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으냐?"

인간 김홍도,
열세 살 아들의 천진하면서도 가감 없는 시선으로 다시 태어나다!

"그림은 붓으로 그리는아니다. 네 마음을 쪼개 그 조각으로 그리는 것이다. 너만이 듣고 볼 수 있는 것을 그리는 것이다. 그것이 쉽겠느냐? 그래서 사람이 일평생 그릴 수 있는 그림에는 한도가 있는 것이다. 네가 원한다면 내 그림을 얼마든 흉내 내팔아도 좋다. 하지만 그런 그림을 그리는 너는 화가는 아니다. 내 말, 알겠느냐?"
"네.
"연록아, 내 다시 묻겠다. 정말로 그림을 그리고 싶으냐?"
나는 아버지의 질문에 답하지 못합니다. 네, 라고도 못 하고 아니요, 라고도 못 합니다. 그저 바닥에 머리 붙이고 눈물만 쏟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나를 잊어라. 내 그림을 잊어라."
-본문에서

김홍도에겐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40대 후반에 얻은 아들, 김양기가 있었습니다.
늦게 얻은 아들인 까닭에 김홍도가 세상을 떠났을 때 김양기의 나이는 열넷 내지 열다섯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김양기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소년은 어떻게 어른이 되었을까요? 내가 궁금한 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글의 주인공은 김홍도가 아니라 김양기입니다. 조선 최고의 화가 김홍도가 아니라 무명에 가까운 그의 아들 김양기가 바로 이 글의 주인공입니다.
「작가의 말」에서

"선왕께서는 달을 무척 좋아하셨나 봅니다."
아버지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봅니다. 아버지는 허허 소리내어 웃습니다.
"그렇다. 네 말대로 선왕께서는 달을 무척 좋아하셨다. 스스로를 달이라고 생각하셨다.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달, 온 천지를 비추는 말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하셨다. 그래서 선왕은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人)이라는 호를 스스로 지으셨지."
만천명월주인옹, 듣기만 해도 마음이 저절로 포근해지는 이름입니다. 
세상 모든 물을 비추는 하늘의 밝은 달, 그리고 그 주인인 할아버지! 너그러운 시선으로 온 세상을 굽어살피는 인정 많고 세심한 할아버지! 나중에 나는 정조 임금님이 오십도 되지 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정조 임금님의 성격이 포근하기는커녕 엄하고 까다로웠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그런 이야기를 다 들은 후에도「월만수만도」를 통해 얻은 정조 임금님에 대한 내 첫인상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정조 임금님은 그림 한 점으로 나에겐 언제나 포근하고따뜻한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지금 세상에도 달은 있으나 그 달은 이전의 달이 아니다. 한때 달은포근했으나 지금은 냉랭하다. 포근하지 않고 냉랭하기만 한 달은 더는달이 아니다."
내게 하는 말일까요? 아버지의 얼굴을 봅니다. 아버지의 얼굴은 나를 보고 있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나 또한 아버지가 한 말을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나를 혼내는 대신사람들이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말했습니다. 그 말이, 회초리보다 더 아프게 내 종아리를 때립니다. 하지만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고 속으로만 웁니다. 
아버지가 나에 대한 화를 아끼듯 나 또한 눈물을아껴야만 합니다. 나는 눈물을 아끼며, 속으로만 울려 애쓰며 아버지가 하는 말을 하나 놓치지 않고 들었습니다. 
그랬기에 나는 나중에 내친구에게 아버지의 자부심이었던 그림과 인품을 함께 말하게 되고,
내 친구는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은 후 다음과 같은 글로 정리하게됩니다.


원나라 때는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많이 나타났다. 그중에서 가장두드러진 이는 예찬이다. 그의 인품이 높았던 까닭이다. 단원이 김득신최북, 이인문 사이에서 홀로 독보적인 까닭은 무엇인가? 인품이 높아야필법도 높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나를 보며 아버지로선 드물게 목소리를 높입니다.
"네가 한 짓이 곧 내가 한 짓이다. 그게 나라는 사람이다."

