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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7년 9월
평점 :
한국 소설 : 고등어
'동트는 새벽'을 발표하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봉순이 언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즐거운 나의집',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같이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도 제목이라도 들어봤을 소설들을 발표한 작가 공지영.
재출간 된 공지영 소설 '고등어'를 읽었다. 80년대 운동권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후일담을 말하고 있는 책으로 100쇄 이상 제작된 공지영의 대표작이라고 한다. 총 13장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은림의 유고 일기'가 각 장의 첫 페이지에 위치하고 있고 이야기는 김명우 시점으로 전개된다.
난 당신들을 이해할 수 없어요. 당신들은 너무 이상한 관계를 맺고들 있어요. 그리고 이상한 방식으로 서로를 상처 입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지나치게 과거에 얽매여 있어요. - p. 217
흔한 사랑이야기인가 하면 노동운동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책은 그 당시를 겪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보내고 있다. 김명우와 노은림의 불륜을 중심으로, 그리고 이혼한 전처 연숙, 현재 여자친구 여경, 노은림의 전남편 건섭, 고문당해 미친 노은림의 오빠 은철, 분신한 동생을 둔 경식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끌려나온다.
"대학생들인가 보지?" "응." "우리하곤 참 다른 거 같지." "다르지...... 달라야 하고. 안 다르면 어떻게 하겠니? 다만 어떻게 다른 것인가는 저들의 몫으로 남겠지." - p. 229
은림과 전남편 건섭은 부부라기보다 동지처럼 함께했다. 은림과 명우는 사랑을 했고, 그 것은 많은 이를 아프게 만들었다. 7년 만에 그들은 재회하게 된다. 많은 시일이 지나 웃으며 서로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한 명우는 피를 토한 은림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고는데, 그 때 현재 여자친구인 여경이 찾아온다. 과거 은림과 닮은꼴인 여경과 현재의 은림이 마주 본다. 그 상황에 전처인 연숙 또한 근처에서 차멀미로 토한 명우와의 아이를 데리고 그 집으로 찾아온다. 전처와 전 여자친구, 현 여자친구가 한 공간에 마주친다.
"(중략) 가끔씩 방파제 멀리로 은빛 비늘을 무수히 반짝이며 고등어 떼가 내 곁을 스쳐 지나가기도 했는데. 살아 있는 고등어 떼를 본 일이 있니?" "아니." "그것은 환희의 빛깔이야. 짙은 초록의 등을 가진 은빛 물고기 떼. 화살처럼 자유롭게 물 속을 오가는 자유의 떼들, 초록의 등을 한 탱탱한 생명체들. 서울에 와서 나는 다시 그들을 만났지. 그들은 소금에 절여져서 시장 좌판에 얹혀져 있었어. 배가 갈라지고 오장육부가 뽑혀져 나가고." "......" 여경의 숨이 골라지고 있었다. 그도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그들은 생각할 거야. 시장의 좌판에 누워서 나는 어쩌다 푸른 바다를 떠나서 이렇게 소금에 절여져 있을까 하고. 하지만 석쇠에 구워질 때쯤 그들은 생각할지도 모르지. 나는 왜 한때 그 바닷속을, 대체 뭐하러 그렇게 힘들게 헤엄쳐 다녔을까 하고." 여경은 반응이 없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새벽이 될 때까지 잠이 들지는 못했다. - pp. 255-256
한편 노동운동에 대한 이야기도 중심 사건으로 계속 나온다. 책에 나오는 그저 강물을 아름답다고 하는 것도 죄스럽고, 사랑이란 감정은 더더욱 그랬던 과거 운동권 사람들은 평범한 일상을 뒤로 하고 세상의 변혁과 더 나아질 미래를 위해 청춘을 바쳤다. 그리고 현재는 생계를 걱정해야하는 초라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명우는 고등어라는 소재에 빗대 더럽다고 생각했던 부르주아들의 자서전을 대필하는 것으로 먹고사는 자신, 몸은 다 망가진 채 약대생이었으나 마트의 카운터를 보고 있는 은림, 미쳐버린 은철 등 현재의 자신들을 생각한다.
사방이 고요하다. 방금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방 밖으로 이어졌지만 사라지고 말았다. 발자국 소리 때문에 낮추었던 볼륨을 다시 높인다. 고요하다. 고요한 밤이다. 눈물이 터져버리기 직전의 낮고 음울한 이 평화...... - 93년 11월, 노은림의 유고 일기 중에서
생계를 위해 현실과 타협한 명우와 계속해서 부르주아 계층에게 반감을 가지고 차라리 마트의 카운터를 보겠다며 아직도 세상은 구원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은림이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며 결코 과거는 헛된 세월을 달렸던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하게 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더 나은 시대를 위해 살던 사람들이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상처를 입히는 모순적인 인간상 또한 주목할만한 지점이었다. 그 시대를 아프게 살아낸 세대들과 또 구체적인 일상보다 추상적인 자신들의 정의를 위해 청춘을 바친 모든 세대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공지영 소설 '고등어'. 지금 봐도 흡입력 있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