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조금 달라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성은 공개적인 테마는 아니죠. 저는 성이나 섹스가 주제라면 어딘지 어둑한 곳에서 은밀하게 이야기해야할 것 같은 이미지가 떠오르네요. 여성의 시각으로 보는 성이란 더욱 그렇죠. 그렇기에 성을 시로 어떻게 표현했을지 기대되더라구요. 여성의 시각으로 쓴 책이라 더더욱 궁금했구요. 그렇게 '슬픈 쾌락주의자의 정직한 엉덩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시인 시랑의 파격적인 시집, '발칙한 섹스'를 읽어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신선하다는 감상이 먼저 들더라구요. 쌍년, 미친년 같은 센 욕들도 무수히 많이 나오고, 어떻게 보면 성에 자유로운 것을 넘어 성에 미쳐있는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욕을 들어도 까르르 웃어버리고 쾌락에 젖어 도덕따윈 던져버리죠. 금기를 비웃고 희열을 느낍니다. 노골적인 단어들과 은밀한 은유들이 한데 뒤섞여 에로티시즘이란 이런것이다 하고 보여주고 있더라구요.
다만 시 중에 이렇게나 비도덕적이라니 하고 느껴지는 것이 있어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성의 쾌락을 긍정하는 방식이라기엔 저는 비도덕적이지 않더라도 충분히 많은 쾌락과 즐거움을 느끼고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쾌락을 쫓는 행위가 금기, 터부와 필연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어느 정도의 도덕과 법규는 꼭 필요한거구요. 물론 이 발칙한 섹스라는 시집 안에는 그렇지 않은 시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하지만 역시 충격적인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모든 시의 수록이 끝난 후에는 시인과의 대화가 부록처럼 실려있어요. 여기서 시인 시랑이 생각하는 성과 사랑, 섹스에 대한 가치관을 엿볼 수 있어요. 시인 시랑이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되고, 어떤 생각으로 이런 시들을 썼는 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성에 대한 컨텐츠가 앗 뜨거! 하는 느낌이 아닌 일상적인 컨텐츠로 자리잡으려면 호불호를 가리지 않고 우선 많은 컨텐츠가 쏟아져나와야겠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특히 긍정적으로 보여집니다. 이런 시집이 나와도 '발칙하다', '도발적이다'라는 수식어가 붙는 대신 '좋다', 혹은 '좋지 않다'의 영역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보편적인 컨텐츠로 자리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성의 시점에서 쓴 당당한 성적 담론이 궁금하다면 읽어봐도 좋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