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허 아이즈
사라 핀보로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영미 소설 : 비하인드 허 아이즈


 

  영국의 촉망받는 스릴러 작가로 떠올랐다는 사라 핀보로의 첫 성인용 스릴러 '비하인드 허 아이즈'를 읽게 되었다. BBC의 시라니오 작가이기도 하다는 사라 핀보로는 다수의 호러, 스릴러, YA소설을 발표한 소설가라고 한다. 판타지부문에서는 꽤 탄탄한 입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번 '비하인드 허 아이즈' 또한 크게 화제가 되어 20여 나라에 저작원을 수출하고 영화 판권까지 판매되었다고 하니 스릴러 쪽에서도 위치를 확고하게 자리잡은 듯 하다.


  이 '비하인드 허 아이즈'는 정말 몰입감이 뛰어나다. 스릴러는 웬만큼 많이 접했기 때문에 대부분 반전이 예측이 되어 결말부로 가는 전개를 즐기는 편인데 오랜만에 반전까지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다. 보통 책은 도입부에 몰입하기가 참 힘든데 이 소설은 초반부터 굉장히 흥미롭다.


잠, 언제나 잠이 문제다. 가짜 잠, 진짜 잠. 잠의 발현.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중심에는 그들에게 절대로 말할 수 없는 문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걸 말하면 그녀를 영원히 가둬 놓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 p. 56


  병원에서 파트타임 비서일을 하는 루이즈는 데이비드라는 남자를 만난다. 그런데 그 남자가 내 상사로 놀라운 재회를 하게 된다. 그런데 그 남자가 유부남! 거기에 그의 아내는 모델같이 아름다운 여인이다. 유부남인 것을 몰랐다고 하지만 그녀는 죄책감을 가지게 되고, 또 우연히 길에서 부딪힌 그녀와 급격히 가까워지며 친구가 되는데... 그러나 계속해서 데이비드와의 관계도 깊어지고, 그녀는 친구와 애인 사이에서 도덕적인 갈등을 하게 된다.


그녀가 정말 좋다. 강하고, 따뜻하고, 재미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아주 쉽게 조종할 수 있는 사람. - p. 125


  그녀의 아내 아델과 루이즈는 악몽으로 밤에 눈을 뜨게 되는 야경증이라는 증상을 함께 갖고 있다. 아델은 그 사실을 우연히 알고 그녀에게 일기장을 나누어주며 야경증 해결을 위한 지침을 알려준다. 희안한 방법이지만 죄책감을 가지고 있던 루이즈는 그 지침이라도 따르자는 다짐을 하게되고, 어느 날 꿈에서 하나의 문을 넘으며 야경증은 정말 해결이 된다! 그런데 그렇게 꿈의 지배력이 강해진 루이즈에게 두번째 문이 나타나게 되고, 아델은 그 문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이야기하는데...


몸을 꼬집을 뒤 '나는 깨어 있다.'고 한 시간에 한 번씩 말하라. 손을 보라. 손가락 개수를 세어라. 벽시개(혹은 손목시계)를 보고,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보라. 차분하게, 정신을 집중하라. 문을 생각하라. - p. 137


  한편 그 지침을 쓴 인물은 아델의 과거 친구 롭. 아델은 데이비드가 싫어하기 때문에 그와 멀어졌다고 말을 한다. 그런 데이비드에게는 아델에게 수상쩍게 구는 몇가지 징후가 보이는데... 아델은 애정과 우정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서서히 한 쪽을 선택하게 된다. 데이비드는 정말 폭력적인 남자일까? 아델은 어떤 인물인가? 루이즈는 점차 그들 과거의 진실에 가까워지며 서서히 일의 실체에 접근하게 된다.


