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사이에도 예의를 지킨다

‘친한 사이에도 예의를 지킨다‘는 말은 친구 사이뿐 아니라 배우자와 자식 간에도 필요합니다. 가정은 마음 편히 지내는 보금자리입니다. 그렇다고 가족들에게 상처받을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거나 불쾌한 기분이 들도록 행동해도 좋다는뜻은 아닙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나이 들면 무슨 짓을 해도 용서받는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응석이 아닌가 싶습니다. 옛날에 "내 나이가 되면무슨 말을 해도 다 받아줘"라고 자랑하던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억지로 참고 들어주는 것을 할머니는 받아들이는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이럴 바에야 평생 누구에게도응석부리며 버릇없이 굴지 않겠다, 배우자나 성인이 된 자녀의 생활에 일일이 간섭하며 무례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작심 - P-1

하는 편이 낫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베풀 수 있는 중요한 유산 중 하나가 깨끗한 이별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녀를 가르쳐 최종적으로 독립이 가능한 상태에 놓였을 때 자녀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조용히 사라지는 것입니다. 

자기가 베푼 일에는 항상 감사받고 싶고, 또 자기 손으로 무언가를 주었다면 상대방에게 꼭 확인시키고 싶은 보통의 인간 관계에서는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부모의 애정이란 사심 없는 사랑이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슬하에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그 아이는 자기 희망대로 18세에 나고야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아이에게 무거운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을 무렵 다행히 아들은 내 품을 떠나 그의 인생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한동안은 경제적으로 보살펴줬지만 대학에 입학하던 그때 자녀 교육은 끝이 났습니다.
그 후로 35년 가까이 지났습니다. 아들은 내 품에서 살았던세월의 배가 넘는 시간을 홀로 걸어왔습니다. 취미도 세상을보는 눈도 나와 다른 게 당연합니다. 그래도 속으로는 항상걱정스러운 것이 부모 마음입니다. 아프다고 하면 불안하고,
하는 일이 잘 안 되었다고 하면 어떻게든 성공해주기를 기원합니다. 그나마도 이런 마음에 대해 오랫동안 잘 알고 지낸사람이니까 그냥 염려하는 정도로 생각하려고 노력합니다.
친구들과는 30년 넘게 사귀어왔지만 수중에 저금한 돈이얼마나 되는지를 아는 친구는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런 친구들 - P-1

과의 사귐과 동일하게 아들이 나를 받아들여주는 만큼 사이좋게 지내자, 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상 성인이 된 자녀와 부모가 관계를 잘 맺는 비결은없다고 생각합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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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길을 잃는 건 꽤 멋진 일이다

"단순한 사랑이란 없다. 사랑이 단순하다고 느껴진다면 아마 그건 욕망에 더 가까운 감정일 것이다. 
뉴욕이 좋다고 확신할수 있었던 시절의 나는 뉴욕을 사랑하기보다는 욕망했던 걸까?

상대의 모든 면을 나열하고 나면 
귀납적으로 어렴풋하게나마 감정의 형체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일이란

그 대상에 대해 조금 더 장황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는 사랑의 가장 사소한 답을 찾아내는 일이다. 나는 지금,
누더기같이 콜라주된 이 모순된 도시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중이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이 리스트를 계속 이어가볼게."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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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서 브루노는 난로에서 불씨가 가시지 않은 숯덩이를 꺼내서 밖으로 버렸다. 나는 현관문을 닫고 노새의 고삐를 잡고 어머니에게 앞장서 달라고 말했다. 

우리 넷은 어머니의 걸음 속도에 맞춰 그라나를 향해 출발했다. - P-1

그리고 노인이 잠시 숨을 돌리는 동안 잠깐 대화를 나눴다.
그는 어느 마을에서 오는 길이었는데 나도 그곳에 갔었다고 했더니 크게 놀랐다. 
그는 내가 잠시 머물다 가는 등산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내가 네팔어로 몇 마디를 해 보았더니 히말라야에 관심을 갖게 된 연유를 물었다. 

