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클래스메이트 1학기 + 2학기 - 전2권
모리 에토 지음, 권일영 옮김 / 스토리텔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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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가 늘어났다. 날마다 교실이 치즈루가 좋아하는 빛깔로 바뀌어 갔다. 햇볕 가득 내리쬐는 양달 같은 친구들의 빛깔. - 1학기 p. 14

모리 에토의 연작소설 클래스메이트 1학기, 2학기의 주인공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막 입학한 중학교에서 처음 만난 열 두명의 소녀와 열 두명의 소년 모두예요. 이렇게 총 24명의 학생이 1학년 A반의 구성원입니다. 새 학기의 두려움과 설렘을 한껏 안고 새로운 나를 찾고 싶어하는 치즈루부터 시작해 바톤을 이어가듯 각각의 클래스메이트들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아이들의 이름과 시간이 각 장이 되어 이야기는 순서대로 이어져가며 클래스메이트 사이의 연결고리를 파악할 수 있게 해주고, 각각의 고민이나 상황, 관심사를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처음에는 살짝. 그리고 소리가 하나. 또 하나 늘어나면서 멜로디가 차츰 부풀어 올랐다. 부풀어 오르고, 또 부풀어 올랐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연주하는 악기 소리가 겹치며 그 음색을 더욱 깊게 만들고 서로 북돋아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 갔다. 파도가 밀려 나가는 백사장에서 발아래 모래가 스르륵 움직이듯 치즈루의 마음이 그 소리로 끌려들어 갔다. - 1학기 pp. 22-23 

24명의 아이들에게는 각자 나름의 고민이 있습니다. 중학교 첫 학급에서 혼자가 되지 않기 위해 빨리 친구를 만들고 싶어 한다던지, 여태까지와 다른 나를 위해 특별한 활동을 하고 싶어 한다던지, 인기를 얻고 싶다던지, 외모를 가꾸고 싶어 한다던지, 이성관계나 친구관계에 고민이 있다던지, 집안문제를 밝히고 싶지 않다던지, 학교에 나가고 싶지 않다던지.. 정말 다양한 사연이 있죠. 이 고민은 각자의 사연이지만 점차 변화해 가는 과정에 다른 클래스메이트가 개입해 완전히 독립적이지도 않아 연이어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게 이 장면의 텍스트와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더라구요. 개별적으로 연주하는 악기가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고, 그게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면에서요.




소타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생각났다. 눈물이 나는 건 분할 때나 슬플 때가 아니라 항상 외로울 때였다. - 1학기 p. 64

끙끙 앓던 고민이 의외로 쉽게 풀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죠. 가정사라거나 비행청소년이나 등교거부 등 개인의 노력으로는 해결이 어려운 문제가 있으니까요. 모리 에토의 클래스메이트는 풋풋한 성장소설이니만큼 아주 나락으로 떨어질 정도의 심각함은 아니어서 이들 나름대로의 연대로 해결하고 성장해나갑니다. 그 와중에 클래스메이트의 다른 면모를 발견하기도 하고, 좌절이 성장을 이루어내기도 하고, 서먹하거나 잘 몰랐던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하죠.




신야와 가호. 두 사람이 교실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히로는 복도에 우두커니 서서 지켜보았다. 후지타 선생님이 깜짝 놀란 눈으로 두 사람을 돌아보는 모습을. 클래스메이트들의 박수 속에 꽃다발과 롤링 페이퍼를 선생님께 드리는 모습을. 후지타 선생님이 스물네 송이 꽃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들썩이는 모습을. 1년치 햇살을 응축시킨 듯 따스한 공기가 교실을 가득 채워 가는 모습을.  - 2학기 p. 265

등교거부 학생이었던 가호가 학교에 올 수 있게 만들어줬던 합창대회나 독특한 내기로 이슈가 된 오래달리기대회 등 학창시절만의 이벤트도 신선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소소한 복선도 다른 장에서 잘 회수해 깔끔하고 좋았던 모리 에토의 연작 소설 클래스메이트 1학기, 2학기. 각자의 시선으로 이어지기에 이 아이가 등장하는 장에서는 알 수 없었던 비밀이나 시각도 다른 장에서 진실을 알 수 있는 등 재미있는 점이 많았던 성장소설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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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외 서커스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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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서커스는 다 거짓말이었어. 우린 너희를 사냥하기 위해 뭉친 컨소시엄이야 - p. 26

