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이름이 떠오르죠. TV 광고도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재벌 대기업치고 아파트 장시를 안 하는 데가 없어요. 삼성 래미안, 현대 힐스테이트, LG 자이, 롯데 캐슬....... 이 밖에도 SK, 포스코 등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대기업들이 너도나도 아파트 건설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당연히 돈을 굉장히 많이 벌기때문입니다. 이들이 아파트를 짓고 분양가를 올리면서 전체적인 집값이 뛰기 시작합니다. 집값을 올린 건 이러한 ‘건설 재벌‘ 뿐만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비싼 아파트를 사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월급 갖고는 부족할 수밖에 없죠. 그래서 은행이 돈을 대줍니다. 부동산담보 대출이 바로 그것이지요. 최근 우리나라 부동산 담보 대출 총액이 위험 수위에 달할 정도로 높아졌다는 이야기 많이 들으셨을 겁니다. 사람들이 비싼 집을 사기 위해 빚을 내는 동안 은행은 이자로 돈을 법니다. 건설 재벌과 은행, 이들이야말로 부동산 가격 폭등, 하우스푸어의 등장이라는 막장 드라마의 주연입니다. 여러분, 을사오적아시죠? 나라를 팔아먹어 국민을 고통에 빠뜨린 구한말 벼슬아치들입니다. 거기에 빗댈 정도로 비판받아 마땅한 주역들인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돈을 버는 방식은 이렇습니다 아파트를 짓지도 않았는데 팔아먹는 거예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허용하는방식입니다. 조그만 건설 회사는 이렇게 지을 수가 없어요. 오직 재빌 건설사들만 누릴 수 있는 특혜입니다. 사람들은 이미 지은 아파트가 아니라 앞으로 지어진 아파트를 미리 돈을 내고 사는 거예요. 이른바 선분양이라고 하는 겁니다. 만들지도 않은 물건을 파는 이런 독
특한 제도는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이 시작한 것입니다. 재벌들에게엄청난 이익을 보장해 준 것이죠. 재벌 건설사들은 짓기도 전에 가격을 높여 부르고,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 아파트를 사면 가격은 계속오르고... 이것이 지난 40년 동안 한국에서, 주로 수도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소위 ‘한국형 아파트 분양 제도로 재벌들이 많은 돈을벌었죠. 그랬는데 최근에 그 양상이 달라집니다. 이제는 아파트가 넘쳐 나서 잘 안 팔려요. 어디 어디에서 미분양이 속출했다는 뉴스 많이 나오죠. 그러자 재벌 건설사와 은행들은 새로운 쪽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바로 ‘뉴타운‘과 ‘재개발‘ 이에요. 역사적으로 볼 때 서울은 1970년대부터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서 개발 붐이 일었죠. 예전엔 서울이 지금보다 훨씬 작았는데인접 지역이 개발되면서 계속 확장된 것입니다. 그때 지은 집들이 40여 년이 지난 지금 남아 버렸어요. 동네도 비좁고, 살기 편하게 새로고쳐야 할 필요성이 생겼어요. 그래서 재개발을 해야 하는데, 여기에또다시 ‘건설 재벌‘이 끼어듭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내쫓고, 거기에고급 아파트를 지으면 집주인이나 건설사는 많은 돈을 벌지만 싼 집을 갖고 있거나 땅이 많지 않은 사람, 세를 사는 사람들은 피해를 봅니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수익을 많이 내려고 무리를 하다가 용산 참사 같은 사건이 생기는 겁니다. 이런 일들이 뉴타운 재개발 과정에서자주 벌어졌습니다. 재개발의 부작용은 그뿐만이 아닙니다. 사회·문화적으로도 많은문제를 발생시켜요. 나라별로 집을 한번 지으면 얼마나 쓰느냐 하는
통계가 있어요. 우리나라는 그 기간이 굉장히 짧습니다. 내구연한이다할 때까지 다 쓰지 않고, 허물고 새로 짓는 것이죠. 재개발을 너무자주 해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렇게 되면, 어떤 부작용이 있을까요. 먼저 환경이 파괴됩니다. 집 짓는 데 쓰이는 재료가 주로 콘크리트 같은 유해 물질이잖아요. 이런 걸 그대로 내다 버리면 자연을 오염시키게 되겠죠. 게다가 새로 집을 지으려면 또다시 콘크리트를 쏟아부어야 합니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한번 건물을 지으면 고쳐서 오랫동안 쓰도록유도하는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실제로 유럽 같은 데 가면 백 년 이상된 건물들이 즐비하지 않습니까? 꼭 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이 아니더라도 일반인들이 사는 집. 심지어 상업용 건물인 호텔도 지은 지100년이 넘은 게 많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오래된 건물에서 자부심을느낀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밀쩡한 건물도 부수고 다시 짓는 일을 반복하는 거예요. 환경에도 좋지 않고, 집값도 올리는 이런 불합리한 일들을 어떻게든 개선해야 합니다. 지금 그로 말미암은 어리움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잖아요. 이긴 어른들만 겪는 문제가 아닙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부딪혀야 할 문제이기도 해요.
