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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때 천사였다
카린 지에벨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프랑스 소설 : 그는 한때 천사였다
'빅 마운트 스캔들', '그림자', '너는 모른다', '마리오네트의 고백' 등을 발표해 이미 알고있는 작가 '카린 지에벨'의 신작이 나왔다. '그는 한때 천사였다'라는 소설로 스릴러이자 범죄소설이지만 이 책에는 형사나 탐정이 등장하지 않으며 두 주요 인물 또한 기존의 주인공과는 많이 다르다.
나는 곧 죽으리라.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생이니 1분 1초를 제대로 음미하며 보내는 거야.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해. 생에서 맛볼 수 있는 기쁨을 죽음에게 양보할 필요는 없어. - p. 131
비즈니스 전문 변호사인 프랑수아 다뱅과 히치하이커로 시작해 서서히 정체가 밝혀지는 폴. 두 사람이 소설의 주인공이며 서로 다른 목적으로 함께 여행을 시작하면서 서로 얽히게 된다. 프랑수아 다뱅은 가난하게 태어나지만 자신의 능력으로 비즈니스 전문 변호인이 되어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인정을 받으며 살던 인물이다. 돈에 있어 부족함을 느껴본 적이 없지만 또한 그 돈을 쓸 시간이 없는 실력자로 아름다운 아내, 집과 차 등 겉으로 보면 남부러울 것이 없는 인물상. 그런 그가 어느날 고통을 호소하고, 또 뇌종양으로 인한 불치병 진단을 받게된다. 사람이 갑자기 죽게된다는 것을 알면 어떤 행동방식을 보일지는 많은 갈래가 있겠지만 프랑수아 다뱅은 주변 사람으로부터 동정을 받고싶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추스릴 시간이 필요해 가출 아닌 가출을 하게 된다. 아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그저 무작정 달리며 현실 도피를 하던 그는 충동적인 결정으로 히치하이킹을 하고 있던 젊은 남자 폴과 동행하게 된다.
불과 죽음을 몇 달 앞두고 몸과 마음이 함께 젊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죽을 날이 임박해오고 있는데 마음이 그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고 한껏 자유로울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죽음이 우리에게 족쇄를 채운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삶이 인간을 구속하는 건 아닐까? 우리를 구속하는 존재는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 아닐까? 스스로 울타리를 높게 둘러치고 의무와 책임, 도덕과 관습의 틀에 자기 자신을 옴짝달싹 못하게 옭아매는 건 아닐까?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타인의 눈길을 두려워하며 스스로 감옥을 짓고 있는 건 아닐까? 사람들은 살아가는 동안 감옥의 창살을 하나씩 더 늘려가며 안심한다. 만약 감옥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과감하게 밖으로 나서기보다는 그 안에 남아 서서히 죽어가는 쪽을 택한다. 프랑수아는 평생 늘려온 감옥의 창살을 톱질해 끊어내고, 벽을 부수기로 결심했다. 스스로 감옥을 만들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너무 뒤늦게 깨달은 게 유감이다. 사람은 죽음이 임박해서야 정신이 명료해지는 게 분명하다. - pp. 132-133
최고의 능력을 가진 변호사지만 죽음으로부터 피할 수 없는 삶이라니. 그렇기에 프랑수아는 지금까지의 삶에 대해 허망함을 느끼고 좌절하게 된다. 삶을 정리하기 위한 여행에서 작은 기쁨을 주는 폴은 프랑수아의 가치관을 완전히 바꿔놓게 되는 인물. 폴은 여러 삶의 밑바닥을 전전한 자로 각종 범죄에 연루되고 또 경찰과 조직으로부터 추격을 받고 있는 입장이었지만 프랑수아는 자신과 전혀 다른 폴에게 호감을 갖게되고, 그로 인해 그의 정체를 알게 되었음에도 그를 아들처럼 여기며 깊게 얽히게 된다.