장난감 수리공이라는 단편 이야기로 데뷔해 섬뜩함을 줬던 고바야시 야스미의 인외 서커스! 이번에는 서커스단과 흡혈귀의 대결을 그린 스릴러물을 그렸네요. 흡혈귀 사냥 컨소시엄이라는 특수부대가 서커스로 분해 흡혈귀와 서로를 사냥하는 초반부가 특히나 기억에 남는데요. 데이트를 즐기려는 분위기에서 갑자기 흡혈귀로 변하는 묘사도 상세하니 흥미로웠고, 그 변모에 놀라지 않고 침착하게 흡혈귀로 변해버린 여성을 사냥하는 장면이 놀라워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 사냥에서 흡혈귀가 도망쳐버렸다는 데 있지요.




서커스단은 의심받지 않고 각지를 돌아다닐 수 있어. 그리고 이동한 곳에서 훈련해도 이상할 게 없고. 거창한 장비도 서커스에 사용하는 장비라며 가지고 다니기도 쉽지. 무엇보다 주변에서 기묘한 일이 벌어져도 새로운 기술의 예행연습이나 선전이라고 대충 얼버무릴 수 있어. 그렇게 일반인인 척하며 흡혈귀를 쓰러뜨리고 돌아다니는 거야. - p. 49

이쯤 되면 느낌이 옵니다. 아 착각으로 인해 불쌍한 서커스가 고난을 겪게 되겠구나 하구요. 아니나 다를까 흡혈귀들은 다른 평범한 서커스단을 목표로 하고 습격을 하게 됩니다. 이 서커스단은 인크레더블 서커스단으로 흡혈귀와 관계 없는 보통 사람들이죠. 경영 악화로 인해 큰 텐트를 작은 텐트로 바꾸고 단원도 고작 열 명 남짓 남아 위기에 처해 있는 곳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꾸려나갈지에 대해 사소한 마찰이 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꾸려나가려는 성실한 사람들이기도 하구요. 이 서커스단의 인원 중 마술사인 란도의 랜디라는 별명이 흡혈귀 사냥 컨소시엄의 사람과 같다는 점이 불행의 원인이 되게 됩니다.




그 남자는 자신은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겠지. 그러나 사실은 반대였어. 인간은 반드시 실패하지. 실패를 생각하지 않는 인간은 어리석은 법이야. - p. 166

이미 오해를 사버렸으니 살아남기 위해서는 필사적일 수밖에 없죠. 흡혈귀의 강한 능력과 대항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방심을 노리고 주위의 모든 것을 이용할 수 있는 순발력과 결단력이 필요합니다. 고바야시 야스미의 인외 서커스에서는 대항하는 사람들이 서커스 단원이니만큼 다양한 묘기와 재치가 엿보이는데요. 보통 사람들을 넘어서는 신체능력과 서커스 도구, 야수들로 신박한 싸움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만큼 잔혹하구요. 끔찍한 걸 어려워하는 사람이라면 저어할 정도로 고어적인 묘사가 곳곳에 나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거기에 의문의 흡혈귀 사체까지 복선이 더해지며 이야기에 미스터리함이 가해지는데요. 주인공 격인 란도는 점차 이상한 점을 깨닫게 되고 여기서 반전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모든 게 예상대로 진행되기는 어렵다. 아무리 완벽한 계획을 세우더라도 반드시 뜻밖의 요소가 섞이기 마련인데, 란도처럼 자신의 계획에 절대적인 자신을 가진 인간이야말로 뜻밖의 사건에 약한 법이다. 너무나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서 전혀 빈틈이 없기에 조금의 변경도 불가능한 것이다. - p. 186