표암 선생에게 한결같았고 표암 선생 또한 아버지에게 한결같았습니다. 
아버지 말대로 표암 선생은 아버지의 선생이 아니라 ‘친구‘였고 실제로도 아버지를 제자가 아닌 친구로 대했습니다. 표암 선생이 「단원기」에 ‘군과 나는 나이와 지위를 잊은 친구라고 해도 좋을 것‘이라고쓴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나는 나중에 아버지와 표암 선생이 함께등장하는 희귀한 그림을 보게 됩니다. 스물도 안 된 아버지와 오십이 넘은 표암 선생이 선생의 친구이자 일세를 풍미한 문인이자 화가들인허필, 심사정, 최북과 함께 등장하는 그림을 보게 됩니다. 
당대 최고의 화가와 문인들의 모임에 아직 스물도 안 된 아버지가 함께 있었다는 것이 뜻하는 바가 뭘까요? 그건 바로 표암 선생의 마음입니다. 아버지를 향한 표암 선생의 우정 어린 배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입니다. 
그 그림을 통해 나는 표암 선생이 말로만 아버지를 아끼고 친구로여긴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게 됩니다.
"너는 어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으냐?"
표암 선생과의 추억을 말하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질문을 던집니다. 아버지의 질문을 듣는 순간 나는 아버지가 내게 그림을 가르쳐 주지 않은 이유를 문득 깨닫습니다. 

지금껏 내겐 오직 하나의 생각밖에없었습니다. 어서 빨리 화원이 되고 싶다는 그 하나의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이제야 나는 지난봄 아버지가 스쳐 가듯 한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합니다. 자신만을 위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그말!

화원이 되고 싶다는 것,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남을 위한 그림만그리겠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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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이름이 떠오르죠. TV 광고도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재벌 대기업치고 아파트 장시를 안 하는 데가 없어요. 삼성 래미안, 현대 힐스테이트, LG 자이, 롯데 캐슬....... 이 밖에도 SK, 포스코 등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대기업들이 너도나도 아파트 건설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당연히 돈을 굉장히 많이 벌기때문입니다. 이들이 아파트를 짓고 분양가를 올리면서 전체적인 집값이 뛰기 시작합니다. 집값을 올린 건 이러한 ‘건설 재벌‘ 뿐만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비싼 아파트를 사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월급 갖고는 부족할 수밖에 없죠. 그래서 은행이 돈을 대줍니다. 부동산담보 대출이 바로 그것이지요. 최근 우리나라 부동산 담보 대출 총액이 위험 수위에 달할 정도로 높아졌다는 이야기 많이 들으셨을 겁니다. 사람들이 비싼 집을 사기 위해 빚을 내는 동안 은행은 이자로 돈을 법니다. 건설 재벌과 은행, 이들이야말로 부동산 가격 폭등, 하우스푸어의 등장이라는 막장 드라마의 주연입니다. 여러분, 을사오적아시죠? 나라를 팔아먹어 국민을 고통에 빠뜨린 구한말 벼슬아치들입니다. 거기에 빗댈 정도로 비판받아 마땅한 주역들인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돈을 버는 방식은 이렇습니다 아파트를 짓지도 않았는데 팔아먹는 거예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허용하는방식입니다. 조그만 건설 회사는 이렇게 지을 수가 없어요. 오직 재빌 건설사들만 누릴 수 있는 특혜입니다. 사람들은 이미 지은 아파트가 아니라 앞으로 지어진 아파트를 미리 돈을 내고 사는 거예요. 이른바 선분양이라고 하는 겁니다. 만들지도 않은 물건을 파는 이런 독

