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의 인도는 시멘트다. 나는 어린애처럼 갈라진 틈을 밟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나는 구시대에 이 길을 밟고 다니던 내 발과 그 당시에 신고 다니던 신발을 기억하고 있다. 밑창에 쿠션과 공기 구멍이 있으며, 캄캄해지면 빛을 반사하는 형광 천으로 만든 별 모양 장식이 달린 러닝 슈즈를 가끔 신곤 했다. 절대로 밤에는 조깅하지 않았고 낮에 달릴 때에도 자주 가는 길만 따라 달리곤 했지만 말이다. 그 당시 여자들은 보호받지 못했다.
나는 당시의 규칙들을 기억한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아무도 입 밖에 내어 말하지 않던 그 규칙들 말이다. 설사 상대가 경찰이라 하더라도, 절대로 낯선 사람에게 문을 열어 주지 마라. 문아래로 신분증을 밀어 넣으라고 해라. 곤경에 처한 척하는 오토바이운전자를 도와준답시고 길가에 정차하지 마라. 자동차 문을 잠그고 계속 가라. 누군가 휘파람을 불어도 절대로 고개를 돌려 쳐다보지마라. 밤에 혼자 빨래방에 가지 마라. 나는 빨래방을 생각한다. 빨래방에 갈 때 입었던 옷들, 반바지, 청바지, 운동복, 세탁기 안에 집어넣었던 것들. 내 옷들, 내 비누, 내 돈, 내가 번 돈. 그런 통제력을 가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지금 우리는 빨간 옷을 입고 짝을 지어 같은 거리를 걷고 있지만 아무도 우리를 보고 음담패설을 퍼붓지 않고, 아무도 말을 걸지 않고, 아무도 만지지 않는다. 아무도 휘파람을 불지 않는다.
하지만 한 번에 조금씩, 머리를 재빠르게 위아래로, 좌우로 움직이면 볼 수는 있다. 우리는 헉헉거리며 세상을 보는법을 배웠다. 오른편으로 길을 따라 걸어가면, 강가로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 그곳에는 옛날에 조정 경기용 노를 보관하던 보트하우스 한 채와 다리 몇 개가 있다. 나무들, 푸르른 강둑, 그곳에서는 앉아서 강물을 바라볼 수 있었고, 팔뚝을 드러낸 젊은 남자들과, 그들이 승리를 위해햇살 속으로 한껏 치켜들던 노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강물로 가는길에는 지금은 다른 용도로 쓰이는 낡은 기숙사가 있는데, 동화책에나오는 듯한 뾰족탑들이 하얀색과 금색과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다. 과거를 생각하면 우리는 아름다운 것들만 떠올리기 마련이다. 전부좋기만 했다고 믿고 싶어한다.
축구장도 그쪽에 있는데, 그곳에서는 요즘 ‘남성 구제 행사‘가 열린다. 물론 축구 경기도 열린다. 아직까지 스포츠 경기는 남아 있다. 나는 이제 강가에 발길을 끊었고, 다리를 건너지도 않는다. 지하철역이 지척에 있는데도 지하철을 타지 않는다. 우리는 승차가 허락되지 않는다. 지금은 수호자들이 지키고 있고, 우리에겐 그 계단을내려가 강 밑의 지하철을 타고 시내 중심가로 갈 공적인 동기도 없다. 우리가 거기 가고 싶어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가 봤자 좋을 일이 없으니 그들은 이유를 캐려 할 것이다. 교회는 조그맣다. 수백 년 전 이곳에 처음 세워진 건물들 중 하나지만 요즘은 박물관으로만 쓰고 있다.
