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반윙클의 신부
이와이 슌지 지음, 박재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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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설 : 립반윙클의 신부


  이와이 순지의 신작 소설 '립반윙클의 신부'는 동명 영화의 원작 소설이다. '러브레터'로 알려진, 영화감독으로 더 유명할 이와이슌지. 그의 감성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참 많을 것이다. 그래서 보게 된 소설! '지금 이 사회,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불안'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라고 한다.


하느님, 모든 것을 보고 계시다면 이 어리석고 불쌍한 자들을 부디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해 주세요. 그냥 웃어주세요. - p. 174


  현대는 sns가 성행하는 시대. 나 또한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모두 사용하고 있다. 낯선 사람과 쉽게 소통하지 못 하고 지하철만 타더라도 모두들 핸드폰만 바라보는 이 시대. 그런 시대이니만큼 오히려 sns은 성행하고 있는데. 주인공인 '나나미'는 그런 이 사회의 일원으로 연애 한 번 해보지 못 한 채, sns인 '플래닛'으로 낯선 사람들과 소통한다.


  그런 '플래닛'으로 인해 남자를 만나게 된 나나미. 그녀는 그녀가 그렇게도 궁금해하던 '연애'와 '성 경험'을 모두 겪어보게된다. 그녀의 본 계정은 '클램본'이지만 다른 계정으로 대외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녀의 본 모습은 클램본에, 그리고 행복한 일상만을 적어내는 '나나가와 미나미'. 그녀는 sns으로 만난 인연에 불안을 느끼면서도 쉽게 그와 결혼에 응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거짓말을 되풀이하게 되는데. 그 수습을 위한 과정으로 sns에서 만난 사람을 의지하는 것도 납득이 가는 동시에 이해가 가지 않기도 한다. 남편에게 '클램본'을 들킨 나나미는 그 계정을 지우고 '캄파넬라'라는 계정을 다시 생성한다. 그렇게 쉽게 끊어버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sns의 세계.


그러고 보니 오늘은 마치 립반윙클과 같은 하루였다. 낯선 결혼식에 참석해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술잔을 나눴다. 내일 잠에서 깼을 때 20년이 지난 후의 세상이면 어떡하지? 과연 어떤 세상일까? 이 스마트폰은 계속 쓸 수 있을까? - p. 198


  과정이 원활하게 풀려가는 것 같지만 그 후에는 불행이 계속된다. 거짓말이 들통나고 쫓겨나는 나나미. 그녀는 변명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상황에 순응한다. 그러던 중 자신이 거짓을 계속할 때 만난 sns의 '아무로'에 의해 자신 또한 다른 사람의 거짓을 돕게 된다. 거기서 만난 가짜 가족들. 립반윙클과 같은 하루였다고 생각한 나나미는 그 가족대행알바 자리에서 '립반윙클'이라는 sns아이디를 가진 여자를 알게된다. 그녀의 이름은 마시로.


나에게는 행복의 한계가 있어. 더 이상은 무리다 싶은 한계가 그 누구보다 더 빨리 찾아와. 그 한계가 개미보다 작아. 이 세상은 사실 행복으로 가득 차 있어. 모든 사람들이 잘 대해주거든. 택배 아저씨는 내가 부탁한 곳까지 무거운 짐을 날라 주지. 비 오는 날에는 모르는 사람이 우산을 준 적도 있어. 하지만 그렇게 쉽게 행복해지면 나는 부서져 버려. 그래서 차라리 돈을 내고 사는 게 편해. 돈은 분명히 그런 걸 위해 존재할 거야. 사람들의 진심이나 친절함 등이 너무 또렷이 보이면 사람들은 너무 고맙고 또 고마워서 다들 부서지고 말걸? 그래서 모두 돈으로 대신하며 그런 걸 보지 않은 척하는 거야. 나나미,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마. 부서져 버릴 것 같아. - p. 266


  아무로는 나나미와 마시로의 1회성 만남을 다시 이어준다. 그는 그녀의 인생을 망치기도 했지만 나아갈 미래를 제시해주기도 하는 묘한 인물이다. 그렇게 나나미와 마시로는 만나 '진짜 관계'를 이어간다. 발랄하고 어딘지 독특한 면이 있는 마시로. 그녀와 함께 살아가면서 나나미는 사랑에 대해 깨달아간다. 그리고 행복에 대해서도. 마시로와의 인연이 마무리 되고 나서, sns에 의지해 현실과 가상의 세계에서 다른 얼굴을 하고 있던 나나미는 그녀와는 한번도 sns으로 소통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후에 알게 된다.


