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넥스트 도어
알렉스 마우드 지음, 이한이 옮김 / 레드박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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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 스릴러 소설 : 킬러 넥스트 도어

 


  '사악한 소녀들THE WICKED GIRLS'로 데뷔한 알렉스 마우드의 신작 장편 소설. 그녀는 이 소설로 영미 최고의 추리 소설에게 주는 에드거 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스티븐 킹의 그 해 최고의 책 열 권 중 한 권으로 선정되기까지 했다고.


  이 킬러 넥스트 도어는 런던 남부의 허름한 아파트 23번지에서 살아가는 6명의 이야기와 그들 사이에 숨어 살인을 이어가는 살인마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살인마는 외로운 자신이 영원히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여성을 살해하고 영원히 박제하려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애인'들. 사랑을 영원히 이어가기 위해 박제를 계속하지만 '애인'이 아름다움을 잃어가면 다른 새로운 아름다운 애인을 만든다.


  이렇게 계속해서 살인을 이어가고 있는 한 사람. 이렇게 들으면 아 살인마가 중점이 되어 벌어지는 사건을 전개해 나가겠구나, 싶지만 이 소설은 일반적인 스릴러와 궤를 달리 하고 있다. 심지어 중간에 살인마가 누구인지 세입자들에 의해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서술로 작가가 범인을 밝혀버린다. 보통 '누가 범인이다!'를 알게 될 때까지 이중 삼중으로 심리적 장치를 파는 다른 책들과 달라서 신선했다.

뭔가가 일어났고, 많은 것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 p. 366 


  그들은 보증금만 받고 들어갈 수 있는 곳에서 모여서 살아간다. 신원보증도 필요 없는 곳. 그런 것이 없는 사람들이나 형편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그저 돈만 있으면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그런 만큼 허름하고 제대로 된 숙박시설이라고도 할 수 없지만 어쨌든 비바람을 피할 수 있기에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 곳으로 몰려드는 듯 하다. 그런 와중 한 사람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콜렉트가 채우게 된다.


이상하게도 도둑 사건은 그녀에게 안전에 더 주의를 기울이게 하기보다 오히려 소홀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렇게 누군가가 쉽게 안으로 들어올 때면 그것이 더는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 p. 365


  콜렉트는 누군가의 비밀을 우연히 알게 되었기에 숨어지내야 하는 처지. 그렇기에 이웃들과 친해지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역시 뜻대로 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녀는 독신남 토머스, 망명자 호세인, 은둔형 외톨이 제라드, 가출소녀 셰릴, 70 평생을 이 곳에서 살아온 베스타와 안면을 트게 되고,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집주인의 살인사건에 휘말린다.


  가엾은 한 사람을 돕기 위하여 그들은 뭉친다. 사고로 위장하려했으나 쉽지 않은 상황. 그런 도중 드디어 살인마와 마주친다. 보통은 이 상황에서 굉장한 스릴을 맛보며 추격전을 벌이거나 혹은 잔혹한 모습을 대면하게 되기 마련이지만 이 소설은 '살인마'가 중점이 되는 소설이 아니고 '아파트 주민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한편으로 이건 축복이 아니라 감옥이기도 하잖아요. (중략) 우리 대부분이 그런 걸요. 한자리에 머무는 거, 그게 인간 본성이에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변화는 두렵죠. 살아오시면서 많은 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의 노예로 사는지 보셨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지경이 돼서야 변화를 꾀할 수 있죠. 언젠가 사람들이 죽음보다 변화를 더욱 두려워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그리고 전 그 말을 믿어요. - p.364


  아파트를 떠날 생각을 하지 못한 이와 떠나야 하는 이. 그리고 사랑에 빠진 사람. 사회에 적응하지 못 하고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서 벗어난 사람. 그들은  어떠한 결단으로 인해 실수도 무마하고 자신의 과거와도 결별했으며,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지지 않아도 되는 상황전개가 이어진다. 그들은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른 비주류의 사람들이지만 현재 있는 자리에서 머무르지 않고 '변화'를 하기로 선택하고, 과감한 결정까지 하기에 이른다.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의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독특한 심리 스릴러. 이미 영화화가 결정되었다고 하는데 영상으로는 어떻게 보여질지 매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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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을 기록하다 for me -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에게 선물하는 다이어리북 순간을 기록하다
데이비드 트리폴리나 지음, 박지희 옮김 / 북라이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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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 : 순간을 기록하다 for me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에게 선물하는

다이어리북!

 

 

 

 

속지를 벗기면 이렇게

하늘색 표지가 나온다.