흡혈귀들이 툭툭 던지는 대사와 곳곳의 단서에서 유추할 수 있는 반전도 있는 고바야시 야스미의 인외 서커스. 평소에도 작가의 잔혹한 묘사를 흥미롭게 봤는데 인간이 아닌 자들이 나와 더 깊어진 고어적인 묘사가 눈에 확 들어오네요. 특히나 다른 작품에서도 나오는 도쿠라는 노인이 나와 위기의 서커스 단원을 슬쩍 도와주는 면에서 고바야시 야스미의 다른 작품이 생각나기도 하고 흡혈귀 vs 평범한 서커스 단원이라는 한 쪽으로 치우쳐진 대결구도에서 좀 더 해볼만한 쪽으로 분위기가 변해가는 점도 재미있게 봤어요. 마술사인 란도와 단장 피에로, 오토바이 곡예사 쿠와이, 맹수 사육사 레이라, 공중그네 커플 진과 리지, 아트로바틱 커플 기프티와 비스트리, 활쏘기 명인 슈티, 마술사 조수 아야미까지.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서커스 단원들이 펼치는 목숨을 건 지상 최대의 쇼! 더운 여름에 시원하게 즐길 수 있는 잔혹 스릴러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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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공장
엘리자베스 맥닐 지음, 박설영 옮김 / B612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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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손에 넣었다. 그만의 딸기 절임. - p. 28


향수와 미니어처리스트 둘 다 재미있게 읽은 작품인데 이 둘을 읽는 매혹적인 작품이라고 해서 궁금했던 소설 인형공장. 무엇보다 표지가 흥미롭더라구요. 대체 무슨 상징을 담고 있는 것일지.. 특히 여성의 자율권에 대해 다루고 있는 스릴러라고 해서 기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표지의 유리돔 안에 갇혀있는 여자가 더 눈에 띄었구요. 책소개에 있던 몇 구절을 봤을 때도 딱 제가 좋아할 것 같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가끔은 이 거울들이 싫어요. 또 하나의 왜곡된 나를 보는 것 같아서. 하지만 그림을 그릴 땐 물체를 다차원적으로 볼 수 있죠. 그럴 땐 마법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 p. 135


한 가지 생각해야 할 점은 여성의 자율권에 대해 다룬다는 것은 그것이 미흡한 시대가 배경일 확률이 높다는 점인데요. 엘리자베스 맥닐의 소설 인형공장 에서도 낮은 여성 인권에 눈살이 찌푸려질 지경입니다. 성의 속박, 직업의 비선택권, 부모의 억압, 주위 환경이 가하는 가스라이팅.. 현대를 살고 있는 사람이 보기엔 숨막힐 정도입니다. 그 안에서 그나마 평온하게 살아가려면 세상이 원하는 여성상에 맞춰야하는데 불행히도 주인공 아이리스는 뚜렷하게 하고 싶은 것이 있었던거예요. 그게 바로 그림이죠.


아이리스는 살면서 한 번도 선택이라는 사치를 누려보지도, 인생을 바꿀 권리가 있다고 느껴보지도 못했다. 속일 울렁거렸다. 개기름이 번들거리는 짐꾼, 숱하게 먹게 될 역한 스튜, 일하느라 벌겋게 부르튼 손을 떠올린 다음 그녀는 지금의 이 기회를 생각했다. 새로운 삶. 그림. 그리고 루이. - p. 140


하지만 당시 여자가 화가가 되는 건 요원한 일이었죠. 왕립 미술원에서는 여자에게 미술교육을 하지도 않았다고 하니까요. 모든 분야가 그랬든 그림 또한 남성지배적인 분야였고, 그림에서 나타나는 시선 또한 그랬죠. 그래서 소설 인형공장 속 아이리스는 일과시간에는 인형가게 안에서 인형의 얼굴과 손에 색을 칠하는 작업을 했고, 밤에는 몰래 그림을 그리곤 합니다. 하지만 어릴 적 병을 앓고 난 뒤 뛰어난 외모를 잃고 자신에게 박탈감과 미움을 가지고 있는 쌍둥이 언니 로즈에게 이 사실을 들키게 되며 전개는 급 물살을 타게 됩니다.


아이리스는 벽지 무늬를 손끝으로 따라 그리며 생각했다. 나는 살아 있다... 내 인생은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아이리스는 자신의 피가 행복, 사랑, 웃음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채워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난생 처음 죽음이 두려웠다. 언젠가 영혼이 몸을 떠나고, 생기가 사라질 거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서 손을 응시했다. 그림 속 아이리스의 얼굴은 현재 모습을 그대로 보존한 채 그녀보다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절대 고갈되지 않을 것 같은 기쁨이 그녀를 가득 채웠다.  - p. 203