  줄거리만 읽었을 때는 '비하인드 도어'라는 작품이 생각났는데, 전혀 다른 작품이었지만 또다른 놀라운 책이었다. '비밀은 셋 중 둘이 죽었을 때에만 지킬 수 있다'라는 문구가 매력적이었던 누구의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내용이 보이던 책. 작품은 아델의 시점과 루이즈의 시점, 그리고 '그 때'와 '그 후'라는 시점들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인물들의 시점에 따라 정신없이 따라가다보면 충격적인 반전을 직면하게 된다. 반전스릴러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꼭! 읽길 추천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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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기쁨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 지음, 류재화 옮김 / 열림원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프랑스 소설 : 검은 기쁨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프랑스 작가 중 한 사람인 슈미트의 세번째 소설집 '검은기쁨'을 보았다. 프랑스 4대 문학상 공쿠르상 단편소설 부문 수상작을 담고 있다고. 작가가 철학교수 출신이어서 그런지 정말 고민할 거리가 많은 책이었는데 단편소설들의 모음이지만 '성녀 리타'가 모든 작품에 등장해 단편집으로 한데 모아주고 있다. 각 작품에서 나오는 '리타'의 역은 비슷하면서도 다른데 마지막 작품 뒤에 붙은 '작가 일기'에서 해설을 덧붙여 이해하기 쉽도록 도와준다.


그녀는 매력적인 배우였다. 그녀가 연기하는 것을 이미 다들 보았다. 예술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다고 느끼게 만드는 환각이다. 오히려 예술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자연스럽지 않은 결국 감춰지지 않는 그 인위적인 기질을 보여주어야 하는 법이다. 연극적인 마리 모레스티에는 결코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고 자신을 늘 의식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바로 거기서 그녀가 표리부동하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또다른 사람들은 그게 그녀가 지닌 품위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 p. 24


  작품 중에서 가장 독특한 매력이 있었던 '생 소를랭의 이상한 여인'의 주인공 70세 '마리 모레스티에'는 세 번이나 결혼했지만 세 번 모두 사별한 노부인이다. 그녀는 모든 남편들을 살인했을 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받고 있으나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기에 법적으로는 떳떳하다. 그러면서도 주위 사람들에게는 온갖 악의적인 소문과 두려움에 찬 수근거림을 받고 있다.


  그런 은밀한 유명세와 특별한 위상을 즐기고 있는 '마리 모레스티에'는 어느 날 새로 부임한 주임신부를 보고 어떤 계기를 갖게 된다. 고해성사의 고해는 누구에게도 밝히면 안된다는 점을 이용해 신부의 관심을 받으며 그에게 점점 매혹되어가는 마리 모레스티에. 당신은 내 존재이유이자 내 기도이유이자 믿음의 이유라며 믿음으로 마리를 변화시켜보이겠다는 아름다운 신부에게 만족하며 자신의 고백을 세상에 알릴 것인가에 대해 손익을 궁리한다.


  이 작품에서 '성녀 리타'는 신부가 쓴 논문으로 등장하는데, 이 것은 신부에게는 하나의 기회가 되는 반면 마리 모레스티에에게는 좌절의 이유가 된다. 또한 성녀 리타의 논문으로 인해 굳게 먹은 마음이 스러지는 것도 우스꽝스럽게 보여진다. 한 사람에게는 좋게 발현하는 현상이 한 사람에게는 나쁘게 다가올 수 있다는 작가의 말이 검은 기쁨과 함께 강하게 드러난 작품으로 보인다.


동료들은 각자 그레그가 견뎌내야 할 고통을 떠올렸다. 침묵에 빠진 배 안의 고독한 죄수. 그는 선박의 화물만큼이나 무거운 슬픔에 짓눌릴 것이다. 이 끔찍한 질문에 고문을 받듯 괴로울 것이다. 도대체 네 딸 중 누가 죽었는가. - p. 78


  두 번째 작품인 '귀환'은 끔찍한 고뇌를 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절망을 그린 작품이다. 배를 타고 나와 일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딸이 죽었다고 전보를 받은 아버지. 육지와는 연락이 원활하지 않아 네 딸 중 누가 죽었는지 본인은 알 수가 없고. 그는 누가 죽었을지 상상을 해보게 된다.