순간을 기록하다는

for me

for love.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두 책의 저자가 다르다.


for love로 할까하다가

 이제 곧 끝나는 20대.

내년에 20대의 순간을 기록하고 싶어

for me를 선택했다.

 

 

 

 

Q&A 시리즈가 대박난 이후

Q&A 후속작들도 벌써 5개나 나왔고

비슷한 책들도 슬슬 나오는 와중에

이 책은 꽤 흥미로운 구성이었다.


정해진 일자가 아니고

그저 자신이 쓰고 싶은 곳을 펼쳐

그걸 쓰고나서.

또 한동안 잊고있어도

또 다시 다른페이지에 기록하면 되는

간편하고 부담없는 다이어리.


책에서는 말한다.

'스스로와 마주하는

짜릿하고 놀라운 시간을 선물한다.'

 

 

 

 

이 책을 보는 법.


질문의 하단에 자유롭게 답을 쓰기도 하고.

객관식 문제는 해당되는 곳에 체크를 하고.

사진을 붙이거나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7첨척도, 10점척도 등에 표시하기도 한다.

 

 

 

 

이 책을 시작한 날.

시간까지 적고나면 끝!


'이 책을 펼친 순간만큼은

오직 자신에게만 집중하세요!'


어쩌면 이런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

많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목차는 단순하다.


I was …
I am …
If I …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가정.

 

 

 


각각의 목차에 걸맞은 질문들이

아기자기하게 배치되어 있다.


부담을 느끼지 않고 쓸 수 있도록

예쁘게 구성된 책.


생각지도 못한 질문도 있고

이런 책엔 이런 게 있겠지.

싶은 질문도 있다.

 

 

 

 

'행복은 원하는 것을 얻을 때가 아니라
무언가를 진정으로 원하는 과정 속에 있다.'


책의 중간마다 오른쪽 장 처럼

감동적인 문구들이 적혀있어

나도 모르는 새 마음에 들어오기도 한다.

 

 

 

 

가장 마지막 장에는

앞에서 묻지 않은 질문이 있다면

쓰고 답해보는 셀프인터뷰 코너도 있다.


그저 정해진 질문에만

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참 매력적이다.


그리고 그 옆장엔 이렇게 써있다.


'삶을 이끄는 건 오직 당신 자신이다.'


삶에 지치고 힘들 때.

타인에게 휘둘려서 괴로울 때.

나 자신과 마주하고 싶을 때.

또는 다른 상황들에서도.


나에 대한 정보들이나

호기심 가는 질문들에 답을 하다보면

나의 몰랐던 모습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다 완성한 뒤에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보게되어도

그때의 내가 가진 생각들을 돌이켜보며

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좋은 기회를 가지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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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천명관 지음 / 예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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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설 :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책 좋아하는 사람 중에 천명관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2004년 제 10회 문학동네소설상에 당선되었던 '고래'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수 많은 호평을 낳았던 바로 그 '고래'를 쓴 천명관. 그가 '나의 삼촌 브루스 리' 이후 4년만에 다시 장편소설을 내놓았다. 제목은 바로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조직은 종식처럼 쓸 만한 행동대장들을 적당한 거리에 두고 관리하며 필요할 때마다 이용해왔다. 돈만 주면 언제든 각목을 들고 달려올 비정규직 건달들이 뒷골목에 넘쳐났다. 바야흐로 건달들도 청년실업의 위기를 겪는 중이었다. - p. 10


  책은 바로 건달들의 이야기. 허세 가득한 표지에서 느껴지듯, '인천 뒷골목의 노회한 조폭 두목을 중심으로 인생의 한방을 찾아 헤매는 사내들의 지질하면서도 우스꽝스런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몇 개의 세력이 나오고 거기에 이야기가 생기고 또 다른 이야기가 생기고 이야기들이 얽히고 끝내는 모두가 바둥바둥거리며 인생 대박을 자신이 먹으려고 애를 쓴다.


언제부턴가 회사는 더는 정식직원을 채용하지 않았다. 사대보험 들어주고 보너스까지 줘가며 노조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부는 그것을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라고 불렀다. 노동시장이 유연해질수록 인력시장으로 내몰리는 노동자들의 숫자는 늘어났고 승합차는 점점 더 많이 필요해졌다. - p. 71


  모두 욕망에 충실하지만 한심한 것이 어딘지 모르게 안쓰러운 느낌까지 드는 등장인물들. 건달들도 살아가기 어려운 시기. 서로가 서로의 뒷통수를 치며 빈털터리가 되어가던 그들. 왕년에 주름잡던 가오가 있어 이대로는 안되겠다 생각하고 그들은 어리숙한 삼대리와 울트라가 저지른 실수를 기회로 여겨 덤벼든다. 20억 다이아몬드와 35억의 종마! 이 모든 것을 손에 쥐는 이들은 누구일까. 인천의 양회장과 아랫지방 손회장. 장다리 등 여러 인물들이 나오며 이 놈이 먹겠다 싶으면 저 놈이 나오고, 또 저 놈이 먹겠다 싶으면 다른 놈이 나오며 웃음을 자아낸다.