자신의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안정적인 인형가게에서 나와 루이라는 화가의 모델을 하며 그림에 대해 배우게 되는 아이리스. 당시 모델은 창녀와 다름없는 취급을 받고,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그림에 대한 갈망으로 아이리스는 모델의 삶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런 와중 박제품을 만들고, 언젠가 그 물품들로 전시를 하기를 꿈꾸는 수집가 사일런스의 눈에 띄게 되죠. 아이리스의 뒤틀린 쇄골과 분위기에서 혼자 이상적인 아이리스를 상상하고 망상을 키워나가는 와중, 앨빈이라는 소년에게 계획을 엿보이고 점점 사건은 심각해져가는데요. 이러한 스릴러적인 면도 당시의 여자에 대한 시대적 관점을 보여줘서 처절하다는 느낌을 주던 엘리자베스 맥닐의 소설 인형공장. 인형가게에서 나와 첫 발을 내딛었던 아이리스의 설렘과 불안은 지금도 살짝 공감가는 측면이 있기에 앞으로의 아이리스를 응원하고 싶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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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 아저씨 - 1912년 오리지널 초판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진 웹스터 지음, 허윤정 옮김 / 더스토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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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가 보내 주신 꽃은 제 인생에서 처음 받아 본 진실한 선물이었어요. 제가 얼마나 어린애 같았냐면요, 너무 행복해서 엎드려서 엉엉 울었답니다. - p. 60


제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가슴 설레본 이야기! 여기에 나오는 키다리 아저씨의 정체를 알게 되는 순간 머리에 느낌표가 뜨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참 오래된 고전이지만 아직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는 이야기예요. 뮤지컬로 각색된 공연을 본 게 이 작품을 만나본 것 중 가장 최근인데, 소설 키다리 아저씨가 1912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 디자인으로 출간되어 간만에 책으로도 다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서간체소설에 이렇게 설레게 만들다니 진 웹스터는 정말 대단해요!

 

 


인생에서 인격에 필요한 건 큰 문제가 생겼을 때가 아니에요. 큰 위기가 닥쳤을 때 용기를 가지고 일어서서 비극에 맞서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일상의 사소한 짜증거리들을 웃음으로 넘겨야 할 때, 바로 그런 때 정신력이 필요한거죠. 전 앞으로 바로 그런 정신력을 키울 겁니다. 인생을 '최대한 능수능란하고 정정당당하게 승부해야 하는 게임' 정도로 여기려고 해요. 그래서 져도 어깨 한 번 으쓱하고는 웃어넘길 거예요. 이길 때도 마찬가지고요. 말하자면, 저는 대범한 사람이 될 거예요. - p. 66


초반에만 소설체로 고아원의 맏이였던 제루샤가 키다리 아저씨의 후원을 받게 되는 내용이 서술되고, 그 이후로는 끝까지 주디의 편지로만 이야기가 진행되죠. 독자들은 제루샤의 시선으로만 상황을 알 수 있어요. 제루샤가 후원을 받고 나서의 기쁜 느낌, 처음 겪게 되는 대학생활. 그로 인한 설렘과 처음 사귄 친구. 주디라는 애칭에 관한 제루샤의 감상. 주위 친구들과 다른 환경에서 자라와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 여기는 것'에서 느끼는 소외감. 극복해나가는 과정. 공부에서 느끼는 성취감과 낙담. 가족에 대한 갈망. 키다리 아저씨에게 느끼는 기대감과 실망. 작가가 되기 위한 여정. 그 모든것을 주디와 함께 공유해요.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는 건 서글픈 일이예요. 그런데 한편으론 설레고 낭만적이기도 해요. 아주 많은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 p. 102


재미있는 점은 주디의 편지를 읽는 내내 편지 뒤에 있는 키다리 아저씨에 대해 느낄 수 있다는 점이죠. 어렸을 때는 그냥 와 이럴수가! 하고 끝났던 감상이 지금 알고 다시 읽으니 상당히 다르네요. 처음 읽었을 때 키다리 아저씨는 무생물같았죠. 반응도 별로 없고 그냥 주디가 벽에 대고 혼잣말 하는 느낌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정체를 알기 전까지는 주디의 친구보다도 오히려 별 존재감이 없었어요. 하지만 이제 누군지 알고 다시 읽으니 주디가 아플 때 보내진 꽃과 편지 이후로 주디의 편지에서 키다리 아저씨에 대해 확실히 느낄 수 있어요. 주디에게 반응을 보이는 게 무척 재미있더라구요!