특한 제도는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이 시작한 것입니다. 재벌들에게엄청난 이익을 보장해 준 것이죠. 재벌 건설사들은 짓기도 전에 가격을 높여 부르고,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 아파트를 사면 가격은 계속오르고... 이것이 지난 40년 동안 한국에서, 주로 수도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소위 ‘한국형 아파트 분양 제도로 재벌들이 많은 돈을벌었죠. 그랬는데 최근에 그 양상이 달라집니다. 이제는 아파트가 넘쳐 나서 잘 안 팔려요. 어디 어디에서 미분양이 속출했다는 뉴스 많이 나오죠. 그러자 재벌 건설사와 은행들은 새로운 쪽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바로 ‘뉴타운‘과 ‘재개발‘ 이에요.
역사적으로 볼 때 서울은 1970년대부터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서 개발 붐이 일었죠. 예전엔 서울이 지금보다 훨씬 작았는데인접 지역이 개발되면서 계속 확장된 것입니다. 그때 지은 집들이 40여 년이 지난 지금 남아 버렸어요. 동네도 비좁고, 살기 편하게 새로고쳐야 할 필요성이 생겼어요. 그래서 재개발을 해야 하는데, 여기에또다시 ‘건설 재벌‘이 끼어듭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내쫓고, 거기에고급 아파트를 지으면 집주인이나 건설사는 많은 돈을 벌지만 싼 집을 갖고 있거나 땅이 많지 않은 사람, 세를 사는 사람들은 피해를 봅니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수익을 많이 내려고 무리를 하다가 용산 참사 같은 사건이 생기는 겁니다. 이런 일들이 뉴타운 재개발 과정에서자주 벌어졌습니다.
재개발의 부작용은 그뿐만이 아닙니다. 사회·문화적으로도 많은문제를 발생시켜요. 나라별로 집을 한번 지으면 얼마나 쓰느냐 하는

통계가 있어요. 우리나라는 그 기간이 굉장히 짧습니다. 내구연한이다할 때까지 다 쓰지 않고, 허물고 새로 짓는 것이죠. 재개발을 너무자주 해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렇게 되면, 어떤 부작용이 있을까요. 먼저 환경이 파괴됩니다. 집 짓는 데 쓰이는 재료가 주로 콘크리트 같은 유해 물질이잖아요. 이런 걸 그대로 내다 버리면 자연을 오염시키게 되겠죠. 게다가 새로 집을 지으려면 또다시 콘크리트를 쏟아부어야 합니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한번 건물을 지으면 고쳐서 오랫동안 쓰도록유도하는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실제로 유럽 같은 데 가면 백 년 이상된 건물들이 즐비하지 않습니까? 꼭 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이 아니더라도 일반인들이 사는 집. 심지어 상업용 건물인 호텔도 지은 지100년이 넘은 게 많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오래된 건물에서 자부심을느낀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밀쩡한 건물도 부수고 다시 짓는 일을 반복하는 거예요. 환경에도 좋지 않고, 집값도 올리는 이런 불합리한 일들을 어떻게든 개선해야 합니다. 지금 그로 말미암은 어리움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잖아요. 이긴 어른들만 겪는 문제가 아닙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부딪혀야 할 문제이기도 해요.

오래 삽니다. 얼핏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지요? 자료를 보면 독일에서는 셋방 사는 가구의 4분의 1이 한집에서 평균 20년 이상을 삽니다. 우리나라처럼 이사를 자주 안 다니는 거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그건 바로 독일 정부의 세입자 보호 정책 때문입니다. 2차대전 이후 독일에는 셋방 사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제도가 정착됩니다. 일단, 집주인이 마음대로 월세를 올릴 수가 없어요. 조건이 아주까다롭습니다. 정부가 정한 기준에 따라서 올려야 하죠. 게다가 월세를 올려야만 하는 이유를 셋방 사는 사람에게 서류로 제시해야 해요.
예를 들어서 사는 집이 종로구에 있다고 합시다. 집세를 올려 받으려면 집주인은 그동안 종로구의 월세가 얼마만큼 올랐다는 근거 자료를 제시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근거 자료를 어떻게 만드느냐 하면, 셋방 사는 사람들의 대표, 세를 놓는 사람들의 대표, 종로구청장,
이 삼자가 모여서 최근 2년간의 월세 변동에 대한 자료를 만듭니다.
그래서 예컨대 이 방은 원룸이다. 이 집은 지은 지 몇 년 되었다. 여기는 수세식 화장실이 있다, 이런 내용을 고려해서 표준 월세를 정합니다. 조건에 따라 기준을 정하는 거죠. 집이 좀 낡았다, 샤워 시설이 안돼 있다. 이러면 월세를 낮추고 시설이 좋다. 그러면 더 많은 월세를받는 거죠. 이렇게 정해진 표준 월세를 근거로 해서 세입자에게 요구하는 겁니다. "이 기준에 비춰 볼 때 우리 월세는 너무 싸다. 그러니 3만 원을 올려다오." 이렇게 말이죠. 그러지 않고 자기 맘대로 올려 달라고 하면 불법입니다. 제도가 그래서 이를 어기고 집주인 마음대로올렸다가는 손해 배상을 해 줘야 합니다.

