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 ㅣ 페미니스트 크리틱 1
김은실.권김현영.김신현경 외 지음, 김은실 엮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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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인으로, 타자로 자신을 인식하고 동시에 다른 여성과 타자로서 동일시하게 되는 경험은 대단한 계몽의 순간이다.
그러나 계몽의 순간이 ‘앎‘의 끝은 아니다. 
그다음 순간에 제기되는 질문은 최초에 제기되었던 질문과 경합하고, 또 질문들끼리 맞물려 더이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교착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여성들 사이의 차이는 어떻게 볼지, 모든 남성이 평등하지 않을 때 남성과의 평등이라는 문제에서 누구와 평등을 추구해야 할지, 남성은 모두 가해자인지 등 많은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의 상황과 젠더 권력 관계의 절합을 드러내면서 새로운 문제 제기 방식, ‘더 나은 해결을 위한 논쟁, 이론화 방식을 모색하기 위해 쓰였다. 
이를 위해 필자들은 현재 여성들이 직면한 이슈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젠더에 관한 기존의 시각, 사유 방식과 문제 제기의 틀 자체가 변화되어야 함을 제안한다.
다양한 필자들의 문제의식과 질문을 하나의 책으로 엮어내기 위해서는 많은 노동이 필요하다. 
이 책이 나오는 데 생각과 에너지를 보태준 권김현영, 김주희, 정희진에게 감사한다. 
특히 페미니스트 지성 공동체에 대한 열정으로 이 책이 완성되는 데 최선을 다한 정희진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그녀 특유의 성실성, 필자 모두와의 우정과 신뢰가 이책의 탄생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더딘 작업을 기다려준 휴머니스트 편집부에도 미안함과 감사함을 전한다.
2018년 6월
김은실

머리말 004
서장 페미니스트 크리틱, 새로운 세계를 제안하다-・김은실008
1장 성폭력 폭로 이후의 새로운 문제, 피해자화를 넘어•권김현영031
2장 여성이 군대가면 평등해질까: 신자유주의 시대의 병역과 젠더- 정희진
3장 성매매 여성 ‘되기‘의 문화경제055-・김주희
4장 신자유주의 시대 10대 여성의 자기 보호와 피해-・민가영077099

(5장) 여자 아이돌/걸그룹과 샤덴프로이데:아이유의 《챗셔>논란 다시 읽기-김신현경
6장 10대 여성의 디지털 노동과 ‘소녀성‘
-김애라
7장 저출산 담론과 젠더: 여성주의 비판과 재해석-서정애
8장 다문화 시대 이주 여성의 이름과 젠더-이해응주 21912141719

서장
페미니스트 크리틱, 새로운 세계를 제안하다
김은실
페미니스트 크리틱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여성‘과 관련한 지식은 어떻게 생산되는가. 
가부장제 사회에서 상징으로서, 규범으로서 정의되어왔던 ‘여성‘의 개념에 도전하고 균열을 내는페미니스트 크리틱(feminist critique)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그 의미가 획득되는가. 
페미니스트는 어떤 방식의 언어와 글쓰기 양식을 가질 수 있으며, 그 글쓰기 양식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언어가 수행하는 담론의 권력은 어떤 맥락이 있을 때 작동하는가. 나는 이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여성학 수업에서 세 명의 페미니스트를 ‘지금, 여기‘에 초대하곤 한다. 

20세기 전반기, 여성 지식인으로 자신을 정체화했던 세 명의 페미니스트. 식민지 조선의 나혜석, 
영국의 버지니아 울프 
그리고 프랑스의 시몬 드 보부아르다.1

세 사람은 동시대에 살았지만, 역사적 공간은 달랐다. 나혜석은 일

제 식민지 공간에, 
울프와 보부아르는 제국주의 침략을 주도하는 제국의 수도에 살았던 페미니스트다. 
각자 다른 위치에 있던 여성들이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는 방식을 살펴보는 것은, 이후 더 나은 방식으로 젠더 정치를 비판하고자 하는 페미니스트에게 생각을 여는 좋은 계기가될 수 있다.