모이라가 저 바깥 어딘가에 있다. 마음대로 활보하고 있거나 아니면 죽었으리라. 모이라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할까? 그녀가 벌일 거라떠오르는 일들이 점점 부풀어서 방 전체를 가득 채웠다. 언제 건물을 산산조각 내는 폭발이 일어날지 모른다. 창문 유리가 부서져 방안으로 쏟아져 내리고 문이 활짝 열어젖혀질지 모른다.... 모이라에게는 이제 힘이 있었다. 그녀는 해방되었다. 스스로를 해방했다. 이제 그녀는 풀려난 여성이었다. 우리는 그 사실이 공포스럽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모이라는 마치 양쪽이 툭 터진 엘리베이터 같았다. 우리는 현기증이 났다. 우리는 이미 자유에 대한 미각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벌써부터 이 벽들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기권 상층부로 올라가면 사람은 산산조각으로 분해되고 휘발해 버리지 않는가. 형체를한데 묶어 붙들어줄 기압이 전혀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이라는 우리의 판타지였다. 우리는 그녀를온몸으로 껴안았으며, 그녀는 우리 곁에 비밀스럽게 언제나 낄낄거•리는 웃음소리로 존재했다. 모이라는 일상의 딱딱한 암반 아래로 이글이글 흐르는 용암이었다. 모이라에 비하면 아주머니들은 별로 무섭지 않았고, 오히려 훨씬 더 우스꽝스런 존재로 여겨졌다. 아주머니들의 권위는 흠집이 났으니까. 그들은 변기에 처박혀 달갑지 않은일을 억지로 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그런 뻔뻔스런 대담함이 좋았다.
기록해 놓으면, 그때는 또다시 머릿속에서 재구성한 이야기가 되어버릴 터이다. 그래서 또 한발 진실에서 물러서게 될 것이다. 무언가를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말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말이란 결코 정확할 수 없으며 언제나 뭔가 빠뜨리기 때문이다. 현실에는 너무 많은 단편들이 있고, 관점들이 있고, 반목들이 있으며, 뉘앙스가 있다. 이런 의미도 저런 의미도 될 수 있는 몸짓들이 너무 많고, 말로는 절대로 완벽하게 표현할 길 없는 형상들도 너무 많으며, 허공에 떠다니거나 혀끝에 감도는 향(香)도 수없이 많고, 어중간한 색채들도 한•없이 많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혹시 남자라면, 그리고 여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읽어 왔다면, 제발 명심해 달라. 당신은 여자로서, 남자를 용서해야만 한다는 유혹이나 기분에 절대 시달리지 않을것이란 사실을 잊지 마라. 정말이지 그런 충동은 참으로 거역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용서 역시 일종의 권력이다. 용서를 구하는 일 역시 권력이며, 용서를 유보하거나 베푸는 일 또한 일종의 권력이다. 아마 그만큼 커다란 권력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이 모든 일은 통제의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누가 누구를 소유하고, 누가 누구한테 어떤 짓을 해도, 심지어 살인을 해도 벌을 받지 않아도 된다든가 하는 그런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누구는 앉을 수 있고 누구는 꿇어앉거나 일어서거나 다리를 활짝 벌리고 드러누워야 한다는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진짜 문제는 누가 누구한테 어떤 짓을 저질러도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다 마찬가지라는 말만큼은 절대 내 앞에서 하지 마라.
우리 후손들에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세상이 올 거야. 리디아 아주머니는 말했다. 여자들은 모두 한 가족이 되어 조화롭게 살게 될 거야. 여러분들은 그 집의 딸 같은 존재가 될 테고. 출생률이 다시 일정 수준을 회복하면 이 집 저 집으로 옮겨다니지 않아도 될테지. 인력이 많아질 테니까. 이런 상황에서 진정한 애정의 유대가 생겨날 거야. 그녀는 애교를 떨며 우리에게 눈을 찡긋해 보였다. 공통의 목표를 위해 연대한 여인들! 각자 맡은 일을 수행하면서, 자질구레한 집안일들을 서로 도와 기나긴 인생 길을 함께 걸어가는 여인들.
어째서 한 집안의 살림을 꾸려나가는 고귀한 일을 한 여자가 도맡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말이야? 그건 합리적이지도, 인도적이지도 않아. 여러분의 딸들은 훨씬 더 큰 자유를 누릴 거야. 우린 지금한 사람이 작은 정원을 하나씩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 여러분 모두에게 정원이 하나씩.
나는 그 이야기도 털어놓았다. 그들이 동결시킨 거야. 그녀가 말했다. 내 것도 마찬가지야. 여성단체의 카드도 마찬가지야. M*이 아니라 F라는 글자가 박힌 계좌는 전부 그래. 몇 번 단추만 누르면 되는 일이야. 우리는 철저히 차단당한 거야.
하지만 은행에 2000달러나 입금해 두었는데, 나는 말했다. 세상에 중요한 게 내 계좌밖에 없다는 듯이.
여자들은 더 이상 재산을 가질 수 없게 됐어. 새로 입법된 법이야. 오늘 TV 켜 봤어? 아니. TV에 나와. 하루 종일 나오고 있어.