 

 


엄청나게 커다란 기쁨만 중요한 게 아녜요. 작은 것에서부터 큰 기쁨을 끌어내는 것, 그게 바로 행복의 참된 비결이고, 그러려면 바로 현재를 살아야 해요! 지난 일을 영원히 후회하거나 다가올 미래를 걱정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최대한으로 사는 거예요. - p. 165


그래서 그런지 예전에는 소설 속 키다리 아저씨가 어딘가 좀 초월적 존재로 여겨졌다면, 지금은 완전하지 않은 한 남성의 모습으로 읽혀져요. 처음엔 여자아이를 질색해서 남자아이들만 후원하다가, 어쩌다 작가의 자질이 보인 눈이 가는 여자아이를 후원하게 되었다가, 점점 관심이 가게 되고, 직접 만나도 보고, 남자들이 있는 파티에 간다니 못 가게도 해보고, 자립한 제루샤가 자신의 판단으로 나아가며 자신이 간섭하기 어려워지자 질투도 하고. 그 모든 게 그 사람의 시선이 아닌데도 제루샤의 편지만으로도 훤히 읽혀져서 실소를 흘리게 되더라구요.

 

 


"주디 양, 내가 키다리 아저씨라는 걸 정말 몰랐나요?"  - p. 220

 

이런 두 사람의 관계성만이 아니라 제루샤의 편지 자체가 정말 재미있어요! 이렇게 재미있게 편지를 쓰는 사람이 제루샤 말고 또 있을까요. 그 날 그 날 공부한 것에 따라 편지의 형식이 바뀌기도 하고, 담은 내용이 달라지기도 하지요. 수신인과 발신인도 항상 같지 않고 주디의 재치있는 면모가 보여요. 그리고 편지 안에서 성장해가는 제루샤를 보는 일도 참 즐거운 일입니다. 작가를 꿈꾸는 제루샤가 처음으로 글로 돈을 벌었을 때는 제가 성공한 것마냥 기쁘기도 했구요

 

 


당신이 사무치게 그리워요, 저비. 하지만 정말 행복한 그리움이네요. 우린 곧 함께할 테니까요. 멀리서 마음으로만 서로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린 진정 서로의 사랑이 되었어요. 제가 드디어 누군가의 사랑이 되다니 신기하지 않나요? 정말 정말 가슴이 설레요. 앞으로는 단 한순간도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거예요. - pp. 220-221

 

많은 매력을 가지고 있는 소설 키다리 아저씨. 고전은 지루하다는 편견도 옛말이죠. 이렇게 다시 봐도 재미있고 곱씹어봐도 재미있는 고전도 많으니까요. 읽으면서 읽는 사람도 행복하게 만들어주던 진 웹스터의 소설 키다리 아저씨. 옛날에 읽은 키다리 아저씨가 그립다면, 1921년 초판본 표지라 소장가치도 있는 더스토리의 소설 키다리 아저씨로 다시 한 번 제루샤를 만나봐도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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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마법사 1 - 오즈의 위대한 마법사, 1900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라이먼 프랭크 바움 지음, 손인혜 옮김, 윌리엄 월리스 덴슬로우 그림 / 더스토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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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이 이야기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환상의 나라 오즈! 그리운 이 이야기가 출간 120주년 기념으로 더스토리에서 초판본에 양장본으로 출간이 되었습니다. 오즈의 마법사 시리즈는 14권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이야기라고 하는데요. 어렸을 땐 가장 첫 시리즈인 이 오즈의 위대한 마법사만 읽어봤던 것 같네요. 2권부터 14권까지 이어지는 환상의 이야기를 쭉 읽어보고 싶어 소설 오즈의 마법사 시리즈가 계속 출간되길 바래봅니다.

 

 


아무리 황량하고 따분하다 해도 사람들은 세상 어떤 아름다운 곳보다 고향에서 살고 싶어 해. 세상에서 고향만 한 곳은 없거든 - . p. 41


이 이야기는 도로시와 허수아비, 그리고 양철나무꾼과 겁쟁이 사자가 등장하는 흥미진진한 모험 이야기죠. 캔자스 대초원에 살고 있는 평범한 소녀 도로시는 어느 날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낯설고 아름다운 오즈 왕국에 도착하게 됩니다. 집 째로 옮겨진 도로시는 동쪽 먼치킨의 나라를 통치하던 사악한 마녀가 도로시의 집에 깔려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요. 나쁜 지배자를 놀라운 방법으로 없앤 도로시는 위대한 마법사로 여겨지죠.

