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선물

지금은 훨씬 덜해졌지만 몇 년 전까지만해도 외국에 유학을 갔다 오거나 연수를 갔다 온 지식인들이 우리의 후진성을 개탄할 때마다 쓰는 상투어로 선진 외국에선 어쩌구저쩌구……… 하는 게 있었다. 물론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 넓은 세상의 이모저모에 우리들자신의 모습을 비추어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건 중요한 일이고, 그렇게 비춰본 우리들 모습의 초라함에 충격을 받는 것도 발전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할과정이라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지식인들의그런 말투에서 자신만은 우리 모두의 후진성이나 초라

함과 무관하다는 교만한 착각 같은 게 느껴져서 아니꼽게 들릴 때가 많다.
그래서 그랬던지 내가 처음으로 유럽 여행을 하게 되었을 때 속으로 벼른 것도 많이 봐두리라는 생각보다는아무리 좋은 걸 봐도 쇼크 안 받기와 돌아와서 밖에서본 거 풍기지 않기였다.
내가 한 친구에게 나의 이런 유치한 결심을 얘기했더니 그건 외국 문화에 맹목으로 심취하는 것보다 더 나쁜열등감이라는 핀잔을 들었다.
막상 밖에 나간 나는 그들의 잘사는 모습에 정말 놀라지 않았다. 정말 놀랄 만한 건 그들이 지니고 있는 문화유산이었지만 우리가 그 방면에 있어서 그들과 비교가 안 된다는 건 미리 알고 있었던 거고, 적어도 현재의사는 모습에 있어서만은 우리도 세계 수준이었기 때문에 놀랄 게 없었다. 그땐 벌써 겉으로 나타난 우리의 생활수준은 어느 선진국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었다. 그 무렵 한창 유행하던 ‘잘살아보자‘는 구호를 마침내 현실로움켜쥔 감격을 만끽하려는 듯 우리 모두가 외면치레에급급할 때였다.

그 후 다시 몇 년 후 일본 구경을 갔을 때는 열등감은커녕 그들의 사는 겉모습이 우리보다 훨씬 궁상맞음을 딱하게 여겼다. GNP 인가 뭔가 하는 게 우리의 몇 배라면서 왜 이렇게 못살까가 수상하기도 하고 우리처럼화끈하게 잘살지 못하는 그들이 딱해 보이기도 했던것이다.
재작년에 다시 일본에 가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의 어떤 재단의 초청이어서 보고 싶은 걸 미리 신청하면 가능한 한 다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때도 철없이여기저기 명승지만 열거하고 맨 나중에 심신장애자를위한 특수학교를 보고 싶다고 신청했다. 내 가장 친한친구가 뇌성마비 아들 때문에 얼마나 고통받고 온갖 수모를 겪어야 했는지 지켜보면서 같이 분통도 터뜨리고우리 사회를 원망도 많이 했기 때문에 그 나라에선 그런장애자를 어떻게 돌보고 있나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쪽에선 나를 그런 특수학교에 안내하기 전에 내가신청서에 써낸 시설이 중 정도라는 단서가 무슨 뜻인지를 물었다. 나는 재단이 너무 풍부하여 호화롭게 운영하거나 너무 영세하여 궁핍하게 운영하는 시설 말고 중

간 정도의 시설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랬더니 동경도내의 구마다 하나씩 있는 심신장애자 시설은 다 도립이기 때문에 각기 특성은 있지만 빈부나 우열의 차이는 거의 없다고 했다. 나는 좀 머쓱해져서 그럼 변두리의 어려운 동네에 위치한 학교를 보여 달라고 했다.
학년으로는 중고교의 과정에 해당하는 장애자 교육기관인 어느 도립 양호학교에서 나는 비로소 이게 정말잘사는 거로구나! 충격을 받았고, 감동했고, 그리고 열등감을 느꼈다. 우리의 부유층이 그들의 부유층보다 몇배 잘살고 또 스포츠로 자주 국위를 선양하고 곧 올림픽의 개최국까지 된다는 걸 아무리 상기해도 열등감은 덜어지지 않았다.
그들이 국민의 세금으로 풍족하게 쓰고 있는 건 우리와는 질적으로 다른 거였기 때문이다. 그 학교는 넓고밝고 세심하고, 어떤 종류의 장애자도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완벽하게 친절한데도 개선의 노력은 그치지 않고있었고, 1인 1기를 가르칠 전문적인 시설을 갖추고 있었고, 장애자를 고용함으로써 세제 혜택을 받고자 하는 기업체와 연결돼 있어서 졸업생의 장래까지도 책임지고