그레그는 예상치 못한 고통을 겪으며 비로소 생각하기 시작했다. 숙고라는 끝없는 노동이 그의 내부에서 일어났고 그는 녹초가 되었다. 겉모습이 바뀐 것은 아니다. 다만 과거의 그레그가 지금 그레그의 내부에 자리를 잡았다. 도덕적, 지적 의식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온했던 야수의 집으로 들어와 앉았다. - pp. 91-92


  가장 먼저 떠오른 딸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딸. 그리고 뒤 이어 떠오른 것은 가장 마음이 가지 않던 딸. 그러면서 자신은 네 딸 가운데 차라리 누군가의 이름이 전보로 오기로 바라는 자신을 비열하다고 생각한다. 창피해진 그는 서서히 딸들을 하나씩 떠올리고, 또 아내까지 떠올리며 번뇌에 휩싸인다. 그리고 늘 가까이하기 어렵고 두렵기만 했던 낯선 남자에서 아버지의 모습으로 귀환한다. 이 편에서 '성녀 리타'는 동료가 그에게 마음이라도 편해지라며 준 성경에서 발견하고 기도하게 되는 성인으로 등장한다.


이제는 사십 대가 되어 식탁에 마주앉아 있는 두 사람 사이에 큰 착각과 오해가 생겨나고 있었다. 각기 상상 속에서 그들은 서로 다른 사람이었다. 분명하고 결정적인 특성을 가진, 강한 개성의 인물을 각자 조각했던 것이다. 크리스에게느 악셀이 하나의 완벽한 정전이 되어 있었고, 악셀에게 크리스는 성공의 한 전형이 되어 있었다. 상대를 대신하고 싶은 의지와 초월하고 싶은 의지가 뒤섞여, 그들은 각각 상대를 모델로 삼으며 삶을 건설해온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들의 공상적인 건축은 무너질 위기에 있었다. - pp 159-160


  그리고 표제작이자 가장 대비되는 이미지가 강했던 세 번째 작품 '검은 기쁨'. 이 이야기는 피아니스트인 '크리스'와 '악셀'의 이야기로 이길 수 없는 재능을 가진 '악셀'을 질투하는 '크리스'의 심리를 묘사하다가 사고로 인해 뒤바뀐 운명, 그리고 그 후에는 '악셀'의 심리를 묘사하고 있다.


  한 사건이 두 사람의 운명을 어떻게 바꿔놨는지, 그리고 다시 만난 그들이 서로에게 어떤 감정을 갖는지, 결말까지 감정선을 따라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리타는 여기에서 기념품들로 나오는데, 기념품들을 이야기하는 것도 눈여겨봄직하다. 같은 재료로 성녀 리타가 나올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상반된 것이 나오기도 한다는 것. 미래가 촉망되던 예술가가 악에 휩쓸리고 또 그렇게 완성되는 결말 안에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도 있어 관련 지식이 있다면 더욱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감정은 겉감과 안감에 다 붙어 있다. 증오 없는 사랑이 있을까? 애무하는 손은 곧 단도를 쥐게 된다. 분노를 모르는 사랑이 있던가? 모순을 안은 한 충동 때문에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 p. 251


  네 번째 작품은 '엘리제의 사랑'으로 프랑스 대통령인 '앙리 모렐'과 그의 아내 '카트린'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야기는 재선을 준비하는 것과 앙리 모렐과 카트린의 감정 두 가지 줄기를 보여주며 한데 모아진다. 이런 종류의 서사구조는 익숙한 만큼 확실히 몰입도가 좋은데 마지막 결말이 소소한 반전으로 보여진다.


  쇼윈도부부이자 서로를 믿지 못해 끝내 죽음 후에도 안절부절 못했던 순간들은 사건을 기점으로 큰 믿음으로 바뀌었다. 살아있을 생전 믿지 못한 사랑을 죽고 나서야 보여주는 아이러니. 이 이야기에서 '성녀 리타'는 부인인 '카트린'의 투병생활과 관련해 '성녀 리타의 요양원'으로 등장한다.


리타는, 절망적인 이유들의 마돈나로, 불가능의 성녀인데, 내 이야기들 가운데서 다면의 보석처럼 솟아오른다. 그 빛이 아이러니할 때도 있고, 그 빛이 도화선이 되기도 하고, 때론 시니컬하고 때론 희망의 전달자 같기도 하다. 그녀를 빈번하게 출현시킨 것은 선의 모호성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게 좋게 나타난 것이 다른 사람의 불행을 야기한다. 바울을 잃은 자가 베드로를 구할 것이다. 성녀 리타는 어떤 것도 이야기하지 않는 오브제이다. 그러나 성녀 리타는 오브제를 통해 이야기되는 오브제이기도 하다. - p. 276


