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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짓을 해 버렸단 말인가? 그녀 존재의 핵심에 있던(그게 무엇이었을하기 무언가를 앗아가 버렸단 말인가? 하지만 나 자신도 그렇게 못하는 주제에, 어떻게 그녀가 버텨나가길 기대한단 말인가? 내 마음태로 꾸며낸 그녀의 용기로 끝까지 살아나가기를 온몸으로 실천하기름, 어떻게 그녀에게 바란단 말인가?
모이라가 나처럼 되는 건 싫다. 굴복하고, 순응하고, 근근이 제목숨이나 연명하게 되는 건 싫다. 결국은 그게 문제다. 나는 모이라에게서 용감무쌍함을 기대한다. 허세를 부리고, 영웅적인 행동을 하고,
홀홀단신 적진에 뛰어들어 전투를 벌이기를 기대한다.

내 걱정은 마." 그녀가 말한다. 내가 하는 생각을 대강 알아차린모양이다. ‘나 아직 제정신이야. 나야. 보면 알잖아. 어쨌든 이렇게생각해 봐. 이건 별로 나쁘지 않은걸. 주위에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동성애자의 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 말야."
모이라는 이제 나를 놀리고 있다. 자신의 원기를 과시하고 있다.

그러자 기분이 좀 나아진다.
‘그래도 그냥 너를 내버려둬?"
내버려두냐고? 오히려 나서서 권장한다. 야, 자기네들끼리 여기를 뭐라고 부르는 줄 알아? ‘이세벨의 집‘이래. 아주머니들이 보기에우리는 어차피 저주받은 존재니까 아예 포기하고 우리가 무슨 죄악을 저지르건 상관도 안 해, 사령관들도 우리가 여가 시간에 하는 일에 대해서는 신경 안 쓰고, 오히려 여자들이 여자들을 깔고 누운 풍경은 자극적이라고 한다니까."
"다른 여자들도 다 그래?"

이런 연설이 끝난 뒤에 예외바른 박수갈채가 이어지고 잔디밭에서 홍차와 쿠키를 대접하지 않는다는 게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다.
서론이 대충 끝났군. 나는 생각한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지.

리디아 아주머니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꾸깃꾸깃한 종이를 한장 꺼낸다. 그녀는 종이를 펼쳐 살펴보면서 지나치게 뜸을 들인다.
그렇게 해서 우리를 길들이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확실히 알게하려는 거다. 말없이 종이의 글을 읽는 자기 모습을 우리가 지켜보게 함으로써 자신의 특권을 과시하려는 거다.

 천박해, 나는 생각한다. 제발 빨리 해치워 버려.
"과거에는 실제의 ‘구제‘에 앞서 죄수들이 기소된 범죄의 자세한내역을 설명하는 절차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공공연한 설명을 하면, 특히 TV로 방영할 경우에 예외 없이 모방범죄가폭발적으로 증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이러한 절차를 생략하는 것이 모두를 위해 최선의 일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더 이상 복잡한 절차 없이 ‘제‘를 진행하겠습니다."

모두들 한꺼번에 웅성웅성 소리를 낸다. 다른 사람들의 범죄는우리들끼리의 은밀한 언어였다. 그 내역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건 대중이 호응할 발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박수갈채를 만끽하고 있는 듯 눈을 깜박거리며 미소를 짓고 있는 리디아 아주머니의 얼굴만 봐서는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전부 머리로 다 상상해 내야 한다. 각자 알아서 추정해야만 한다. 첫 번째 여자, 그들이 지금 의자

