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 (일반판)
반디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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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북한 소설 : 고발


  정말 놀라운 소설을 읽게 되었다. 북한에서 쓰인 소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반체제 작가 솔제니친에 비견되는 저항작가인 반디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반출시킨 소설 '고발'. 제목부터 굉장히 저항 의식이 느껴졌다. 처음 이 책을 알게 되었을 때는 탈북자가 쓴 소설이겠구나 생각했었는데 작가가 이 소설을 반출시키고 아직도 북한에 있다는 것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이 소설은 정말 북한 사상의 문제점과 연좌제로 인한 북한 사람들의 일상을 낱낱이 고발하며 세상을 향해 이 일상을 알아봐주오, 하고 부르짖고 있는 책이었다.


글쎄 이 '리히철'이가 오늘의 '상놈' 성분을 타게 된 이유라는 것이 뭐였겠나. 그것은 고작해야 아버지가 한 파장의 랭상모를 죽여버렸다는 게 전부였다네. - p. 15 '탈북기'


  저자의 최초 원고를 충실하게 살리기 위해 북한식 표기는 최소한으로 수정하였다는 소설에는 2부 대기실, 1호 행사, 가정성분, 적대군중, 내각 결정 149호, 반당 반혁명 종파분장, 생활제대, 어망처망스럽다, 게거리, 탕개 등 낯선 단어가 가득하다. 이 단어들을 최대한 배제하지 않고 주석을 달아 문학적 가치에 초점을 맞춘 이 책은 7가지의 단편 소설을 담고 있다.

 

그래. 나 역시 지척도 천리 밖으로 살아야 하는 조롱 속의 짐승인가보다! 조롱 속의 짐승! - p. 144 '지척만리'


  이름을 숨기고 목숨을 걸고 남한으로 원고를 반출시킨 이 소설은 전 세계 20개국에 번역출간되었으며 영국 PEN 번역상을 수상하기도 했다고 한다. 심지어 2017년 3월 말에는 출판 기념 국제 컨퍼런스도 개최된다고. 저항정신을 한껏 실려 출간된 이 책은 이미 남한에는 2014년에 출간되었으나 전세계 동시 출간에 맞춰 새롭게 재출간되어 나도 이 책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 동산 사람들의 입에서는 어디가 아프거나 슬퍼서 엉엉 울어도 그것이 하하호호 하는 웃음소리만 되어 나왔으니 세상에 그처럼 악한 마술이 어디 있고 그처럼 무시무시한 동산이 또 어디 있겠수. - pp. 178-179 '복마전'


  탈북자들이 북한에 대한 실상을 고발하는 작품은 종종 있었지만 북한에서 반출시킨 소설은 분단 이후 처음이었다고 하니 그의 이러한 행보가 얼마나 목숨을 걸고 한 일인지 상상이 된다. 북한 주민들의 일상은 가끔 상상해보긴 했으나 생각보다 더 폭력과 억압,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어 마음 한구석이 선뜩했다. 단편 소설들로 짤막하게 토막낸 일상들이니 실제로는 얼마나 더 가혹하단 이야기일까. 누구 한 사람 믿을 수 없어 말을 삼가고, 마음을 숨기고, 그럼에도 한 순간의 실수로 인해 '사상범'으로 몰려 대대손손 연좌제로 '가정 성분'에 낙인이 찍혀 영영 출세는 커녕 생존이 위협받는 숨이 턱 막히는 진실들.


이런 쓰레기나 가지고 물어들이고 받아들이며 사람들을 억압, 통제하려 드는 자들이 말입니다. 진실한 생활이란 자유로운 곳에만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억압, 통제하는 곳일수록 연극이 많아지기 마련이구요. 얼마나 처참해요. 지금 저 조의장에선 벌써 석 달째나 배급을 못 타고 굶주리는 사람들이 애도의 눈물을 흘리고 있어요. 꽃을 꺾으려고 헤매다 독사에게 물려 죽은 어린아이의 어머니가 애도의 눈물을 흘리고 있단 말입니다. 그래 그들의 눈물이 진실이란 말입니까. 예? 백성들을 이렇게 지어낸 눈물까지 흘릴 줄 아는 명배우로 만들어버린 이 현실이 무섭지도 않은가 말입니다. - p. 209 '무대'


