도서일 듯 하다.

여자는 사랑을 원해. 복숭아를 원하고 거기에다 크림까지 원하는 게 여자야. - p. 114

  ​급하게 치러진 결혼. 집에 도착했으나 부재한 신랑. 처음보는 남편의 여동생. 시작부터 흥미롭다. 넬라는 새 집의 안주인이지만 안주인으로서의 역할을 기대받지 못하고, 남편 요하네스의 여동생 마린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상태였다. 다른 세상같은 저택과 묘한 분위기의 남매. 남편은 집에 늦게 도착한 걸 사과하지 않고 대화는 여동생과만 한다. 넬라는 투명인간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낀다.


나의 부를 실제로 만질 수는 없어요, 넬라. 그건 허공에 떠 있거든요. 때론 부풀어오르고 때론 쪼그라들죠. 그러다 다시 부풀어오르고 말이죠. 부유함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은 단단하겠지만 막상 손을 뻗어보면 구름처럼 공허한 거예요. - p. 132


  넬라의 엄마는 넬라에게 현모양처가 되기 위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가르쳐 주었지만 그것은 남편이 넬라에게 원하는 것과는 달랐다. 그는 넬라에게 매우 정중하고 예의바르지만 그녀에 대한 애정은 한 톨도 없는 듯 보인다. 


넬라는 관념 속 결혼과 현실 속 결혼 사이에서, 아름답지만 쓸모없는 캐비닛과 그 캐비닛이 암시하는 섬뜩한 진실 사이에서 난파되어 표류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 p. 159


  그런 남편 요하네스는 그녀에게 결혼선물로 캐비닛집을 선물한다. 정말 집을 축소시켜 놓은 듯한 정교한 집. 그 집은 실제 대저택과 동일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한 선물이 자신을 놀리는 것 같다고 느끼지만 여하튼 넬라는 그 집을 쓸모 없는 것으로 만들지 않아야 할 의무를 갖게 된다. 넬라는 광고에서 미니어처리스트를 발견하고 그에게 3가지의 물건을 주문한다. 그리고 배송이 온 물건은 자신이 주문한 것이 틀림없지만 그 외에도 3가지 물건이 들어있다. 침대와 요람 그리고 개. 침대와 개는 자신의 집에 있는 것과 완벽하게 같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과 완벽히 똑같은 침대는 결혼했음에도 자신이 아직도 처녀임을 비웃고, 모욕하기 위한 악질적인 장난같이 보인다. 넬라는 불안에 휩싸인다.


넬라는 문득 누가 사냥꾼이고 누가 표적인지 궁금해진다. - p. 252


  그리고 저택의 사람들의 의뭉스러운 구석들이 전개되는 가운데 미니어처리스트는 8개의 인형을 보내온다. 실제하는 사람들. 넬라와 닮은 인형은 속옷까지 꼭 같다. 넬라는 소름이 끼친다. 인형들에는 무언가 깃들어 있는 듯하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아 실제로 점점 불행한 일들이 벌어지고, 그 일이 벌어지고 난 후 넬라는 인형들에게서 벌어진 일과 같은 표식을 발견한다. 저주를 받은 것 같은, 혹은 불길한 예언을 이제야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넬라. 인형을 버려보기도 하지만 다시 되돌아 올 뿐이다.


달콤한 무기를 방치하지 마세요. - p. 360

 

  미니어처리스트에게 게임 미니어처를 주문하려고 가는 순간 만난 잭. 그는 불만을 토로하고 집안 사람들과 싸운 후 요하네스가 사랑하는 개 레제키에게 칼을 꽂는다. 사실을 뒤늦게 알고 울부짖는 요하네스. 그런 잭이 넬라에게 건넨 소포에는 게임 미니어처가 들어있다. 그러나 자신은 사건에 휘말려 편지를 미니어처리스트에게 보낸 적이 없다. 점점 더 미니어처리스트에게 불길한 기분이 드는 넬라. 그리고 붙잡힌 요하네스. 하나도 팔리지 않은 설탕과 분노한 프란스. 넬라는 이제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 지 깨닫는다. '설탕'!


상황은 바뀔 수 있다. 모든 여자는 자신의 운명을 설계하는 건축가다. 나는 떠오르기 위해 싸우리라. - p. 275 


  배경은 인종 차별이 성행하고 기독교적 사상이라는 종교적 믿음 아래서 성 소수자들이 무려 익사당하는 그런 시절. 여성이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기 힘든 시대 상황에서 넬라는 쭉 순응해 오다가, 미니어처리스트의 의뭉스럽고 불길한 선물들로 비밀과 진실을 하나하나 알게 되며 주체성을 찾아간다. 결혼이 미덕이라고 여겨지고 가정을 위해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며 '의견을 내는 여자'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던 때, 마린은 결혼을 하지 않고 오빠의 사업에 관여한다. 결혼을 해서 주체성을 찾아가는 넬라와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언제나 당당하게 의견을 내는 마린을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미니어처하우스와 미니어처리스트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비밀들이 매혹적인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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