에서 일으켜 세우고 있는 여자, 검은 장갑을 낀 손들에 위 팔뚝을 붙들린 여자, 그녀는 책을 읽었을까? 
아냐, 그건 3급 범죄로 겨우 한쪽 손을 자를 뿐이다. 부정(不貞), 아니면 사령관의 목숨을 노렸던 건가? 
아니, 그보다는 사령관의 아내를 죽이려고 했다는 게 더 그럴싸하다. 
우리는 아마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아내의 경우에는 ‘구제‘당할 만한 범죄가 대체로 단 하나밖에 없다. 그들은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해도 문책받지 않지만, 단 하나 우리를 죽이는 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뜨개질 바늘이나 정원 가위나, 주방에서 훔친 칼들로 우리를 살해해서는 안 된다. 특히 우리가 아기를 가지고 있을 때에는더더욱 그렇다. 물론, 간통 죄일 수도 있다. 그럴 가능성은 상존하는 법.
아니면 탈출을 기도했거나.
"오브찰스"
리디아 아주머니가 이름을 부른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그런이름이 없다. 여자가 앞으로 끌려나온다. 그녀는 온 신경을 걷는 데만 집중하는 사람처럼 한 발, 그다음에 다른 발, 힘겹게 옮긴다. 약에 취한 게 틀림없다. 입가에는 술 취한 듯 몽롱한 미소가 떠올라 있다.
그녀는 한쪽 얼굴을 찡그리면서, 카메라를 향해 어울리지 않는 윙크를 던진다. 물론, 방송에는 절대 나가지 않을 것이다. 이건 생중계가아니다. 
‘구제자‘ 두 사람이 그녀의 손을 등 뒤로 돌려 묶는다.
내 뒤에서 구역질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래서 우리가 아침 식사를 하지 않는 거다.
"아마 틀림없이 재닌일 거야."

아니면 정말 해코지를 해 버린다면? 그들의 만행은 상상조차 하고싶지 않다. 아니면 루크를, 그들이 루크를 붙잡고 있다면? 아니면 우리 엄마나 모이라나 그 외 누구라도 아, 하느님, 제발 선택을 강요하지 말아 주세요. 
난 견뎌내지 못할 거예요. 나는 잘 알고 있어요. 모이라는 나를 제대로 알고 있었던 거야. 나는 그들이 원하는 말은 뭐든지 털어놓을 사람이다. 누구든 고발해 버릴 거다. 사실이다. 

첫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는 대로, 아니 흐느껴 우는 소리 하나에도, 나는젤리처럼 흐물흐물해져 버리고 말 거다. 무슨 죄목이든 닥치는 대로 자백하고, ‘장벽‘의 갈고리에 매달린 신세가 되고 말 거다. 고개를 숙이고 똑바로 봐 하고 스스로에게 타이르곤 했다. 이젠 다 소용없다.

나는 집으로 오는 길 내내 마음속으로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모퉁이에서 우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서로를 보고 인사한다.
"그분의 눈 아래."
방심할 수 없는 새로운 오브글렌이 말한다.
"그분의 눈 아래."
나는 열띤 어조로 말하려고 애쓴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연기가 도움이 된다는 듯이.
그러자 그녀는 이상한 짓을 한다. 그녀는 몸을 앞으로 숙이고, 우리 머리에 쓴 하얗고 딱딱한 눈 가리개가 거의 닿을 정도로 가까이다가왔다. 창백한 다갈색 눈과, 거미줄 같이 미세한 뺨의 잔주름이똑똑히 보였다. 그녀는 마른 낙엽처럼 서걱거리는 목소리로, 재빨리말했다.
"그 여자는 목매달아 자살했어요. ‘구제‘가 있은 다음에 체포하러

영미 페미니즘 문학의 거장 마거릿 애트우드의 대표작!
전체주의 사회 속에 갇혀버린 한 여성의 독백을 통해성과 권력의 어두운 관계를 파헤친 섬뜩한 디스토피아 소설

‘총독문학상‘, ‘아서 C. 클라크 상‘ 수상
‘부커 상‘, ‘네뷸러상‘ 

노미네이트21세기 중반, 전 지구적 전쟁과 환경오염으로 출생률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미국은 극심한 혼란 상태에 빠진다. 이때를 틈타 가부장제와 성경을 근본으로 한 전체주의 국가 ‘길리아드‘가 일어나 국민들을 폭력으로 억압하는데,

특히 여성들을 여러 계급으로 분류하여 
교묘하게 통제하고 착취하기 시작한다.
평화롭게 살던 주인공은 
어느 날 갑자기 이름과 가족을 뺏긴 채 
사령관의 ‘시녀‘가 되어,
삼엄한 감시 속에 그의 아이를 수태하도록 강요받는다.