  논문으로, 기도로, 기념품으로, 요양원으로 등장하는 성녀 리타의 쓰임에 대해 생각하는 재미가 있던 단편집. 문장 하나하나가 곱씹어볼 여지가 있는 철학적인 작품들이었다. 번역본도 이렇게 문장이 재미있는데 원본은 얼마나 흥미롭게 다가올까 생각하면 원문을 읽어보지 못한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던 에릭 엠마누엘 슈미트의 단편집 '검은 기쁨'. 추천하고 싶은 단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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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사요코 모노클 시리즈
온다 리쿠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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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설 : 여섯 번째 사요코  



 

  수 많은 베스트셀러를 양산해 우리 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작가 온다 리쿠. 그녀의 데뷔작 '여섯번째 사요코'가 표지를 바꿔입고 다시 찾아왔다. '밤의 피크닉', '삼월은 붉은 구렁을', '보리의 숲에 가라앉는 열매', '흑과 다의 환상', '도서실의 바다', '황혼녘 백합의 뼈' 등 다양한 소설을 읽었지만 정작 데뷔작은 읽어본 적이 없었는데, 이 기회에 온다 리쿠의 데뷔작을 읽어보게 되었다.


몇천 명이나 되는 이 학교의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이 이야기를 들었다니. 게다가 이 이야기는 하나하나 미묘하게 다르고, 또 조금씩 변화된 다양한 이야기가 매일 만들어지고 있다. - p. 68-69


  이야기는 한 고등학교에서 시작된다. 이 학교에는 '사요코'라는 괴담이 전설처럼 전해져오고 있다. 3년에 한 번씩. 한 학생이 은밀하게 '사요코'로 지명받게 된다. 그러면 그 학생은 꽃다발과 열쇠를 받아 꽃병에 자신의 의지를 전하고, 어떤 의식과도 같은 절차를 치러내야 한다. 어찌 보면 허무맹랑한 이야기이지만 학교라는 폐쇄된 공간 안에서 이야기를 생명력을 가지고 퍼져나간다.


빨간 램프. 강당 안의 어둠 속으로 팽팽하게 한 줄기 가는 실이 지나가는 듯했다. 사람의 목소리라는 건 얼마나 신기한가, 하고 슈는 생각했다. 제각기 다른 높낮이에 여러 가지 색깔이 담겨 있고 다양한 모양을 하고 있다. 각각의 목소리에서 상상되는 그 목소리 주인의 못브이 어둠 속에서 증폭되어 동물이 되기도 하고, 돌이 되기도 하며, 때로는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 p. 158


  '사요코'로 지명된 사람은 신성하고 그와 동시에 남들이 꺼려하는 존재가 된다. '사요코'가 성공하면 그 해는 진학률이 1~2위를 다툴 정도로 성공한 해가 되지만, 실패하거나 무시하면 그에 상응하는 마이너스 대가를 받게 된다. 그러한 부담과 압력 사이에서 사요코는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안 되고 존재를 드러내도 안 된다. 제 삼자의 개입은 사악하다는 평까지 받으며 절대 금기된다.


그래, 네가 나를 불러들인 거구나. 일부러 이런 곳에서. 알았어. 마음껏 즐겨볼게. 내가 올해의 사요코가 되어주지 - p. 301


  이러한 고독감과 어쩌면 공포와 불안 속에서 1년을 버텨내야 하는 사요코.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이번 '여섯번째 사요코'는 두 명이 등장한다. '그녀'와 전학생인 '쓰무라 사요코'. 심지어 한 명은 초반부터 미스터리한 일을 겪게 되고, '세네키 슈'는 그런 사요코 전설을 눈여겨보며 서서히 괴담의 진실에 접근하게 된다.


  '사요코'로 보이는 '쓰무라 사요코'가 괴담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애초에 '사요코' 괴담은 누가 주도하는 것일까. 진짜 '사요코'는 누구였을까. 금방 흥미를 잃을 수도 있을 이런 괴담이 어떻게 전승되는 것일까. 여러 사람이 연결되어 있는 '사요코' 괴담. 100년의 벚꽃나무, 핏빛 데루테루보즈, 붉은 꽃다발, 꽃병, 열쇠, 비석, 죽음, 들개들... 다양하고 의미심장한 상징들을 보며 이런 감춰진 진실들을 궁금해하며 읽고 있노라면 금방 책의 마지막 장을 보게 된다.


