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소질이나 취미 계발은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된다. 타인과의 사회적 경쟁에 나설 때, 자신이 속한 조직의 이익을 위해 복무할때, 사회적 성취를 거둔 개인이 계발에 나설 때, 그는 노력하는 개인이 된다. 청년들은 이 구조적 문제를 희화화하면서도 우선은 생존을위해 영합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사실 훈이라는 것의 전형이 대개 그렇지만 노력, 도전, 열정과 같은듣기 좋은 단어들은 아주 모호하다. 그래서 그 공백마다 시대의 욕망이 스며들게 된다. 그렇게 무장된 단어들은 오히려 내규, 수칙, 방침등, 구체적인 제도의 언어에 우선할 만큼 힘이 세다.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것은 노력으로, 그러면서 근로기준법이나 계약서에 명시된 추가근무수당을 요구하지 않는 것은 열정으로, 무리한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도전으로 각각 개인에게 강요된다. 말하자면, 이것이 결국 모든 언어에 앞서는 헌법인 셈이다. 일과 삶이분리되지 않을 만큼의 ‘노오력‘, ‘도오-전‘, ‘여일정‘, 이처럼 현장의개인은 단어가 가진 모호함의 크기만큼 소모되고 만다. ‘회사의 비전‘과 ‘회사의 인재상‘에서 각각 다르게 표시된 ‘고객‘과 ‘도전‘이라는 두 단어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 욕망은 해석하기 나름이다. 누군가는 고객만족을 위한 도전이 이 회사들에게 오늘의 영광을 선사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훈들이 이
게 작용한다는 점에서, 그에 더해 개인의 소모를 당연시 여기고 있다는 점에서 ‘나쁜 훈‘이다. 직관적으로 공감할 수 없기에 굳이 나름의해석이 필요하게 되고, 자신을 억지로 그에 끼워 맞추는 작업을 해야만 한다. 그렇게 굴복하고 나서야 회사에서 원하는 인재가 되어 그에복무할 수 있다. 내가 이 회사의 구성원이라면 그 정문을 지날 때마다몹시 모욕적이었을 것이다.
B급 감성을 드러내는 ‘이상한 훈‘들도 있다. 어느 회사원은 온라인게시판에 "건설회사를 다니는 직딩입니다. 어느 날 사장님께서 정말너무 멋진 사훈이 생각났다며 액자에 넣어서 사무실에 걸어두신 사훈입니다." 하는 글을 올리고는 "죽을 만큼 일해도 안 죽는다"는 사훈의사진을 첨부했다. SNS에도 사무실의 사훈을 찍어 올리는 사례가 많다. 頭登可하기실음 관두등가) 물 흐르듯 아무 소리 없이열심히 일하면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다",
"쉬지 말고 일하자", "손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다"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과잉이나 반전의서사를 애초에 의도하고 만들어진 것이어서 누구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웃어야 할지 얼굴을 찡그려야 할지 고민하게만들고 곱씹어 볼수록 회사로서든 개인으로서든 별다른 의미도 남지않는다. 모욕적이지는 않지만 괜한 감정을 소비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권장하기는 어렵다.
송파구에서일 잘하는 방법 11가지
1.9시 1분은 9시가 아니다. 2. 업무는 수직적, 인간적인 관계는 수평적 3. 간단한 보고는 상급자가 하급자 자리로 가서 이야기 나눈다. 4. 잡담을 많이 나누는 것이 경쟁력이다. 5. 개발자가 개발만 잘하고, 디자이너가 디자인만 잘하면 회사는 망한다. 6. 휴가 가거나 퇴근 시 눈치 주는 농담을 하지 않는다. 7. 팩트에 기반한 보고만 한다. 8. 일을 시작할 때는 ‘목적, 기간, 예상 산출물, 예상 결과, 공유 대상자‘를생각한다. 9. 나는 일의 마지막이 아닌 중간에 있다. 10. 책임은 실행한 사람이 아닌 결정한 사람이 진다.
11. 솔루션 없는 불만만 갖게 되는 때가 회사를 떠날 때다.
‘우아한형제들‘은 ‘배달의 민족‘으로 유명한 스타트업 회사다. 위의사훈은 ‘송파구에서 일 잘하는 방법 11가지‘라는 이름으로 2016년 즈음에 널리 알려졌다. 사무실에 붙어 있는 것을 방문자들이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린 것이다. 여기에 재미와 공감을 느낀 사람들은 이것을순식간에 확산시켰고, 실제로 송파구에 본사를 둔 우아한형제들은 자신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를 별도의 비용 없이 홍보하는효과를 누렸다.