성과 권력의 어두운 관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소조지 오웰의 『1984』만큼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워싱턴 포스트>최고의 스릴러 소설이며, 소설의 기본 요소가 재미에 있음을 일깨워 주는 작품-<뉴욕 타임스>

휘파람을 불면서, 까마득하게 멀어 보인다.
하느님, 당신이 원하신다면 난 못할 일이 없어요. 나는 기도한다.
이제 주님이 내 주인이 되셨으니, 정말로 원하시기만 한다면 나자신을 하얗게 지워 버리겠어요. 진정 내 모든 것을 비우고, 참된 성배가 되겠어요. 닉을 포기하겠어요. 다른 사람들도 까맣게 잊겠어요.
불평도 그만두겠어요. 내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겠어요. 희생하겠어요. 참회하겠어요. 모든 권리를 포기하겠어요. 모든 인연을 끊겠어요.
옳지 못하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어쨌든 그런 생각을 한다. 그들이 레드 센터에서 가르친 모든 것들, 내가 이제까지 저항했던 모든것들이 물밀 듯이 밀려들어 한꺼번에 나를 덮친다. 
고통은 싫다. 머리는 얼굴 없는 계란형의 천주머니가 되고, 두 발은 허공에 매달린댄서가 되고 싶지는 않다. ‘장벽‘에 걸린 인형이 되고 싶지는 않다.
날개 없는 천사가 되고 싶지는 않다. 어떤 식으로든, 계속 살아가고싶다. 내 몸은 다른 사람들 마음대로 쓰라고 맡기겠다. 그들이 내 몸을 가지고 무슨 짓을 해도 좋다. 나는 비굴하다.
처음으로, 나는 그들의 진정한 힘을 실감한다.
나는 꽃밭을 넘어 버드나무를 지나쳐 뒷문을 향해 걷는다. 저 안에 들어가면 안전할 것이다. 방 안에서 무릎을 털썩 꿇고, 감사한 마음으로 가구 광택제 냄새가 실린 묵은 공기를 허파 가득 들이마실터이다.
세레나 조이가 정문으로 나와 계단 위에 서 있다. 그녀가 나를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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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 이야기 (리커버 일반판, 무선) 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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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전의 이런 절망과 풍자가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이 슬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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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인도는 시멘트다. 나는 어린애처럼 갈라진 틈을 밟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나는 구시대에 이 길을 밟고 다니던 내 발과 그 당시에 신고 다니던 신발을 기억하고 있다. 밑창에 쿠션과 공기 구멍이 있으며, 캄캄해지면 빛을 반사하는 형광 천으로 만든 별 모양 장식이 달린 러닝 슈즈를 가끔 신곤 했다. 절대로 밤에는 조깅하지 않았고 낮에 달릴 때에도 자주 가는 길만 따라 달리곤 했지만 말이다.
그 당시 여자들은 보호받지 못했다.

나는 당시의 규칙들을 기억한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아무도 입 밖에 내어 말하지 않던 그 규칙들 말이다. 설사 상대가 경찰이라 하더라도, 절대로 낯선 사람에게 문을 열어 주지 마라. 문아래로 신분증을 밀어 넣으라고 해라. 곤경에 처한 척하는 오토바이운전자를 도와준답시고 길가에 정차하지 마라. 자동차 문을 잠그고 계속 가라. 누군가 휘파람을 불어도 절대로 고개를 돌려 쳐다보지마라. 밤에 혼자 빨래방에 가지 마라.
나는 빨래방을 생각한다. 빨래방에 갈 때 입었던 옷들, 반바지, 청바지, 운동복, 세탁기 안에 집어넣었던 것들. 내 옷들, 내 비누, 내 돈,
내가 번 돈. 그런 통제력을 가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지금 우리는 빨간 옷을 입고 짝을 지어 같은 거리를 걷고 있지만 아무도 우리를 보고 음담패설을 퍼붓지 않고, 아무도 말을 걸지 않고, 아무도 만지지 않는다. 아무도 휘파람을 불지 않는다.

하지만 한 번에 조금씩, 머리를 재빠르게 위아래로, 좌우로 움직이면 볼 수는 있다. 우리는 헉헉거리며 세상을 보는법을 배웠다.
오른편으로 길을 따라 걸어가면, 강가로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
그곳에는 옛날에 조정 경기용 노를 보관하던 보트하우스 한 채와 다리 몇 개가 있다. 나무들, 푸르른 강둑, 그곳에서는 앉아서 강물을 바라볼 수 있었고, 팔뚝을 드러낸 젊은 남자들과, 그들이 승리를 위해햇살 속으로 한껏 치켜들던 노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강물로 가는길에는 지금은 다른 용도로 쓰이는 낡은 기숙사가 있는데, 동화책에나오는 듯한 뾰족탑들이 하얀색과 금색과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다.
과거를 생각하면 우리는 아름다운 것들만 떠올리기 마련이다. 전부좋기만 했다고 믿고 싶어한다.

