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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키 문구점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9월
평점 :
일본 소설 : 츠바키 문구점
책의 배경이 되는 '가마쿠라'에 가고 싶어질 만큼 찡한 마음으로 읽게 된 책 오가와 이토의 '츠바키 문구점'. 문구점을 하고 있지만 대필도 가업으로 잇고 있는 '포포'의 츠바키 문구점은 무려 에도시대부터 여성 서사들이 대대로 편지를 대필해온 곳이라고 한다. 간판도 없고 그저 문구점으로 알려져 있지만, 알음알음 대필을 원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20년 동안 보지 못한 친구에게 그저 안부를 전하는 편지, 조문편지, 연하장, 절연을 위한 편지, 천국에서 보내는 남편의 편지 등 여러 사람들의 일상을 포포의 편지로 읽어나가며 작은 위안을 받게 된다.
"이를테면 누군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과자 선물을 들고 간다고 치자. 그럴 때 대부분은 자기가 맛있다고 생각하는 가게의 과자를 들고 가지? 개중에는 과자 만들기가 특기여서 직접 만든 것을 들고 가는 사람도 있을 테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게에서 산 과자에는 정성이 담겨있지 않다고 할 수 있겠나?" 선대가 물었지만, 나는 묵묵히 다음 말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자기가 직접 만든 것이 아니어도, 제과점에서 열심히 골라 산 과자에도 마음은 담겨 있어. 대필도 마찬가지야. 자기 마음을 술술 잘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은 문제없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을 위해 대필을 하는 거야. 그편이 더 마음이 잘 전해지기 때문에. 네가 하는 말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이 좁아져. 옛날부터 떡은 떡집에서, 라고 하지 않니. 편지를 대필해 주길 바라는 사람이 있는 한, 우리는 대필업을 계속해나간다. 단지 그것뿐이야." - pp. 53-54
포포는 선대로 인해 엄격한 교육을 받고 절연 수준으로 갔지만, 결국 선대의 가치관을 이해하고 또 대필을 가업으로 잇게 된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포포에게 영향을 미치고, 또 선대를 받아들여가는 과정이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포포의 대필 과정 또한 마찬가지다. 대필이라는 말만 들으면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음식을 내어주며 사연을 진지하게 듣고, 필기구를 정하고, 필기구와 궁합이 맞는 편지지를 고르고, 그 사람의 사연과 이미지에 맞는 우표를 정하고, 편지의 형식에 맞게 진심으로 내용을 쓰고, 글씨체까지 궁리하는 포포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대필이 그 사람의 진심과 행복을 돕는 것이구나 하며 긍정적인 마음으로 변화하게 된다.
봄은 쌉쌀함, 여름은 새콤함, 가을은 매콤함, 겨울은 기름과 마음으로 먹어라. - p. 166
이 책 말고는 '이 슬픔이 슬픈 채로 끝나지 않기를' 밖에 읽어보지 못했지만 저자인 오가와 이토의 작품은 음식을 소재로 한 따듯한 이야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책에는 사연과 편지 뿐 아니라 한 번에 여러가지 맛을 즐길 수 있는 샌드위치 밥버전이라는 오니기라즈 등의 맛집이나 음식에 관한 묘사도 자주 나온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지명과 맛집은 츠바키 문구점을 제외하고 정말 실재로 존재하는 곳이라고 한다. 책의 후기에 보면 역자의 가마쿠라 여행기를 살짝 맛볼 수 있는데 나 또한 진심으로 가마쿠라에 여행가고 싶어지는 글이었다. 마지막에는 실제로 앞의 소설과는 재질이 다른 종이에 본문에 나온 편지들이 수록되어있어 묘한 느낌을 준다.
편지의 복잡한 규칙과 형식에 연연하다 보면 어깨에 힘이 들어간 딱딱한 편지가 되어서 어색하다. 요는 사람을 대할 때와 같아서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예의를 갖추어 대하면, 결과적으로 이렇게 된다는 것뿐. 편지에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없다. - pp. 116-117
조문 편지를 쓸 때는 너무 슬퍼 눈물을 흘린 바람에 먹물이 연해졌다는 의미로 글씨를 연하게 쓴다는 정보도 얻었을 뿐만 아니라 가마쿠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따스한 온정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간만에 정말 따듯한 소설을 읽었다. 카톡으로 바로 대화를 할 수 있고, 이메일이라는 편리한 수단도 있는 현대에서 머잖아 사어가 될 지도 모른다는 '손편지'라는 아날로그적 소재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와 대필가 자신의 이야기를 소개해 준 오가와 이토에게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