  삶에 순응하고, 남의 조언에 따라 살아오던 사람이 비단 나나미 뿐만은 아닐 것. 그 것이 아니더라도 sns에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던 터라 현재를 돌아보게 되더라. 뭘 먹을 때도 sns을 위해 사진을 찍는 나..! 그런 나 또한 sns에 속박된 채 자유를 잃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sns과 현실의 경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나 자신의 주체성이란 어떤 것인가 하는 것도. sns을 많이 의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마도 어딘가 공감을 얻을 이야기.


  여태까지의 이와이 슌지 작품과 어딘가 다른 것 같지만 그래도 현실을 동화처럼 표현한 것에서 역시 이와이 슌지라는 말이 나왔다. 나나미는 결국 sns으로 만난 사람과 만나면서 다른 sns으로 만난 사람에게 농락당한 이야기지만 그 안에서 그녀는 성장을 해 나간다. 그저 현실에 순응하며 진심은 sns에만 털어놓던 나나미는, 현실에서 진짜 인연을 만나 그녀와의 관계를 겪어가며 현실세계로 나아간다. 마지막에 마시로의 sns 계정을 보며, 그녀와는 진실로 소통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나미는 아마 이제 sns 세계를 더 이상 의존하며 맹신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진짜 세상으로 내딛는 그녀의 모습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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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 PLATE
손선영 지음 / 트로이목마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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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추리 소설 : 판, PLATE

 


 

  요즘 어느 때보다도 한국이 지진에 관심을 갖는 열기가 뜨겁다. 울산과 경주 등 남부 지방에 큰 지진이 일어났기 때문.  지진에 관해서 안심하고 있던 한국인들은 이제 대처법을 열심히 검색하고 있다. 지난 9월 12일, 규모 5.1의 전진이 발생한 후 1시간 뒤쯤 5.8의 본진이 발생했다. 검색해본 바로는 지난 1978년 이해 가장 큰 규모의 지진으로 기록되었다고 한다. 전국의 모든 사람들이 지진을 느꼈다며 들썩였던 그 날. 그 날로부터 한 달 정도가 지났지만 아직도 300차례가 넘는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일본의 전문가들은 한국에도 이제 7.0이상의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하고 있다. 과연 우리는 이보다 더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까? '판'의 손선영 작가는 한국에 일어날 지진을 예측했다기 보다 과거 '관동대지진'의 아픈 역사를 다시금 보여주고자 한 의도라고 하지만 이 소설로 지진에 대한 경각심 또한 더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센징을 죽여라. 십오 엔 오십 전을 발음하게 해. 조센징의 썩은 혀는 우수한 일본인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미개하니까. - p. 21


  이러한 이슈가 화제가 되고 있는 때, 지진 직전에 발간된 책이 있다. 바로 손선영의 '판'. 이 소설은 일본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써낸 소설로 '운종가의 색목인들', '죽어야 사는 남자', '이웃집 남자가 수상하다' 등의 전 작들로 유명한 손선영 작가가 새로 낸 신작이다. 16년 11월 8일. 일본 열도의 3분의 1이 가라앉는 일본 침몰! 시작부터가 거창하다. '판의 파멸', '판의 미로', '판의 퍼즐', '판의 조립'으로 이어지는 목차들도 흥미롭다.


세상은 변한다. 절대적인 가치관이란 어쩌면 허상일지도 모르겠다. - p. 170


  판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일본 침몰은 재해는 재해이나 자연재해가 아니었다. 과연 어떤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것인가? 일본에서, 미국에서, 중국에서, 한국에서. 각 국의 첩보원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판를 알아내고 막아내기 위해 활약한다.  이 판국에 특별한 인재가 발견된다. '판'을 읽어내는 것만이 아닌, '판'을 만들 줄도 아는 인재가!