지고 그늘진 ‘병신‘다움이 떠올라 가슴이 저렸다. 우리의 정박아가 천사 같지 못한 게 어찌 그 부모 탓만이랴.
우리 모두의, 정말 관심 있어야 할 곳에 대한 무관심, 인간다움보다는 물질적인 것에 대한, 내면보다는 외양에대한 열광이 남은 능히 천사 같은 인간으로 가꿀 수 있는 장애자를 ‘병신‘으로 방기한 게 아닐까.
나는 그때 선물 받은 걸 지금도 간직하고 있고, 천사의 주머니라고 부르면서 미사포 주머니로 쓰고 있다.


나는 이런 보답의 기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외손자 사랑이 좋다.
손자야, 너는 이 할미가 너에게 쏟은 정성과 사랑을갚아야 할 은공으로 새겨둘 필요가 없다. 어느 화창한봄날 어떤 늙은 여자와 함께 단추만 한 민들레꽃 내음을맡은 일을 기억하고 있을 필요도 없다. 그건 아주 하찮은 일이다.
나는 손자에게 쏟는 나의 사랑과 정성이 갚아야 될은공으로 기억되기보다는 아름다운 정서로 남아 있길바랄 뿐이다. 나 또한 사랑했을 뿐 손톱만큼도 책임을느끼지 않았으므로,
내가 불태운 것만큼의 정열, 내가 잠 못 이룬 밤만큼의 잠 못 이루는 밤으로 갚아지길 바란 이성과의 사랑,
너무도 두렵고 무거운 책임감에 짓눌려 본능적인 사랑또한 억제해야 했던 자식 사랑………. 이런 고달픈 사랑의행로 끝에 도달한, 책임도 없고 그 대신 보답의 기대도없는 허심한 사랑의 경지는 이 아니 노후의 축복인가.


그때 그 친구의 모멸의 시선이 지금 생각해도 따갑다. 아닌게 아니라 내 애들 중 예능 방면의 천재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부모를 알량하게 만나 묻혀 있는 게 아닌가 싶은 두려움이 간혹 들긴 하지만 이다음에 ‘큰소리‘
치기 위해 지나친 극성을 떨 생각은 아예 없다.
아이들의 책가방은 무겁다. 그러나 단순히 책가방의무게만으로 한창 나이의 아이들의 어깨가 그렇게 축 처진 것일까? 부모들의 지나친 사랑, 지나친 극성이 책가방의 몇 배의 무게로 아이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거나 아닐지.
"내가 너한테 어떤 정성을 들였다구. 아마 들인 돈만도 네 몸무게의 몇 배는 될 거다. 그런데 학교를 떨어져엄마의 평생소원을 저버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장가들자마자 네계집만 알아. 이 불효막심한 놈아."
이런 큰소리를 안 쳐도 억울하지 않을 만큼, 꼭 그만큼만 아이들을 위하고 사랑하리라는 게 내가 지키고자하는 절도다. 부모의 보살핌이나 사랑이 결코 무게로 그

집이, 부모의 슬하가,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마음 놓이는 곳이기를 바랄 뿐이다.
아이들은 예쁘다. 특히 내 애들은 아이들에게 과도한 욕심을 안 내고 바라볼수록 예쁘다.
제일 예쁜 건 아이들다운 애다. 그다음은 공부 잘하는 애지만 약은 애는 싫다. 차라리 우직하길 바란다.
활발한 건 좋지만 되바라진 애 또한 싫다.
특히 교육은 따로 못 시켰지만 애들이 자라면서 자연히 음악·미술·문학 같은 걸 이해하고 거기 깊은 애정을가져주었으면 한다.
커서 만일 부자가 되더라도 자기가 속한 사회의 일반적인 수준에 자기 생활을 조화시킬 양식을 가진 사람이되기를. 부자가 못 되더라도 검소한 생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되 인색하지는 않기를. 아는 것이 많되 아는 것이 코끝에 걸려 있지 않고 내부에 안정되어 있기를. 무던하기를. 멋쟁이이기를.
대강 이런 것들이 내가 내 아이들에게 바라는 사람됨됨이다.
그렇지만 이런 까다로운 주문을 아이들에게 말로 한