국유화시켰습니다. 개인 땅을 정부 걸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싼값에정부가 사들인 다음에 거기에 정부가 집을 지었습니다. 아파트를 지어서 국민한테 반값에 팔았습니다. 어떻게 반값이 가능하냐? 일단,
일반 건설 회사처럼 이윤을 남기지 않고 팔았기에 가격 자체가 싸기도 했지만, 땅은 안 팔고 건물만 팔았기에 그렇습니다. 보통 집값의반 이상이 땅값이거든요. 건물만 파는 대신 땅은 99년간 빌려 줍니다. 그동안 마음대로 써라. 대신 월세를 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월세라는 게 아주 싸게 책정되는 거죠. 이윤을 안 남기고 건물만 파니반값이 된 겁니다. 덕분에 많은 사람이 자기 집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그 가격에도 집을 살 수 없다면 국가에서 싼 이자로 빌려줍니다.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그렇게 한 거죠. 당시 정부에 돈이 많았습니다. 모든 직장인에게 월급의 3분의 1을 강제로 저축하게 했거든요. 예컨대 한 달에 100만 원 버는 사람은 33만 원을, 1,000만 원버는 사람은 333만 원을 무조건 저축해야 하는 거예요. 독재니까 가능한 얘기겠죠. 그렇게 강제 저축을 시켜서 그 돈을 정부가 수십 년동안 관리했습니다. 그래서 개인 땅을 사들이고 집을 지을 만큼 재정이 튼튼했던 거죠. 그리곤 국민에게 정부가 지은 집을 사라고 권유했습니다. 덕분에 지금처럼 국민 대부분이 자기 집을 갖게 된 겁니다.
물론 요즘처럼 민주화된 상황에서는 그대로 따라 하기 어려운 방식이겠습니다만, 국민이 싸게 자기 집을 마련할 방법을 찾아보는 데참고할 만합니다. 주택 공급을 일반 건설 회사에 맡길 게 아니라 정

더불어 사는 길-부동산 민주주의

그럼 마지막으로 우리가 집 문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제가 제일 강조하고 싶은 건 집 가지고 장난 못 치게 하자는 겁니다. 주거권은 누구나 누려야 할 인권입니다. 그러니 집과 땅으로 돈벌이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굳이 장사를 하려면 다른데가서 하라고 해야 한다는 겁니다. 앞으로 부동산 대책을 세울 때가져야 할 원칙이에요. 선진국들은 대체로 이 원칙을 헌법이나 법률에 담고 있습니다. 당연히 국가 정책도 여기에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부동산 투기가 심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자본주의라고 하더라도 제한할 것은 해야 합니다. 집과 땅은 공기나 물과 같아서 모두가 고르게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방향으로 부동산정책을 세워야 해요.
그리고 동네나 집으로 계급을 나누는 풍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겁니다. 초등학생들도 너희 집은 몇 평이냐, 어느 아파트에 사느냐, 하면서 친구를 차별하는 게 우리 현실입니다. 문제가 심각해요. 모두가어른들 책임입니다. 이런 걸 극복하려면 제도도 개선해야 하고 사람