인연이란 게 때가 어디 있고 장소가 어디 있겠어요. 매일매일 사는 게 지옥인데요. 당신에게 또 당신이 그 사람에게 천국이 되고 천국을 만들어주면 되지요. - p. 177


  그렇게 각 국의 에이스 첩보원들이 다양하게 등장하고 서서히 얽혀들어간다. 그들 각자의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얽혀들어가는 모양새가 감탄을 준다. 특히 마지막에 에필로그의 반전은 '아!'하며 다시 앞을 들춰보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과연 일본 침몰은 어떻게 일어난 것이고, 또 그 이면엔 어떤 음모가 있는가를 추측하며 읽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을 것이다.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작가'로 통한다는 손선영의 다음 작품이 나 또한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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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되고 싶지 않다
마르탱 파주 지음, 김주경 옮김 / 열림원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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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소설 : 아무도 되고 싶지 않다

​La Mauvaise Habitude D'Etre Soi

 


 

 

  마르탱 파주! 읽어보진 않았지만 들어본 작가. '나는 어떻게 바보가 되었나'를 첫 소설로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데 성공한 프랑스 작가 마르탱 파주의 이번 작품은 바로 '아무도 되고 싶지 않다'. 이 소설은 단편소설집으로 총 7편이 수록되어 있고, 제목은 그 중 두번째 단편소설의 제목이다.


만일 내가 죽었다면 당연히 나도 그 사실을 알았겠죠. - p.23 : '대벌레의 죽음'
잘 찾아보면 사람은 누구나 살해당할 만한 이유를 가지고 있어요. - p.53 : '대벌레의 죽음'
자신으로 존재한다는 건 많은 책임감을 필요로 하죠. - p.84 : '아무도 되고 싶지 않다'
도시는 준비된 살인과 위험으로 가득 차 있는 곳이었다. - p.186 : '세계는 살인을 꿈꾼다.


  '대벌레의 죽음', '아무도 되고 싶지 않다', '멸종 위기에 처한 남자', '평생직장에 어울리는 후보', '내 집 마련하기', '벌레가 사라진 도시', '세계는 살인을 꿈꾼다'. 이 7편의 책은 온통 정상이 아닌 상황이나 사람들로 구성이 되어 있다. 특히 가장 특이했던 '대벌레의 죽음'에서는 자신이 살아있어야 한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남자가 나온다. 그를 죽었다고 주장하는 경찰과 사진사. 그들은 그가 어떤 말을 해도 그가 죽었다는 말로 귀결되게 만든다. 점점 그는 혼란스러워진다. 마지막에 그의 모습은 죽은 사람이라기보다 오히려 범죄자의 꼴을 하고 있다. 정말 흥미로웠던 부조리극.


역설적이게도 이런 불편을 누구보다 잘 참아내고 잇는 사람들은 가장 불행한 자들, 제일 어리석은 자들, 항상 신경쇠약으로 고생하는 자들이었다. 말하자면 우리가 직면한 이 기묘한 상황을 잘 견뎌내고 있는 것은 전부터 이미 비극과 불안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왔던 사람들인 것이다. - p. 170 : '벌레가 사라진 도시'


  이 소설을 필두로 7편의 소설은 모두 '실존'과 '허상'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누군가 나 대신 살아주겠다면 그것을 제정신으로 듣고있을 수 있을까 싶지만 묘하게 설득력 있는 말이 이어진다. 자신의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남자, 나 대신 살아주겠다는 사람에게 '나'를 내어주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 홀가분해진 남자, 세상에서 가장 안정적인 직장으로 '범죄자'의 길을 선택하고 면접을 본 후 안심하는 남자,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안전한 집인 '내면'이라는 집에 갇혀 사는 남자, 그리고 벌레가 사라진 고립된 세상에서 홀가분하게 떠나버린 남자, 세계가 살인을 꿈꾼다고 믿으며 모든 위험한 물건을 상대로 싸움을 거는 남자.


욕실 거울 속에서 만나는 낯선 남자는 알베르의 삶에서 알베르를 밀어내고 대신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그의 삶을 곤죽처럼 만드는 데 모든 일상을 써버렸다. 알베르, 그는 이제 그 낯선 남자에게 반기를 들어야만 했다. 더 지체했다가는 다시는 예전의 그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 p.175 : '세계는 살인을 꿈꾼다.