  피임약을 먹는 아내를 의심하다가 밝혀진 진상에 절망해 떠나기로 결심하는 '탈북기', 마르크스와 김일성 초상화만 보면 이상하게 경기를 일으키는 아이와 그로 인해 덧커튼을 달아 추방당하는 '유령의 도시', 해방 후 첫 공산당원이 공산주의에 실망하고 아끼던 느티나무와 스스로를 죽이는 '준마의 일생', 1호 행사로 인해 2부에서 여행증을 받지 못해 몰래 어머니에게 가다가 발각돼 험한 꼴을 당하고 임종을 지키지 못해 좌절하는 '지척만리', 김일성이 여행을 간다 하여 기차와 도로 모두 통제되어 굳게 마음 먹고 역에서 굶고 기다리다가 산달이 머지 않은 이를 보다 못해 길을 나선 할머니가 그렇게 일을 만든 원흉인 김일성이 선심쓰듯 태워준 일로 인해 선전자료로 이용되는 일에 기막혀하고 수치스러워하는 '복마전', 김일성 죽음 전후의 국민들의 애도의 눈물을 연극에 빗대어 세뇌하는 체제를 비판하는 '무대', 체제에 대한 혁명을 이야기하고 있는 '빨간 버섯'까지. 7편의 이야기는 읽는 내내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무서운 일은 이 나라가 아직도 같은 체제 안에서 굴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백 번을 쏘아도 죽이지 못할 겁니다. 인간다운 세상에서 살아보고 싶은 저의 욕망만은! - p. 210 '무대'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것을. 같은 시대 속 이렇게나 다른 세상이 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러한 현실에 저항하고 목숨을 걸고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도 있고, 체제에 길들여져 같은 동포를 감시하고 고발하는 이들 또한 함께한다. 1994년 김일성 사망 시점에 많은 사람을 잃고 저자 반디는 지금껏 느낀 북한 사회에 대해 책을 통해서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러한 책의 제목이 '고발'이라는 것도, 실제 담긴 사연들이 무엇 하나 아프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도 가슴이 쓰리다. 많이 읽혀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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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때 천사였다
카린 지에벨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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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소설 : 그는 한때 천사였다

  ​'빅 마운트 스캔들', '그림자', '너는 모른다', '마리오네트의 고백' 등을 발표해 이미 알고있는 작가 '카린 지에벨'의 신작이 나왔다. '그는 한때 천사였다'라는 소설로 스릴러이자 범죄소설이지만 이 책에는 형사나 탐정이 등장하지 않으며 두 주요 인물 또한 기존의 주인공과는 많이 다르다.

나는 곧 죽으리라.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생이니 1분 1초를 제대로 음미하며 보내는 거야.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해. 생에서 맛볼 수 있는 기쁨을 죽음에게 양보할 필요는 없어. - p. 131​


  비즈니스 전문 변호사인 프랑수아 다뱅과 히치하이커로 시작해 서서히 정체가 밝혀지는 폴. 두 사람이 소설의 주인공이며 서로 다른 목적으로 함께 여행을 시작하면서 서로 얽히게 된다. 프랑수아 다뱅은 가난하게 태어나지만 자신의 능력으로 비즈니스 전문 변호인이 되어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인정을 받으며 살던 인물이다. 돈에 있어 부족함을 느껴본 적이 없지만 또한 그 돈을 쓸 시간이 없는 실력자로 아름다운 아내, 집과 차 등 겉으로 보면 남부러울 것이 없는 인물상. 그런 그가 어느날 고통을 호소하고, 또 뇌종양으로 인한 불치병 진단을 받게된다. 사람이 갑자기 죽게된다는 것을 알면 어떤 행동방식을 보일지는 많은 갈래가 있겠지만 프랑수아 다뱅은 주변 사람으로부터 동정을 받고싶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추스릴 시간이 필요해 가출 아닌 가출을 하게 된다. 아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그저 무작정 달리며 현실 도피를 하던 그는 충동적인 결정으로 히치하이킹을 하고 있던 젊은 남자 폴과 동행하게 된다.