내겐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있었다. 내가 자란 산이 하나 있는데 그 산에 강한 애착이 있다. 그 산을 알게 된 후에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다른 아름다운 산을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 노인이 말했다. "그렇군요. 그럼 당신은 여덟 개의 산을 돌고 있는 거네요."

"여덟 개의 산요?"

노인은 지팡이를 들어 바닥에 원 하나를 그렸다. 완벽한 원이 그려졌다. 이런 그림을 자주 그려본 듯했다. 
그는 원안에 지름을 그리고 가운데 수직선을 하나 그린 다음 중심을 지나는 이등분선을 두 개 더 그어 8등분 된 원을 완성했다. 
그런 모양을 그려야 한다면 나는 십자가부터 그렸을 텐데, 동그라미를 먼저 그리는 것은 전형적인 아시아인들의 특징인 듯했다.

"이런 그림을 본적이 있나요?" 노인이 물었다.

"네." 내가 대답했다. "만다라에서요."

"맞아요. 세상의 중심에는 높은 산이 하나 있다고들 하죠. 메루산이에요. 이 메루산 주변에는 여덟 개의 산과 여덟 개의 바 - P-1

다가 있어요.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죠."

그는 8등분 된 조각 옆에 작은 점을 찍고 점 사이마다 파도 물결 표시를 해두었다. 여덟 개의 산과 여덟 개의 바다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원의 중앙에 왕관을 하나 그려 넣었다. 메루산의 눈 덮인 정상인 듯했다. 자신의 그림을 잠시 감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수천 번은 연습했을 그림이 좀처럼 만족스럽지않은 모양이었다. 어쨌든 지팡이로 중심을 가리키면서 마무리를 했다. "여덟 개의 산을 돌아본 사람이 많은 것을 깨달을까요? 아니면 메루산 정상에 올라본 사람이 더 그럴까요?"

닭 운반 장수가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의미 있는 이야기였고 그 뜻을 이해한 것 같아 나도 따라 웃었다. 그는 손으로 그림을 지웠지만 나는 그것이 잊히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 이 이야기를 브루노에게도 들려줘야겠다고 혼잣말을 했다.

그 당시 내게 세상의 중심은 브루노와 내가 함께 지은 집이었다. 
6월에서 10월까지 장기간 그곳에서 지냈고 가끔 친구들을 초대하기도 했다. 그들도 한눈에 반해 버려서 도시에서 그리워했던 친구들을 결국 산에서 얻게 되었다. 

평일에는 책을 읽고 글을 쓰기도 하고 장작을 패거나 오솔길을 배회하며 혼자 지냈다. 나에게 고독은 친숙한 조건이 되었다. 하지만 전적으로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여름철이면 토요일마다 나를 찾아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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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단 한 번도 캠핑에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를 위한 그 계획의 이면에는 뭔가 다른 뜻이 있을 것 같다는 의심이 들었다. 그즈음에 나는 구석에 숨어서 냉정한 눈으로 우리 가족의 일상을 관찰했다. 

부모님의 고질적인 습관, 아버지의 악의 없는 분노 그리고 아버지의 화를 다스리는 어머니의 능력을 보았고, 두 분은 본인들이 거만함과 속임수에 의지하고 있다는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감정적이고 권위적이며 인내심이 부족했고, 어머니는 강하면서 차분하고 보수적이었다. 두 사람은 상대방이 제 역할을 할 것이라 믿고 항상 자신의 몫을 다하는 믿음직스러운 태도를 가졌다. 
그런 면에서 두 사람의 다툼은 진짜가 아닌, 매번 결과가 뻔한 연기였다. 그 우리 속에 나도 결국 갇혀버렸고, 재빨리 그곳에서 도망쳐야겠다고 느꼈다. 하지만 결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입밖으로 단 한마디도 꺼내본 적이 없었고 무언가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은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말을 하도록 하려고 지금 이 망할 텐트가 툭하고 튀어나온 것 같았다.