  이 소설에서는 비현실적인 상황들을 나열하며 그 속에서 오히려 인간의 실존과 존엄에 대해 이야기한다. 과연 인간 개인의 존재란 어떤 것이며 나를 어떤 것으로 증명할 수 있는지(대벌레의 죽음), 나라는 존재가 무엇인지(아무도 되고 싶지 않다, 멸종위기에 처한 남자), 또한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어려운 일들 덕분에 어쩌면 삶의 어떠한 부분을 포기하게 만들거나 비정상적으로 만들어 버리지는 않은건지(평생직장에 어울리는 후보, 내 집 마련하기, 벌레가 사라진 도시, 세계는 살인을 꿈꾼다)에 관해 생각할 계기를 만들어 준다. 어딘가 뒤틀린 작품은 한 번 더 눈이 가게 되더라. 이 작품 내의 부조리한 세계와 이 역설적인 의미들이 이 책을 더 매혹적이게 만든다. 한 편, 한 편이 모두 멋진 블랙유머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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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미치지 마세요
레슬리 모건 스타이너 지음, 안유정 옮김 / 필요한책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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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여성학 : 사랑에 미치지 마세요

Crazy Love

 

   학대 당한 피해 여성들에 관한 고뇌가 담겨있는 책, '사랑에 미치지 마세요'. 저자인 레슬리 모건 스타이너는 전혀 피해 여성에 대한 선입견과는 동떨어진 인물이다. 그녀는 변호사인 아버지와 알코올 어머니 사이에 워싱턴에서 태어나, 하버드 대학교와 와튼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세 아이를 가지고 있는 여성이며 커리어도 상당하다. 첫 직장을 '세븐틴'의 기자로 시작했고 그 외에도 들으면 알 수 있는 괜찮은 커리어를 가진 여성이다. 그러나 그녀는 가정폭력의 희생자이기도 하다.


   폭력에 저항하기 힘든 여인들은 보통 생활력이 없어 폭력에 무기력해진 여성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것 뿐만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학습되는 사례도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나무랄 데 없이 똑똑하고 매력적인 여성이었으며, 심지어 다른 남자들에게도 그렇게 보였다. 그러나 그녀 또한 그에게 벗어나면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가끔은 벗어날 길을 포기한다. 가정폭력 가해자는 본인 또한 그런 성향의 가정에서 살아온 사람인 경우가 많고, 그들은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이 혼란스럽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통제권을 찾아오고 싶어서' 폭력을 행사한다.

 

'내 인생이 남들이 보기에 어떤지'가 아니라 '나의 내면이 진정으로 어떤 상태인지'를 알아내려 무척 노력했다. - p. 29


  보통 가정 폭력의 희생자라고 하면 보통 상대적으로 신체적 약자인 여성이 대상이 된다. 그런 학대받은 여성들은 보통 약하고, 교육을 받지 못했고, 자기파괴적이고, 무력하다는 정형화 된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러나 레슬리는 자신이 그런 여성과는 동떨어져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런 그녀는 자신의 기억속 그 때의 자신과 코너(남편)에 대해 서술한다. 당시에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와 어떤 식으로 사랑에 빠졌고 또 어떤 식으로 폭력에 관해 생각했는지를 낱낱이 털어놓는다.


"우리 둘 다 이상한 가족을 가졌네요." 나는 말했다. "그게 가족이란 것 아니겠어요?" - p. 66


  레슬리는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여자는 나밖에 없다는 착각 속에 빠지곤 한다. 그는 '가정폭력 피해자'인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으며, '가정폭력의 피해'와 비슷한 상황이 오면 화를 내며 레슬리를 때렸다. 내 엄마가 그랬다며, 내 아빠가 그랬다며, 그 상황을 자신은 참을 수가 없다며 폭력을 행사한다. 그가 폭력을 휘두른 아버지와 자신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정폭력 가해자'들의 방어기제였다. 심지어 피해여성은 그 방어기제를 충분히 도와준다. 그녀는 그를 가엽다고 생각하며 그의 이 스트레스와 피해의식으로부터 '구해줄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착각속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그를 이해하지 못한 수많은 여자들과 다를 것이며 자신은 그에게 특별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책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1부는 뉴욕을, 2부는 버몬트를, 3부는 시카고를 배경으로 레슬리의 인생에 대해 털어놓는다. 코너를 만나고 나서 처음엔 그를 매력적이라고 느끼지 못했다는 그녀. 그녀는 어느날 벼락같이 코너에 대한 성적 매력을 꿈으로 접했고, 그와 다시 만나봐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렇게 만나게 된 코너는 불우한 가정사를 가지고 있다. 그도 가정폭력의 희생자였던 것이다. 불우한 가정사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그를 보며 그녀는 그에게 자신이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불우한 한 구석에 대해서도 털어놓는다. 알코올 의존증인 자신의 엄마에 관해서. 그리고 코너는 놀랍게도 그녀를 위해 술을 끊었다.