1929년을 기점으로 세 페미니스트의 삶의 여정을 살펴보자. 나혜석은 1929년에 유럽과 미국 여행을 마치고 조선으로 돌아온다. 1929년에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을 쓴다. 1929년에 보부아르는 사르트르를 만나 계약 결혼을 하고 고등학교 철학교사로 일하기 시작하며,
1949년에 <제2의 성》을 출판한다.
세계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여성도 사람임을 주장한 나혜석은, 남녀가 불평등한 사회 구조 속에서 여성이 어떻게 여성의 조건을 극복하여 인간이 될 수 있는가를 질문하면서 자신의 삶이 성 역할에 종속된 현실을 참지 못한다. 
그래서 사회를 향해 자신이 처한 삶의 곤경을 드러내는데, 그 형식은 자기 진술 혹은 자기 고백의 형식을 띤다. 신여성 나혜석은 결혼 전후로 극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근대적 인간은 남성으로 대표되기 때문에 나혜석은 남성과 동일시하며 여성도 사람이라고 주장하지만, 결혼 이후에는 이전에 그토록 자신이 비판하고 떨쳐버리고 싶었던 ‘여성‘과 더 유사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자신과 구여성의 공통적인 경험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2나혜석이 자신의 삶이 신남성보다 여성과 더 비슷하다는 인식과 자신이 ‘여자‘라는 구조적 조건을 이해하게 되는 것은, 유럽과 미국 여행에서 서구 여성들을 보고 돌아와 이혼하고 난 후였다. 나혜석이 여성

의성 역할에 대해 질문을 제기하고 또 답을 찾는 모든 출처는 바로 자신의 경험이었다. 나혜석은 그 경험을 거의 모두 잡지에 발표했는데,
그 길이는 몇 페이지를 넘지 못했다. 자기를 설명할 다른 여성들의 이야기도, 여성의 삶을 설명하는 다른 참고문헌도 전혀 없었다. 나혜석은1948년에 행려병자로 사망한다. 2000년대 나혜석 전집을 읽는 한국 여성들은 나혜석의 고민과 현재 자신의 고민이 같다는 사실에 놀란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당시 영국 사회에서 남성 지식인들은 케임브리지 대학 도서관에서 오랜 시간 동안 사서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많은 참고문헌을 사용하며 ‘논문‘을 쓰는 데 반해, 여성들은시간의 단속성과 장소의 불연속성 속에서 참고문헌도 필요하지않은 ‘소설‘을 쓰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래서 여성이 자신의 생각을개념화하고 논쟁하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과 1년간 글을쓸 수 있도록 500파운드의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울프는 여성의 독립에 필요한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는 사유 능력과 자기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을 갖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울프에게 ‘여성‘은 자신만이 아니라 이미 복수로 존재하는 같은 역사적·사회적 조건에서 기인하는 구체적인 사회적 존재들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1908년에 태어났다. 그녀는 1929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당시 프랑스 사회는 공화정이도래한 1880년대부터 1914년까지 조직적인 여성운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는 제1차 세계대전, 경제공황,
전체주의, 제2차 세계대전 등의 혼란기를 겪고, 1930년대 파시즘이 국제 평화를 위협하게 되면서 위기를 맞는다. 여성의 자리는 가정임이 재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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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처진 새

철새 떼가, 남쪽에서 날아오며
도나우강을 가로지를 때면, 나는 기다린다
뒤처진 새를

그게 어떤 건지, 내가 안다
남들과 발맞출 수 없다는 것
어릴 적부터 내가 안다
뒤처진 새가 머리 위로 날아 떠나면
나는 그에게 내 힘을 보낸다

-오늘 새가 팩스기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몹시 기뻤습니다!
감사합니다! 라이너 쿤체.

천 마디를 갈음하는 위로의 말이었습니다. 시인 스스로가 어려서부터 몹시 병약했고, "남들과 발맞추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는 분입니다. 지금도 작은 체구에, 불면 꺼질 듯 몸이 가벼우신데 그 남


시는 메타포를 통해 힘을 얻습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는 것이 있지요. 사람의 마음속을 오가는 것, 시인은 그얽힘, 착종을 들여다보고 헤아리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아직도 젊은, 그러나 깊어진 눈길로 더 자신을 들여다보던 즈음의 어느 밤, 어스름한 달빛 속을 거닐며 시인은씁니다.