아마 세 살 때쯤일 것이다.
마주 엎드려 그림책을 보고 있는 할머니와 손녀가 있는 사진은 당연히 아름답고 평화롭다. 그런데 왜 아름다움에는 비애가 뒤따르는 걸까. 나는 그 사진을 보면서넋을 잃고 생각에 잠겼다. 그 애는 지금 초등학교 6학년이다. 훌쩍 커서 아름다운 소녀가 되었다. 지금도 예쁘지만 어릴 적 그 아이의 귀여움엔 비길 데 없는 광채 갈은 게 있다. 그 아이는 내가 아들을 잃고 난 후 1년 안에태어난 외손녀다. 아들을 잃었을 때, 내 여생에 다시는근심도 기쁨도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장대 같은 아들을 잃은 지옥 같은 고통에 지쳤을 때 겨우 콩꼬투리만한 새 생명이 기적처럼 나에게 왔다. 그 새 생명을 처음대면했을 때 나는 온몸이 떨리는 듯한 기쁨을 맛보았다.
나에게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이 남아 있으리라고는 예상 못 한 일이었다. 다행히 그 애를 낳은 딸네가 가까이 살고 있어서 나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 애가 자라는 걸 지켜볼 수 있었다. 비로소 마음 붙일 곳이 생긴것이다.
근심도 기쁨도 없이 목석처럼 살아낼 수 있으리라고

입으로는 살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도 얼마나 살고 싶었으면 그 작은 생명에게 마음을 붙이고 울고 웃고 하였을까. 그 애의 생명력이 눈부시다면 내 생명력은 또 얼마나 징그러운가. 나는 딴 손자들이 눈치채지 않도록 조심조심 그 애를 얼마나 편애했던가. 그건 손자 사랑이라기보다는 마음 붙일 수 있는 걸찾아내어 놓치고 싶지 않은 자기애가 아니었을까. 그 한장의 사진은 잊고 지내던 당시의 태산 같은 고통과 함께온갖 자질구레한 기쁨과 슬픔을 불러내어 나를 부끄럽게도, 하염없게도 한다.
내 기억의 창고도 정리 안 한 사진 더미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건 뒤죽박죽이고 어둠 속에 방치되어 있고 나라는 촉수가 닿지 않으면 영원히 무의미한 것들이다. 그중에는 나 자신도 판독 불가능한 것이 있지만 나라는 촉수가 닿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빛을 발하는 것들이 있다. 아무리 어두운 기억도 세월이 연마한 고통에는광채가 따르는 법이다. 또한 행복의 절정처럼 빛나는 순간도 그걸 예비한 건 불길한 운명이었다는 게 빤히 보여서 소스라치게 되는 것도 묵은 사진첩을 이르집기 두려

운 까닭이다. 당시에는 안 보이던 사물의 이중성과 명암, 비의가 드러나는 것이야말로 묵은 사진첩을 뒤지다가 느닷없이 맞닥뜨리게 되는 공포이자 전율이다. 나라는 촉수는 바로 현실이라는 시점이 아닐까. 이미 지나간 영상을 불러내서 상상력의 입김을 불어넣고 남의 관심까지 끌고 싶은 기억에의 애착이야말로 나의 글쓰기의 원동력이자 한계 같은 것이 아닐까, 요즈음 문득문득생각한다.