이전까지 사훈이라는 것은 대개 명확하고 구체적인 지침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었고 일상어는 거의 활용되지 않았다. 위의 각 항목에 활용된 ‘아니다‘, ‘적‘, ‘잡담‘, ‘망한다‘, ‘눈치‘, ‘농담‘, ‘팩트‘, ‘생각한다‘, ‘떠날 때다‘라는 단어들은 회사의 지침으로 활용되기에는 누가보아도 다소 가벼운 것이다. 원래 사훈이라고 하면 모호하거나 고루하고, 구체적이라고 해도 곧 눈을 돌리게 만들 만큼 개인에게 부담을지우는 것들이 주류를 이룬다. 그런데 우아한형제들은 마치 대학교 동아리실이나 고등학교 교실의 급훈으로 어울릴 법한 문장들을, 심지어 "업무는 수직적, 인간적인 관계는 수평적"이라는 식으로 어미도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종결하는 방식으로 사훈을 만들었다.
2018년 8월 첫째 주, 온라인 서점의 베스트셀러(에세이 부문) 순위 1위: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2위: 곰돌이 푸 :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3위 : 모든 순간이 너였다 4위 : 언어의 온도 5위 :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6위 :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7위 : 곰돌이 푸 :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8위 :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9위 : 한때 소중했던 것들 10위 : 이제부터 민폐 좀 끼치고 살겠습니다
책의 제목을 보면서 나는 저것이 누군가의 책꽂이에 차례대로 꽂혀 있는 상상을 했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과 《이제부터 민폐 좀 끼치고 살겠습니다>라는 책은, 회사원의 책꽂이에 있을 것만 같다. 직장 상사나 동료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면서도 ‘이래도 괜찮을까‘ 하고 우울한 그가, 이것저것 업무와 관계된 서류들이 가
이 어떠한 방식으로 발현될지는 알 수가 없다. ‘분노‘가 될 수도 있고 ‘더 깊은 위로‘가 될 수도 있고 완전히 새로운 무엇이 찾아올 수도 있겠다. 우리는 책꽂이에 자신의 욕망을 전시해 왔다. 어쩌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지금 나의 책꽂이를 살피는 일은 스스로가 내재화한 훈의 실체와 마주하는 일이 된다. 그에더해, 타인의 공간에 아무렇게나 놓인 한 권의 책은 현재의 그가 당신에게, 혹은 자신에게 가장 건네고 싶은 절박한 말과도 같다. 누군가가당신의 눈길이 닿는 곳에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라든가 《이제부터 민폐 좀 끼치고 살겠습니다>라는 제목의 책을 놓아두었다면,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도 있겠다.
7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བ༈
사람은 저마다의 훈을 만들고 살아가는 존재다. 좌우명이라든가하는 삶의 지침이 될 만한 멋진 문구를 곁에 두면, 괜히 든든한 것이다. 그것이 나의 삶을 구원해 줄 것처럼, 무엇보다도 타인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해줄 것처럼 보인다. 나에게도 ‘진정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훈이 있었다. 이것은 야구선수 이승엽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나는 그의 오랜 팬이고, 언젠가 그가 한 시즌에 56개의 홈런을 치고 인터뷰에서 말한 이 좌우명이 정말로 멋져서 한동안 나의것으로 삼았다. 2000년대 초반,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이었으니까벌써 20년 가까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 훈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했다. 어떤 성과를 거두지 못할 때마다 ‘진정한 노력‘을 하지 않은 나를 탓하게 되었고, 그래서 스스로를 혐오하는 데까지 이르기도 했다. 배신당했다고 느끼는 어느 순간들이 늘어나면서 나는 결국 그 훈을버렸다. 아마 대학원생이던 때였을 것이다. 별다른 실패를 한 것은 아
불해 주겠다고 했다. 그러니까. 80퍼센트가 넘는 금액을 수수료로 떼어기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부당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여행사 직원에게 화를 내거나 책임자를 바꿔달라고 하지는 않았다. 대학에서 나오면서 내가 결심한 것 중 하나는 ‘나를 닮은 사람들‘에게는 화를 내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것도 어쩌면 내가 선택한 훈이 되겠다. 전화를 받고 있는 여행사 직원도 나를 닮은 을이고 그들에게 분노한다고해서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 몇만 원을 더 돌려받는다고 해도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고 내가 약간의 구제를 받는 것일 뿐, 이 사회의 문화와 제도가 근본적으로 변화하지는 않는다. 그 분노는 잘 간직해 두었다가 모두와 함께할 기회가 있을 때 다시 꺼내기로 했다. 그러면 나를 둘러싼 이 사회가 아주 조금은 한 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행사 직원에게 티켓을 양도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누군가를 대신 여행 보내줄 수 있다면 그도 나도 1만 8천 원의 금액보다는 더욱 행복할 것이다. 전화를 받은 직원은 가능하다면서 ‘1) 대한민국 남성이면서, 2) 이름이 김민섭이고, 3) 서로의 여권에 있는 영문 이름의 스펠링이 완전히 같은 사람‘을 찾아오라고 했다. 나는 그것이 불가능할 것을 알았지만 ‘김민섭‘이라는 흔한 이름으로 태어난 이유가 여기에 있구나, 싶었다. 찾아보겠다고 답하고는 페이스북에 "김민섭 씨를 찾습니다, 후쿠오카 왕복항공권을 드립니다." 하는 글을 남겼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관심을 가졌다. 저마다 자신의 친구 김민