 

 


난 심장이 더 좋아. 뇌는 사람을 더 행복하게 해 주지는 못해. 행복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거니까. - p. 57


상황을 파악한 도로시는 충분히 아름다운 나라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살던 곳에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게 되는데요. 도로시에게 돌아갈 방법을 알려 줄 사람이 이 곳에 없다는 것을 알게되자 불쌍하게도 훌쩍훌쩍 울고 맙니다. 이 장면에서 가장 감정이입이 되었는데요. 흔히 새로운 세상으로 떨어진 사람들은 각자 잘 적응하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나가는데 저는 아무리 현재 자신보다 더 나은 상황에 떨어지게 된다고 해도 바로 적응하는 인물들에 잘 납득이 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자신의 상황에 두려워하던 도로시가 돌아가기 위해 용기를 내는 부분이 참 좋더라구요.

 

 


그곳에 일 년을 서 있는 동안 난 내가 잃은 것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했어. 그것은 심장이었어. 내가 사랑에 빠졌을 때 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였어. 하지만 심장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사랑을 할 수 있겠니. 그래서 난 오즈에게 심장을 달라고 부탁하기로 한 거야. - p. 56


소설 오즈의 마법사 시리즈 1 오즈의 위대한 마법사에서 도로시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여정에서 여러 친구를 만나게 됩니다. 북쪽 마녀가 도로시를 함부로 해치지 않도록 해준 입맞춤을 시작으로 홀로 떠난 길에서 허수아비를 가장 먼저 동료로 만나게 됩니다. 집으로 보내달라는 소원을 위해 오즈의 마법사에게 간다는 도로시의 말을 듣고 허수아비는 사람들이 자신을 바보라고 부르지 않도록 뇌를 달라고 하려고 모험에 합류하죠. 그리고 조금 더 지나 수상한 신음소리를 통해 양철나무꾼을 만나게 됩니다. 사랑을 위해 결혼을 원한 양철나무꾼은 결혼을 방해하려는 마녀 덕분에 팔과 다리, 머리까지 잘린 후 양철로 된 몸을 가지게 되었는데요. 이 사랑을 지키기 위해 심장을 오즈의 마법사에게 달라고 하고 싶어 여행에 합류합니다. 정말 로맨틱한 이유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자는 겁쟁이인 자신을 변화시키고자 용기를 달라고 하기 위해 따라오게 됩니다. 이렇게 넷은 긴 여정을 떠나게 되죠.

 

 

 
그리고 소설 오즈의 마법사에서는 역시나 순탄치 않은 여정이 이어집니다. 강을 건너다가 장대를 잡고있던 허수아비가 낙오될 뻔 하고, 양귀비 꽃이 잔뜩 피어있는 곳에서는 도로시와 사자가 잠이 들기도 하죠. 서로를 위한 마음으로 위기를 극복한 그들은 마침내 에메랄드시에 도착하는데요. 오즈마법사는 하루에 한 명씩만 그들을 만나기로 하고, 그들은 모두 서쪽의 사악한 마녀를 죽여야지만 부탁을 들어준다는 대답을 받게 됩니다. 오즈마법사는 신기하게도 모습이 항상 바뀌었는데요. 도로시는 눈코입만 있는 거대한 머리를 보았고, 허수아비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인을 보았고, 양철 나무꾼은 무서운 짐승을 봤고, 사자는 뜨겁게 타오르는 불덩이를 봤죠. 모두 다른 모습을 봤다는 것에 신기해하는 한편 마녀를 죽이고 싶지 않은 넷은 슬퍼하는데요. 방법이 없던 그들은 우선 서쪽으로 가보기로 하는거죠. 그렇게 간 서쪽에서 사악한 마녀를 만난 도로시일행은 갇히고, 노예로 부려지게 되는데요. 마녀의 탐욕 덕분에 도로시가 행한 행동으로 일은 술술 풀리게 됩니다. 도로시 일행은 과연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수 있을까요? 흥미진진한 모험이 재미있던 소설 오즈의 마법사. 재미있게 읽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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