습작을 시작했다. 지독하게 열심히 했다. 밤잠을 설치고, 입맛을 놓치고, 남의 좋은 글을 읽고 샘을 내고, 발표의 가망도 없는 글을 썼다. 차차 글 쓰는 어려움에 눈 떴다. 자연히 쉽게 쓴 글이 쉽게 당선된 데서 비롯된 내심의 은밀한 오만도 숨이 죽었다.
당선작을 쓰고 나서 습작을 썼으니 순서가 거꾸로 됐지만 그 시기는 당선작을 쓴 시기보다도 훨씬 더 소중한시기였다. 글 쓰는 어려움에 바싹바싹 마르는 것 같으면서도 속에선 뭔가 조금씩 조금씩 살이 찌고 있는 것 같아 보람을 느꼈다. 곧 『여성동아』에서 연재의 기회를 주었고 그 후 여러 지면의 비교적 고른 혜택을 받고 보니어름어름 작가인 척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자랑할 거라곤 지금도 습작기처럼 열심히라는 것밖에 없다.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허튼소리 안 하길, 정직하길, 조그만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매질하듯 다짐하며 쓰고 있지만, 열심히라는 것만으로 재능 부족을 은폐하지는 못할 것 같다.
작가가 될까 말까 하던 4년 전의 고민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채다.

1931.10.20
~
2011.01.22

에세이 제목
친절한 사람과의 소통유쾌한 오해수많은 믿음의 교감사실대의 비오는날집 없는 아이보통 사람인덕밤은내방이멜다의 구두천사의 선물넉넉하다는 말의 소중함나는 나쁜 사람일까? 좋은 사람일까?
다 지나간다아름다운 것은 무엇을 남길까나는 누구일까생각을 바꾸니행복하게 사는 법민들레꽃을 선물받은 날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할머니와 베보자기달구경사랑의 입김내 기억의 창고새해 소망성차별을 주제로 한 자서전뛰어난 이야기꾼이고 싶다.
중년 여인의 허기증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나의 문학과 고향의 의미잃어버린 여행가방시간은 신이었을까내 식의 귀향때로는 죽음도 희망이 된다.
마음 붙일곳그때가 가을이었으면「노란집 열림원, 2013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문학동네,2015아름다운 것은 무엇을 남길까 세계사, 2000나의 만년필, 문학동네, 2015나를 닮은 목소리로 문학동네, 2018지금은 행복한 시간인가 문학동네, 2015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들, 문학동네,2015「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세계사, 2002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예수 문학동네,2015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문학동네,2015살아 있는 날의 소망, 문학동네,2015나를 닮은 목소리로, 문학동네, 2018[호미, 열림원, 2007아름다운 것은 무엇을 남길까」, 세계사,2000
‘세상에 예쁜 것, 마음산책, 2012나를 닮은 목소리로, 문학동네, 2018[노란집』, 열림원, 2013살아 있는 날의 소망, 문학동네, 2015「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세계사, 2002살아 있는 날의 소망, 문학동네, 2015「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문학동네, 2015
"아름다운 것은 무엇을 남길까 세계사, 2000[세상에 예쁜 것, 마음산책, 2012「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문학동네, 2015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매수, 문학동네, 2015「살아 있는 날의 소망」, 문학동네, 2015[나의 만년필 문학동네, 2015「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세계사, 2002나를 닮은 목소리로, 문학동네, 2018『잃어버린 여행가방」, 실천문학사, 2005[세상에 예쁜 것, 마음산책, 2012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현대문학, 2010[아직 펴보지 않은 책 죽음, 신앙과 지성사, 2016[두부, 창작과비평사,2002『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세계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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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문단속이 허술한성격이라 현관문은 안 잠그고 대문만 잠갔는데 대문 또한 허술하여 밖에서 팔을 안으로 넣어 열 수 있게 되어있어 집에 들어오는 데 지장은 없었다. 그래도 시간 걸리는 외출을 하려면 문단속을 안 할 수가 없겠기에 오던길을 되짚어가서 찬찬히 살펴보았지만 못 찾았다. 그 후며칠은 산에 갈 때마다 발밑만 보고 걸었지만 어디 꼭꼭숨었는지 눈에 띄지 않았다. 자식들한테 준 스페어 열쇠를 회수해서 문단속을 제대로 하게 된 후 비로소 발밑을살피는 일에서 해방이 되었다.
다시 한눈을 팔 수 있게 되었을 때 내 열쇠가 바로 길가 내 눈높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걸 발견했다. 누군가가 주워서 그렇게 눈에 잘 띄게 걸어 놓았을 것이다.
그 산책 길은 나 혼자만의 길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길

