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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 아저씨 - 1912년 오리지널 초판본 ㅣ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진 웹스터 지음, 허윤정 옮김 / 더스토리 / 201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아저씨가 보내 주신 꽃은 제 인생에서 처음 받아 본 진실한 선물이었어요. 제가 얼마나 어린애 같았냐면요, 너무 행복해서 엎드려서 엉엉 울었답니다. - p. 60
제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가슴 설레본 이야기! 여기에 나오는 키다리 아저씨의 정체를 알게 되는 순간 머리에 느낌표가 뜨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참 오래된 고전이지만 아직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는 이야기예요. 뮤지컬로 각색된 공연을 본 게 이 작품을 만나본 것 중 가장 최근인데, 소설 키다리 아저씨가 1912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 디자인으로 출간되어 간만에 책으로도 다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서간체소설에 이렇게 설레게 만들다니 진 웹스터는 정말 대단해요!
인생에서 인격에 필요한 건 큰 문제가 생겼을 때가 아니에요. 큰 위기가 닥쳤을 때 용기를 가지고 일어서서 비극에 맞서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일상의 사소한 짜증거리들을 웃음으로 넘겨야 할 때, 바로 그런 때 정신력이 필요한거죠. 전 앞으로 바로 그런 정신력을 키울 겁니다. 인생을 '최대한 능수능란하고 정정당당하게 승부해야 하는 게임' 정도로 여기려고 해요. 그래서 져도 어깨 한 번 으쓱하고는 웃어넘길 거예요. 이길 때도 마찬가지고요. 말하자면, 저는 대범한 사람이 될 거예요. - p. 66
초반에만 소설체로 고아원의 맏이였던 제루샤가 키다리 아저씨의 후원을 받게 되는 내용이 서술되고, 그 이후로는 끝까지 주디의 편지로만 이야기가 진행되죠. 독자들은 제루샤의 시선으로만 상황을 알 수 있어요. 제루샤가 후원을 받고 나서의 기쁜 느낌, 처음 겪게 되는 대학생활. 그로 인한 설렘과 처음 사귄 친구. 주디라는 애칭에 관한 제루샤의 감상. 주위 친구들과 다른 환경에서 자라와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 여기는 것'에서 느끼는 소외감. 극복해나가는 과정. 공부에서 느끼는 성취감과 낙담. 가족에 대한 갈망. 키다리 아저씨에게 느끼는 기대감과 실망. 작가가 되기 위한 여정. 그 모든것을 주디와 함께 공유해요.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는 건 서글픈 일이예요. 그런데 한편으론 설레고 낭만적이기도 해요. 아주 많은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 p. 102
재미있는 점은 주디의 편지를 읽는 내내 편지 뒤에 있는 키다리 아저씨에 대해 느낄 수 있다는 점이죠. 어렸을 때는 그냥 와 이럴수가! 하고 끝났던 감상이 지금 알고 다시 읽으니 상당히 다르네요. 처음 읽었을 때 키다리 아저씨는 무생물같았죠. 반응도 별로 없고 그냥 주디가 벽에 대고 혼잣말 하는 느낌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정체를 알기 전까지는 주디의 친구보다도 오히려 별 존재감이 없었어요. 하지만 이제 누군지 알고 다시 읽으니 주디가 아플 때 보내진 꽃과 편지 이후로 주디의 편지에서 키다리 아저씨에 대해 확실히 느낄 수 있어요. 주디에게 반응을 보이는 게 무척 재미있더라구요!
엄청나게 커다란 기쁨만 중요한 게 아녜요. 작은 것에서부터 큰 기쁨을 끌어내는 것, 그게 바로 행복의 참된 비결이고, 그러려면 바로 현재를 살아야 해요! 지난 일을 영원히 후회하거나 다가올 미래를 걱정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최대한으로 사는 거예요. - p. 165
그래서 그런지 예전에는 소설 속 키다리 아저씨가 어딘가 좀 초월적 존재로 여겨졌다면, 지금은 완전하지 않은 한 남성의 모습으로 읽혀져요. 처음엔 여자아이를 질색해서 남자아이들만 후원하다가, 어쩌다 작가의 자질이 보인 눈이 가는 여자아이를 후원하게 되었다가, 점점 관심이 가게 되고, 직접 만나도 보고, 남자들이 있는 파티에 간다니 못 가게도 해보고, 자립한 제루샤가 자신의 판단으로 나아가며 자신이 간섭하기 어려워지자 질투도 하고. 그 모든 게 그 사람의 시선이 아닌데도 제루샤의 편지만으로도 훤히 읽혀져서 실소를 흘리게 되더라구요.
"주디 양, 내가 키다리 아저씨라는 걸 정말 몰랐나요?" - p. 220
이런 두 사람의 관계성만이 아니라 제루샤의 편지 자체가 정말 재미있어요! 이렇게 재미있게 편지를 쓰는 사람이 제루샤 말고 또 있을까요. 그 날 그 날 공부한 것에 따라 편지의 형식이 바뀌기도 하고, 담은 내용이 달라지기도 하지요. 수신인과 발신인도 항상 같지 않고 주디의 재치있는 면모가 보여요. 그리고 편지 안에서 성장해가는 제루샤를 보는 일도 참 즐거운 일입니다. 작가를 꿈꾸는 제루샤가 처음으로 글로 돈을 벌었을 때는 제가 성공한 것마냥 기쁘기도 했구요
당신이 사무치게 그리워요, 저비. 하지만 정말 행복한 그리움이네요. 우린 곧 함께할 테니까요. 멀리서 마음으로만 서로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린 진정 서로의 사랑이 되었어요. 제가 드디어 누군가의 사랑이 되다니 신기하지 않나요? 정말 정말 가슴이 설레요. 앞으로는 단 한순간도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거예요. - pp. 220-221
많은 매력을 가지고 있는 소설 키다리 아저씨. 고전은 지루하다는 편견도 옛말이죠. 이렇게 다시 봐도 재미있고 곱씹어봐도 재미있는 고전도 많으니까요. 읽으면서 읽는 사람도 행복하게 만들어주던 진 웹스터의 소설 키다리 아저씨. 옛날에 읽은 키다리 아저씨가 그립다면, 1921년 초판본 표지라 소장가치도 있는 더스토리의 소설 키다리 아저씨로 다시 한 번 제루샤를 만나봐도 좋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