불과 죽음을 몇 달 앞두고 몸과 마음이 함께 젊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죽을 날이 임박해오고 있는데 마음이 그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고 한껏 자유로울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죽음이 우리에게 족쇄를 채운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삶이 인간을 구속하는 건 아닐까? 우리를 구속하는 존재는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 아닐까? 스스로 울타리를 높게 둘러치고 의무와 책임, 도덕과 관습의 틀에 자기 자신을 옴짝달싹 못하게 옭아매는 건 아닐까?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타인의 눈길을 두려워하며 스스로 감옥을 짓고 있는 건 아닐까? 사람들은 살아가는 동안 감옥의 창살을 하나씩 더 늘려가며 안심한다. 만약 감옥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과감하게 밖으로 나서기보다는 그 안에 남아 서서히 죽어가는 쪽을 택한다. 프랑수아는 평생 늘려온 감옥의 창살을 톱질해 끊어내고, 벽을 부수기로 결심했다. 스스로 감옥을 만들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너무 뒤늦게 깨달은 게 유감이다. 사람은 죽음이 임박해서야 정신이 명료해지는 게 분명하다. - pp. 132-133


  최고의 능력을 가진 변호사지만 죽음으로부터 피할 수 없는 삶이라니. 그렇기에 프랑수아는 지금까지의 삶에 대해 허망함을 느끼고 좌절하게 된다. 삶을 정리하기 위한 여행에서 작은 기쁨을 주는 폴은 프랑수아의 가치관을 완전히 바꿔놓게 되는 인물. 폴은 여러 삶의 밑바닥을 전전한 자로 각종 범죄에 연루되고 또 경찰과 조직으로부터 추격을 받고 있는 입장이었지만 프랑수아는 자신과 전혀 다른 폴에게 호감을 갖게되고, 그로 인해 그의 정체를 알게 되었음에도 그를 아들처럼 여기며 깊게 얽히게 된다.


어차피 뒤죽박죽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인생이지만 유일한 표지판을 잃어서는 안 된다. 프랑수아는 벌써 여러 날 전부터 죽어야 할 이유를 찾고 있다. 이제야 그 이유를 찾았다. 그 이유가 지금 바로 눈 앞에 있다. - p. 348


  폴이 항상 메고다니는 백팩에 쫓기는 정체가 들어있고, 또 그의 불우한 어린시절이 드러나며 프랑수아는 그를 경멸하는 한편 그럼에도 그를 살리고싶은 호감을 동시에 느끼며 고민하게 된다. 그로 인해 목숨까지 위협받고, 그의 주변인들 또한 위험해지지만 삶의 마지막에 자신만을 위한 일을 하고 싶은 프랑수아는 결국 폴을 도와주기 위해 움직인다. 결국 폴의 일은 유독성 폐기물의 국제적 밀거래와 연관성이 있음을 알게되고, 그로 인해 자신들을 위협하는 세력들에게 쫓기며 사건의 절정으로 치닫는다.


  유럽의 국가들이 아프리카에 유독성 폐기물을 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취재하던 여기자가 살해당했다. 이건 1994년 3월 10일에 이탈리아 여기자 일라리아 알피에게 일어난 실제 사건이다. 이 사건을 기사로 접한 카린 지에벨은 소설을 구상하게 되고, '그는 한때 천사였다'라는 소설이 탄생한다. 그녀가 살해당함으로 인해 부도덕적인 사실들은 모두 은폐되었지만 이 짧은 사실만으로도 이와 연루된 여러 거대 조직들이 있음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음이다.