나는 나 자신이 없어지는 듯한 굉장한 기분을 느꼈다. 이런 기분은 생전 처음이었다. 내 안에서 너무나 거대한 사랑을 느낀 나머지, 사랑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고 그 때문에 버린 것들을 영원히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깊이 생각할 수 없었다. - p. 133 


  그 이후 그녀는 그에게 급격하게 빠져들게 된다. 그가 직장을 옮기기 때문에 그녀는 일을 그만두고 외주 작가가 되어야 했는데, 그를 위해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결정한다. 그리고 일어난 첫 폭력. 그건 결혼 며칠 전의 일이었다. 그녀는 급격하게 합리화에 나선다. 그녀는 결혼을 돌이킬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폭력을 애써 외면한다. 그 이후 다시 폭력이 일어났을 때 그녀는 놀라지도 않았다고 서술한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폭력. 그녀는 그 폭력은 그녀가 문제가 아니고 그가 문제라는 사실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그를 떼어내지 못한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그대로 남기고 도망치면, 그들의 영혼의 일부를 대가로 내 주게 된다. - p. 310


  그렇게 폭력이 습관화 되어간다. 그 폭력은 그녀가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아도 그냥 가만히 있어도 일어날 정도까지 심해지게 된다. 그런 그녀에게 에드가 알려준다. 코너가 있을 때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그가 없으면 정상으로 돌아온다고. 코너를 두려워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두려워하면서도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그와 함께 MBA에 지원하겠다고 결정한다. 그리고 그녀는 매번 합격통지서를 받았고, 그는 떨어진다. 그가 하버드에서 불합격통지서를 받았을 때, 그녀는 두려움에 떨며 자신의 지원서를 폐기시켜달라고 한다. 그리고 하버드에 자신만 합격할까봐 두려움에 떤다. 그의 폭력을 예상한 것이다. 그렇게 코너에 대해 거대한 두려움을 안고서도 그녀는 그와 함께한다.


이제는 내 생애에서, 아니면 다음 생애까지도, 나쁜 남자들을 좋아하는 일은 끝났다는 확신이 숙명처럼 들었다. - p. 310


  그는 반년 정도 참다가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그 폭력은 지난 참았던 시간을 압축시킨 듯 강렬했고, 그녀는 죽을뻔했다. 그렇게 코너와 결국 헤어지게 된다. 그 헤어지는 시간 동안 그녀는 그녀의 감정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결혼하는 것보다 이혼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도 알게된다. 이혼하는 과정에서, 그녀가 완벽하길 원하는 아버지에 의해 상처도 받는다. 상처입은 사람을 재 상처입히며 힘들게 이혼은 이루어진다.


다음 관계에서 만날 연인이 갖췄기를 바라는 특징을 열 가지 적어오라는 것이었다. '다음 관계'라는 말이 나를 무장해제 시켰다. 그 동안 다른 남자와 데이트를 한다는 걸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 p. 292


  보통 가정폭력을 당하면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가 많기 때문에 레슬리는 남자들에 대한 시각을 알아보고 싶어 권위자를 찾는다. 그런 남성들의 특성을 듣고, 회복되는 사람들이 있는지에 관해 듣는다. 그리고 상담사에게서는 상담을 받게 된다. 거기서 그녀는 점점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녀는 힘을 내어 상황에서 벗어났고, 계속해서 그에게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주위 사람들의 걱정어린 조언을 받으며 점점 상황은 나아지게 된다.