이상하지만 어떤 면에선 들떠 있었다. 자기는 오래전부터이런 일을 예상하고 있었는데 보란 듯이 들어맞았다는 것처럼.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더 생동감 넘치고 결연해 보였다. 루크가 너 대신 ‘컴퓨카운트‘를 사용할 수 있어. 네 계좌 잔고를 그의 명의로 이체할거래 적어도 그들 말로는 그래, 남편이나 가장 가까운 친척이.
하지만 너는 어떻게 하니? 그녀에게는 남편도 친척도 없었다. 지하로 들어갈 거야. 그녀는 말했다. 동성애자들 몇 명이 우리 계좌번호를 위임 받아서 필요한 물건을 사줄거야. 하지만 왜? 왜 이런 짓을 한 거지?
왜 그랬는지 따지는 건 우리 몫이 아니야. 모이라가 말했다. 그들입장에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컴퓨카운트‘와 직장을 한꺼번에 빼앗아야 했던 거지. 안 그랬으면 지금쯤 공항이 어떻게됐겠어? 우리가 어디로든 가 버리는 건 그들이 원하는 바가 아니야. 내기를 걸어도 좋다고.
나는 딸아이를 데리러 학교로 갔다. 나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조심스럽게 운전을 했다.
루크가 퇴근했을 무렵 나는 부엌 식탁에 앉아 있었다. 딸아이는 한쪽 구석에 있는 자기 책상에서 펠트 펜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거기 있는 냉장고 옆에 딸애가 그린 그림들을 테이프로 붙여두고 있었다. 루크는 내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나를 안아 주었다. 소식 들었어. 집에 오는 길에 자동차 라디오에서 걱정 마. 임시조치일 거야.
어쩌면 은밀한 비밀을 자기만 알고 있다는 데서 만족감을 느끼는사람인지도 모른다. 옛날 표현을 빌자면, 내 꼬투리를 잡고 있다는 사실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종류의 권력은 딱 한 번밖에쓸 수 없기 때문에 아껴두어야 한다. 하지만 그럴 사람은 아니라고, 더 좋게 생각하고 싶다.
내가 직장을 잃은 그날 밤, 루크는 사랑을 나누고 싶어했다. 나는왜 기분이 내키지 않았을까? 절망감에라도 루크에게 달라붙었어야하는데, 하지만 여전히 온몸이 무감각했다. 내 몸을 만지는 그의 손길조차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왜 그래? 그가 물었다. 나도 몰라. 내가 대답했다. 우리에겐 아직도...……. 하지만 그는 우리에게 아직 뭐가 남았는지 말을 끌지는 못했다.
갑자기 나는 루크가 ‘우리‘라는 말을 쓸 자격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한, 루크는 아무것도 빼앗긴 게없었다.
우리에겐 아직도 서로가 있잖아. 내가 말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그런데 왜 그때 내 말투는, 내 귀에조차 그렇게 냉담하게 들렸을까? 그때 루크는 내게 키스했다. 내 입에서 그 말이 나온 이상, 이제판사가 괜찮아질 거라는 것처럼.
하지만 뭔가가 달라졌다. 어떤 균형이 무너졌다. 나는 쪼그라든 기분이 들었고, 그가 팔을 내게 두르고 안아 올렸을 때는 인형처럼 작아진 듯이 느껴졌다. 사랑이 나만버려두고 저만치 앞으로 달려나가 버린 느낌이었다. 그이는 마음에 걸리지 않는 거야. 그이는 전혀 마음 쓰지 않아.
쩌면 오히려 잘됐다고 여길지도 몰라. 우리는 더 이상 서로의 것이아니야. 이젠 내가 그의 것이 되어 버린 거야. 무가치하고 부당하고 비현실적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나 버린 일이다. 그래서 루크 지금 당신한테 묻고 싶은 건, 내가 정말 알고 싶은건. 이런 거야. 내가 정말 옳았던 거야? 우리는 한 번도 그 일을 서로털어놓고 이야기하지 않았잖아. 그 말을 꺼낼 수도 있었을 즈음나는 겁이 났어. 당신까지 잃어버릴 수는 없었으니까.