들 생각도 바뀌어야 합니다. 물론 그동안 쌓여 온 생각들이 저절로바뀌진 않겠죠. 지금도 투자 개념으로 집을 사고 땅을 사잖아요. 이건 우리나라 국민성이 원래 그래서가 아니에요. 실제로 부동산에 투자하면 큰돈을 벌잖아요. 물론 지금은 그런 부동산 불패 신화가 많이약해졌습니다만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위력을 발휘합니다. 그래서투기나 불로소득을 막는 정책이 필요해요. 제도적으로 이걸 막으면부동산으로 돈벌이를 하고자 하는 생각은 저절로 없어진다고 봅니다.
정부가 이런 일을 제대로 해야 해요. 그동안 정부의 정책은 거꾸로였어요. 문제가 점점 악화돼 온 겁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집없는 사람들, 세 사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에요. 그러려면 집주인과세 사는 사람이 대등한 위치에서 월세나 전세 거래를 할 수 있도록제도를 확립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집을 만들어 파는건설 회사와 이걸 사는 소비자가 대등한 위치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해야 해요. 건설 회사가 마음대로 분양 가격을 올려서 폭리를 취해도정부에서는 나 몰라라 합니다. 이걸 막자고 도입한 분양가 상한제 같은 제도도 재벌 건설사들의 반대로 용두사미에 그치고 맙니다. 정부가 좀 더 강력한 의지로 정책을 추진해야 해요.
또한 세입자를 보호하는 충분한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합니다.
집주인이 마음대로 전·월세금을 올려놓고 "나갈래, 더 낼래?" 하면서 반 협박 조로 선택을 강요하는 현실에서는 정상적인 부동산 질서가 자리 잡을 수 없습니다. 의지만 있다면 이러한 것들을 바로잡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독일의 사례에서도 보았잖아요. 물론 세입자와 집주인의 대등한 거래를 유도하려면 한국적 현실을 고려해야합니다. 앞서 말한 대로 우리나라에는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전세제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분들을 돕는 일도 중요합니다. 지하방이라든지 비닐하우스, 쪽방, 고시원, 동굴, 옥탑방, 이런 데서 사는 160만명에 달하는 주거 빈곤층, 이분들이 땅 위로 올라와서 밝은 햇볕 아래서 함께 살 수 있는 정책들이 필요합니다.
제가 계산해 보니까 대략 13조 원 정도 있으면 지하에 사는 분들이모두 땅 위로 올라와 살 수 있어요. 예컨대 네덜란드처럼 나라에서운영하는 공공임대 주택을 확대해서 이분들이 거기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거죠. 물론 돈이 많이 듭니다. 그러나 꾸준히 해 나가서, 전체주택의 20퍼센트 정도만 중앙 정부나 지방 정부가 운영해도 빈곤층의 주거 문제는 획기적으로 개선됩니다. 필요하다면 복지 단체에서운영하는 비영리 주택을 늘려갈 수도 있겠죠.
이런 문제들은 생각만으로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일반 국민, 그중에서도 특히 어렵게 사는 국민을 보호하려면 법과 제도를 바꾸고 효과적이고 일관된 부동산 정책을 펴는 게 중요합니다. 결국은 민주주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는 셈이죠.
100여 년 전에 정약용이라는 분이 당시에는 혁신적인 토지 개혁방안을 내놓습니다. 정전제, 여전제 같은 것인데 간단히 설명해 드리자면 "농사짓는 자에게 밭을 주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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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라 달동네와 같은 골목과 이야기가 살아 있는 마을이 있다는 것이얼마나 아름다워요. 어느 저명인사가 살았던 집, 누구누구의 생가 터같은 역사책에 나올 법한 집들도 중요하겠지만, 욕쟁이 할머니 집, 떡방앗간 할배 집처럼 친근한 이웃들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골목 집들도 중요합니다. 이런 집들은 조금 지저분하고 거칠지만 그런 것에서편안함을 느끼고 위로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가난하여 집의 안락함을 느끼지 못하고 위생적이지 못한 삶을 산다면 쾌적하게 살도록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요? 그 동네 사람들이 그곳을 떠나지 않고 그 집에서 편안하고 행복하게 이야기를 만들며 살아갈 수 있게 말이지요. 그것이 그분들을 위한 일이면서 동시에 우리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눈으로 보기

처음 강의를 시작할 때 우리 몸은 이미 역사적 존재라고 말했어요.
역사적 존재에는 긍정적인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몸에는부정적인 측면도 배어 있잖아요.
일제 강점기, 새마을 운동을 거치면서 우리 것은 못나고 없애야 할것이라고 주입받았어요. 각 지방마다 서로 다른 마을의 유래, 샤머니즘적인 설화나 민담, 전설, 풍속, 전래 동요, 입으로 전해 오던 소소한이야기, 사실 같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은, 활성화되지 않은, 언어 이

