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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미치지 마세요
레슬리 모건 스타이너 지음, 안유정 옮김 / 필요한책 / 2016년 9월
평점 :
인문사회/여성학 : 사랑에 미치지 마세요
Crazy Love
학대 당한 피해 여성들에 관한 고뇌가 담겨있는 책, '사랑에 미치지 마세요'. 저자인 레슬리 모건 스타이너는 전혀 피해 여성에 대한 선입견과는 동떨어진 인물이다. 그녀는 변호사인 아버지와 알코올 어머니 사이에 워싱턴에서 태어나, 하버드 대학교와 와튼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세 아이를 가지고 있는 여성이며 커리어도 상당하다. 첫 직장을 '세븐틴'의 기자로 시작했고 그 외에도 들으면 알 수 있는 괜찮은 커리어를 가진 여성이다. 그러나 그녀는 가정폭력의 희생자이기도 하다.
폭력에 저항하기 힘든 여인들은 보통 생활력이 없어 폭력에 무기력해진 여성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것 뿐만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학습되는 사례도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나무랄 데 없이 똑똑하고 매력적인 여성이었으며, 심지어 다른 남자들에게도 그렇게 보였다. 그러나 그녀 또한 그에게 벗어나면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가끔은 벗어날 길을 포기한다. 가정폭력 가해자는 본인 또한 그런 성향의 가정에서 살아온 사람인 경우가 많고, 그들은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이 혼란스럽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통제권을 찾아오고 싶어서' 폭력을 행사한다.
'내 인생이 남들이 보기에 어떤지'가 아니라 '나의 내면이 진정으로 어떤 상태인지'를 알아내려 무척 노력했다. - p. 29
보통 가정 폭력의 희생자라고 하면 보통 상대적으로 신체적 약자인 여성이 대상이 된다. 그런 학대받은 여성들은 보통 약하고, 교육을 받지 못했고, 자기파괴적이고, 무력하다는 정형화 된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러나 레슬리는 자신이 그런 여성과는 동떨어져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런 그녀는 자신의 기억속 그 때의 자신과 코너(남편)에 대해 서술한다. 당시에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와 어떤 식으로 사랑에 빠졌고 또 어떤 식으로 폭력에 관해 생각했는지를 낱낱이 털어놓는다.
"우리 둘 다 이상한 가족을 가졌네요." 나는 말했다. "그게 가족이란 것 아니겠어요?" - p. 66
레슬리는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여자는 나밖에 없다는 착각 속에 빠지곤 한다. 그는 '가정폭력 피해자'인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으며, '가정폭력의 피해'와 비슷한 상황이 오면 화를 내며 레슬리를 때렸다. 내 엄마가 그랬다며, 내 아빠가 그랬다며, 그 상황을 자신은 참을 수가 없다며 폭력을 행사한다. 그가 폭력을 휘두른 아버지와 자신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정폭력 가해자'들의 방어기제였다. 심지어 피해여성은 그 방어기제를 충분히 도와준다. 그녀는 그를 가엽다고 생각하며 그의 이 스트레스와 피해의식으로부터 '구해줄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착각속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그를 이해하지 못한 수많은 여자들과 다를 것이며 자신은 그에게 특별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책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1부는 뉴욕을, 2부는 버몬트를, 3부는 시카고를 배경으로 레슬리의 인생에 대해 털어놓는다. 코너를 만나고 나서 처음엔 그를 매력적이라고 느끼지 못했다는 그녀. 그녀는 어느날 벼락같이 코너에 대한 성적 매력을 꿈으로 접했고, 그와 다시 만나봐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렇게 만나게 된 코너는 불우한 가정사를 가지고 있다. 그도 가정폭력의 희생자였던 것이다. 불우한 가정사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그를 보며 그녀는 그에게 자신이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불우한 한 구석에 대해서도 털어놓는다. 알코올 의존증인 자신의 엄마에 관해서. 그리고 코너는 놀랍게도 그녀를 위해 술을 끊었다.