오늘 밤에는 철저히 격의 없는 모습이다. 상의는 벗어던지고 팔꿈치는 책상 위에 놓았다. 한쪽 입에 이쑤시개만 하나 물고 있으면 판화로 찍은 농촌 지방 선거 홍보 포스터의 모델 같다. 얼룩얼룩한 배경에, 타 버린 낡은 책들 몇 권 내 앞 게임판 위에 놓인 사각형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나는 오늘 밤 아껴두었던 회심의 일격을 가한다. Zilch‘ 라는 단어를 만든다. 값비싼 Z가 들어간 아주 유용한 모음 한개짜리 단어다. "그게 단어 맞소?" 사령관이 묻는다. "사전에서 찾아보면 되잖아요. 고어예요." "그건 당신한테 내주지." 그가 말한다. 그리고 미소를 짓는다. 사령관은 내가 귀를 쫑긋 세우고 재롱을 부리려 안달하는 착한 애완동물인 양, 탁월한 수를 두고 나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면서 아주 좋아한다. 그의 평가는 따뜻한 목욕물처럼 나를 감싼다. 남자들에게서 느끼는, 심지어 가끔은 루크한테서도 느낄 수 있던 적대감이 그에게선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 그는 머릿속으로 ‘나쁜 년‘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는 정말 아빠 같은 느낌이다. 내가 즐거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그는 기뻐한다. 그리고 나는 정말 즐겁다. 정말, 정말로. 그는 능숙하게 우리의 최종 점수를 포켓 컴퓨터로 정산한다. "이번 판은 당신이 쓸었군." 나는 그가 내 비위를 맞추기 위해, 내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기 위
스마일 배지 그림이 장마다 맨 위에 인쇄되어 있는 메모지 공책이었다. 아직도 이런 걸 만들고 있구나. 나는 문구를 머릿속에서, 내 옷장 속에서 복사해 꼼꼼하게 한 자한자 적는다.
Nolite te bastardes carborundorum, 여기 이곳에서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 글은 기도도 아니고 지령도 아니고 그저 휘갈겨 끼적거린 후 버려둔 서글픈 낙서일 뿐이다.
내 손가락 사이에 쥐어진 펜은 육감적이고 생명체처럼 살아 움직인다. 펜의 권력이 편이 내포하고 있는 글의 권력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펜은 질투를 불러 일으켜, 리디아 아주머니는 또 다른 센터의 구호를 인용하며 그런 물건을 가까이하지 못하도록 우리에게 경고했다.
그들의 말은 옳다. 편은 질시의 마음이다. 펜을 들고만 있어도 시기심이 샘솟는다. 나는 펜을 가지고 있는 사령관을 실시한다. 펜 또한 내가 훔치고 싶은 물건이다.
사령관은 스마일 배지가 그려진 종이를 받아들고 그걸 바라본다.
그러더니 큰 소리로 웃기 시작하는데, 지금 얼굴이 붉어진 건가?
"그건 진짜 라틴어가 아니오. 그냥 농담이지." "농담이라고요?" 나는 어리둥절해진 채 묻는다. 단순한 농담일 리가 없다. 이런 위힘을 무릅쓰고 알려고 손을 뻗었는데, 기껏해야 농담이라고?
"어떤 농담이죠?" "남학생들이란 족속들이 원래 그렇잖소." 그의 폭소는 향수에 젖어 있다. 이제야 알겠다. 그 웃음은 옛날의 자신을 너그럽게 돌아보는 폭소였다.
시작해야 한다‘는 게 그들의 모토였다. ‘한시라도 낭비해선 안 되니까. 하지만 그래도 그 애들은 기억하리라. 그리고 앞으로 3년, 4년, 5년 동안은 그다음에 결혼할 처녀들도 기억하리라. 하지만 그다음 처녀들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겠지. 그들은 평생 흰옷을 입고 여자아이들끼리 살아왔을 테니까. 언제나 침묵을 지켰을 테니까.
우리는 빼앗은 것보다 더 많이 주었소. 사령관이 말했다. 전에 일마나 골치가 아팠는지 생각해 보시오. 독신 전용 술집이니, 품위 없는 고등학교 미팅 같은 것들을. 그런 것들을 육체 시장이라고 했지. 쉽게 남자를 얻는 여자들과 그렇지 못한 여자들 사이의 괴리감 같은게 기억나지 않나? 어떤 여자들은 절망해서, 죽도록 굶어 말라깽이가 되거나 가슴에 실리콘을 넣어서 풍만하게 만들기도 하고 코를 깎아내기도 했소. 그 비참함을 생각해 보라고.