화문이나 강남 한복판에 있는 땅이라면 얘기가 달라지지요. 같은 땅이더라도 값어치는 천지 차이입니다. 이처럼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서 천의 얼굴을 가진 것이 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처럼 더는 늘릴 수 없고, 수입할 수도 없는 땅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에 대체로 다른 상품에 비해 가격이 비쌉니다.
땅이 없이는 어떤 생명체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하늘을나는 새가 있다고 합시다. 계속 날아다닐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잠시나마 어딘가에 머물러야 하고, 어딘가에 둥지를 틀어야 합니다. 그곳이 나무 꼭대기라 하더라도 결국은 땅을 딛고 서는 것이지요. 나무역시 땅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으니까요. 이처럼 땅은 아주 특수한성질이 있기에 잘 다뤄야 합니다. 잘못 건드리면 많은 생명체가 피곤해질 수 있어요. (웃음)원래 아메리카 대륙에는 인디언들이 살고 있었지요. 그 땅을 유럽의 백인들이 쳐들어가서 뺏은 거죠. 그렇게 해서 아메리카 합중국이라는 나라가 생기는데, 그때 이야기입니다. 1854년 백인들이 인디언들에게 땅을 팔라고 했습니다. 그때 시애틀이라는 이름의 인디언 추장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당신은 하늘을, 땅의 체온을 사고팔 수가 있는가?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얘기다. 신선한 공기나 반짝이는 시냇물을 어떻게 소유할 수 있단 말인가? 소유하지 않은 것들을 어떻게 팔 수 있단말인가? (...) 우리는 땅의 한 부분이고, 땅은 우리의 한 부분이다. 향기로운 꽃은 우리의 자매다. 사람, 말, 큰독수리, 이들은 우리의 형제

들이다. 바위산 꼭대기, 풀의 수액, 조랑말과 인간의 체온 모두가 한가족이다."
이 인디언은 땅은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 않은 자연 그 자체이기때문에 팔 수가 없다고 한 것이지요. 우리 것이 아닌데 어떻게 팔아넘길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땅은 모든 생명체가 함께 누려야 할 자연의 일부분이지 누가 독점해서 사고팔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치요. 어쩌면 이것은 지구에 인류가 출현한 이래 오랫동안 인간들이땅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땅을 소유해서 사고팔고, 누가 혼자 그 땅을 차지해서 이건 내 땅이니까 들어오지 마라. 내 것이니 내 마음대로 하겠다. 이렇게 된 건 인류의 역사에서 보면 얼마 되지 않은 짧은 시간입니다. 자본주의가 시작된 근대에 들어와서 널리 퍼진 생각이지요. 그전까지는 대다수가 인디언 추장 같은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앞서도 말했지만 그 이유는 땅이 아주 특수한성질을 갖고 있고, 이것 없이는 어떤 생명체도 생존할 수 없는 중요한 자연의 일부이자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땅에 대한 생각을 한번되돌아볼 필요가 있어요. 그렇다면 부동산의 또 다른 한 축인 집은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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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에 관한 격언과 찬사

정의를 배제한다면 왕국과 강도집단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아우구스티누스, (신국론)

•개인적인 상처·조롱• 증상이 엄습할 때조차 의롭고 올바른 눈이 가진 고귀하고 명료하면서 깊고 부드러운 통찰력 있는 객관성이 흐려지지 않는다면, 정의는 하나의 완성품이며 지상 최고의 걸작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도덕의 계보학)

정의는 미덕의 으뜸이다. 정의의 뒷받침 없는 용기는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인이 의롭다-아게실라우스 2세(<플루타크 영웅전)에서)

정복자는 정의로울 수 없다. 만일 그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강한 자는 언제나 정의롭다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장자크 루소

정의는 신의 왕국과 같다. 즉 그것은 사실이며 우리 외부에는 없고, 우리 내부에 위대한 동경으로서 존재한다. 정의는 평화보다 더 귀중하다.

지혜 없는 정의란 있을 수 없다.

정의의 대가는 영원한 명성이다.

정의는 완전무결할 때에만 옳다.
-제임스 프루드

-에녹 아놀드 베네트

-빅토르 위고, <레 미제라블>

정의는 느릴지라도 확실하다.
-솔론(플루타르크 영웅전)에서)

정의는 모든 것의 위에 있다. 성공은 좋은 것, 부도 역시 좋은 것, 명예는 더욱 좋은 것이다. 그러나 정의는 그들 모두를 능가한다.
D. D. 필드

힘을 갖지 못한 정의는 무력하며 정의가 없는 힘은 폭군적이다. 우리는 정당한 것을 강하게 만들 수가 없어서 강한 것을 정당한 것으로 만들었다.
-블레즈 파스칼, <팡세)

정의가 지배하는 곳에서의 복종은 자유다.