  항상 똑같은 위치에서 똑바로 서서 돌고 있는 팽이처럼 반듯하게 돌고 있지만 끈을 쥔 사람과 치는 사람이 바뀐다는 책 속의 묘사처럼. 매년 새로운 아이를 받아 3년 마다 졸업시키는 학교. 매년 같은 행사가 이어지지만 미묘하게 다른 매년이 흘러가는 특별한 공간인 학교에서 괴담이란 어쩌면 당연하게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미묘한 감수성을 잘 캐치해 미스터리로 승화한 온다 리쿠의 데뷔작 여섯 번째 사요코. 널리 사랑받을만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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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언제나 사랑
니콜라 바로 지음, 송경은 옮김 / 마시멜로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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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독일 로맨스 소설 : 파리는 언제나 사랑

 

 

  유럽을 사로잡은 최고의 로맨스 소설이라는 '파리는 언제나 사랑'을 읽었다. 독일 슈피겔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독특한 로맨스 판타지 소설. 첫 문장부터 독특함으로 마음을 사로잡은 이 책은 비밀스러운 동화 '파란 호랑이'를 둘러싼 비밀을 밝혀내며 얽히는 두 사람의 로맨스를 그리고 있다.


파랑은 로잘리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다. 생각을 할 수 있던 때부터 계속 그랬다. 그러니까 28년 동안 한결같이 좋아했다. 매일 오전 11ㅅ. 작은 선물가게 문을 열 때 항상 그러하듯 오늘도 로잘리는 잿빛 파리 하늘에서 아주 조금의 푸른색이라도 찾으려고 하늘을 쳐다봤다. 그러곤 푸른색을 찾아내고 씩 웃었다. - p. 7


  파란 색만큼 풍부하고 놀라우며 다양한 색은 없다며 파란색의 다양성을 찾아내고, 그래서 파랑을 가장 좋아하는 로잘리는 로맨틱한 감성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에게 세상에 단 하나뿐인 '소원카드'를 만들어주는 작은 선물가게 '루나루나'의 주인인 로잘리. 그녀는 가게를 찾는 모든 사람에게 소원카드를 만들어주지만, 정작 자신의 소원은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 예쁜 가게에서 가장 특별한 건 뭐니 뭐니 해도 로잘리가 만든 소원 카드다. 출입문 오른쪽에 세워둔 회전진열대에 꽂혀 있는데, 루나루나에서 가장 의미 있는 제품이다. 드라공 거리에서 여러 해 동안 가게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소원 카드 덕분이었다. 루나루나의 소원 카드는 그 어떤 곳에서도 살 수 없는 유일무이한 제품으로, 손님들의 사연을 담아 주인이 직접 만들어준다는 소문이 금세 나기 시작했다. - p. 28


  매년 자신의 생일에 손수 만든 소원카드를 가지고 704개 계단의 에펠탑을 올라가 소원카드를 공중에서 날리는 의식을 치르는 로잘리. 그녀의 소년은 매년 달랐지만,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다. 그리고 그 의식을 마지막으로 하겠다고 마음먹은 해에 로잘리는 기묘한 손님을 만나게 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자두코 토끼'와 '작은 얼음요정'을 쓴 유명한 동화작가 막스 마르셰. 그는 자신의 동화책에 그녀의 그림을 삽화로 넣고 싶다고 말한다. 로잘리는 기적과도 같은 상황에 흥분하고 모든 것은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때 찬물을 끼얹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막스 마르셰가 표절을 했다고 주장하는 그 남자의 이름은 로버트. 아름다운 터키블루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는 남자와 그녀는 격하게 대립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그 책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각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의기투합하게 되는데... 살다 보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생길 때가 있다는 말 그대로 책의 진실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그들의 마음의 거리는 가까워지게 된다.


사랑이 유지되는 한 사랑은 영원하다. - p. 34


  파리하면 생각나는 사랑. 거기에 끼얹어지는 환상의 동화까지. 우연한 만남이라는 계기까지 완벽한 낭만적인 소설 '파리는 언제나 사랑'. 로잘리와 로버트는 각각 다른 상황에서 다른 인연과 함께하고 있었으나 각자의 소중한 것들을 지키려는 데서 인연이 닿아 결국은 설렘으로 이어지게 된다.