오래 삽니다. 얼핏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지요? 자료를 보면 독일에서는 셋방 사는 가구의 4분의 1이 한집에서 평균 20년 이상을 삽니다. 우리나라처럼 이사를 자주 안 다니는 거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그건 바로 독일 정부의 세입자 보호 정책 때문입니다. 2차대전 이후 독일에는 셋방 사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제도가 정착됩니다. 일단, 집주인이 마음대로 월세를 올릴 수가 없어요. 조건이 아주까다롭습니다. 정부가 정한 기준에 따라서 올려야 하죠. 게다가 월세를 올려야만 하는 이유를 셋방 사는 사람에게 서류로 제시해야 해요. 예를 들어서 사는 집이 종로구에 있다고 합시다. 집세를 올려 받으려면 집주인은 그동안 종로구의 월세가 얼마만큼 올랐다는 근거 자료를 제시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근거 자료를 어떻게 만드느냐 하면, 셋방 사는 사람들의 대표, 세를 놓는 사람들의 대표, 종로구청장, 이 삼자가 모여서 최근 2년간의 월세 변동에 대한 자료를 만듭니다. 그래서 예컨대 이 방은 원룸이다. 이 집은 지은 지 몇 년 되었다. 여기는 수세식 화장실이 있다, 이런 내용을 고려해서 표준 월세를 정합니다. 조건에 따라 기준을 정하는 거죠. 집이 좀 낡았다, 샤워 시설이 안돼 있다. 이러면 월세를 낮추고 시설이 좋다. 그러면 더 많은 월세를받는 거죠. 이렇게 정해진 표준 월세를 근거로 해서 세입자에게 요구하는 겁니다. "이 기준에 비춰 볼 때 우리 월세는 너무 싸다. 그러니 3만 원을 올려다오." 이렇게 말이죠. 그러지 않고 자기 맘대로 올려 달라고 하면 불법입니다. 제도가 그래서 이를 어기고 집주인 마음대로올렸다가는 손해 배상을 해 줘야 합니다.
국유화시켰습니다. 개인 땅을 정부 걸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싼값에정부가 사들인 다음에 거기에 정부가 집을 지었습니다. 아파트를 지어서 국민한테 반값에 팔았습니다. 어떻게 반값이 가능하냐? 일단, 일반 건설 회사처럼 이윤을 남기지 않고 팔았기에 가격 자체가 싸기도 했지만, 땅은 안 팔고 건물만 팔았기에 그렇습니다. 보통 집값의반 이상이 땅값이거든요. 건물만 파는 대신 땅은 99년간 빌려 줍니다. 그동안 마음대로 써라. 대신 월세를 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월세라는 게 아주 싸게 책정되는 거죠. 이윤을 안 남기고 건물만 파니반값이 된 겁니다. 덕분에 많은 사람이 자기 집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그 가격에도 집을 살 수 없다면 국가에서 싼 이자로 빌려줍니다.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그렇게 한 거죠. 당시 정부에 돈이 많았습니다. 모든 직장인에게 월급의 3분의 1을 강제로 저축하게 했거든요. 예컨대 한 달에 100만 원 버는 사람은 33만 원을, 1,000만 원버는 사람은 333만 원을 무조건 저축해야 하는 거예요. 독재니까 가능한 얘기겠죠. 그렇게 강제 저축을 시켜서 그 돈을 정부가 수십 년동안 관리했습니다. 그래서 개인 땅을 사들이고 집을 지을 만큼 재정이 튼튼했던 거죠. 그리곤 국민에게 정부가 지은 집을 사라고 권유했습니다. 덕분에 지금처럼 국민 대부분이 자기 집을 갖게 된 겁니다. 물론 요즘처럼 민주화된 상황에서는 그대로 따라 하기 어려운 방식이겠습니다만, 국민이 싸게 자기 집을 마련할 방법을 찾아보는 데참고할 만합니다. 주택 공급을 일반 건설 회사에 맡길 게 아니라 정
더불어 사는 길-부동산 민주주의
그럼 마지막으로 우리가 집 문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제가 제일 강조하고 싶은 건 집 가지고 장난 못 치게 하자는 겁니다. 주거권은 누구나 누려야 할 인권입니다. 그러니 집과 땅으로 돈벌이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굳이 장사를 하려면 다른데가서 하라고 해야 한다는 겁니다. 앞으로 부동산 대책을 세울 때가져야 할 원칙이에요. 선진국들은 대체로 이 원칙을 헌법이나 법률에 담고 있습니다. 당연히 국가 정책도 여기에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부동산 투기가 심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자본주의라고 하더라도 제한할 것은 해야 합니다. 집과 땅은 공기나 물과 같아서 모두가 고르게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방향으로 부동산정책을 세워야 해요. 그리고 동네나 집으로 계급을 나누는 풍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겁니다. 초등학생들도 너희 집은 몇 평이냐, 어느 아파트에 사느냐, 하면서 친구를 차별하는 게 우리 현실입니다. 문제가 심각해요. 모두가어른들 책임입니다. 이런 걸 극복하려면 제도도 개선해야 하고 사람