  그리하여 이 사건과, 그 살해에 관련된 인물, 그리고 휘말린 인물 등은 그녀의 전작들과는 다른 양상을 띄며 전개가 된다. 프랑수아는 이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 또한 어쩌면 이 건에 연루되어 있는 법조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폴 또한 불우한 성장 배경 탓에 이 사건과 연루된다.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사람들은 과연 죄가 있는가, 그들의 불행을 유도한 조직들은 죄가 없는가. 그리고 그 사건을 알면서도 모른체한 수많은 관련자들은 과연 어떠한가. 현실을 극복할 수 없는 사람들은 삶과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지만 그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죄를 끼친다. 카린 지에벨은 이러한 현상을 사회 시스템과 결부시켜 비판하고 있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는 또다른 피해자가 되어 뒤집고 뒤집힌다. 그런 이야기를 하며 작가는 기존 작처럼 사건을 파헤치거나 체포, 단죄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저 일련의 사건이 끝나고 나서 또 다시 시작되는 굴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탄도 원래는 천사였다며 다시금 천사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끝맺는다. 소설 속에서는 관련 성경구절들도 많이 보여주고 있는데, 그 구절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미 아는지 모르겠는데 사탄도 원래는 천사였어. 다시 그렇게 될 거야. 나는 예언자다. 죽음과 파괴를 예고하는 예언자. 나는 사탄의 손일 뿐 다른 무엇도 아니다. 하지만 인생의 지옥을 통과하고 나면 나는 다시금 예전의 어린 아이로 되돌아갈 것이다. 나는 다시금 천사가 될 것이다.- p. 392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 호감을 갖게 되는 계기가 억지스럽지 않아 자연스럽게 읽혀 좋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위험하고 자신 주변 사람까지 위협할 수 있는 폴을 외면하는 것이 당연할텐데 주변사람이라고는 남지 않은 죽음을 앞둔 능력있는 폴이 그에게 아들과 같은 정을 느끼게 되고 서로를 믿을 수 있는 파트너로 여기게 되는 과정이 물흐르듯 자연스러웠다. 몇 가지 억지스러운 측면도 죽음을 앞둔 사람의 심리상태를 설명하며 자연스럽게 풀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 부도덕한 행위를 저지르는 과정도 마냥 부도덕하다고 비난할 수 없게 만들어 흥미롭다. 그들의 여행의 마지막까지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게 만들던 재미있는 스릴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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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서자들 3 - 신의 책, 악마의 책, 읽을 수 없는 책
마린 카르테롱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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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프랑스 소설 : 분서자들 3

 


  마린 카르테롱의 데뷔 소설이라고 하는 분서자들 3부작 중 마지막 권 '분서자들 3 신의 책, 악마의 책, 읽을 수 없는 책'. 첫 권에서 분서자들과 결사단들에 대해 설명해주고, 단서들을 던져주고 주인공들이 어떤 성격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주로 다루고, 가운데 권에서는 예배당 사건 이후에 가지게 된 전자발찌라는 물리적 한계가 있는 채로 어떤 단서를 발견하고 추적해나가는지, 그리고 분서자들의 음모가 어떤 것인지 파헤치는 전개에 주력하고 있다면 마지막 이 책에서는 앞서 나왔던 복선들을 차근차근 정리하고 그동안 궁금해왔던 것들이 풀리며 결투의 마무리를 향해 흘러간다.


나는 준비되어 있다고 느끼는 것과 준비가 된 것은 엄연한 차이가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처음으로 어른들의 신중한 태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 p. 39


  모든 책이 한 줌의 재로 변하게 만드는 유전자 변형 곤충을 이용한  '이집트의 재앙 XI'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난 뒤, 결사단은 비밀리에 근거지를 옮긴다. 그러던 와중에 미국대통령이 목숨을 잃고 결사단이 배후로 지목되는데... 그렇게 결사단은 모함에 빠지고 분서자들의 계략과 오명을 파헤치기 위해 훈련을 거듭한다.


  그리고 이번 마지막 권에서는 한 권에만 나온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나온다. '네네'와는 또 다른 차원의 컴퓨터와 숫자 천재인 '라마'와 이란 출신이고 스카프를 쓰고다니며 '네네'와 얽혀 묘한 기류를 보이는 '세라자데', '오귀스트'가 좋아하는 이상형과는 차이가 있으나 묘하게 이끌리는 매력의 소유자 '이네스' 등의 다른 결사단 인물들이 나오는데 좀 더 전개가 이어졌거나 혹은 2권부터 등장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될 정도로 '오귀스트'와 그 삼총사보다 매력이 넘쳤다.


  특히 '사라'와 작별을 한 '세자린'은 이제 '라마'와 새 친구가 되는데 둘의 대화가 참 흥미로웠다. 다른 이들이 '라마'가 하는 말을 '세자린'이 하는 말과 다른 방식으로 알아듣지 못하는 것도 재미있었고, '다른 점'을 '보통'의 시각에서 봤기 때문이라고 하는 라마와 세자린의 첫 만남도 고구마 먹은 듯 답답한 계략이 펼쳐지는 전개에서 청량한 느낌을 줬다.