나는 나 자신이 없어지는 듯한 굉장한 기분을 느꼈다. 이런 기분은 생전 처음이었다. 내 안에서 너무나 거대한 사랑을 느낀 나머지, 사랑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고 그 때문에 버린 것들을 영원히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깊이 생각할 수 없었다. - p. 133
그 이후 그녀는 그에게 급격하게 빠져들게 된다. 그가 직장을 옮기기 때문에 그녀는 일을 그만두고 외주 작가가 되어야 했는데, 그를 위해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결정한다. 그리고 일어난 첫 폭력. 그건 결혼 며칠 전의 일이었다. 그녀는 급격하게 합리화에 나선다. 그녀는 결혼을 돌이킬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폭력을 애써 외면한다. 그 이후 다시 폭력이 일어났을 때 그녀는 놀라지도 않았다고 서술한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폭력. 그녀는 그 폭력은 그녀가 문제가 아니고 그가 문제라는 사실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그를 떼어내지 못한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그대로 남기고 도망치면, 그들의 영혼의 일부를 대가로 내 주게 된다. - p. 310
그렇게 폭력이 습관화 되어간다. 그 폭력은 그녀가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아도 그냥 가만히 있어도 일어날 정도까지 심해지게 된다. 그런 그녀에게 에드가 알려준다. 코너가 있을 때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그가 없으면 정상으로 돌아온다고. 코너를 두려워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두려워하면서도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그와 함께 MBA에 지원하겠다고 결정한다. 그리고 그녀는 매번 합격통지서를 받았고, 그는 떨어진다. 그가 하버드에서 불합격통지서를 받았을 때, 그녀는 두려움에 떨며 자신의 지원서를 폐기시켜달라고 한다. 그리고 하버드에 자신만 합격할까봐 두려움에 떤다. 그의 폭력을 예상한 것이다. 그렇게 코너에 대해 거대한 두려움을 안고서도 그녀는 그와 함께한다.
이제는 내 생애에서, 아니면 다음 생애까지도, 나쁜 남자들을 좋아하는 일은 끝났다는 확신이 숙명처럼 들었다. - p. 310
그는 반년 정도 참다가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그 폭력은 지난 참았던 시간을 압축시킨 듯 강렬했고, 그녀는 죽을뻔했다. 그렇게 코너와 결국 헤어지게 된다. 그 헤어지는 시간 동안 그녀는 그녀의 감정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결혼하는 것보다 이혼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도 알게된다. 이혼하는 과정에서, 그녀가 완벽하길 원하는 아버지에 의해 상처도 받는다. 상처입은 사람을 재 상처입히며 힘들게 이혼은 이루어진다.
다음 관계에서 만날 연인이 갖췄기를 바라는 특징을 열 가지 적어오라는 것이었다. '다음 관계'라는 말이 나를 무장해제 시켰다. 그 동안 다른 남자와 데이트를 한다는 걸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 p. 292
보통 가정폭력을 당하면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가 많기 때문에 레슬리는 남자들에 대한 시각을 알아보고 싶어 권위자를 찾는다. 그런 남성들의 특성을 듣고, 회복되는 사람들이 있는지에 관해 듣는다. 그리고 상담사에게서는 상담을 받게 된다. 거기서 그녀는 점점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녀는 힘을 내어 상황에서 벗어났고, 계속해서 그에게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주위 사람들의 걱정어린 조언을 받으며 점점 상황은 나아지게 된다.
그녀는 MBA 학위 덕분에 홀로서기에 충분히 성공한다. 그의 강압에 못 이겨 지원했던 학위로 아이러니하게 홀로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사례는 그녀가 매우 명석하고 지적인 여성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그 가정폭력의 시초와 과정, 끝내게 된 경위는 충분히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녀 또한 가정폭력과 관련된 인문사회서적들을 참고하며 그 상황들과 자신이 다르지 않다는 데 충격을 겪은 것이 문제제기의 발단이 되었기에. 비슷한 상황의 다른 피해자들도 어떤 계기를 통해서건 그 상황을 꼭 벗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한 이것은 꼭 가정폭력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다른 무기력한 상황에 빠져서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자기회피를 반복하고 있을 때, 이 책은 그럴 때 자신을 다시 돌아보고 그 자리에서 벗어나는 것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