점심 식사 후에 아버지는 부엌에 텐트 부속품을 펼쳐놓았고 무게가 분산되도록 나누었다. 
막대와 쐐기못만 해도 10킬로그램은 족히 나갈 무게였다. 거기에 침낭, 윈드브레이커, 스웨터에 음식까지 있어 배낭은 순식간에 꽉 차버렸다.  - P-1

아버지는 예순둘의 나이로 돌아가셨고 그때 나는 서른한 살이었다. 장례식 때에야 비로소 내가 태어났을 때의 아버지 나이를 알게 되었다. 
내 나이 서른한 살은 그의 서른한 살과 닮은구석이 거의 없었다. 나는 결혼을 하지 않았고 공장에 취직하지도 않았으며 아들도 없었다. 
반은 어른이고 반은 아이인 인생을 사는 것 같았다. 
나는 원룸에서 혼자 살았고, 이것은 감당하기 힘겨운 사치였다. 
다큐멘터리 제작자로 돈벌이를 하며 살아가고 싶었지만 월세를 마련하기 위해 온갖 종류의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나 또한 이주민이었다. 
청년기의 어느 시점이 되면 사람은 태어나고 자란 곳과 작별하고 어른이 되기 위해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한다는 부모님의 생각을 물려받았다. - P-1

하자 30년을 일한 아버지는 퇴직을 생각하는 대신 두 배는 더열심히 일했다. 아버지는 혼자서 이 공장 저 공장으로 수백 킬로미터를 운전하며 다녔다. 그는 지쳐서 집에 돌아와 저녁 식사후에는 바로 침대에 쓰러졌다. 수면은 길지 않았고 밤중에 일어나서 일을 했다. 여러 가지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인데 어머니 생각에는 그게 공장과 관련된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늘 불안해 했어. 그런데 지금은 병이 되어가고 있단다. 아버지는 일 때문에 불안해 했고 나이가 들어가는 것 때문에 초조해 했으며 감기에 걸린 어머니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고 나 때문에도 불안해 했다. 
그는 내가 아플 거라는 생각이 들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곤 했다. 그러면 자고 있는 나를 깨우는 한이 있더라도 나에게 전화를 해보라고 어머니에게 부탁했다. 그녀는 몇 시간만 기다리라고 아버지를 설득했고, 안심시키려 애썼으며 흥분을 가라앉혀 잠자리에 들게 하려고 노력했다. 

아버지의 몸이 자체적으로 그런 신호를 보낸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그렇게 숨통을 조이며 사는 법밖에 몰랐다. 
그에게 차분함을 요구하는 것은 산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어느 누구와도 경쟁하지 말고 조금 천천히 가라고 강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머니의 편지로 알게 된 아버지의 일부는 내가 아는 사람이었고 일부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 다른 사람은 나의 호기심 - P-1

을 자극했다. 내가 얼핏 본 그 안의 여린 마음, 당황한 나머지 재빨리 숨기려 했던 순간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내가 절벽밖으로 몸을 내밀면 아버지는 내 허리춤을 본능적으로 부여잡았다. 
내가 빙하에서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그는 나보다 더 안절부절못했다. 
어쩌면 항상 그곳에 이렇게 다른 아버지가 있었을 텐데, 첫 번째 아버지의 모습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 전혀 모르고 있던 것이다. 

나는 나중에 아버지와 또 다른 시도를 해야한다는, 또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미래는 품고 있던 가능성과 함께 돌연 사라져버렸다. 

2004년 3월 어느 날 저녁, 어머니는 고속도로에서 아버지에게 심근경색이 일어났다고 알려주려고 나에게 전화했다.
아버지는 도로변의 정차 구역에서 발견되었다. 사고를 유발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잘 대처했다. 그는 비상등을 켜고 브레이크를 밟아 마치 타이어 하나에 구멍이 났거나 연료가 떨어져서 그런 것처럼 차를 세웠다. 하지만 심장은 그를 저버렸다.
자동차 연료 계기판에 표시된 주행 가능 거리는 최대였고 정비가 많이 필요했던 자동차도 아니었다. 
아버지는 가슴에 엄청난 통증을 느낀 게 틀림없었고 제때에 그 위험을 감지한 것같았다. 정차 구역에서 그는 시동을 껐다. 안전벨트는 풀지 않았다. 
아버지는 레이스를 포기한 드라이버처럼 앉은 채로 발견되었다. 핸들에 얹은 두 손과 그를 추월하는 모든 차량들, 아버 - P-1