  그녀는 MBA 학위 덕분에 홀로서기에 충분히 성공한다. 그의 강압에 못 이겨 지원했던 학위로 아이러니하게 홀로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사례는 그녀가 매우 명석하고 지적인 여성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그 가정폭력의 시초와 과정, 끝내게 된 경위는 충분히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녀 또한 가정폭력과 관련된 인문사회서적들을 참고하며 그 상황들과 자신이 다르지 않다는 데 충격을 겪은 것이 문제제기의 발단이 되었기에. 비슷한 상황의 다른 피해자들도 어떤 계기를 통해서건 그 상황을 꼭 벗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한 이것은 꼭 가정폭력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다른 무기력한 상황에 빠져서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자기회피를 반복하고 있을 때, 이 책은 그럴 때 자신을 다시 돌아보고 그 자리에서 벗어나는 것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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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체슬리 설렌버거.제프리 재슬로 지음, 신혜연 옮김 / 인간희극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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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 에세이 :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Highest Duty : My Search for What Really Matters

  허드슨 강의 기적! 요즘 영화화 된 '설리 : 허드슨 강의 기적'의 원작 에세이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정말 놀랍다는 생각이 들고 가슴이 벅찼으며, 또 우리의 세월호 사건이 생각나면서 아, 우리는 왜 이와 다른 상황이 일어난 걸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그렇게 어쩌면 기쁘고, 어쩌면 안타까운 심정으로 집어 든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 이 소설은 2009년 1월 15일, 유에스 항공 1549편 여객기가 이륙한 지 5분만에 새떼와 충돌하게 되면서 두 개의 엔진을 상실하고, 그 후 허드슨강을 불시착 장소로 정하게 되면서 탑승자 155명 전원이 살아남은 '허드슨 강의 기적'. 그리고 그 기적을 이뤄낼 수 있었던 '체슬리 설렌버거' 기장의 57년 인생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설리’는 그가 전투기 조종사 때부터 사용해 온 호출명이자 애칭이다.

승객들 모두 나름의 사연과 이유, 목적이 있고, 그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에서 나는 큰 보람을 느낀다. - p. 42

 

  그는 아주 어린 유년시절부터 비행에 관한 꿈을 키워왔다고 한다. 생애 첫 비행은 16세인 1967년 4월 3일. 앞 좌석에 앉아 첫 비행을 시작했다. 조종불능이 되면 쿡씨가 '뒷받침'을 해주었다. 단독 첫 비행은 그로부터 2달 뒤. 총 16회의 연습이 있고 난 뒤였다. 그는 첫 발을 멋지게 뗐다. 그 모든 상황을 쿡씨가 도와줬기에 그는 유독 쿡씨에 관한 애정을 드러낸다. 허드슨 강의 기적을 일궈낸 후에도 쿡씨를 잊지 않고 언급한다.


조종사는 모든 것에 대한 통제력을 끝까지 유지해야 했다. - p. 34

모든 일이 순탄할 때는 비효율성이나 결함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 p. 61


  그의 가족 이야기와 그가 비행에 관한 애정을 여실히 드러낸 이후 이어진 군생활. 그는 미 공군 생활을 하며 전투기를 조종했다. 그가 겪은 훈련에 관한 이야기도 들어있는데 한 가지 흥미로웠던 건 미 공군도 신입 생도들은 제약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전i'm이라는 대답은 허용되지 않았고, 저는 i am이라고 해야 했다. 또한 그들은 부동자세에서 웃을 수 없게 되어 있다.' 우리 나라 군대에서도 볼 수 있는 이런 상급자의 하급자에 대한 부조리가 미 공군 부대에서도 드러나 있어 흥미로웠다. 그리고 군대가 필수가 아닌 환경에서 군대에 들어갈 결심을 하게 된 그의 이야기와 보통의 미국인은 알 수 없을 군대에서 느꼈던 놀라운 경험들. 그가 허드슨 강의 상황에서 침착할 수 있었던 이유 중에는 이러한 군 생활의 엄격함도 녹아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 그 1549편 여객기의 조종실 안에는 나와 제프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내게 가르침을 주고 응원해주고 내 안의 가능성을 알아봐준 모든 멘토와 영웅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타고 있었다. - p. 39


  책에서 허드슨 강의 상황에 관한 이야기는 전체 400페이지 중 단 60페이지에 불과하다. 총 비행시간 5분 8초. 심지어 앞의 1분 40초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3분 28초. 그 시간동안 충돌 후 대피가 이루어진다. 정말 짧은 순간 이루어진 정확한 판단. 관제실에서는 계속해서 착륙할만한 근처 공안들을 제시했지만 기장은 '불가능하다'고 판단내린다. 그의 수 시간과 수백만 마일의 비행경력들이 그가 좀 더 자세한 판단이 가능하도록 돕는다.