그 이후, 나는 이전과는 다른 나만의 훈을 하나 가슴에 안고 살아가고 있다.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하는 것이다. 나는 우리 모두가연결되어 있다는 상상을 한다. 서로를 연결하고 있는 그 끈은 아주얇고 느슨하지만 끊어지지 않는다. 누군가가 그것을 잡아당기면서 ‘저는 여기에 있어요‘ 하고 말하면 그 줄이 팽팽해지고 비로소 자신과 연결된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자연스럽게 저 사람이 잘되면 좋겠다는 저마다의 마음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나는 당신의 잘됨이 나의 잘됨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를 계속 찾아보고 싶다. 원래 마지막 글에서는 ‘욕망으로 남은 말들‘이라고 해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여러 개인의 훈들을 모아보려고 했다. 언젠가 ‘막말의 아카이브‘를 만들어두고 싶다고 생각한 일이 있다.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2016년 7월, 나향욱)는 문제의 발언이 나왔을 때였다. 사실 이러한 막말은 언제나 있어왔다. 우리는 그때마다 다 함께분노하고 그를 비난하고 가능하면 강력한 처벌을 바랐지만, 시간이흐르면 곧 언제, 누가, 어디에서, 어떠한 맥락으로 그 막말을 했는지를잊는다. 그래서 나는 IT업계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우리 현대사의 막말을 모으는 온라인 페이지를 개설해 보면 어떨지를 물었다. 그러한말들을 집단지성의 힘으로 실시간 기록해 내는 것이다. 친구는 재미있겠다고 했지만, 세상일이 대개 그렇듯 우리 둘 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지는 못했다. 그 이후에도 "국민은 ‘레밍‘이다"(2017년 7월, 김학철),
"밥하는 동네 아줌마가 왜 정규직이 되어야 하는 거냐"(2017년 7월 이언주), ‘서울 살던 사람이 이혼하거나 직장을 잃으면 부천으로 가고거기서 더 살기 어려워지면 인천 중구나 남구로 옮긴다"(2018년 6월, 정태옥) 등등, 많은 욕망의 말들이 사회를 뒤덮었다. 우리는 그 말들을 막말로 규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이 시대가 가진 욕망의 말들이고 이 시대가 가진 훈의 품격이된다. 특히 그런 말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도 오래 기억해야 한다. 액체화된 몸으로 타인을 좀비로 전염시키고 자신의 대리인간으로 만들어내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학교, 회사, 공공기관뿐 아니라 어디에나있다. 우리는 그들을 거부하는 동시에 스스로의 훈을 만들어야 한다. ‘나‘보다는 ‘너‘를 위한, 그리고 ‘우리‘를 향한 훈을 곁에 두어야 한다. 그것이 시대의 욕망을 따라 유동하는 개인의 몸을 구원해 줄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나의 훈을 보낸다. 당신이 잘되면 좋겠다.
학교, 회사, 아파트에서 욕망을 마주하다 <대리사회>가 우리 사회의 몸의 기록이었다면<훈의 시대>는 그 언어의 기록이다!
어느 시대이든 그 구성원들을 규정하고 통제하기 위한 언어, ‘훈‘이 있다. 우리가 이미 소멸되었을 것으로 믿는 순결, 정숙, 착한 딸, 근면, ‘우리는 남들보다 두 배 더 열심히 일한다‘ 등의 언어들이 학교에 회사에 개인이 존재하는 모든 일상의 공간에 새겨져 있다.
그것은 한시대가 가진 적나라한 욕망이다. 이 훈들은 물리적 실체를 가진 상징물이라기보다는 마치액체처럼 개인에게 가서 닿는다. 때로는 거대한 물질이 되어, 때로는 잘게 분사되어 그 구성원들을 그 욕망에 젖은 대리인간으로 만들어낸다.
이 책은 이 시대의 개인들에게 보내는 작은 제안이다. 한 시대를 마감하는 일은 누군가를구속시키고 승리를 선언하는 데서 오지 않는다. 새로운 시대는 우리 주변의 언어를 전복시킬 때 비로소 찾아온다. 욕망에 잡아먹히지 않고, 우리를 규정하는 언어를 스스로 선택할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를 ‘대리인간‘이 되지 않고 이 ‘훈의 시대‘를 살아가게 할 것으로 믿는다.
김민섭 작가의 글과 작업은 늘 흥미롭다.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거리의 사정에 밝고, 그곳을 지배하는 배후의 힘을 날카롭게 꿰뚫어 보며, 가끔은 그 힘을 이용해 재미있는 이벤트를 벌이기도 한다. 이번에 그가 찾아간 현장은 학교와 회사와 아파트 단지. 저자는 이 책에서 현실에 탄탄하게 발을 디딘 사유를 따뜻하고 치우치지 않은 통찰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우리 시대 訓들의기괴함을 폭로하면서 우리 자신의 訓을 새로 쓰자고 제안한다. 장강명_ <당선, 합격, 계급>, <한국이 싫어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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