달에게

너 다시 수풀과 골짜기를 채우는구나
고요히 안개의 광휘로
너 마침내 다시 한번
나의 영혼마저 모두 풀어놓는구나

너 나의 벌판 위로 펼치는구나
어루만지며 네 눈길을
친구의 눈처럼 온화하게
내 운명 위로
기쁨의 시간이며 슬펐던 시간
그 모든 여운을 나의 마음은 느낀다
나는 거닌다 기쁨과 고통 사이
고독 속을
흘러라, 흘러라, 강물아!
결코 나 즐거워지지 않으리니
그렇게 장난도 입맞춤도 사라진다
사랑의 맹세 또한 그러하리.
하지만 나 한 번 소유하였더라
그토록 값진 것을!
고통 속에서도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을!
철철 흘러라, 강아, 골짜기를 따라

그침도 멈춤도 없이
철철 흘러라, 내 노래에다
선율을 넣어다오
네가 겨울 저녁
성난 듯 넘치거나
봄의 찬란함 에워싸고
어린 꽃봉오리 솟거든.
행복하여라. 세상 앞에서
증오 없이 자신을 닫는 이
한 친구를 가슴에 안은 이
더불어 즐기는 이
사람들이 알지 못해도
혹은 유의하지 못해도
가슴의 미로를 지나며
어둠 속에서 오가는 것
그것을 더불어 즐기는 이.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읽어나가던 시 한가운데서 부딪쳤던 한 구절의 충격을 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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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 있음과 호기심

괴테는 긴 생애 동안 참 많은 일을 했고, 그 일에는대개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언제나 열려 있었고, 호기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직된 가운데서 나의 안녕을 찾진 않겠다.
전율은 인간의 최상의 부분,
세상이 제아무리 인간에게 그런 느낌을 쉽사리 안 줄지라도
감동되었을 때, 엄청난 것을 가장 깊이 느끼지.

위의 인용은 『파우스트의 한 부분인데요, "전율은 인간의 최상의 부분Das Schaudern ist der Menschheitbestes Tell"이란 말이 나옵니다. 굳어지지 않겠다는 파우스트의 생각이 드러날뿐더러 괴테 자신에게도 매우 중요한 단언이 담긴 구절입니다. 

는 것, 즉 놀라며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고 받아들일수 있는 열려 있음을 인간이 지닌 ‘최상의 부분으로보는 것이지요. 괴테는 이를 파우스트가 가진 추동력의 핵심으로 삼았습니다.
어떤 나이든, 어떤 상황에서든 괴테에게는 세상과사람과 사물에 대해서 전율을 느낄 수 있는 힘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유연하게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았고, 삶의 어느 시기든 자기 자신을 넘어섰고, 그럼으로써 세계문학사에도 새로운 한 시기가 열렸습니다.

『파우스트』 큰 사람이 남긴 큰 선물

가끔 강연을 나가면 질의응답 시간에 파우스트를읽어도 무슨 말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잘 이해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받곤 합니다. 
네, 파우스트는 이해하기 쉬운 책이 아닙니다. 짧은 시간 동안 내용을 전달하려고 하니 제가 늘 쉽게 쉽게 이야기해보려 하지만, 누군가 60년 동안 쓴 작품을 내가 단사흘 만에 다 이해해보겠다 하는 게 좀 어불성설이기도 하지요.

‘무엇을‘보다 ‘어떻게‘

눈앞이 캄캄하던 젊은 날, 어느 순간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하는가는 생각보다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말입니다. 
다만 어떻게 하느냐가 좀더 중요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굳이 새로 다른 일을 시작하지 않고, 하던 일을 묵묵히 계속, 성심껏 해왔습니다.
당연히 어느 정도 헤매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무엇을 하면 좋을지, 그게 득이 될지 주변을 두리번거릴 시간에 하나를 꾸준히 잘 해보는 방법도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요.

제가 늘 비유하는데요, 산에 올라가는 것과 비슷합

더 쉬운 일은 없어요. 어떤 일을 해도 산 하나를 넘는 고비는 있는 것인데, 우리가 산을 넘으려면 저 산이 좀 쉬울까, 이 산이 좀 쉬울까 하고 둘러보면 안 될 일이고요. 어떻게든 바로 이 눈앞에 있는 산등성이를꼭 넘어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힘든 것이거든요. 
그래서 이거 할까 저거 할까, 이게 더 좋을까 저게 더 좋을까 너무 재는 것보다는 자신이 선택한 것을 믿고, 쭉 가보기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일을해도 힘든 점은 있으니 산 하나 정도 오르는 공은 들여야 제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힘이 부칠 때 적어도이건 내가 좋아서 택한 것이라는 마음가짐이라도 있어야 끝까지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도돌이표를 하나 치자면, 무엇보다도 바르게살아야 됩니다. 여기저기서 수도 없이 이야기했습니다.
바르게 살면 큰일날 것 같고, 무슨 수를 써야지만 손해 안 볼 것 같지요? 아닙니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도 살아지고, 작은 결단들에서 언제나 선한 결단 쪽을 택해서 묵묵히 가노라면 그것이 쌓여 마지막에는 무엇이든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생각합니다.