로버트와 로잘리 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사랑의 약속도 모두 영원히 지켜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 로버트가 그녀를 품에 안았다. 로잘리는 행복에 취해 눈을 감았다. 그녀가 본 마지막 잩면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파리의 하늘이었다. 핑크색, 흰색, 라벤더색이 어우러진 석양은 키스의 색이었다. - p. 365


  로버트와 로잘리, 그리고 그 윗세대까지 모든 것을 '파란호랑이'가 연결해주고 있다. 동화의 내용이 무엇인지, 로잘리가 무슨 소원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이 모든 것이 궁금하다면 사랑하기 좋은 계절 가을에 이 '파리는 언제나 사랑'을 읽어보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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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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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에세이 : 힐빌리의 노래

 

 

  척박하고 고립된 환경과 가난에 갇혀 미래를 포기해버린 사람들의 목소리라는 '힐빌리의 노래'를 보게 되었다. 저자는 '힐빌리'라는 사회적 계층에 속해 있다. 그는 '백인'이자 '남성'이며 '이성애자'이고 '개신교도'지만 한편으로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사회적 도움이 닿지 않는 살인과 폭력이 아무렇지 않게 자행되고 있는 환경에서 커 온 복잡한 성장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는 소위 말하는 '청운의 꿈'을 이룬 '신분 상승'의 주인공으로서 이 책에서 자신이 속해있던 '힐빌리'의 이들이 겪고 있는 사회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내 이야기는 민족적 요소를 담고 있다. 미국은 다양한 민족이 어울려 사는 사회인데도 '흑인' '아시아인' '백인 특권층'과 같이 주로 피부색으로만 용어를 정의한다. 물론 이렇게 광범위한 분류가 유용할 때도 있지만, 내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이보다 더 세부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나는 백인이긴 하나, 북동부에 거주하는 미국의 주류 지배 계급인 와스프WASP는 아니다. 나는 스코틀핸드계 아일랜드인의 핏줄을 타고나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수백만 백인 노동 계층의 자손이다. 우리에게 가난은 가풍이나 다름 없다. 우리 조상들은 대개 남부의 노예 경제 시대에 날품팔이 부터 시작하여 소작농과 광부를 거쳐 최근에는 기계공이나 육체노동자로 살았다. 미국인은 이런 부류의 사람을 힐빌리, 레드넥, 화이트 트래시라고 부르지만, 나는 이들을 이웃, 친구, 가족이라고 부른다. - pp 9-10 


  아무리 체계나 제도가 잘 정비되어 있다고 해도 그런 정책들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다. 이 책에서 이야기 하는 바가 그렇다. 그들은 제대로 그것들을 사용하지 못할 뿐만아니라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방법조차 모른다. 정체적, 신체적 폭력이 횡행하고 있는 곳에서 정신적으로 의지할 곳인 '할모'와 '할보'가 있었기에 그래도 도움의 손길을 받아 그는 운 좋게 삶을 성공적으로 보이도록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 대다수인 것이다.


기독교에서 묘사하는 타락한 세상은 내가 사는 세상과 엇비슷했다. 행복한 드라이브가 한순간에 비참해지는 곳이었고, 한 사람의 잘못된 행동이 가족과 공동체의 생활에 어마어마한 파문을 일으키는 곳이었다. 내가 할모에게 신이 우리를 사랑하느냐고 물었던 건, 상황이 끔찍하더라도 믿음을 잃을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였다. 이 고통과 혼란이 곧 끝날 거라고 나를 안심시켜줄 사람이 필요했다. -p. 149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가 성공했을 때까지의 가족사를 늘어놓고 있으면서, 마지막 부분에는 신분상승에 성공한 사람으로서 양 계층의 뚜렷한 문화배경과 단절을 깨달은 그는 점점 양극화 되어가는 계층간 이야기를 이야기함으로써 책을 읽는 이에게 계층간의 벽을 어떻게 낮출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게끔 만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힐빌리의 한 일원이 예일대 로스쿨 졸업자로 신분 상승함으로써 겪는 고통스러운 이동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그는 여기도 저기도 완전하게 속하지 않은 이방인으로 고독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변화하고 싶어하며 그런 자신에게 스스로 배신감을 느끼기도 한다.