결사단의 거대한 추적자 그룹이 전 세계에 조직되어 있었는데 책들이 파괴되면서부터 그들과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 디아도코이들은 그중 분서자들에게 붙잡힌 누군가가 레돈다 섬에 대해 발설했을까봐 걱정하고 있다. - p. 64


  분서자들의 첩자가 있음을 걱정하며 작전을 펼치는 도중 세자린은 2권에서 가져온 수첩 두 권을 분석하는데 힘쏟는다. 라마와 협력하여 해석해나가는 중 '이네스'가 이 언어에 능통함을 깨닫고 전략을 펼쳐 그녀를 끼워넣는다. 그리고 서서히 수첩의 내용에 대해 알게되고, 그 수첩을 찾아온 이네스의 보충 설명도 들으며 그들은 '읽을 수 없는 책'에 대해 서서히 알게 된다.


여기까지 이르기 위해 우리가 달려온 길, 역사에 기록된 수많은 증거들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우리가 발견한 '책'. 아니 이 방주는 실재였다. 이건 과거에서 온 미래의 메시지였다. 결사단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한 인간이 24세기 전에 만든 것이었고, 방주는 결사단이 예연하는 세상의 미래를 막으라고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었다. - p. 332


  '읽을 수 없는 책'은 마치 판도라의 상자로, 진실을 들을 준비가 되지 않은 이들에게 많은 충격을 준다. '읽을 수 없는 책'은 '읽을' 수 없지만 '볼 수 있는 책'으로 그들은 미래에서 온 메세지와 맞닥드린다. 서서히 마르스 집안과 BG의 집안에 얽힌 갈등도 진실이 드러나고 그들은 분서자들의 계획을 막고 미래를 위해 진실을 수호하려고 애쓴다.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추적자가 되었다. 세상의 모든 나라에서, 지방에서, 마을에서, 가정에서, 다락방에서, 서랍에서 책이 나왔고 책들이 지방 도서관에 기증되면서 사라졌던 문화유산이 차츰 복원되기 시작했다. - p. 379


  의미심장한 오귀스트의 질문으로 책은 끝난다. 미래에서 안배된 결사단은 왜곡된 정보를 돌리고 편견을 되돌리며 예견된 미래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노력했고, 성공했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이 조지 오웰의 유명한 문장을 인용해 분서자들을 지목하면서, 책은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말해주며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몇몇 사람이 대신하여 쓰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역사는 우리 모두가 함께 기록하는 것이다.(p. 380) 라 말하고 있다. 책이 얼마나 중요한 매체이자 보고인지, 그리고 역사를 바꾸려는 사람에 의해 얼마나 책들이 파괴되어왔는지, 이런 점들을 미래에서 전한 메세지라는 소재와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결부시켜 써낸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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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서자들 2 - 불을 쫓는 아이들
마린 카르테롱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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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소설 : 분서자들 2


 

  마린 카르테롱의 데뷔 소설이라고 하는 분서자들 3부작 중 두 번째 권 '분서자들 2 불을 쫓는 아이들'. 첫 권에서 분서자들과 결사단들에 대해 설명해주고, 단서들을 던져주고 주인공들이 어떤 성격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주로 다뤘다면, 이번 가운데 권에서는 예배당 사건 이후에 가지게 된 전자발찌라는 물리적 한계가 있는 채로 어떤 단서를 발견하고 추적해나가는지, 그리고 분서자들의 음모가 어떤 것인지 파헤치는 전개에 주력하고 있다.


분서자들의 목적은 인류에게 특정한 사고방식, 즉 그들이 생각하는 바를 따르게 하는 것 - p. 32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 p. 33


  이번 권에서도 마찬가지로 오빠인 오귀스트 마르스와 여동생인 세자린 마르스의 두 시점이 교차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오귀스트가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알게 되는 정보들과 전자발찌로 인해 엄마의 병원에 세자린만 가게 되면서 알게되는 병원 쪽의 정보들이 합쳐지지 않은 채 각자의 노선을 따라 교차 전개 된다.