정의의 지체는 불의다.
-제임스 몽고메리

-월터 새비지 랜더랜도르

오, 하느님 정의가 힘을 지배하게 하소서.

살고 살게 두는 것이 공통정의의 법칙이다.

가장 약한 팔도 정의의 검과 함께라면 강하다.
인간은 부당해도 신은 공정하다. 결국 정의가 승리한다.

정당함은 법률보다 낫다.

-존 웹스터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 <에반젤린>
-메난더, <카르타고 사람들)
-로저리스트랑주, (이솝우화)

정의를 아끼면 불법이 자란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헨리 4세)

누가 타인의 눈을 망쳐놓으면 사람들이 그의 눈을 망칠 것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정의를 행하는 한 시간은 기도하는 백 시간의 가치가 있다.
-(함무라비 법전)

정의로운 자의 찬란한 행위는 육신의 고향인 흙 속에 묻히지 않고 살아남는다.

정의가 돌아오면 곧 황금시대가 돌아온다.

정의는 그 자체의 빛으로 빛난다.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정의가 행해지게 하라.

극단적 정의는 극단적 불의다.

-이슬람교 금언
-핀다로스
-베르길리우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페르디난트 1세
-라틴 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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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 공부의 기초는 무엇일까요? 논리에서는 객관적인 타당성이 중요합니다. 객관적인 타당성이란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생각의 과•정입니다. 이를 철학에서는 논리적 사고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과정을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문 분야가 바로 논리학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학생들이 어려운 논리학을 모두 공부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논리적사고력은 아주 간단한 원리에서 시작합니다. 마치 수학이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이라는 간단한 셈법에서 출발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논리학은 크게 연역 논리학과 귀납 논리학으로 나눠집니다. 한편, 보통 연역 논리학을 그냥 논리학이라고도 하고 형식 논리학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연역 논리학은 형식적 타당성이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형식논리학은 기존의 지식을 정리하는 데 유용합니다. 다른 한편, 귀납 논리학은 확률 또는 개연성(그럴듯함)을 추구합니다. 귀납 논리학은 새로운지식을 발견하는 데 쓰입니다.
슬프게도 현실에서는 연역 논리학이 기존의 선입견과 지식을 정당화하고 귀납 논리학이 기존 패러다임 안에서 문제풀이로만 활용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머와 개그에서는 연역 논리학과 귀납 논리학이 기존 생각을전복하고 진부한 결론의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일으키는 데 사용될 수있습니다. 웃음을 통해 형식 논리학의 지루함과 귀납 논리학의 사소함이해체되고, 신선한 통찰을 줄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유쾌한 개그 코너들을 논리학적으로 분석하면서 이러한 웃음 코드를 찾아봅시다.

위의 예문도 타당한 (연역) 논증입니다. 전제와 결론을 논리적으로 제시하고 있으니까요. 바로 여기에서 많은 학생들이 고개를갸우뚱할 것입니다. 가수 아이유는 눈이 세 개다.‘라는 결론을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이 논증은 타당합니다. 이 논증의 문제점은 결론이 아니라 전제에 있습니다. 가수 아이유는사람이다.‘라는 소전제는 참이지만, ‘모든 사람은 눈이 세 개다라는 대전제가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이와는 달리 전제가 참인지 거짓인지 확증할 수 없을 때 그 전제는 가정이 됩니다. 위 삼단논법에서 대전제는가정이 아니라 명백히 거짓입니다. 만약 눈이 세 개인 사람이 태어난다면 그대전제는 가정이 아니라 거짓 전제가 됩니다.)그런데 전제가 거짓이어도 타당한 논증일까요? 그렇습니다.
(연역) 논증이란 전제나 결론의 사실관계를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논증은 우선 내용의 사실 여부가 아니라 형식을따지는 것입니다. 즉 논증은 전제로부터 결론이 도출되는 형식을다릅니다. 그래서 논리학은 수학처럼 형식적인 학문입니다. 그형식에 담긴 내용을 사실적으로 검토하는 역할은 과학(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이 맡습니다.
과학적으로 그 논증의 전제들이 참일 때 그 논증은 내용적으로도 건전하다고 합니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어떤 논증이 타당하