을 따서 접시에 덜지도 않고 숟가락으로 허겁지겁 퍼먹었다.
그러고는 탁자 아래 놓인 매트리스에 누워 침낭에 몸을 쏙 넣고 바로 다시 곯아떨어졌다.

6월 말쯤 어머니가 친구 한 명과 함께 오셨다. 어머니가 슬픔을 가누지 못하는 미망인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친구들이 돌아가며 여름내 곁에 있어주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누군가 옆에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어머니와 그녀 친구들 사이에 흐르는 무언의 신뢰가 보였다. 그녀들은 내 앞에서 말을 거의 하지 않았고 눈짓으로 서로의 마음을 읽었다. 말보다 더 값진 친밀함으로 오래된 집을 공유하는 것을 보았다. 
쓸쓸한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른 후에 나는 아버지와 세상과의 끝없는 갈등이었던 그의 고독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해 보았다. 그는 자신의 차 안에서 그를 그리워해줄 친구도 없이 죽음을 맞았다. 반면에 어머니에게는 관계를 유지하고 발코니의 꽃들처럼 그 관계에 관심을 쏟으며 보낸 오랜 세월의 결실이 보였다. 

이와 같은 재능은 배울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타고나는 것인지 궁금했다. 내가 배우기에 아직 늦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이제 내게는 산에서 내려오면 나를 신경 써주는 두 명의 여자와 한상가득 차린 식탁, 깨끗한 이불이 있었다. 콩 통조림이나 침낭과는 작별했다. 저녁 식사 후에 나는 어머니와 부엌에 - P-1


아버지의 서명은 모든 노트에 다 있었다. 그는 대개 할 말만딱 했지만 항상 허풍이 있었다. 
이것도 해냈다. 조반니 과스티, 세마디 말을 보았을 뿐인데 10년 전으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어느 날 아버지는 유독 컨디션이 좋게 느껴졌던 것 같다. 
아이벡스,
독수리, 신선한 눈, 제2의 청춘, 이런 글을 남길 정도로 뭔가에 감동받았음에 틀림없었다. 

다른 글은 이랬다. 정상까지 자욱한 안개. 옛 노래들. 참으로 아름다운 내부 풍경. 다 내가 알고 있는 노래들이었다. 안개 속에서 아버지와 함께 그 노래들을 불렀으면좋았을 것이다. 
1년 전에 남긴 또 다른 메모에서 우울한 흔적이 보였다. 
오랜만에 이곳에 돌아옴. 모두 함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도 보지 않고, 더 이상 계곡에 내려갈 필요도 없이.

모두라면 누구를 말하는거지? 나는 궁금했다. 
그날 나는 어디에 있었지? 아버지는 심장이 약해진 것을 이미 느끼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그 말을 남기기까지 또 무슨 일이 있던 것은 아닐까. 더 이상 계곡에 내려갈 필요도 없이. 세상과 멀리 떨어져 살아갈 한적하고 외딴 높은 곳에 집 한 채를 꿈꾸게 했던 것과 같 - P-1

원래 있던 자리에 노트를 돌려놓기 전에 나는수첩에 날짜와 그 문장을 똑같이 베끼 적었다. 아무것도 덧붙여 쓰지 않았다.