  오귀스트는 분서자들의 음모의 중심에 직접 잠입하기로 결정하고 수호자, 추적자, 전파자인 삼총사의 나머지 '네네'와 '바르톨로메'와 함께 작전을 펼지기로 결정한다. 그러는 와중에 천재 자폐소녀 세자린 또한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지 않고, 논리적으로 자신을 설득시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놔두고 자신 혼자 알아내기로 마음먹는다. 그렇게 다운증후군이 있는 사라의 도움을 받아 그녀를 무시하는 사람들의 발상을 역이용하는 등 손무의 '손자병법'에 나오는 여러 전략들을 사용해 적의 헛점을 파고든다.


  이번 권에서도 여전히 행동중심적이어서 많은 사건사고를 치는 오귀스트보다는 자페소녀 세자린과 그녀의 친구이자 감정을 일깨워주는 다운증후군 사라의 이야기가 훨씬 매력적이었다. 논리있는 사고, 누구보다도 빠르게 진실에 접근해가는 도출방식. 다만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이기에 비유를 이해하지 못해 일반 사람들과 제대로 소통하기가 어려워 그 사실을 혼자만 알고 제대로 주위에 전달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적절하게 단서를 제공해 전개에 많은 도움을 주던 세자린. 그녀는 사라의 도움으로 엄마를 '만질 수 있게' 되고 감정을 느낄줄 아는 사람임을 스스로 깨닫게 되는데, 그 과정이 참 감동적이었다.


  이미 드러나 있던 분서자들 뿐만 아니라 거물들도 등장하고, '굿북스 프로젝트'와 '이집트의 재앙 XI' 프로젝트'라는 유전자변형 곤충을 이용한 수상한 움직임도 드러나며 충격적인 장면을 보게된 결사단들. 그렇게 '준비가 된' 오귀스트에게 세자린은 드디어 죽은 아빠의 여러 단서들을 넘긴다.


청소년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과의 협상이라는 것은 거의 비슷비슷하다. 결국 자유를 위한 투쟁이다. - p. 47


  드디어 합쳐진 세자린의 정보와 오귀스트의 정보. 1에서 22까지는 절대 읽지 않는 세자린을 염두에 두고 앞에 오귀스트에게만 남기는 편지를 쓴 아빠. 오귀스트는 아빠 또한 자신과 마찬가지로 결사단에 대해 고민하고 거부하던 시절이 있었음을 알아채고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세자린만 알고 있던 수호자의 일지와 노트북 안에 든 파일을 드디어 결사단 멤버들이 알게되고, 분서자들이 어디까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알아챈 후 결사단 측은 우선은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를 하기로 한다. 하지만 역시 주인공들이 아이들이기에 이는 어른들의 생각대로만 되지 않는데.. 다른 장소로 옮기기 전 오귀스트는 마지막으로 한번 더 계획을 실행하지만 발각되고 위험에 처하게 된다.


  첫 권에서는 결사단에 대해 갑자기 알게된 오귀스트에게 많은 실패와 좌절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주고 받은 '한 방'이 비슷했다. 많은 아픔이 또다시 일어나고, 결사단들은 다른 곳에 거점을 맞이한 채 이제 최종권을 앞두고 있다. 결사단과 분서자에 대해서도 알았고, 분서자들의 음모까지 밝혀진 이제, 남은 것은 프로젝트를 실행할 수 있으냐, 저지할 수 있으냐 뿐이다. 결말은 아마 예상한 대로겠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흥미진진하고, 또 매력적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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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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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에세이 :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공지영의 에세이는 수 많은 사람의 마음을 울린 베스트셀러로 유명하다. 그 중에서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이 에세이는 공지영이 실제로 고등학생이었던 자신의 딸 위녕에게 화요일마다 보냈던 편지글들을 모아 만든 에세이로, 총 24편의 글들을 모아 두고 있다. 딸에게 하고 싶은 말, 딸과의 다툼 뒤에 느낀 점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 등을 진솔하게 적어낸 이 책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자신이 살아온 경험과 느낀점, 그리고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한 감상을 공유하며 엄마는 딸에게 이야기한다. 응원한다고.