은 내가 낸 길도 아니었다. 본디부터 있던 오솔길이었으니 누군가가 낸 길이고 누군가가 현재도 다니고 있어서그 길이 막히지 않고 온전한 것이다.
길은 사람의 다리가 낸 길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이 낸 길이기도 하다. 누군가 아주 친절한 사람들과이 길을 공유하고 있고 소통하고 있다는 믿음 때문에 내가 그 길에서 느끼는 고독은 처절하지 않고 감미롭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는 일은 만용이었으리라. 그날 밤일이 지금 생각해도 유쾌한 건 이런 광범위한 믿음의 교감의 추억 때문인 것 같다.
우리가 아직은 악보다는 선을 믿고, 우리를 싣고 가는 역사의 흐름이 결국은 옳은 방향으로 흐를 것을 믿을수 있는 것도 이 세상 악을 한꺼번에 처치할 것 같은 소리 높은 목청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소리 없는 수많은사람들의 무의식적인 선, 무의식적인 믿음의 교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올겨울은 눈이 많을뿐더러 추위 역시 대단했다. 우리집처럼 방이 여럿이고 방마다 연탄을 때는 집에선 매일매일 배출해내는 연탄재만 해도 엄청나다. 만일 하루 걸러 오는 청소부가 사흘이나 닷새쯤을 오지 않는다면 우리 동네는 연탄재에 묻히리라. 그러나 청소부 아저씨는어김없이 온다. 아침 기온이 영하 15도가 넘는다는 관상대(기상청 소속 기관인 ‘기상대‘의 옛 이름 - 편집자 주) 발표를듣고 나서 아저씨의 손수레 바퀴가 언 땅을 덜커덕덜커덕 구르는 소리를 들을 때처럼 고맙고 안심스러울 때는없다.

현장 사무소 같았다. 일자형의 흰 건물에 함석지붕이 질고독한 주황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아아, 하고 나는 다시한번 신음했다. 나는 평생 그렇게 독하고 추악한 주황색을 본 일이 없다. 더군다나 그 주황색은 비에 젖어번들대고 있었다.
그 주황색이 내 뇌를 갈고 지나가는 듯한 충격을 나는 내 뇌수에 느끼고 진저리를 쳤다. 나는 그런 충격은청각의 자극을 통해서만 일어나는 것으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독한 쇳소리의 마찰음을 들었을 때 뇌속에 일어나는 미칠 듯한 경련과도 흡사한 쇼크가 시각을 통해 내 뇌 속에 일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그 주황색지붕 너머로 미래의 아파트 단지의 투시도가 선명하게보였다.
비로소 문리대가 헐리고 속악하고 호사스러운 고층아파트가 들어서게 된다는 현실감이 나에게 왔다. 그 현실감은 고약하고 고통스럽게 왔다. 나는 지금도 그 빗속에 번들대던 주황색 지붕을 생각하면 혐오감으로 진저리가 쳐진다.
그 혐오감은 유서 깊고 자랑스럽던 대학 자리에 호화

웬일인지 이 결혼사진도 구걸 행각의 소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약고 똑똑한 생각은 안 했다. 나는 구걸하는 사람에게 베풀기에는 좀 많은 돈을 꺼내서 얼른 그사람의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남편이 알까 봐, 또 딴 승객들이 눈치챌까 봐, 나쁜 짓이라도 하듯이 몰래 재빠르게 그 짓을 하고, 하고 나서도 얼굴을 붉혔다.
아마 그날이 내 결혼기념일이어서 내가 그럴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의문이 안 풀리는건 그가 왜 하필 결혼사진을 꺼내 보이며 구걸할 생각을했을까 하는 거다. 내가 보기엔 그게 조금도 구걸에 도움을 주는 것 같지가 않았는데 말이다. 어쩌면 결혼의 의미를 남보다 더 잘, 더 많이 알고 있었음이 아닐까.

비 오는 날 있었던 사건이랄 것도 없는 몇 가지 얘기를 적어 놓고 보니 문득 서글프다. 빗속에서 같이 받은우산이 인연으로 싹튼 로맨스가 한 컷쯤 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그게 없는 걸 어찌하랴. 이래저래 40대의 비 오는 날의 사건은 재미없을 수밖에 없나보다.