어쩌면 나와 브루노는 실제로 아버지의 꿈속에서 살고 있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인생의 휴식기에 있었다. 비록 우리는 이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어떤 시기에 마침표를 찍고 또다른 시기가 오기 전의 휴식기였다. 바르마에서 우리 아래를 빙빙 날아다니는 매들과 동굴 입구를 지키는 마멋다람쥐과의 포유류들이 보였다. 아래 호수에는 가끔 낚시꾼 한둘과 몇몇 등산객들이 눈에 띄기도 했지만 그들은 우리를 찾으려 올려다보지 않았고 우리도 인사를 나누러 내려가지 않았다. 우리는 8월의 오후에 수영을 하고 싶어 그들이 모두 가버리기를 기다렸다. 호수물은 얼음장처럼 찼고 우리는 더 참지 못하고 초원으로 뛰쳐나가기 전까지 누가 더 오랫동안 물속에서 버티는지 경쟁했다. 우리도 낚싯대를 가지고 있었다. 메뚜기를 미끼로 이용해서 막대와 줄 하나만으로 이따금씩 뭔가 잡아 올리곤 했다. 그렇게 저녁 식사로 불에 구운 송어와 레드 와인이 차려졌다. 우리는 어두워질 때까지 불가에 앉아서 술을 마셨다.
이제는 나도 산 위에서 잠을 잤다. 건축 중인 집의 창문 바로 아래에서 야영했다. 처음에는 침낭 속에 누워 별을 바라보고 - P-1


마지막 날에는 그라나로 어머니를 모시러 갔다. 그녀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보던 가죽 부츠를 신고 있었다. 다른 부츠는가져본 적이 없었다. 나는 어머니가 힘겹게 산을 올라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한 번도 쉬지 않고 어머니의 걸음 속도에 맞춰 천천히 올라갔다. 나는 뒤에서 어머니가 어떻게 걷는지 보았다. 그녀는 두 시간이 넘도록 천천히 끈덕지게 일정한속도를 유지했다. 어머니가 중심을 잃거나 미끄러지는 일은 없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머니는 나와 브루노가 지은 집을 보고 매우 흡족해 했다.
쾌청한 9월의 어느 날이었다. 개울에는 어느덧 물이 별로 없었고 방목장의 풀은 말라버렸으며 8월의 따뜻했던 그 공기가 아니었다. 
브루노가 난로를 켜두었고, 창가에서 차 한잔하며 집안에 있기 딱 좋았다. 어머니는 창을 좋아해서 창가에서 몇 시간 내내 밖을 내다보았고 그러는 동안 나와 브루노는 산 아래로 가지고 갈 것을 챙겼다. 
잠시 후에 그녀가 호수, 자갈밭, 그레논 봉우리, 집의 외관과 같이 모든 것을 기억 속에 담으려 평원으로 나가는 것이 보였다. 어머니는 전날 내가 정과 끝을 이용해 암벽에 새겨놓은 글귀를 오랫동안 유심히 보았다. 검은색 - P-1

페인트로 덧칠을 했는데 이런 내용이었다.

조반니 과스티
1942-2004
가장 아름다운 대피소를 기념하며

어머니는 우리에게 노래 한 곡을 부르라고 했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부르는 노래로, 다음 생에서도 등산을 하게 해달라고 신에게 부탁하는 내용의 노래였다. 
브루노는 물론 나도 그 노래를 알고 있었다. 모든 게 다 올바르고, 제대로된 듯했다. 
얼마 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이 하나 남아 있었다. 어머니도 들을 수 있게, 기억해줄 증인이 있는 그 자리에서 말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브루노에게 그 집이 내 집이 아니라 우리의 집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의 집이면서 그의 집. 두사람 모두의 집. 우리 둘에게 남겨준 것이기 때문에 아버지도 그러기를 바라실 거라는 확신이 있었고, 무엇보다 우리 둘이 함께 지은 집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싶었다. 내 집이라고 생각하는 만큼 이제부터 그도 그의 집으로 생각해 달라고 말했다.
"진심이야?" 그가 나에게 물었다.
"응."
"그래 좋아." 그가 말했다. "고마워."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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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항상 이런 수수께끼 같은 질문을 했다. 
논리와 수학적 재능이 뛰어난 내 지적 수준이 아버지와 비슷하다고 생각했고, 나를 시험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저기 강이 보이니? 강물을 흐르고 있는 시간이라고 가정해보자. 우리가 있는 이곳이 현재라면 미래는 어느쪽에 있을까?"
생각해보니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는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미래는 저 아래 물이 떨어지는 곳이에요."
"틀렸어." 아버지가 단호히 말했다. "다행히도 말이지."
그런 다음 부담감을 떨쳐 버린 듯 "오팔라" 하고 말했다. 아버지가 나를 격려할 때마다 하는 말이었다. 그때 맨 위에 있던가방 두 개가 쿵 하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세를 얻은 우리 집은 마을의 위쪽, 가축의 물통이 중심에 놓인어느 중정식 건물 안에 있었다. 
집에는 기원이 다른 두 가지 흔적이 있었다. 첫 번째는 벽과 검은색 낙엽송 발코니, 이끼 낀황토 지붕, 시커멓게 그을린 굴뚝으로 그 기원이 오래된 것이고두 번째는 그냥 낡은 것이었다. 
한때 집 안 바닥에는 장판이 깔렸던 것 같다. 벽에는 꽃무늬 포스터가 걸려 있고, 벽걸이 가구와 부엌에 놓인 싱크대에는 온통 곰팡이가 피고 색이 바래있었다. 오직 하나의 물건만이 평범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주철로 만든 커다란 검은색 난로였고 황동으로 된 - P-1

