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 ㅣ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20년 4월
평점 :

하지만 이때 뭐라 말할 수 없는 두근거림을 느꼈다. 나는 사랍 탐정으로서는 아직 경력이 짧지만 월급쟁이 시절에 몇 번 사건에 휘말린 경험이 있다. 그 과정에서 사람이 야위거나 생기를 잃는 모습을 보아 왔다. 그런 체험들로 인해 생긴 센서가, 사사 도모키의 모습에서 '뭔가'를 감지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p. 46
흔히 미미여사로 불리며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작가죠. 독특한 시각으로 흔히 볼 수 없는 미스터리 '나는 지갑이다' 등 다양한 작품을 접하고, 그 중에서도 특히 대표작인 '모방범'과 '화차'를 읽은 후로 저에게도 챙겨봐도 좋을 작가로 랭크된 미야베 미유키 작가. 특히나 작가 본인의 나라에서 매년 조사하는 '가장 좋아하는 작가'에서는 7년째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 중에서도 시리즈로 나오고 있는 행복한 탐정 시리즈는 이제 5권을 달리고 있는데요. 전 작인 '누군가', '이름 없는 독',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 '희망장'에 이은 이번 작품의 제목은 '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 입니다.
시리즈인줄은 몰라도 '누군가'와 '이름 없는 독' 같은 경우에는 꽤 알려져 있는 저서이기도 하죠. 저는 시리즈 탐정물은 즐겨 읽지 않아서 다른 작가는 물론이거니와 미야베 미유키의 탐정시리즈도 굳이 챙겨보지 않았거든요. 저와 같은 사람은 시리즈 1권부터 챙겨 읽기도 너무 많아 선뜻 손이 안 갈 수도 있잖아요. 이런 분들은 책 맨 끝의 편집자 후기부터 봐도 좋을 것 같더군요. 전 시리즈의 스포는 최대한 배제한 뒤 탐정 스기무라 사부로가 어떤 과거를 가지고 현재 탐정 사무소를 차렸는지에 대해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으니까요. 저는 책을 읽을 때 서문, 작품을 읽고 저자나 편집자의 후기를 읽는, 말하자면 맨 처음부터 차례대로 보는 타입이어서 작품 내에서 유추한 스기무라 사부로의 이력을 후기에서 좀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었는데, 굳이 시리즈 탐정 사부로에 대해 궁금하다기보다 작품의 사건 위주로 읽는 분들은 바로 작품부터 읽어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 같기도 했구요.

그래도 사사 도모키가 지난 한 달 동안 주위를 놀라게 할 정도로 야위었다는 사실은 좋은 재료이기도 하다. 그것은 그가 은폐해야 할 만한 일에 대해서 어떤 책임감이나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증거니까. -p. 85
워낙 표제작 제목이 인상깊어서 그런지 당연히 단권인 장편소설이겠거니 했는데 탐정 사부로가 해결한 3 개의 사건이 수록되어 있던 미야베 미유키의 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 사부로를 주인공으로 여기고 이 탐정이 성장하는 측면을 중점적으로 본다면 한 권으로 봐도 크게 다르진 않겠지만 이 작품으로 스기무라 사부로를 처름 알게된 저같은 경우에는 옴니버스식 단편모음집 같은 느낌이었어요. 3개의 사건은 시간 순서대로 수록되어 있었고, 그 다음 사건에서 잠깐 회상하는 식으로 지난 사건이 잠깐 언급되기는 하지만 세 사건은 사부로가 해결한다는 면 외에는 크게 연관성이 없기도 합니다.
그 중 가장 처음에 수록된 '절대 영도'라는 작품은 이 작품들 중 가장 끔찍한 사건이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가장 인상에 남구요. 자살소동을 일으킨 딸과 연락이 안 되고, 사위는 딸은 보여주지 않으며 장모님 때문에 아내가 자살소동을 일으킨거라고 비난해 딸이 걱정된 여인의 의뢰로 파헤치게 된 사건인데요. 별 것 아닌 가정사 문제인 줄 알았던 사건에 의문이 들어 의뢰인의 의뢰를 해결했음에도 독자적으로 좀 더 깊게 파고들어 결국 알아내고 만 진상은 정말 인상 찌푸려지는 전말을 보여줬습니다. 피해자를 피해자로 볼 수 없게 만들고, 가해자를 안타깝게 보게 만든 이 작품의 끝에 사부로는 한 형사와 안면을 트게 되는데요. 이 형사와는 앞으로 나올 행복한 탐정 시리즈 6에서 좀 더 가깝게 얽히게 되지 않을까 싶더라구요.