딸애들이 한창 혼기에 있을 땐 어떤 사위를 얻고 싶으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고, 친구들끼리 모여도 화제는주로 시집보낼 걱정이었다. 큰 욕심은 처음부터 안 부렸다. 보통 사람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말이 쉬워 보통 사람이지 보통 사람의 조건을 구체적으로 대라면 그때부터 차츰 어려워지기 시작한다.
우선 생활 정도는 우리 정도로 잡았다. 왜냐하면 우리보다 잘사는 사람도 많고 못사는 사람도 많은데 내 어림짐작으로는 우리보다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의수효가 비등비등한 것 같으니 우리가 중간, 즉 보통 정도는 될 것 같았다. 그런 식으로 만들어본 보통 사람은대략 이러했다.
살기는 너무 부자도 아니고 너무 가난하지도 않을것, 식구끼리는 화목하되 가끔 의견 충돌쯤 있어도 무방함, 부모가 생존해 계시되 인품이 보통 정도로 무던하여자식에게 보통 정도의 예절과 공중도덕을 가르쳤을 것,
학력은 내 자식이 대학을 나왔으니 대학은 나와야겠지만 일류냐 이류냐까지는 안 따지기로 하고 그 대신 적성에 안 맞는 엉뚱한 공부를 해서 대학을 나오나마나이

면 절대로 안 되고, 용모나 키도 보통 정도만 되면 되지만 건강할 것, 돈 귀한 줄 알고 인색하지 않을 것, 등등이었다.
나는 그만하면 욕심도 너무 안 부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정도의 사윗감은 쌔고 썼으려니 했다. 그러나웬걸, 막상 나서는 혼처는 하나같이 내가 생각하고 있는보통 사람을 넘지 않으면 처졌다. 보통 사람이 그렇게귀할 수가 없었다. 내가 가장 보통이라고 생각하고 내세운 조건은 어쩌면 가장 까다로운 조건인지도 몰랐다.
나는 우선 사돈을 맺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보통가정을 내 둘레에서 찾아보기 시작했다. 역시 귀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면 내 집은 남이 보기에 보통일까? 거기 생각이 미치자 그것조차 자신이 없는 게 아닌가. 우선 주부가 글을 쓴다고 툭하면 이름 석 자가 내걸리고,
살림은 건성건성 엉터리로 하는 가정이 어디 보통 가정인가. 나는 그만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보통 사람은 나에게만 어려운 게 아닌 모양이다. <보통 사람들>이란 TV 연속극이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을때 나도 그걸 꽤 열심히 보았지만 그 사람들이 보통 사

람이라고 여겨지진 않았다. 그러나 보통 사람이란 제목은 가장 광범위한 사람에게 동류의식을 일으켰음직하다. 전형적인 보통 사람을 찾긴 힘들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를 보통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하고 또 그렇게 생각할 때 가장 마음이 편안한 것 같다. 그것은 아마학교에서 가정환경 조사서를 써 오라고 할 때 생활 정도란에 거의 다 ‘중‘을 쓰는 심리와도 비슷한 것이 아닐까.
얼마 전에 어떤 일간지에서 평균치의 한국 사람을 계산해서 거기 꼭 들어맞는 사람을 찾아내서 ‘한국의 보통사람‘이라는 이름으로 크게 보도한 적이 있다. 나는 그가 크게 웃고 있는 낙천적이고 건강한 얼굴을 보고 내가오랫동안 찾고 있는 사람을 만난 것 같은 반가움과 친숙함을 느꼈다. 그러나 그가 갖춘 보통 사람의 조건은 내가 생각하고 있는 보통 사람의 조건하곤 얼토당토않은것이었다.
그의 생활 정도나 학벌은 내가 생각하고 있는 보통사람을 훨씬 밑돌았지만 그는 보통 이상 날카로운 사회적 안목과 비판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보통 사람다운 점이 딱 하나 있다면 그것은 큰 욕심 안 부리고 열

