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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17년 8월
평점 :
외국 에세이 : 힐빌리의 노래
척박하고 고립된 환경과 가난에 갇혀 미래를 포기해버린 사람들의 목소리라는 '힐빌리의 노래'를 보게 되었다. 저자는 '힐빌리'라는 사회적 계층에 속해 있다. 그는 '백인'이자 '남성'이며 '이성애자'이고 '개신교도'지만 한편으로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사회적 도움이 닿지 않는 살인과 폭력이 아무렇지 않게 자행되고 있는 환경에서 커 온 복잡한 성장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는 소위 말하는 '청운의 꿈'을 이룬 '신분 상승'의 주인공으로서 이 책에서 자신이 속해있던 '힐빌리'의 이들이 겪고 있는 사회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내 이야기는 민족적 요소를 담고 있다. 미국은 다양한 민족이 어울려 사는 사회인데도 '흑인' '아시아인' '백인 특권층'과 같이 주로 피부색으로만 용어를 정의한다. 물론 이렇게 광범위한 분류가 유용할 때도 있지만, 내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이보다 더 세부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나는 백인이긴 하나, 북동부에 거주하는 미국의 주류 지배 계급인 와스프WASP는 아니다. 나는 스코틀핸드계 아일랜드인의 핏줄을 타고나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수백만 백인 노동 계층의 자손이다. 우리에게 가난은 가풍이나 다름 없다. 우리 조상들은 대개 남부의 노예 경제 시대에 날품팔이 부터 시작하여 소작농과 광부를 거쳐 최근에는 기계공이나 육체노동자로 살았다. 미국인은 이런 부류의 사람을 힐빌리, 레드넥, 화이트 트래시라고 부르지만, 나는 이들을 이웃, 친구, 가족이라고 부른다. - pp 9-10
아무리 체계나 제도가 잘 정비되어 있다고 해도 그런 정책들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다. 이 책에서 이야기 하는 바가 그렇다. 그들은 제대로 그것들을 사용하지 못할 뿐만아니라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방법조차 모른다. 정체적, 신체적 폭력이 횡행하고 있는 곳에서 정신적으로 의지할 곳인 '할모'와 '할보'가 있었기에 그래도 도움의 손길을 받아 그는 운 좋게 삶을 성공적으로 보이도록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 대다수인 것이다.
기독교에서 묘사하는 타락한 세상은 내가 사는 세상과 엇비슷했다. 행복한 드라이브가 한순간에 비참해지는 곳이었고, 한 사람의 잘못된 행동이 가족과 공동체의 생활에 어마어마한 파문을 일으키는 곳이었다. 내가 할모에게 신이 우리를 사랑하느냐고 물었던 건, 상황이 끔찍하더라도 믿음을 잃을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였다. 이 고통과 혼란이 곧 끝날 거라고 나를 안심시켜줄 사람이 필요했다. -p. 149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가 성공했을 때까지의 가족사를 늘어놓고 있으면서, 마지막 부분에는 신분상승에 성공한 사람으로서 양 계층의 뚜렷한 문화배경과 단절을 깨달은 그는 점점 양극화 되어가는 계층간 이야기를 이야기함으로써 책을 읽는 이에게 계층간의 벽을 어떻게 낮출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게끔 만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힐빌리의 한 일원이 예일대 로스쿨 졸업자로 신분 상승함으로써 겪는 고통스러운 이동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그는 여기도 저기도 완전하게 속하지 않은 이방인으로 고독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변화하고 싶어하며 그런 자신에게 스스로 배신감을 느끼기도 한다.
내가 엄마나 누나, 할모에게 화를 낼 때면 평소와 다르게 불같이 성을 내던 할보의 모습도 떠올랐다. 할보가 언젠가 내게 말했던 것처럼 "자기 집안의 여성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그 남자를 알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지난날 집안 여성들을 온당하게 대우하지 못했던 본인의 경험에서 얻은 지혜였다. - p. 182
그러나 그런 심리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동생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여동생을 모욕한 놈에게 억지로 속옷을 먹이고, 어머니를 모욕한 사람에게 전기톱을 들이대기도 하는 힐빌리들을 사랑한다. 그렇기에 그들이 좀 더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더 나은 길을 포기하지 말고 정신차리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힐빌리들의 현실을 세상에 알리는 목소리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그런 힐빌리들에게 체념하지 말 것이며 현실을 인정할 용기를 가지고 자신을 똑바로 마주하라고 희망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고립은 나 같은 사람들로 하여금 성공을 그저 거머쥘 수 없는 것으로 여기게 할 뿐 아니라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의 전유물로 여기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p. 334
우리가 사회적 신분 상승을 찬양하지만, 거기에는 부정적인 면도 존재한다. 어떤 성질의 것이든 이동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신분 상승이라는 용어는 이론적으로는 더 나은 삶을 향해 간다는 의미지만, 어디로부터 떠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일단 떠나고 나면 과거의 생활을 더는 뜻대로 통제할 수 없다. - p. 335
좀처럼 보기 힘든 할보의 무너지는 모습에서 힐빌리가 당면한 중요한 문제를 고민하게 됐다. 잘 풀리건 안 풀리건 간에 인생에서 개인의 탓은 어느 정도이며, 대를 거쳐 결점을 물려준 문화와 가족, 자식을 망쳐버린 부모의 탓은 어느 정도인가? 엄마의 인생에서 엄마의 잘못은 얼마나 되는가? 어디까지 비난을 해야 하고 어디서부터 공감을 해야 하는가? - p. 373
우리 나라 또한 계층이동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음이 사실이다. 청년들을 위해 야심차게 서울시에서 내놓았던 청년 복지정책인 청년수당을 보건복지부가 합의 없는 집행이라며 직권취소 한 일이 있었다. 다행히 정권이 바뀌며 동의결정을 내려 7월부터 사업을 재추진했다고는 하지만 이 일이 많은 이들에게 얼마나 절망적이었는지 귀가 있고 눈이 있었기에 알 수 있었다.
몇 달만 지나면 예일 로스쿨을 졸업할 예정이니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어야 정상일터였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지난해에 했던 고민에 휩싸여 있었다. 우리 같은 사람이 과연 변할 수 있을까? - p. 376
신분 상승이었다. 나는 청운의 굼을,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해냈다. 최소한 남들 눈에는 그렇게 보였으리라. 그러나 신분 상승은 결코 뚜렷하게 이루어지는 게 아닐뿐더러 세상은 자꾸만 나를 다시 잡아끌려고 하게 마련이다. - p. 383
지금 상황을 제대로 들여다보려거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먼저 인지해야 할 것 같아. 문제는 앞으로도 늘 존재할 거야. 소외된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실어줄 수야 있겠지만. - p. 386
공공 정책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줄 정부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 p. 408
사람은 그저 동물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누리는 것을 함께 누리지 못한다는 아주 사소한 사실로 사람은 얼마든지 비참해 질 수가 있는 것이다. 평범해보이는 중산층의 사람이라도 그럴진데 빈곤이 만연화되어 있고 체념이 익숙한 힐빌리의 사람들은 오죽 그렇겠느냐는 말이다. 할모와 할보, 그리고 엄마와 수많은 아빠들. 이복형제들. 모든 힐빌리들은 저자에게 영향을 미쳤고, 그래서 그는 그들을 사랑하며 배신자라는 말을 들을 각오를 하고 이 책을 발간해냈다. 절망의 가운데에서 희망을 찾아내고, 또 그것을 이야기하는 이 책을 모든 이에게 추천하고 싶다. 영화화가 되었다고 하니 잘 만들어져서 모든 이에게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