그는 낡은 잡지들이 쌓여 있는 쪽을 손짓했다. 그들은 불만투성이지. 이게 문제고, 저게 문제고, 개인 광고란의 광고 기억하오? ‘총명하고 매력적인 여인, 서른다섯・・・・・・ 그들은 모두 이런 식으로 남자들을 얻었소.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말이오. 그리고 결혼을 한 뒤에는 자식을 하나둘 낳고, 남편은 신물이 나서 그냥 사라져 버리면, 여자들은 복지 기관에 신세를 져야 했소. 안 그러면 남편이 식구들을 두들겨패기도 했지. 여자가 직장을 가지고 있으면, 아이들은 탁아소나 야만적이고 무식한 여편네한테 맡겨야 했지. 그리고 그 한심한 봉급에서 가정부 월급을 직접 줘야 했단 말이오. 누구를 막론하고 돈이 인간의 값어치를 매기는 유일한 기준이었고, 엄마로서 응당
받아야 할 존경 받지 못했소. 아예 엄마 노릇을 안 하겠다고 두 손두발 든 것도 무리가 아니요. 지금 같은 방식이라면 그들은 보호받을 수 있고, 평화롭게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운명을 성취할 수 있소. 전폭적인 지원과 격려를 받으면서 말이오. 자, 이제 말해 보시오. 당신은 지적인 사람이니 의견을 듣고 싶소. 우리가 간과한 게 뭐라고생각되시오?
사랑이요 내가 말했다. 사랑? 사령관이 말했다. 어떤 종류의 사랑 말이오? 사랑에 빠지는 것. 내가 말했다. 사령관은 그 천진한 소년 같은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오 그렇소. 그가 말했다. 나도 그 잡지들을 읽었소. 그 잡지들에서 추구하던 게 그런 것이지? 안 그렇소? 하지만 통계를 보시오, 아가씨. 정말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소? 사랑에 빠질 만한 가치가? 중매결혼도 언제나 연애 결혼만큼이나 성과가 있었소. 적어도 나으면 나았지 못할 건 없소.
사랑이라. 리디아 아주머니는 혐오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 짓하다 걸리면 큰일 날 줄 알아. 여기서 쓸데없이 엉덩이 까고 나쁜 짓하면 큰일 나, 그녀는 우리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리면서 말했다. 사랑은 중요치 않아. 역사적으로 말하면, 그 시절은 그저 돌연변이에 불과하오. 사령관은 말했다. 어쩌다 보니 잠깐 그렇게 됐을 뿐이지. 우리가 한 일은
다시 주위를 돌아본다. 처음 생각과 달리 남자들은 같은 무리가 아니다. 분수 너머 저쪽으로는 일본인들 무리가 연한 회색 정장을입고 있고, 저 멀리 구석에는 하얀 옷을 입은 중동인 한 무리가 있다. 그들은 그네들 고유의 기다란 목욕 가운 같은 옷을 입고 터번을 두른 데다 줄무늬의 머리띠를 하고 있다. "여기가 클럽인가요?" ‘뭐, 우리끼리는 그렇게 부르지. 클럽이라고." ‘이런 일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요." "글쎄, 공식적으로는 그렇지만, 결국은 다들 사람이니까." 나는 그가 이 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길 바라지만, 그는입을 꾹 다물어 버린다. 그래서 내가 먼저 말을 꺼낸다. "무슨 말씀이세요?"
‘자연은 속일 수가 없다는 말이오. 자연의 섭리에 따르면 남자들에겐 다양한 여성이 필요하오. 그건 이치에도 부합하고, 번식 전략의 일환이기도 하지. 자연의 계획이란 말이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말을 계속한다. "여자들도 그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소. 그게 아니면 왜 옛날에 그렇게 각양각색의 옷들을 많이 사 댔겠어? 남자들로 하여금 자기가 서로 다른 여자들이라고 생각하게 하기 위한 일종의 속임수였지. 매일매일 새로운 여자라고 느껴지도록 말이야." 그는 진심으로 믿는 듯이 말한다. 사실 그는 이런 식으로 하는 말들이 많다. 어쩌면 그런 말들을 정말 믿는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은믿지 않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믿는 동시에 믿지 않는지도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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