제가 소망하는 건 다만,
제 존재에 가치를 두는 참 많은
친구들에게 차후에도기쁨이 되고 유익하게 살겠다는 것뿐
더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괴테의 말입니다. 제 말 아니고요. 이 글을 읽었을때, 마치 마음을 들킨 것 같았습니다. 스스로는 정리를 못 하는 말을 괴테가 이렇게 선명하게 정리해두었네요. 이제 와서 찾을 명리나 개인적 소망 같은 것은없습니다. 괴테 전집』은 혼자 읽기가 워낙 아까워서좀 전하고 싶어서, 남겨두고 싶어서 무리하고 있고요.
아직 갈 길이 멀다보니 하늘에서 거기까지는 좀 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무엇이든 귀하게 여기는 일여기저기서 괴테에 대해 강연을 하다보면, 많은 분들이 어떻게 하면 바르게 살 수 있는지 제게 묻곤 합니다. 어떻게 해야 올바르게 살 수 있을까요? 사실 저

베푼다는 게 굉장한 것이 아닙니다. 
옆사람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가질 때 사회가 그만큼 더 융화되는 것이고 작은 것이라도 누군가에게 나누어줄 때,
그리고 진정한 마음으로 사랑할 때 스스로가 오히려풍요로워지는 것 같습니다.

괴테가 내리게 한 결론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랑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2"리벤 벨트Lieben belebt."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사랑이 살린다"라는 뜻입니다. "belebt"는 죽어 있는 걸 살리는 것인데, 괴테의 그 많은 말 중에서 단 두 단어인이 문장이 참 중요해 보여 제가 자주 이야기합니다. 그방대한 『파우스트』를 다 읽은 후에 결국 남는 것도 사랑이란 단어입니다. 독일 사람들이 공자를 번역할 때인을 사랑이라고 번역하더라고요.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다른 단어가 없을까 하고 제가 열심히 생각해봤는데, 또 『논어』도 다시 읽어보았는데 정말 사랑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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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재구성, 여성의 변화 그리고 저출산이리스 라디쉬(Iris Radisch)는 "지금 이 세상에서 젊은 여성들에게 아이를낳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라고 질문한다. 그리고 아이를 낳지 않는 세상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러한 호소가 충분히 가식적임을깨닫게 될 거라고 충고한다. 15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여성과 남성의 생활 세계가 서로 근접하지 못하는 전근대적인 가족을 고수하는한편으로 육아의 어려움을 과소평가하며, 무한 경쟁 속에서 물질적 이익을 최상의 가치로 두는 한편으로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한국 사회는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시장 중심의경쟁 시대에 노출되면서 유교적 전통에 기반을 둔 가부장적 가족의 권위가 약화되고 개인의 인식과 생활 방식, 가족 형태 등이 매우 다양해졌다. 특히 국제결혼이나 이혼, 동거에 대한 수용도가 높아지고 있는데, 30대의 동거 수용도는 2014년에 60퍼센트를 넘어섰다. 2015년에는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27.2퍼센트로 가구 유형별 비율에서 가장높은 비중을 차지했으며, 한 부모 가족, 다문화 가족 등 다양한 형태의가족도 늘어나고 있다." 또한 자발적 무자녀 가족을 선택하는 부부들을 종종 볼 수 있으며, 미혼의 상태에서 임신이나 출산을 하는 여성들과 혼자 아이를 키우는 남성들도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결혼과 상관없이 아이를 낳아서 기르고 싶어 하는 여성들의 수도 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비혼자끼리 생활공동체를 꾸려서 함께 살기도 하고따로 살면서 공동체 관계망을 유지하기도 한다. 기존의 혈연 및 혼인

