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타워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세상에서 가장 슬픈 풍경은 비에 젖은 도쿄타워다. - p. 9


세간에서 말하는 정상적인 남녀관계에 대해 거의 이야기 하지 않는 에쿠니 가오리. 리커버 된 도쿄 타워를 읽어보게 되었네요. 섬세한 심리묘사와 세련된 문체로 많이 알려져있는 작가라는데 어릴 때 처음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고는 뭐야 불륜이네, 하고 말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에도 읽고나서 흠 결국 불륜이군, 싶었지만 질척인다기보다 감성적인 느낌이 나는데다가 확실히 문체가 묘해서 왜 매니아층이 생겼는지는 알겠더라구요.


오후 4시, 이제 곧 시후미한테서 전화가 걸려온다. 토오루는 생각한다. 언제부터였을까. 언제부터 나는 그 사람의 전화를 이렇듯 기다리게 되었을까. - p. 10


이번 이야기는 도쿄에 사는 남자아이 둘을 번갈아 보여주며 진행됩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로 넘어가는 그 아슬아슬한 시기의 토오루와 코우지. 둘은 각각 연상의 여인에게 빠져들죠. 그것도 토오루는 어머니의 친구를, 코우지는 친구의 어머니를요. 이렇게 보면 굉장히 불쾌하고 불편하고 질색하게 되는 설정인데요. 덕분에 초반에는 찡그리게 되는데 역시나 책 속 이야기이기도 하고 워낙 질척인다기보다는 담담하고 감성적으로 풀어내놓다보니 끝까지 읽게 되는 이상한 매력이 있어요. 물론 마지막이 어떻게 끝날지 궁금한 게 가장 크긴 했지만요.


"사람과 사람은 말야, 공기로 인해 서로 끌리는 것 같아." 언젠가 시후미가 그렇게 말했다. "성격이나 외모에 앞서 우선 공기가 있어. 그 사람이 주변에 발하는 공기. 나는 그런 동물적인 것을 믿어." - p. 38


시후미라는 한 사람만을 바라보는 토오루와 친구의 엄마 아츠코와는 진작에 끝내고 다른 여자친구인 유리, 그리고 키미코라는 연상의 애인을 동시에 만나는 코우지는 불륜이라는 같은 카테고리 안에서도 다른 양상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여러 여자를 동시에 만나기에 충실하지 못해 키미코를 외롭게 하는 코우지와 시후미가 말한 한 시간을 위해 전화를 기다리는 토오루를 교차하며 보는 재미가 있어요. 둘 다 좋을 때 조차 행복과 불행이 구별되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는 불륜 처지라는 것도 냉정하게 바라보게 되지만요.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라, 빠져드는 거야. 토오루는 그것을, 시후미에게 배웠다. 일단 빠져들고 나면, 다시 나오기가 어렵다는 것도. - p. 57


'갑자기 혼자가 되는 것'이 이러한 불완전한 사랑의 가장 단점이라고 할 수 있죠. 남을 불행하게 만드는 건 언급할 필요도 없구요. 희망과 행복이라고는 결코 보이지 않는 이야기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건 이런 현실이 실제로 세상에 존재하긴 한다는 것과, 또 질척이지 않고 심지어 싸울 때조차도 담담한 문체 덕분이 아닌가 싶네요. 어느 상황에 있냐에 따라 감정의 굴곡이 변하는 것을 도쿄 타워의 분위기를 달리 묘사하는 부분으로 표현한 것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포인트였습니다. 책 뒷쪽 책날개에는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들이 쭉 적혀있었는데요. 기회가 된다면 하나씩 찾아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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