누구의 말이었을까. 나는 떠올렸다. 사람은 모두가 혼자서 배를 저어 시간의 강을 나아가고 있다. 따라서 미래는 항상 등 뒤에 있고 보이는 것은 과거뿐이다. 강가의 풍경은 멀어지면 자연히 시야에서 사라져 간다. 그래도 사라지지 않는 것은, 눈에 보이는 무언가가 아니라 마음에 새겨져 있는 무언가라고. -p. 301
첫 번째 사건이 꽤 끔찍해서 그런지 두 번째 의뢰는 좀 더 가벼운 내용이어서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가정사와 얽혀 가고싶지 않아 했던 조카의 결혼식에 가고싶어하는 딸 덕분에 고용되어 결혼식에 참석하게 된 사부로는 역시나 사건을 마주하게 되는 거죠. 어째서 이 엄마가 가족과 연을 끊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딸이 그 연을 끊은 가족의 일원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천천히 풀어냅니다. 그러면서 이 결혼식 뿐 아니라 동시간대 다른 결혼식의 소동과도 맞물리며 결혼식 사건의 전말과 그 의도까지 알 수 있게 되죠. 이 작품의 제목은 '화촉'이었지만, 이 사건에서도 '어제'의 매듭이 제대로 지어지지 않는다면 '내일'로 나아가기 어렵다는 점을 제대로 느끼게 되어 표제작 제목을 또 한 번 떠올리게 되었네요.

아무리 괴로운 과거라도 그건 당신의 역사예요. 어제의 당신이 있기 때문에 지금의 당신이 있고, 당신의 내일이 있는 거예요.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행복한 미래로 가는 길은 열리지 않아요. - p. 461
그리고 마지막 사건 의뢰이자 의외로 가장 읽히지 않던 작품이 표제작인 '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 였어요. 작품이 형편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제가 가장 싫어하는 타입이 의뢰인으로 나와서 수월하게 책장이 넘어가지 않더군요. 의뢰를 한 여성은 탐정 스기무라 사부로가 신세지고 있는 집의 딸이 다니고 있는 학교 동급생의 엄마였어요. 워낙 잦은 거짓말 등의 기행으로 주변에도 소문이 나 싫어하는 사람이 많은 작자인데, 막무가내로 의뢰를 맡길 것 같다며 신세지고 있는 집안의 사람들이 미리 걱정을 해줘 마음의 각오를 해뒀음에도 진상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던 성품을 가지고 있었죠. 그렇기 때문에 씁쓸한 결말을 맞이한 게 필연이 아니었나 싶기도 했구요. "저를 몰아세우는 '어제'는 전부 (스포생략)가 저지른 일이예요. 저는 한 번도 제 어제를 선택할 수 없었는데."라는 대사가 참 유독 눈에 밟히고 한숨이 나오더군요. 전말을 알게 되었음에도 전혀 상쾌하지 않은 마무리에 이 사건은 사부로에게 또 어떤 밑거름이 되어줄까 싶기도 했습니다.
전체적으로 또 재미있게 본 점이 있는데, 사부로가 세 사건을 각 장에서 해결하는 도중 다른 소소한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이 묘사되기도 했거든요. 보통 이런 사건들은 크게 보면 유기적으로 모두 연결되어 끝에는 전율을 주는 경우가 많았기에 그냥 넘기지 않고 눈여겨봤었는데.. 물론 소소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도 있었지만, 그냥 해결한 사건을 언급하며 사부로가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주거나, 마지막에 한번 더 그 사건의 의뢰인에게 연락이 와 언급 되는 등 사건 자체만 보면 비슷한 카테고리 안에 있다고 볼 수 있긴 하지만 큰 줄기의 사건과는 긴밀하게 연결되지 않고 넘어가는 게 잘 짜여진 '작품'이 아니라 진짜 존재하고 있는 한 탐정의 일상을 엿보는 것 같아 재미있더라구요. 탐정으로서 경험치가 쌓여간다는 느낌도 들었구요.
월등한 지략이나 눈에 띄는 행동력 등을 갖추지 않은 탐정 스기무라 사부로의 장점은 호기심과 사람에 대한 따스함, 예의 같은 것들이 아닐까 싶었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아직 명성이 높지 않아 일상의 소소한 사건을 주로 맡는 사부로가 한 형사와 안면을 트고, 그 사람에게 자신의 사건해결하는 모습을 일부 보여주기도 하는 전개를 보아하니 이제 좀 더 사부로가 강력한 사건을 맡게 되는 발판이 되는 권이 아닐까 싶던 미야베 미유키의 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 전 시리즈를 봐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던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