관계를 뛰어넘어 동거를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동반자 관계의 권리를•보장하는 생활동반자법19 제정이 추진되고 있는 것도 가족 구성의 변화를 반영한다. 미디어에서 재현하는 가족의 형태도 바뀌고 있다. 이전•에는 결혼과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가족의 탄생‘을 다루었으나 최근에는 그 자리가 ‘졸혼‘, 1인 가구, ‘돌싱‘ 같은 새로운 가족으로채워지고 있다. 다양한 선택이 가능해진 오늘날, 더 이상 결혼은 과거처럼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지속되는 ‘자연적인 조건‘이 아니다. 결혼을 통해 얻게 되는혜택이 상대적으로 적은 여성의 경우 결혼과 가족에 거는 기대가 점차 낮아지고 있으며, 결혼을 기피하는 경향은 결혼 연령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이러한 결혼과 출산 선택의 기피는 여성들의 성 평등의식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것으로, 성 평등 수준에 민감한 여성들의 경우사회 전반에 걸쳐 성 평등주의적 재조직화가 일어나기 전에는 쉽게 출산 거부 결정을 바꾸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대다수 여성이 가부장적 가족 질서 속에서 결혼하고, 결혼하면 거의 예외 없이 출산했던실질적인 ‘가족 출산‘ 시대가 가족과 여성의 동시적인 변화에 직면해서저물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 사회의 압축적 근대성이 낳은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가족에게 강도 높게 부과된 역할 요구와 통제로 ‘가족 피로’가 누적됨에 따른 불가피한 반응이다.  즉, 만혼과 저출산, 별거와 이혼의 증가등 다양한 ‘탈가족적‘ 징후를 가족 역할의 과부화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가족 형태에 대한 인식 변화의 이면에 있는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현재 우리 사회의 가족은 전근대, 근대, 탈근대 가족의 특성과

기능을 모두 섞어놓은 것 같다. 근대 이전의 전통적 가족주의, 유교적가족주의 시스템의 물적·규범적 토대가 약화되었으나 여전히 부계제가 남아서 영향력을 미치고 있고, 부부와 자녀가 주축이 된 근대 핵가족 중심의 정서적·물적 지원과 상호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압축적 조합이 ‘순기능‘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근대 핵가족에서 나타나는 부모와 자녀의 강한 유대감이 자녀의 결혼 지연이나 독립을 유예하는 결과를 낳고 있으며, 자녀에 대한 부모의 기대는 엄청난 교육열과 사교육 부담을 증가시켜 가족의 물적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공고한 ‘정상가족‘ 규범은 동거나 혼외 출산에 대한 금기로 이어지면서 가족 구성의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여성과 남성에 대한 문화적 인식의 차이, 가족 안에서가사와 육아의 일차 책임자로 여성을 설정하는 성 역할 규범 등이 여전히 작동하는 현실은 여성이 직장과 가정을 양립시키기 어렵게 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일·가정 양립 지표‘에 따르면 기혼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52.1 퍼센트로 나타났으며, 미성년 자녀를 둔 여성 취업자 비율(고용률)이 55.2퍼센트를 차지하여 기혼 여성들의 노동시장 참여가 점점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이한 점은 30대 여성보다 40~50대 기혼 여성들의 고용률이 높게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이는30대 여성들이 여전히 출산과 육아 때문에 경력 단절을 겪고 있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고용률에서 젠더 격차는 30대의 경우 남성이 90.6퍼센트, 여성이 60.3퍼센트로 30퍼센트까지 차이를 보인다.  또한 여성의 고용률은 자녀의 연령과 비례하는데, 특히 6세 이하 자녀를 가진 기혼여성의 경우 고용률은 44.9퍼센트로 급격하게 낮아진다.

결국 육아의 부담이 20~30대 여성들에게 맡겨져 있으며, 특히 초기육아의 경우 전적으로 여성의 책임으로 전가됨으로써 궁극적으로 취업의장애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성이 직장과 가정을 양•립시킬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만든 제도에서도 정작 당사자인 여성에게 돌아가는 육아 부담의 해소와 경제적 자립 기회 보장 등의혜택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대거 참여하면서 2인 소득자 가족 모델이 확대되고 있는데도 가사와 육아라는 여성의 가족 내 성 역할은 아직도 남성1인 생계 부양자 모델에 비해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가족 안에서 성평등은 아직도 아득한 일이고, 가사노동과 육아의 책임이 여전히 여성에게만 전가되는 ‘독박 육아‘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고 오히려 강화되고있을 뿐이다. 심지어 성인 중심의 공간이 만들어내는 양육에 대한 비하, 즉 ‘맘충‘, ‘노키즈존‘ 등 양육 적대적인 문화도 팽배하다. 여성들은이러한 현실을 자신이 결혼과 출산을 선택한 이후에 직면하게 될 부담이자 위험으로 간주한다. ‘82년생 김지영‘이 출산과 양육으로 겪는 우을 증상에 다수의 여성들이 공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더구나 무한 경쟁의 시대에 경제적 독립과 자아실현의 꿈도 요원할만큼 삶이 팍팍하다고 생각하는 젊은 여성들의 경우, 이러한 결혼과 출산에 달라붙은 위험으로 인해 결혼을 주저하거나 포기하게 된다. 저출산은 바로 여성들로 하여금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게 만드는, 또 기꺼이 아이를 낳을 만한 사회적·문화적 여건이 안 보이는 사회에서 여성들이 갖게 되는 심리적·경제적 · 관계적 불안에 다름 아니다.