들 생각도 바뀌어야 합니다. 물론 그동안 쌓여 온 생각들이 저절로바뀌진 않겠죠. 지금도 투자 개념으로 집을 사고 땅을 사잖아요. 이건 우리나라 국민성이 원래 그래서가 아니에요. 실제로 부동산에 투자하면 큰돈을 벌잖아요. 물론 지금은 그런 부동산 불패 신화가 많이약해졌습니다만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위력을 발휘합니다. 그래서투기나 불로소득을 막는 정책이 필요해요. 제도적으로 이걸 막으면부동산으로 돈벌이를 하고자 하는 생각은 저절로 없어진다고 봅니다. 정부가 이런 일을 제대로 해야 해요. 그동안 정부의 정책은 거꾸로였어요. 문제가 점점 악화돼 온 겁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집없는 사람들, 세 사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에요. 그러려면 집주인과세 사는 사람이 대등한 위치에서 월세나 전세 거래를 할 수 있도록제도를 확립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집을 만들어 파는건설 회사와 이걸 사는 소비자가 대등한 위치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해야 해요. 건설 회사가 마음대로 분양 가격을 올려서 폭리를 취해도정부에서는 나 몰라라 합니다. 이걸 막자고 도입한 분양가 상한제 같은 제도도 재벌 건설사들의 반대로 용두사미에 그치고 맙니다. 정부가 좀 더 강력한 의지로 정책을 추진해야 해요. 또한 세입자를 보호하는 충분한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합니다. 집주인이 마음대로 전·월세금을 올려놓고 "나갈래, 더 낼래?" 하면서 반 협박 조로 선택을 강요하는 현실에서는 정상적인 부동산 질서가 자리 잡을 수 없습니다. 의지만 있다면 이러한 것들을 바로잡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독일의 사례에서도 보았잖아요. 물론 세입자와 집주인의 대등한 거래를 유도하려면 한국적 현실을 고려해야합니다. 앞서 말한 대로 우리나라에는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전세제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분들을 돕는 일도 중요합니다. 지하방이라든지 비닐하우스, 쪽방, 고시원, 동굴, 옥탑방, 이런 데서 사는 160만명에 달하는 주거 빈곤층, 이분들이 땅 위로 올라와서 밝은 햇볕 아래서 함께 살 수 있는 정책들이 필요합니다. 제가 계산해 보니까 대략 13조 원 정도 있으면 지하에 사는 분들이모두 땅 위로 올라와 살 수 있어요. 예컨대 네덜란드처럼 나라에서운영하는 공공임대 주택을 확대해서 이분들이 거기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거죠. 물론 돈이 많이 듭니다. 그러나 꾸준히 해 나가서, 전체주택의 20퍼센트 정도만 중앙 정부나 지방 정부가 운영해도 빈곤층의 주거 문제는 획기적으로 개선됩니다. 필요하다면 복지 단체에서운영하는 비영리 주택을 늘려갈 수도 있겠죠. 이런 문제들은 생각만으로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일반 국민, 그중에서도 특히 어렵게 사는 국민을 보호하려면 법과 제도를 바꾸고 효과적이고 일관된 부동산 정책을 펴는 게 중요합니다. 결국은 민주주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는 셈이죠. 100여 년 전에 정약용이라는 분이 당시에는 혁신적인 토지 개혁방안을 내놓습니다. 정전제, 여전제 같은 것인데 간단히 설명해 드리자면 "농사짓는 자에게 밭을 주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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