어차피 뒤죽박죽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인생이지만 유일한 표지판을 잃어서는 안 된다. 프랑수아는 벌써 여러 날 전부터 죽어야 할 이유를 찾고 있다. 이제야 그 이유를 찾았다. 그 이유가 지금 바로 눈 앞에 있다. - p. 348
폴이 항상 메고다니는 백팩에 쫓기는 정체가 들어있고, 또 그의 불우한 어린시절이 드러나며 프랑수아는 그를 경멸하는 한편 그럼에도 그를 살리고싶은 호감을 동시에 느끼며 고민하게 된다. 그로 인해 목숨까지 위협받고, 그의 주변인들 또한 위험해지지만 삶의 마지막에 자신만을 위한 일을 하고 싶은 프랑수아는 결국 폴을 도와주기 위해 움직인다. 결국 폴의 일은 유독성 폐기물의 국제적 밀거래와 연관성이 있음을 알게되고, 그로 인해 자신들을 위협하는 세력들에게 쫓기며 사건의 절정으로 치닫는다.
유럽의 국가들이 아프리카에 유독성 폐기물을 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취재하던 여기자가 살해당했다. 이건 1994년 3월 10일에 이탈리아 여기자 일라리아 알피에게 일어난 실제 사건이다. 이 사건을 기사로 접한 카린 지에벨은 소설을 구상하게 되고, '그는 한때 천사였다'라는 소설이 탄생한다. 그녀가 살해당함으로 인해 부도덕적인 사실들은 모두 은폐되었지만 이 짧은 사실만으로도 이와 연루된 여러 거대 조직들이 있음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음이다.
그리하여 이 사건과, 그 살해에 관련된 인물, 그리고 휘말린 인물 등은 그녀의 전작들과는 다른 양상을 띄며 전개가 된다. 프랑수아는 이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 또한 어쩌면 이 건에 연루되어 있는 법조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폴 또한 불우한 성장 배경 탓에 이 사건과 연루된다.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사람들은 과연 죄가 있는가, 그들의 불행을 유도한 조직들은 죄가 없는가. 그리고 그 사건을 알면서도 모른체한 수많은 관련자들은 과연 어떠한가. 현실을 극복할 수 없는 사람들은 삶과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지만 그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죄를 끼친다. 카린 지에벨은 이러한 현상을 사회 시스템과 결부시켜 비판하고 있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는 또다른 피해자가 되어 뒤집고 뒤집힌다. 그런 이야기를 하며 작가는 기존 작처럼 사건을 파헤치거나 체포, 단죄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저 일련의 사건이 끝나고 나서 또 다시 시작되는 굴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탄도 원래는 천사였다며 다시금 천사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끝맺는다. 소설 속에서는 관련 성경구절들도 많이 보여주고 있는데, 그 구절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미 아는지 모르겠는데 사탄도 원래는 천사였어. 다시 그렇게 될 거야. 나는 예언자다. 죽음과 파괴를 예고하는 예언자. 나는 사탄의 손일 뿐 다른 무엇도 아니다. 하지만 인생의 지옥을 통과하고 나면 나는 다시금 예전의 어린 아이로 되돌아갈 것이다. 나는 다시금 천사가 될 것이다.- p. 392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 호감을 갖게 되는 계기가 억지스럽지 않아 자연스럽게 읽혀 좋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위험하고 자신 주변 사람까지 위협할 수 있는 폴을 외면하는 것이 당연할텐데 주변사람이라고는 남지 않은 죽음을 앞둔 능력있는 폴이 그에게 아들과 같은 정을 느끼게 되고 서로를 믿을 수 있는 파트너로 여기게 되는 과정이 물흐르듯 자연스러웠다. 몇 가지 억지스러운 측면도 죽음을 앞둔 사람의 심리상태를 설명하며 자연스럽게 풀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 부도덕한 행위를 저지르는 과정도 마냥 부도덕하다고 비난할 수 없게 만들어 흥미롭다. 그들의 여행의 마지막까지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게 만들던 재미있는 스릴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