내가 엄마나 누나, 할모에게 화를 낼 때면 평소와 다르게 불같이 성을 내던 할보의 모습도 떠올랐다. 할보가 언젠가 내게 말했던 것처럼 "자기 집안의 여성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그 남자를 알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지난날 집안 여성들을 온당하게 대우하지 못했던 본인의 경험에서 얻은 지혜였다. - p. 182


  그러나 그런 심리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동생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여동생을 모욕한 놈에게 억지로 속옷을 먹이고, 어머니를 모욕한 사람에게 전기톱을 들이대기도 하는 힐빌리들을 사랑한다. 그렇기에 그들이 좀 더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더 나은 길을 포기하지 말고 정신차리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힐빌리들의 현실을 세상에 알리는 목소리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그런 힐빌리들에게 체념하지 말 것이며 현실을 인정할 용기를 가지고 자신을 똑바로 마주하라고 희망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고립은 나 같은 사람들로 하여금 성공을 그저 거머쥘 수 없는 것으로 여기게 할 뿐 아니라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의 전유물로 여기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p. 334


우리가 사회적 신분 상승을 찬양하지만, 거기에는 부정적인 면도 존재한다. 어떤 성질의 것이든 이동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신분 상승이라는 용어는 이론적으로는 더 나은 삶을 향해 간다는 의미지만, 어디로부터 떠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일단 떠나고 나면 과거의 생활을 더는 뜻대로 통제할 수 없다. - p. 335


좀처럼 보기 힘든 할보의 무너지는 모습에서 힐빌리가 당면한 중요한 문제를 고민하게 됐다. 잘 풀리건 안 풀리건 간에 인생에서 개인의 탓은 어느 정도이며, 대를 거쳐 결점을 물려준 문화와 가족, 자식을 망쳐버린 부모의 탓은 어느 정도인가? 엄마의 인생에서 엄마의 잘못은 얼마나 되는가? 어디까지 비난을 해야 하고 어디서부터 공감을 해야 하는가? - p. 373


  우리 나라 또한 계층이동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음이 사실이다. 청년들을 위해 야심차게 서울시에서 내놓았던 청년 복지정책인 청년수당을 보건복지부가 합의 없는 집행이라며 직권취소 한 일이 있었다. 다행히 정권이 바뀌며 동의결정을 내려 7월부터 사업을 재추진했다고는 하지만 이 일이 많은 이들에게 얼마나 절망적이었는지 귀가 있고 눈이 있었기에 알 수 있었다.


몇 달만 지나면 예일 로스쿨을 졸업할 예정이니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어야 정상일터였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지난해에 했던 고민에 휩싸여 있었다. 우리 같은 사람이 과연 변할 수 있을까? - p. 376


신분 상승이었다. 나는 청운의 굼을,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해냈다. 최소한 남들 눈에는 그렇게 보였으리라. 그러나 신분 상승은 결코 뚜렷하게 이루어지는 게 아닐뿐더러 세상은 자꾸만 나를 다시 잡아끌려고 하게 마련이다. - p. 383


지금 상황을 제대로 들여다보려거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먼저 인지해야 할 것 같아. 문제는 앞으로도 늘 존재할 거야. 소외된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실어줄 수야 있겠지만. - p. 386

공공 정책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줄 정부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 p. 408


  사람은 그저 동물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누리는 것을 함께 누리지 못한다는 아주 사소한 사실로 사람은 얼마든지 비참해 질 수가 있는 것이다. 평범해보이는 중산층의 사람이라도 그럴진데 빈곤이 만연화되어 있고 체념이 익숙한 힐빌리의 사람들은 오죽 그렇겠느냐는 말이다. 할모와 할보, 그리고 엄마와 수많은 아빠들. 이복형제들. 모든 힐빌리들은 저자에게 영향을 미쳤고, 그래서 그는 그들을 사랑하며 배신자라는 말을 들을 각오를 하고 이 책을 발간해냈다. 절망의 가운데에서 희망을 찾아내고, 또 그것을 이야기하는 이 책을 모든 이에게 추천하고 싶다. 영화화가 되었다고 하니 잘 만들어져서 모든 이에게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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