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천명관 지음 / 예담 / 2016년 10월
평점 :
한국 소설 :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책 좋아하는 사람 중에 천명관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2004년 제 10회 문학동네소설상에 당선되었던 '고래'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수 많은 호평을 낳았던 바로 그 '고래'를 쓴 천명관. 그가 '나의 삼촌 브루스 리' 이후 4년만에 다시 장편소설을 내놓았다. 제목은 바로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조직은 종식처럼 쓸 만한 행동대장들을 적당한 거리에 두고 관리하며 필요할 때마다 이용해왔다. 돈만 주면 언제든 각목을 들고 달려올 비정규직 건달들이 뒷골목에 넘쳐났다. 바야흐로 건달들도 청년실업의 위기를 겪는 중이었다. - p. 10
책은 바로 건달들의 이야기. 허세 가득한 표지에서 느껴지듯, '인천 뒷골목의 노회한 조폭 두목을 중심으로 인생의 한방을 찾아 헤매는 사내들의 지질하면서도 우스꽝스런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몇 개의 세력이 나오고 거기에 이야기가 생기고 또 다른 이야기가 생기고 이야기들이 얽히고 끝내는 모두가 바둥바둥거리며 인생 대박을 자신이 먹으려고 애를 쓴다.
언제부턴가 회사는 더는 정식직원을 채용하지 않았다. 사대보험 들어주고 보너스까지 줘가며 노조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부는 그것을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라고 불렀다. 노동시장이 유연해질수록 인력시장으로 내몰리는 노동자들의 숫자는 늘어났고 승합차는 점점 더 많이 필요해졌다. - p. 71
모두 욕망에 충실하지만 한심한 것이 어딘지 모르게 안쓰러운 느낌까지 드는 등장인물들. 건달들도 살아가기 어려운 시기. 서로가 서로의 뒷통수를 치며 빈털터리가 되어가던 그들. 왕년에 주름잡던 가오가 있어 이대로는 안되겠다 생각하고 그들은 어리숙한 삼대리와 울트라가 저지른 실수를 기회로 여겨 덤벼든다. 20억 다이아몬드와 35억의 종마! 이 모든 것을 손에 쥐는 이들은 누구일까. 인천의 양회장과 아랫지방 손회장. 장다리 등 여러 인물들이 나오며 이 놈이 먹겠다 싶으면 저 놈이 나오고, 또 저 놈이 먹겠다 싶으면 다른 놈이 나오며 웃음을 자아낸다.
한 대 맞으면 두 대 때리고 손해를 입으면 상대의 손가락을 다르는 게 그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피해가 발생하면 서로 합의금을 주고받는 정당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 p. 172
본인들은 진지하지만 독자에겐 허세고 웃긴 놈들일 뿐. 인물들이 많이 나오지만 각각 개성이 너무나 뚜렷하고 이름이 아니라 별명으로 나오기에 구분에 전혀 무리가 없다. 신화급 무용담을 내보이기도 하고 그 신화 속 주인공을 소위 '끕'도 안되는 조직원이 줘패기도 하며 이야기는 굴러간다. 각각 옹졸한 야심을 내보이며 입으로는 협력과 분배를, 머릿속으로는 본인만의 이득을 계산하지만 허술한 건달들. 그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보여주다가 중후반부에 야금야금 서로 이어지며 결국 모두가 마주친다. 책은 피비린내 나는 묘사를 하지만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들로 인해 시종일관 가벼운 분위기를 보여준다.
작가 본인이 여기저기 들은 이야기를 짜맞춰 이야기를 내보였기에 이야기꾼 모두에게 감사하다는 작가 후기에서도 볼 수 있듯, 천명관 작가는 떠도는 이야기를 모아 다시 재미지게 써서 내놓았다. 제목 또한 정말 허세 가득한 것이 한바탕 신나게 웃고 즐기라는 의도가 명확하다! 거슬리는 조폭미화도 없는 이 소설. 덕분에 신나게 낄낄 웃으며 볼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