다는 것은 형식이 올바르다는 것을 말하고 건전하다는 것은 그내용까지 참임을 의미합니다.
자 그럼, ‘논리적이다‘라는 말을 정의해 볼까요?
"전제와 결론의 형식으로 제시되어야 하며, 그 전제로부터 결론이 필연적으로 나와야 합니다."
개그 속에 논리가 있다?!
자 여러분. 여기까지는 그다지 특별한 내용은 아닙니다. 많은학생들은 이미 이러한 내용을 알고 있을 겁니다. 본 책이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개그를 통해서 논증과 논리적 사고력을공부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바로,
수많은 개그 코너들이 논증의 구조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또 많은 학생들이 궁금해할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TV에서 보는 「개그콘서트」나 「코미디빅리그」의 개그 코너에는 전제나 결론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논리학 책에서는 논증이 우리에게 익숙한 전제와 결론의 형식으로 등장합니다.

적인 결론이 됩니다. 외모 지상주의라는 현실을 날카롭게 비꼬는내용의 황당한 전제를 통해 황당한 결론들이 이끌어져 나오는 논리적인 상황(필연성)이 웃음을 자아내는 것입니다. <마른인간 연구소)를 논증 구조로 재구성해 볼까요?
이 논증은 이중적으로 복합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전제: 현재 지구에는 비만인들만이 살아남았고, 과거에 비만인들과 함께 살았다는 마른인간들은 모두 멸종했다.
(숨은 결론: 인간의 행동과 습관에 대한 상식적 판단의 기준은.
살아남은 다수를 차지하는 우리 비만인들에게 있다.)이 결론이 다시 전제가 됩니다.
(숨은 전제 : 인간의 행동과 습관에 대한 상식적 판단의 기준은살아남은 다수를 차지하는 우리 비만인들에게 있다.)(숨은 전제: 우리 비만인들은 앉아서 다리 꼬기가 불가능하다.)전제 : 마른인간들은 앉아서 다리 꼬기가 가능했다고 한다.
결론: (그러나 이는 우리 비만인들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일이다.

대표적인 삼단논법입니다. ‘모든 사람 안에 소크라테스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모든 사람‘은 전체를 의미하므로 보편적이라고 부릅니다. 소크라테스는 그 전체의 일부를 뜻하므로 개별적이라고 부릅니다. 보편 속에 이미 개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제 속에 이미 결론이 들어 있어서 전제를 참으로받아들인다면 결론은 자동으로 참이 됩니다.
<스크림>은 바로 연역 논증으로 만들어진 개그입니다. 개그 처음에 등장했던 경고문이 전제가 됩니다. 그리고 "어패류 이름을말하면 죽는다."를 참으로 받아들인 사람이 어패류의 개별적인이름, 예를 들어 가자미나 꼬막을 말하면 자동으로 죽게 됩니다.
어패류 이름이라는 전체 집합 속에 가자미나 도미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논증 구조로 정리해 볼까요?
대전제: 모든 사람은 어패류 이름을 말하면 반드시 죽는다.
소전제: 김준호는 "가자미장원"이라고 했다. 가자미라는 어류이름을 말했다.)결론: 그러므로 김준호는 죽는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타당성‘이란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요.

자, 여기까지의 내용을 연역 논증으로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남자2의 입장에서 논증으로 재구성해 보겠습니다.
대전제: 전화 받는 모든 사람은 저 사람에게 죽는다.(동치 명제: 저 사람에게 죽지 않으려는 사람은 전화를 받아서는 안 된다)소전제2: 나는 죽기 싫다. (동치 명제: 나는 저 사람에게 죽기 싫은 사람이다.)결론: 나는 전화를 받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논증적 판단에 근거해서 특단의 행동을 취하게 된다.)특단의 행동: (걸려온 전화를 받지 않기 위해) 나는 맥주잔에 전화기를 빠뜨린다.
이러한 논증은 대표적인 연역 논증의 삼단논법입니다. 삼단논법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대전제와 소전제 그리고 결론으로 이루어진 논증법이지요. 여기서 동치 (같은 값)라는 말은 어떤 명제A가 참이면 그것을 변형한 명제 B도 참이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은 동물이다."의 동치 명제는 "동물이 아닌 존재자는 사람이 아니다"입니다. 이를 일반화하면 "이면 b이다."의 동치 명제는 "-b이면 -이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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