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외 서커스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0년 6월
평점 :
미안. 서커스는 다 거짓말이었어. 우린 너희를 사냥하기 위해 뭉친 컨소시엄이야 - p. 26
장난감 수리공이라는 단편 이야기로 데뷔해 섬뜩함을 줬던 고바야시 야스미의 인외 서커스! 이번에는 서커스단과 흡혈귀의 대결을 그린 스릴러물을 그렸네요. 흡혈귀 사냥 컨소시엄이라는 특수부대가 서커스로 분해 흡혈귀와 서로를 사냥하는 초반부가 특히나 기억에 남는데요. 데이트를 즐기려는 분위기에서 갑자기 흡혈귀로 변하는 묘사도 상세하니 흥미로웠고, 그 변모에 놀라지 않고 침착하게 흡혈귀로 변해버린 여성을 사냥하는 장면이 놀라워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 사냥에서 흡혈귀가 도망쳐버렸다는 데 있지요.
서커스단은 의심받지 않고 각지를 돌아다닐 수 있어. 그리고 이동한 곳에서 훈련해도 이상할 게 없고. 거창한 장비도 서커스에 사용하는 장비라며 가지고 다니기도 쉽지. 무엇보다 주변에서 기묘한 일이 벌어져도 새로운 기술의 예행연습이나 선전이라고 대충 얼버무릴 수 있어. 그렇게 일반인인 척하며 흡혈귀를 쓰러뜨리고 돌아다니는 거야. - p. 49
이쯤 되면 느낌이 옵니다. 아 착각으로 인해 불쌍한 서커스가 고난을 겪게 되겠구나 하구요. 아니나 다를까 흡혈귀들은 다른 평범한 서커스단을 목표로 하고 습격을 하게 됩니다. 이 서커스단은 인크레더블 서커스단으로 흡혈귀와 관계 없는 보통 사람들이죠. 경영 악화로 인해 큰 텐트를 작은 텐트로 바꾸고 단원도 고작 열 명 남짓 남아 위기에 처해 있는 곳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꾸려나갈지에 대해 사소한 마찰이 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꾸려나가려는 성실한 사람들이기도 하구요. 이 서커스단의 인원 중 마술사인 란도의 랜디라는 별명이 흡혈귀 사냥 컨소시엄의 사람과 같다는 점이 불행의 원인이 되게 됩니다.
그 남자는 자신은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겠지. 그러나 사실은 반대였어. 인간은 반드시 실패하지. 실패를 생각하지 않는 인간은 어리석은 법이야. - p. 166
이미 오해를 사버렸으니 살아남기 위해서는 필사적일 수밖에 없죠. 흡혈귀의 강한 능력과 대항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방심을 노리고 주위의 모든 것을 이용할 수 있는 순발력과 결단력이 필요합니다. 고바야시 야스미의 인외 서커스에서는 대항하는 사람들이 서커스 단원이니만큼 다양한 묘기와 재치가 엿보이는데요. 보통 사람들을 넘어서는 신체능력과 서커스 도구, 야수들로 신박한 싸움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만큼 잔혹하구요. 끔찍한 걸 어려워하는 사람이라면 저어할 정도로 고어적인 묘사가 곳곳에 나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거기에 의문의 흡혈귀 사체까지 복선이 더해지며 이야기에 미스터리함이 가해지는데요. 주인공 격인 란도는 점차 이상한 점을 깨닫게 되고 여기서 반전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모든 게 예상대로 진행되기는 어렵다. 아무리 완벽한 계획을 세우더라도 반드시 뜻밖의 요소가 섞이기 마련인데, 란도처럼 자신의 계획에 절대적인 자신을 가진 인간이야말로 뜻밖의 사건에 약한 법이다. 너무나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서 전혀 빈틈이 없기에 조금의 변경도 불가능한 것이다. - p. 186
흡혈귀들이 툭툭 던지는 대사와 곳곳의 단서에서 유추할 수 있는 반전도 있는 고바야시 야스미의 인외 서커스. 평소에도 작가의 잔혹한 묘사를 흥미롭게 봤는데 인간이 아닌 자들이 나와 더 깊어진 고어적인 묘사가 눈에 확 들어오네요. 특히나 다른 작품에서도 나오는 도쿠라는 노인이 나와 위기의 서커스 단원을 슬쩍 도와주는 면에서 고바야시 야스미의 다른 작품이 생각나기도 하고 흡혈귀 vs 평범한 서커스 단원이라는 한 쪽으로 치우쳐진 대결구도에서 좀 더 해볼만한 쪽으로 분위기가 변해가는 점도 재미있게 봤어요. 마술사인 란도와 단장 피에로, 오토바이 곡예사 쿠와이, 맹수 사육사 레이라, 공중그네 커플 진과 리지, 아트로바틱 커플 기프티와 비스트리, 활쏘기 명인 슈티, 마술사 조수 아야미까지.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서커스 단원들이 펼치는 목숨을 건 지상 최대의 쇼! 더운 여름에 시원하게 즐길 수 있는 잔혹 스릴러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