위녕. 엄마는 변화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했다. 그런데 그 힘은 뜻밖에도 엄마 자신을 비난하는 데서 오지 않았어. 비난하지 않고 과거의 어리석고 못나고 나쁘고 꼴도 보기 싫은 나 자신을 잘 대해주려고 노력하는 데서 그 힘은 왔단다. 어떻게든 그런 나 자신을 이해해주고 다독여주려는 데서 엄마는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었어. 화해와 용서를 원했지만 그건 기실, 과거에 나를 상처 입게 내버려둔 나 자신과의 화해였고, 용서를 한 건 그런 나 자신을 용서한 거란다. 이제 와서 누구와 화해하며 누구를 용서할 수 있겠니? 엄마는 죄책감 따위는 날려 보내고 반성을 택한 거야. 죄책감은 우리를 병들게 하고 반성은 우리를 변화시킬 힘을 준다. - p. 48


중요한 것은 네가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넌 스무 해를 살았니? 어쩌면 똑같은 일 년을 스무 번 산 것은 아니니? 네 스무 살이 일 년의 스무 번의 반복이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야. - p. 51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계속 그것을 전가한다고 말이야. 학대받는 며느리였던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학대하고, 딸이라고 설움당하던 어머니가 딸을 구박하고, 배고픔을 참으며 고생고생 자수성가한 사업가가 저임금으로 아이들을 착취하고. 상처가 대물림되는 이유는 그것이 치유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이야. 만일 엄마가 너희들에게 어떤 의미이든 상처를 주었다면 엄마 역시 엄마의 엄마에게 받은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되겠지. p. 136


  2008년에 출판되었던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가 해냄출판사에서 다른 표지로 새롭게 발간되어 나와 해냄출판사 서포터즈 4번째 책으로 받아 읽게 되었다. 예전의 민트색 표지로 읽었던 그 시절의 나와 지금 해냄출판사에서 다시 나온 이 분홍색 표지의 책을 읽을 때의 내가 글을 읽고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 재미있었다. 예전의 나는 위녕의 입장에서 엄마의 입장을 생각하며 읽었다면 아직 가정을 이루진 못했지만 이제는 위녕이 아닌 저자 공지영의 입장에서 글을 읽게 되더라. 공감이 가는 구절도 달랐고, 엄마도 엄마가 아니라 그저 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예전엔 나이가 들면 책이 다르게 느껴진다는 말이 와닿지 않았었는데, 확실히 살면서 사람과의 관계가 이런거구나, 하는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폭이 넓어지다보니 같은 글을 읽어도 느껴지는 것이 다르다. 예전에 느꼈던 감성도 나름대로의 강렬한 맛이 있었고, 지금도 이렇게 좀 더 다른 감성으로 읽혀지는 걸 보니 훗날의 나에게는 같은 책들이 또 어떤 감성을 주게 될지 궁금해진다. 이런 사소한 생각만으로 나는 또 행복해진다.


당신이 제게 했던 말처럼 사랑이 나에게 상처 입히는 것을 허락하겠습니다. 넓은 사막에 혼자 버려진 것처럼 방황하겠습니다. 넘치도록 가득한 나의 젊음과 자유를 실패하는 데 투자하겠습니다. 수없이 상처 입고 방황하고 실패한 저를 당신이 언제나 응원할 것을 알고 있어서 저는 별로 두렵지 않습니다. - p. 317


  보통 엄마가 자식에게 쓰는 편지라고 하면 괜히 섣부른 교훈조의 위로들을 떠올리게 되던데, 이 책은 그저 '네가 힘들었구나, 나는 이랬었지'하며 '힘들었구나'하고 공감하고 응원해준다. 또한 어느 날에는 말을 하기 싫어 토라진 딸에게 감정이 상해 연락하기 싫더라도 상대방이 내밀어주는 제스처가 감정을 수습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있기에 먼저 딸의 마음을 두드리는 등 엄마의 모습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챕터 별로 딸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때로는 응원으로, 때로는 위로로, 때로는 짧은 단상으로 차곡차곡 내놓는다. 에필로그에는 딸 위녕의 이야기가 적혀있는데, 딸의 입장에서 엄마의 편지와 응원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와닿게 되어 마무리로 참 좋았다. 나 자신에게도 위안이 되고, 또 나의 아이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은 구절이 많았던 책.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모녀가 함께 본다면 서로를 이해할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풍요로운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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