심히 노력해서 지금보다 좀더 잘살고 자식은 자기보다더 많이 가르치고 싶다는 건전하고 소박한 꿈이었다.
그러나 한편 냉정히 생각해보면 큰 욕심 안 부리고노력한 것만큼만 잘살아보겠다는 게 과연 보통 사람의경지일까? 보통 사람이란 좌절한 욕망을 한 장의 올림픽복권에 걸고 일주일 동안 행복하고 허황된 꿈을 꾸는사람이 아닐까? 보통 사람의 숨은 허욕이 없다면 주택복권이나 올림픽복권이 그렇게 큰 이익을 올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이 풍진세상에서 노력한 만큼만 잘살기를 바라고 딴 욕심이 없다면 그건 보통 사람을 훨씬넘은 성인의 경지이다.
그럼 진짜 보통 사람은 어디 있는 것일까? 과연 있기는 있는 것일까? 보통 사람이란 평균 점수처럼 어떤 집단을 대표하고 싶어 하는 가공의 숫자일 뿐, 실지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크게는 안 바라요. 그저 보통 사람이면 돼요." 가장겸손한 척 가장 욕심 없는 척 이렇게 말했지만 실은 얼마나 큰 욕심을 부렸었는지 모른다. 욕심 안 부린다는말처럼 앙큼한 위선은 없다는 것도 내 경험으로 알 것

같다. 아마 나의 가장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가장 까다로운 조건만 내세워 자식들의 배우자를 골랐더라면 생전 시집 장가 못 보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제 마음에드는 짝을 제각기 찾아내서 부모의 승낙을 받고 슬하를떠났으니 큰 효도한 셈이다. 아직도 보내야 할 자식이남아 있긴 하지만 보통 사람을 찾는 일은 그만두기로 한지 오래다.
서른둘이 되도록 시집을 안 가고 있는 딸을 둔 내 친구는 보는 사람마다 붙들고중매서라고 조르는 버릇이있다. "바지만 입었으면 돼." 그게 내 친구의 사윗감에대한 간단명료한 조건이다. 그러나 서른두 살 먹은 그처녀는 치마 입은 총각이나 나타나면 시집을 갈까, 바지입은 총각들한테는 흥미 없다는 낙천주의자다. 나는 그렇게 초조해하는 친구보다 그의 딸의 느긋한 여유가 한결 보기 좋아서 친구한테, 그 애는 결혼 안 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는 애니 제발 좀 내버려두라고 충고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친구는 벌컥 화를 내면서 보통사람들이 다 하는 사람 노릇도 못 하고 나서 행복 불행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렇담 내 친구는 행불행

이전의 최소한 사람 노릇을 보통 사람의 전형으로 삼고있다고도 볼 수 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보통 사람과도, 신문사에서 뽑은보통 사람과도 다른 또 하나의 보통 사람이었다. 내가좋아하는 보통 사람의 실체를 파악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이러다가는 내가 보통 사람을 좋아한다는 게 정말인지조차 의심스러워진다.
모르겠다. 지금 누가 나에게 보통 사람이 누구냐고묻는다면 이마에 뿔만 안 달리면 다 보통 사람이라고 대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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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의 몇 가지 장면을 떠올리면서
미처 분명하게 드러내거나 인정하지 못 했던 부끄러운 판단과 선택과 무시의 말과 행동이 진열된다.....
막상, 보통이라는 단어를 내놓아도
정작 그것이 자신에게 돌아왔을 때 얼마나 어려운 기준이었나 하는 것도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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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를 잡는다며 사람들이 육지에서 섬으로 왔다. 경찰옷을 입은 사람도 있었고 군복을 입은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그들 옷에는 계급장이 없었다. 여름에서 겨울 사이 2천 명이넘는 외지인이 제주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그들을 서북청년단이라고 불렀다. 나랏일 하는 높은 사람들이 보냈다는 말도 있었다. 그들은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잡아갔다. 잡혀가지 않으려고 버티면 몽둥이를 들고 때렸다. 울던 아이들도 서북청년단이란 말을 들으면 무서워서 울음을 그치고 이불 속으로 숨었다. 식당에서 행패를 부린 이들도 서북청년단원이었다.