한 대 맞으면 두 대 때리고 손해를 입으면 상대의 손가락을 다르는 게 그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피해가 발생하면 서로 합의금을 주고받는 정당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 p. 172


  본인들은 진지하지만 독자에겐 허세고 웃긴 놈들일 뿐. 인물들이 많이 나오지만 각각 개성이 너무나 뚜렷하고 이름이 아니라 별명으로 나오기에 구분에 전혀 무리가 없다. 신화급 무용담을 내보이기도 하고 그 신화 속 주인공을 소위 '끕'도 안되는 조직원이 줘패기도 하며 이야기는 굴러간다. 각각 옹졸한 야심을 내보이며 입으로는 협력과 분배를, 머릿속으로는 본인만의 이득을 계산하지만 허술한 건달들. 그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보여주다가 중후반부에 야금야금 서로 이어지며 결국 모두가 마주친다. 책은 피비린내 나는 묘사를 하지만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들로 인해 시종일관 가벼운 분위기를 보여준다.


  작가 본인이 여기저기 들은 이야기를 짜맞춰 이야기를 내보였기에 이야기꾼 모두에게 감사하다는 작가 후기에서도 볼 수 있듯, 천명관 작가는 떠도는 이야기를 모아 다시 재미지게 써서 내놓았다. 제목 또한 정말 허세 가득한 것이 한바탕 신나게 웃고 즐기라는 의도가 명확하다! 거슬리는 조폭미화도 없는 이 소설. 덕분에 신나게 낄낄 웃으며 볼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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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밤의 눈 - 제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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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설 : 고요한 밤의 눈

 



  혼불문학상 제6회 수상작 '고요한 밤의 눈'. 2005년에 중편 소설로 등단하고, 2006년 '백수생활백서'라는 장편 소설로 제30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박주영의 작품이다. 혼불문학상은 '혼불'의 저자 최명희의 문학정신을 그리기 위해 제정된 상으로 1회 '난설헌', 2회'프린세스 바리', 3회 '홍도', 4회 '비밀 정원', 5회 '나라 없는 나라'가 수상작으로 결정됐다. 그 이후에 수상작으로 선정된 '고요한 밤의 눈'은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이 세상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들이 있다. 기억과 양심, 진실 그리고 그것을 가진 사람도. 사람들이 사라진다는 얘기를 한 사람은 언니였다.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이야기였다. 사람들은 늘 사라진다. 내가 언니의 그 이야기를 다시 떠올린 건 그 이야기를 했던 바로 그 사람, 언니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 p. 13

 

  이 이야기는 눈에 보이는 세계의 이면에서 보이지 않는 활동을 통해 세계를 이끌어나가는 스파이들이 나온다. 소설은 처음엔 일란성 쌍둥이 언니가 사라진, '모든 것을 기억하는 여자' D가 나오고, 곧 이어 15년 동안의 기억을 잃은 남자 X가 나온다. 기억을 잃은 채 누군가 알려준 삶이 자신의 과거라는 것을 '이해'해야하는 남자. 그는 그렇게 누군가 알려준 대로 스파이가 된다.


언니와 나는 한 번 본 것, 들은 것, 읽은 것을 거의 모두 기억하는 유별난 재능을 가졌다. 그러나 때로 모든 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별 다섯 개의 기억과 별 한 개의 기억이 같으면 기억의 가치를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 p. 18

지금도 나는 이 세상에 기록되지 않은 채 존재한다. 이제 언니는 세상에 기록된 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 p.19


  그렇게 스파이가 된 X는 여전히 자신에 대해 의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정신병원을 찾아갔고, 그것은 바로 D의 언니의 병원. 그는 처음엔 언니와 상담했지만 그 뒤로는 D와 상담했고, 일란성 쌍둥이인 둘 덕분에 계속 오해한채로 자신의 상황을 알린다. 그렇게 15년의 기억을 잃은 채 스파이가 된 X와 그의 친구 역할이며 그 이후에는 여자친구의 역할도 수행하게 되는 여자 스파이 Y. 그리고 그 둘의 보스인 B. 모든걸기억하는여자 D와 Y에게 감시를 받는 작가인 Z가 나오며 각각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가장 덜 양심적이고 덜 진지한 사람들이 성공하는 사회는 잘못되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우리가 속한 이 세상이 틀렸다고 느끼면서도 더 이상 싸우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누군가는 먹고 살기 바빠서, 누군가는 더 잘 먹고 더 잘 살기 위해서. 다만 지켜보고 기다리다가 결국에는 사회뿐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서도 아무런 의미를 발견하지 못 하게 되고 그냥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가기를 바라게 되고 만다. 그녀는 그런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기억하지 못했으면 좋겠지만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그래서 가끔은 바꿀 수 있다고 희망했다가 또 좌절하고 마는, 더 양심적이고 더 진지한 사람들. - pp. 45-46