브루노가 한쪽팔을 다뤘다. 그는 욕을 하면서 공중에 팔을 흔들어댔다.
"다쳤어?" 내가 물었다.
"망할 돌덩이 같으니, 머지않아 움직이게 하고 말거야." 상처를 입으로 빨면서 그가 말했다. 브루노는 충동적인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계단을 올라가 위로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에 그가 창문을 넘어서 뛰어가는소리가 들렸다.
그날 저녁 쉽사리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흥분되어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는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다른 사람과 무언가를 함께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이런 점이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그날 난 뭔가를 느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친밀감이었다. 이 친밀감은 낯선 곳에 정박해 있는 것처럼 나의 호기심을 잡아 끈 동시에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머릿속으로 상상하기 시작했다. 
개울, 연못,
폭포 그리고 강물에 휩쓸려가지 않으려고 꼬리를 힘차게 흔드는 송어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잎을 생각했다. 그리고사냥감 앞에서 파다닥 튀어 오르는 송어를 생각했다. 그때 강물에 사는 물고기에게 벌레, 나뭇가지, 나뭇잎 그리고 이외의 모든 것들은 산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하나의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래서 물고기는 앞으로 흘러내려올 것을 기대하며위쪽을 바라본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현재라고 한다면 과 - P-1

거는 나를 지나쳐 흘러간 물이다. 그 물은 아래 방향으로 흘러간다. 
반면에 미래는 놀라움과 위험을 품은 채 위에서 내려는 물이다. 아버지에게 이렇게 대답했어야 했다. 운명이 어떻든간에 그 운명은 우리 머리 위, 산에 있다고.

잠시 후 이러한 생각은 천천히 사라져 갔고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어느새 밤의 소리에 익숙해져서 별별 소리를 다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들리는 소리는 샘물 소리이고, 저쪽에서 들리는 소리는 밤길을 어슬렁거리는 개의 목에 달린 방울소리이다. 이 소리는 그라나에 단 하나밖에 없는 가로등에 전기가 돌아가는 소리이다. 
그 순간 내가 듣고 있는 소리를 브루노도 듣고 있는지 궁금했다. 부엌에서 어머니가 책을 읽는 동안 나는난로의 지직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7월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나는 브루노를 만났다. 내가 그를만나러 방목장으로 찾아가거나 했고, 브루노는 젖소들 주위에줄을 둘러쳐 자동차의 배터리에 연결해두고 우리 집 부엌에 불쑥 나타나곤 했다. 브루노가 좋아하는 것은 간식이 아니라 어머니인 것 같았다. 어머니의 관심이 좋은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일할 때처럼 말을 이리저리 돌리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브루노에게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브루노는 다정다감한 아주머니가 보이는 관심에 한껏 들떠서 대답하곤 했다. 브루노는 자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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