장동춘이 제 얼굴을 순욱의 얼굴 가까이 들이밀었다. 순욱은 움찔 놀랐다. 그 순간 장동춘이 우악스럽게 순욱의 손을 잡고 할머니 집으로 잡아끌었다. 부하들이 집을 에워쌌다. 순욱은 끌려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장동춘의 힘을 이기지 못했다.
"당장 그 손 놓지 못해!"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군용 트럭이 멈췄다. 그리고 그 안에서 군인들이 내렸다. 군인들이 장동춘과 부하들을 향해 총을겨눴다.
"당장 그 손 놔!"
문상길이었다. 옆에 있던 손선호가 장동춘을 향해 총을 겨눴다.
"상길 씨!"
순욱이 상길을 보며 울먹였다.
"오호라! 저 군인 양반이 남편이로구만. 그런데 빨갱이 잡아야 할 시간에 경비대가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여전히 순욱의 손을 잡은 채 장동춘이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고한 사람들 괴롭히지 말라는 말 못 들었나? 너희들이해야 할 일을 똑바로 하는지 감시하는 것이 내 임무다. 당장 그손 놓고 꺼져!"

그때였다. 십여 미터 떨어진 집에서 불길이 일어났다. 정말로 집에 불을 지르는 모양이었다.
"언니, 명이 명수랑 방에 들어가 이십서 절대로 나오지말곡."
순욱은 신발까지 방안에 던져 넣었다.
"무슨 일인지만 보고 오젠 마씸. 저놈들이 행패를 부리면 상길 씨에게 알려야 되죠."
"아가씨, 가지 맙서. 아가씨!"
순욱은 진숙의 말을 듣지도 않고 집을 나섰다.
순욱은 학교 뒷담을 넘어 건물 뒤에 숨었다. 국민학교 운동장에는 마을 사람 대부분이 모여 있었다. 장동춘이 연단에 올랐다.
"지금 산속에 빨갱이들이 숨어있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위해 불철주야 애쓰고 있는데 공산주의 사상에 물든 빨갱이들이 설쳐대고 있단 말이다. 너희들이 산에 숨어있는 놈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가져다주고 있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다.
빨갱이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준 적이 있는 자는 앞으로나와라, 사실대로 말하면 다른 사람들은 집에 보내주겠다."

차례
총성.....… 6
밤마실 11
명령 그리고 만남.
******27
서북청년단 48
빨갱이 사냥.
남겨진 신발 한짝……85
66
횃불 113
깨지는 평화 협상이별, 그리고 - 146
또 다른 총성
작가의 말******130
170-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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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라. 먼 나라의 산불이 아니라 언제든 나와 가족이 전염병에 감염될 수 있다는 공포에 온 세계가 사로잡혔다. 
이러한 팬데믹 상황이 발생한 것은 자연에 대한 과도한 개발과 파괴로 인해 야생의 영역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오늘날 자연재해와 사회적 재난은 무관할 수 없고 국지적 양상을 띠지도 않는다. 
글로벌 자본주의체제가 지속되는 한, 화석연료에 의존한 성장사회를 멈추지 않는 한 
부유한 계층이 기득권과 탐욕을 내려놓지 않는 한, 
환경파괴와 노동착취는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인류세‘ 논의를 주도해온 과학자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는 지구의 급박한 위기상황을 ‘연료가 바닥난 비행기, 구멍이 난 배, 불타고 있는 집‘에 비유했다. 
이 총체적 재난은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라는 울리히 벡(Ulrich Beck)의 말처럼, 특정한 나라나 계층에 한정되지 않고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재난의 책임과 영향은 결코 공평하지 않으며, 가장 피해를 많이 입는 것은 경제적·사회적 약자들이다. 
"위험분배의 역사는 부와 마찬가지로 위험이 계급 유형에 밀착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그 방향은 서로 반대다.
 "부는 상층에 축적되지만, 위험은 하층에 축적된다." "
이처럼 생태문제는 정치체제나 경제구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생명정치‘ 또는 ‘정치생태(학)‘라는 말이 시대적 키워드로 회자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991년에 창간된 이래 생태 사상과 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쳐온 『녹색평론』의 글들을 일별해 보면 생태적 전환을 모색하는 범위나 접점, 문제의식 등이 계속 확대되어 온 것을 확인하게 된다. 
김종철의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에서도 에콜로지가 농업, 민주주의,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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