  이는 팬암6편이 처했던 상황과 비슷하기에 팬암6편에 관한 이야기도 함께 언급된다. 분초를 다투던 허드슨강과 수 시간의 여유가 허용된 탁 트인 바다. 이렇게 달랐던 상황은 있었지만 팬암 6편도 똑같이 수면 위로 불시착한다. 그도 모든 인명구조는 성공했지만 임종 직전에 멍하게 어딘가 보고있기에 무슨 생각 하냐고 묻자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 때 화물칸에 갇혀있던 불쌍한 카나리아들 생각...-p. 69'. 조종사들이 특별히 책임감이 있는 걸까. 체슬리 설렌버거는 에세이에서 말한다. 본인들은 굉장히 체계화된 습관 속에 살아가고 있으며 어쩌면 그런 사람들이 조종사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끼는 걸지도 모른다고. 그럼 그런 사람들은 특별히 강한 책임감 또한 가지고 있는 걸까. 자신만 살려고 했던 세월호 선장의 대처방식이 생각 나며 또 한 번 씁쓸해진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터전은 흔들리고 있었고, 그들은 자신의 삶이 불현듯 새떼와 부딪힌 것과 같은 충격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1549편 여객기의 성공적인 불시착은 뜻하지 않은 위기 속에서도 어떻게든 해결할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더 이상 해볼 도리가 없는 것 같은 상황에서도 빠져나갈 길은 언제나 있다. - p. 321


  그 아찔했던 5분 이후 근처에 있던 배들이 그들을 구조하는 것을 돕는다. 그 것은 어느 기관에서 명령받지 않았던 그들의 순수한 도움이었다. 그건 행운이었고, 덕분에 155명 전원 무사 생존이라는 기적을 낳는다. 이 기적은 기장의 순간적인 판단력과, 그 판단을 뒷받침 한 부기장. 탈출을 신속히 도운 승무원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패닉에 빠지지 않고 인솔하는 대로 발빠르게 대피한 승객들이 모두 함께 이뤄낸 기적이었다. 가라 앉고 있는 비행기 위에 아슬아슬하게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여자와 노약자, 부상자를 우선으로 대피시키는 그 서술들을 보며 아. 이게 정말 아름다운 일이구나 하는 것을 또다시 느꼈다.


  그 기적 이후에 설렌버거의 삶은 많이 바뀌게 된다. 그는 유명인들과 아무렇지 않게 대화할 수 있는 자리에도 많이 초대받았으며 대통령과 오래된 친구사이처럼 통화를 하기도 한다. 그는 모든 일을 최선을 다해왔던 무명인에서 그 것을 인정받은 유명인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것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어떤 일을 계기로 인정받을 수 있는 희망이 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희생자가 단 한 명이라도 나왔으면 결코 이러한 초대에 응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같이 탄 승객들이, 그리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보낸 사연들에 대해 소개도 해준다. 결혼을 약속했던 커플의 죽음을 앞둔 아름다운 키스, 다른 비행사고를 겪었던 승객의 기시감, 형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렇게 이르게 또 다른 장례식을 맞이하게 하지 말아달라는 기도. 그 들의 이야기도 많았지만 역시 압도적인 편지는 사고를 같이 겪지 않은 이들의 것이었다.


  설렌버거는 그저 자신의 일을 했을 뿐이라고. 자신은 그렇게 위대한 영웅이 아니며 모두가 기억해야 할 것은 나도 그 155명 중의 한 명 이었기에 최선을 다했던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이뤄낸 이 기적은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책이 끝나고 난 뒤 부록에는 당시 상황에 대한 미 연방교통안전 위원회 조종실 음성기록장치 녹취록 발췌문이 삽입되어 있다. 그 급박했던 당시 상황이 모조리 기록되어 있는 이 부록은 다시 생각해도 정말 아 이건 정말 기적이구나. 기적을 이뤄낸 거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아마 나처럼 느꼈을 것이다. 나 또한 인생의 엔진을 상실한 것과 같은 위기감을 겪고 있다고. 하지만 이러한 기적을 목도하고 나니 나 또한 어떻게 해서든 아름다운 불시착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얻었다고. 그렇게 벅차오르는 심정을 느낀 사람들은 그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그에게 어떻게 해서든 감사를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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