양육의 공적 가치

그렇다면 양육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페미니스트 경제학자 낸시 폴브레(Nancy Folbre)는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면 그들의 계발된 능력과 자질로 우리 모두가 이득을 본다는 의미에서 아이를 ‘공공재‘로 개념화한다. 
아이에게 들이는 돈이나 시간, 사랑 등은 부모만이 아니라 아이 자신, 사회, 국가 모두에게 이득을 준다는 것이다. 즉, 폴브레는 타인에 대한 돌봄이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들지만 사회가 그 비용을 제대로평가하고 분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공재‘로서의 아이라는 관점은 양육을 공적 영역으로 위치시킨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은 그동안 개인과 가족으로 전가된 양육에 대한 책임을 국가로 이동시킨다. 즉, 양육이 아이들을 안심하고 키울 수 있는아이 중심의 양육 시스템 구축과 아이를 키우기 위한 최적의 조건에대한 국가의 개입 의무와 책임을 요구할 수 있는 공적 권리로서 위치한다.
이러한 관점은 양육을 경제적 해법으로 환원시키는 것이 아니라 모성 경험에 대한 적극적인 의미 부여로 볼 수 있다. 모성 경험을 공적 영역에서 논의될 수 있는 권리의 언어로 위치시키는 작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성의 삶에서 경제활동이 불가피해졌고,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가사, 육아 노동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노동시장 지속여부 또한 돌봄 노동의 사회화와 결정적으로 결부되어 있다. 
유럽에서도 1980년대 급격한 출산율 하락이 개인의 출산 결정을 어렵게 하는 요인 때문이라는 점을 간파하고 이를 공공의 관점에서 해결

하고자 노력했다. 그들은 양성평등에 기반을 둔 휴가 제도, 공보육 제도의 정비, 육아의 사회화 등의 출산과 양육 제도를 정비하면서 출산율반등을 가져왔다. 32물론 국가가 양육에 개입하는 것이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국가의 개입이 곧 여성들의 일차적 책임을 공유하거나 대체하는 것인한 양육 주체의 또 다른 쪽인 남성들을 소환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정희진의 주장대로 육아가 언제나 여성·국가·사회의 일이 되고 있는현실에서 국가보다는 남성의 인식과 태도가 훨씬 중요하다. 33 일·가정양립 정책의 주요 테마인 ‘아빠 육아‘는 남성은 경제활동, 여성은 육아라는 전통적인 성별 분업에서 진일보하고 있으나 여전히 남성은 육아책임자가 아니라 협조자로서 육아를 돕는 역할에 머물고 있어 가족 내성별 권력관계의 변화로 이어지기에는 많은 한계를 안고 있다.
출산 정책의 비전은 지속발전 사회가 이루어질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지만, 그것은 출산율 제고를 통한 아이의 수 늘리기만으로 달성되지않는다. 그것은 양육을 공적인 가치로 인정하고, 양육이 여성만 부담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남성 역시 공동 양육자로서 책임을 지는 사회 시스템이 구축될 때 비로소 확보될 수 있다.
무엇보다 21세기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 더는 양육 전담자로서 자신을 정체화할 수 없는, 전통적 가족 규범의 모순을 간파한채 비혼을 선택하는 이들을 둘러싼 가족. 직장 · 연애·성·결혼·출산·•규범 등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복잡한 맥락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 속에서 여성들이 갖는 불안과 위험 요인들을 풀어내기 위해 젠더와 개인의 권리를 중시하는 새로운 아젠다와 정책이 만

들어져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저출산은 ‘문제‘가 아니라 
변화에 대한 요구이자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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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 ㅣ 페미니스트 크리틱 1
김은실.권김현영.김신현경 외 지음, 김은실 엮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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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트러져 있던 수많은 논쟁을 한곳에서 정리한 느낌
그러나그 오랜 논쟁은 더 복잡해지고 자본과 권력과 부도덕의 자양분을 먹어치우며 다른 차원의 논란을 키우며 변화하고 있다...
희석하고 눈을 가리는 비겁한 사건들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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