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되고 싶지 않다
마르탱 파주 지음, 김주경 옮김 / 열림원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프랑스 소설 : 아무도 되고 싶지 않다

​La Mauvaise Habitude D'Etre Soi

 


 

 

  마르탱 파주! 읽어보진 않았지만 들어본 작가. '나는 어떻게 바보가 되었나'를 첫 소설로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데 성공한 프랑스 작가 마르탱 파주의 이번 작품은 바로 '아무도 되고 싶지 않다'. 이 소설은 단편소설집으로 총 7편이 수록되어 있고, 제목은 그 중 두번째 단편소설의 제목이다.


만일 내가 죽었다면 당연히 나도 그 사실을 알았겠죠. - p.23 : '대벌레의 죽음'
잘 찾아보면 사람은 누구나 살해당할 만한 이유를 가지고 있어요. - p.53 : '대벌레의 죽음'
자신으로 존재한다는 건 많은 책임감을 필요로 하죠. - p.84 : '아무도 되고 싶지 않다'
도시는 준비된 살인과 위험으로 가득 차 있는 곳이었다. - p.186 : '세계는 살인을 꿈꾼다.


  '대벌레의 죽음', '아무도 되고 싶지 않다', '멸종 위기에 처한 남자', '평생직장에 어울리는 후보', '내 집 마련하기', '벌레가 사라진 도시', '세계는 살인을 꿈꾼다'. 이 7편의 책은 온통 정상이 아닌 상황이나 사람들로 구성이 되어 있다. 특히 가장 특이했던 '대벌레의 죽음'에서는 자신이 살아있어야 한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남자가 나온다. 그를 죽었다고 주장하는 경찰과 사진사. 그들은 그가 어떤 말을 해도 그가 죽었다는 말로 귀결되게 만든다. 점점 그는 혼란스러워진다. 마지막에 그의 모습은 죽은 사람이라기보다 오히려 범죄자의 꼴을 하고 있다. 정말 흥미로웠던 부조리극.


역설적이게도 이런 불편을 누구보다 잘 참아내고 잇는 사람들은 가장 불행한 자들, 제일 어리석은 자들, 항상 신경쇠약으로 고생하는 자들이었다. 말하자면 우리가 직면한 이 기묘한 상황을 잘 견뎌내고 있는 것은 전부터 이미 비극과 불안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왔던 사람들인 것이다. - p. 170 : '벌레가 사라진 도시'


  이 소설을 필두로 7편의 소설은 모두 '실존'과 '허상'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누군가 나 대신 살아주겠다면 그것을 제정신으로 듣고있을 수 있을까 싶지만 묘하게 설득력 있는 말이 이어진다. 자신의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남자, 나 대신 살아주겠다는 사람에게 '나'를 내어주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 홀가분해진 남자, 세상에서 가장 안정적인 직장으로 '범죄자'의 길을 선택하고 면접을 본 후 안심하는 남자,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안전한 집인 '내면'이라는 집에 갇혀 사는 남자, 그리고 벌레가 사라진 고립된 세상에서 홀가분하게 떠나버린 남자, 세계가 살인을 꿈꾼다고 믿으며 모든 위험한 물건을 상대로 싸움을 거는 남자.


욕실 거울 속에서 만나는 낯선 남자는 알베르의 삶에서 알베르를 밀어내고 대신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그의 삶을 곤죽처럼 만드는 데 모든 일상을 써버렸다. 알베르, 그는 이제 그 낯선 남자에게 반기를 들어야만 했다. 더 지체했다가는 다시는 예전의 그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 p.175 : '세계는 살인을 꿈꾼다.


  이 소설에서는 비현실적인 상황들을 나열하며 그 속에서 오히려 인간의 실존과 존엄에 대해 이야기한다. 과연 인간 개인의 존재란 어떤 것이며 나를 어떤 것으로 증명할 수 있는지(대벌레의 죽음), 나라는 존재가 무엇인지(아무도 되고 싶지 않다, 멸종위기에 처한 남자), 또한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어려운 일들 덕분에 어쩌면 삶의 어떠한 부분을 포기하게 만들거나 비정상적으로 만들어 버리지는 않은건지(평생직장에 어울리는 후보, 내 집 마련하기, 벌레가 사라진 도시, 세계는 살인을 꿈꾼다)에 관해 생각할 계기를 만들어 준다. 어딘가 뒤틀린 작품은 한 번 더 눈이 가게 되더라. 이 작품 내의 부조리한 세계와 이 역설적인 의미들이 이 책을 더 매혹적이게 만든다. 한 편, 한 편이 모두 멋진 블랙유머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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