스파이 소설이지만 스파이에 관한 내용이라기보다 현대 사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인 '고요한 밤의 눈'. 목적 없는 삶. 목적 없는 수단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매일 감시당하는 사회 속에서 목적을 잃은 채 그저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은 혁명이라는 단어를 잊은 지 오래다. 그런 삶 속에서도 상황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목적 없는 수단이 아니라 현실을 가치있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


책은 위험하지. 책을 대신할 유희는 많지만 책보다 생각늘 깊이 전달하는 것은 없지. 책을 만드는 데 돈이 덜 들고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고 사람들 사이를 떠돌면서 불어나니까. 한때 작가는 시대의 양심으로 일종의 혁명가였어. 그리고 혁명가는 거의 모두 작가야. 그들은 말을 하고 행동을 하고 이야기를 남기지. 지배자들은 그래서 늘 책을 없애려고 해. 언제 죽을지 모를 세상에 책은 육체가 사라져도 살아남는, 영혼같은 거거든. - p. 275


  무명 소설가 Z. 그는 등단한 뒤 제대로 팔리지 않는 작품을 쓰며 겨우 입에 풀칠하고 있는 작가이다. 그는 왜 감시를 당하고 있는가. 그는 자신이 신청한 것도 까먹고 있었던 지원금 제도에 뽑혀 그가 쓰는 모든 것을 보고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조그만 돈을 지원받으며 자신이 입고 쓰는 보든 것을 알려야 하는 Z. 그는 '혁명'이라는 단어에 대해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 중 한 명이다. 그는 진보단체에 글을 투고했다가 지원금이 삭감되었다는 말을 듣는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지배되는 세상은 사람들의 의식마저 생계를 위해 바꿔놓으려고 애를 쓴다.


부자라는 건 재산내역서의 숫자처럼 단순한 하나의 사실이 아니다.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이자 여러 태도의 집합, 즉 특정한 삶의 방식이다. - p. 130


  작 중 부자에 관한 시각도 자못 흥미롭다. 부자라는 건 그저 특정한 집단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이자 여러 태도의 집합이라는 것. 지나쳐갈 수 있을 정도로 짧은 에피소드인데 보스 B가 백화점에서 차별을 당하게 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저 겉만 보고 판단하는 사람들. 그들은 높은 사람에게는 지나치게 저자세를 보이면서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B에게는 차별을 하며 그가 예약한 시계를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기까지 한다. 언제부터 사람의 내면보다 외면이 중요하게 되었는가. 나 또한 보이지 않는 차별을 타인에게 가하고 있지는 않는가.

최고의 이야기에는 진실이 담겨 있는 법입니다. 역사가 승자들에 의해 쓰이는 건 상식입니다. 그렇다면 패자들은 무얼 쓸까요. 진실을 쓸 때까지 멈추지 마십시오. - p. 320


  그런 와중 독서클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비밀스럽게 전달되는 독서클럽의 초대장. 그 초대장을 받는 이 중에는 미쳐버린 줄 알았던 여자 스파이 Y의 어머니도 속해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온 이야기. '패자의 서'! 패자의 서는 쓰인 책이 아니다. 어떤 것이 패자의 서가 될 지. 소설가 Z의 감시당하는 삶처럼 감시당하고 통제당하는 삶. 그런 현실 속에서 가치를 찾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찾은 컨텐츠로 책이 쓰였다는 것도 굉장히 흥미롭다. 그 진실은 통제당하는 삶 속에서 조각나도 이래저래 덧붙여진다. 소설 속 패자의 서는 과연 어떤 내용일까. 그것은 우리의 행동하는 미래에 달려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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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9PM 밤의 시간 다음, 작가의 발견 7인의 작가전
김이은 지음 / 답(도서출판)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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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릴러 소설 : 11:59PM 밤의 시간

 


 

  다음, 작가의 발견. 7인의 작가전 3번째 소설이라는 '11:59PM 밤의 시간'.  이 작품은 '인간 내면의 균형이 무너졌을 때 얼마나 걷잡을 수 없이 악해질 수 있는지, 타인뿐 아니라 자신도 점점 파괴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원인이 본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학습의 효과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나는… 잘 살고 싶어. 그뿐이야.”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미워서, 세상에서 없애버리고 싶을 만큼 미워서 한 짓이 아니라고 변명했다. “다만… 단단한 돌계단을 딛고 서야 흔들리지 않고 세상을 이길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이러는 거야. 타락이라고 말할 수 도 있겠지. 하지만 그게 세상이 미리 정해놓은 규칙이잖아. 강해져야 살아남는 거.” - p. 215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이야기. 주인공인 '채선'은 엄마로부터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그녀의 어머니는 물질적인 것을 중요시 하는 부류의 사람. 봉사활동 등을 다니며 대외적으로는 '좋은 사람'으로 보이지만 그녀의 사상은 정신적인 면에서는 결핍되어 있다. 해선은 아빠의 사업 실패와 그로 인한 엄마의 자살을 보고 이렇게 살지는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로 인해 채선은 '사람답게' 사는 것은 정신적인 것보다 물질적인 것이 중요하다는 가치관을 지닌 채 자라나게 된다.


  책의 첫 장에서는 해선의 딸인 '교영'의 이야기가 나온다. 친구들을 울려 원장실로 불려간 해선이 이야기의 시작. 교영은 섬뜩한 구석이 있다. 그 아이는 사람을 찢고, 죽이고 하는 이야기를 서슴지 않고 하며 때로는 그 대상이 살아있는 자신의 주변 사람이기도 하다. 해선은 그것을 보면서도 별 생각이 없다. 그저 맞장구 쳐 줄 뿐이다.


  하얀 얼굴에 마른 몸. 일반 남성들이 좋아할만한 외양을 가진 그녀는 그것을 이용한 게임을 즐긴다. 못 생긴 남자들에게 접근해 그들이 설레는 것을 보면서 동정하는 것. 그러면서 자신에 관한 우월감을 느낀다. 해선이 살아가는 것은 그런 것이다. 외면,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품격있는 삶. 그런 것을 가치있다고 느낀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 두려움에 숨죽이고 항상 커다랗게 뜬 눈으로 매 순간을 지켜보아야 한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뭐라도 해야만 한다. 모든 것은 살아남기 위해서다. - p. 책속에서


  남들보다 우월하고 싶은 욕망을 남들보다 훨씬 더 깊게 가지고 있는 그녀는 일반인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동까지 한다. 바로 보험금 사기. 그녀는 결혼하기 전부터 남편을 사근사근하게 대해 보험을 들도록 만든다. 그리고 눈을 찔러 실명시키고, 사람을 찔러 죽이고 집을 태우는 등의 상상을 초월한 행동을 한다. 이런 묘사로 인해 '검은 집'과 비슷한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해선은 사이코패스라고는 할 수 없다. 그저 남들보다 잘 살고싶을 뿐이다. 그를 위해 이런 행동들을 저지를 수 있는 인간일 뿐이다.


  해선은 보험금과 관련한 인물로 인해 어떤 '집단'을 알게 된다. 그 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돈'이 많이 필요하다. 맛보기를 위해 남자는 그녀를 이 곳 저 곳 보여주며 다닌다. 그러다 보게 된 투기장. 그 곳에서 그녀는 자신만의 '괴물'을 알게된다. 그녀는 죽는 개를 보며 희열을 느끼지만 또한 그것이 죄책감의 형상으로 나타난 걸지도 모르겠다. 여튼 그녀는 '개'를 자꾸 보게 된다. 하지만 그것과 행위는 별개의 것. 그녀를 보고 교영이 닮아간다. 끝부분에 검게 타버린 집을 보며 자신도 불로 이렇게 하고 싶다고 떼를 쓰는 교영을 보며 소름이 돋았다. 등 뒤의 반짝이는 칼. 이 대를 이은 모녀들의 어두운 부분은 과연 어디까지 이어질까.


  우리는 참 물질적인 것이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내가 가지고 싶어하는 것은 모두 '돈'이 있어야 가질 수 있으며, 부유할 수록 남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는다. 가지지 못한 자들은 동정을 받고 때로는 오명까지 뒤집어쓴다. '욕망함으로 더욱 아름다워진다.'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은 건 누구나 그럴 수 있지만 이 시대의 가치있는 삶이란 어쩌면 부유한 삶인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점점 더 가치란 물질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소설은 그러한 삶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추구하는 '해선'을 보여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사람답게 사는 것. 그것이 과연 어떠한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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