축구장도 그쪽에 있는데, 그곳에서는 요즘 ‘남성 구제 행사‘가 열린다. 물론 축구 경기도 열린다. 아직까지 스포츠 경기는 남아 있다.
나는 이제 강가에 발길을 끊었고, 다리를 건너지도 않는다. 지하철역이 지척에 있는데도 지하철을 타지 않는다. 우리는 승차가 허락되지 않는다. 지금은 수호자들이 지키고 있고, 우리에겐 그 계단을내려가 강 밑의 지하철을 타고 시내 중심가로 갈 공적인 동기도 없다. 우리가 거기 가고 싶어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가 봤자 좋을 일이 없으니 그들은 이유를 캐려 할 것이다.
교회는 조그맣다. 수백 년 전 이곳에 처음 세워진 건물들 중 하나지만 요즘은 박물관으로만 쓰고 있다. 


모이라가 저 바깥 어딘가에 있다. 마음대로 활보하고 있거나 아니면 죽었으리라. 모이라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할까? 그녀가 벌일 거라떠오르는 일들이 점점 부풀어서 방 전체를 가득 채웠다. 언제 건물을 산산조각 내는 폭발이 일어날지 모른다. 창문 유리가 부서져 방안으로 쏟아져 내리고 문이 활짝 열어젖혀질지 모른다.... 모이라에게는 이제 힘이 있었다. 그녀는 해방되었다. 스스로를 해방했다.
이제 그녀는 풀려난 여성이었다.
우리는 그 사실이 공포스럽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모이라는 마치 양쪽이 툭 터진 엘리베이터 같았다. 우리는 현기증이 났다. 우리는 이미 자유에 대한 미각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벌써부터 이 벽들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기권 상층부로 올라가면 사람은 산산조각으로 분해되고 휘발해 버리지 않는가. 형체를한데 묶어 붙들어줄 기압이 전혀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이라는 우리의 판타지였다. 우리는 그녀를온몸으로 껴안았으며, 그녀는 우리 곁에 비밀스럽게 언제나 낄낄거•리는 웃음소리로 존재했다. 모이라는 일상의 딱딱한 암반 아래로 이글이글 흐르는 용암이었다. 모이라에 비하면 아주머니들은 별로 무섭지 않았고, 오히려 훨씬 더 우스꽝스런 존재로 여겨졌다. 아주머니들의 권위는 흠집이 났으니까. 그들은 변기에 처박혀 달갑지 않은일을 억지로 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그런 뻔뻔스런 대담함이 좋았다.

기록해 놓으면, 그때는 또다시 머릿속에서 재구성한 이야기가 되어버릴 터이다. 그래서 또 한발 진실에서 물러서게 될 것이다. 무언가를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말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말이란 결코 정확할 수 없으며 언제나 뭔가 빠뜨리기 때문이다. 현실에는 너무 많은 단편들이 있고, 관점들이 있고, 반목들이 있으며, 뉘앙스가 있다.
이런 의미도 저런 의미도 될 수 있는 몸짓들이 너무 많고, 말로는 절대로 완벽하게 표현할 길 없는 형상들도 너무 많으며, 허공에 떠다니거나 혀끝에 감도는 향(香)도 수없이 많고, 어중간한 색채들도 한•없이 많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혹시 남자라면, 그리고 여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읽어 왔다면, 제발 명심해 달라. 
당신은 여자로서, 남자를 용서해야만 한다는 유혹이나 기분에 절대 시달리지 않을것이란 사실을 잊지 마라. 
정말이지 그런 충동은 참으로 거역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용서 역시 일종의 권력이다. 용서를 구하는 일 역시 권력이며, 용서를 유보하거나 베푸는 일 또한 일종의 권력이다. 아마 그만큼 커다란 권력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이 모든 일은 통제의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누가 누구를 소유하고, 누가 누구한테 어떤 짓을 해도, 심지어 살인을 해도 벌을 받지 않아도 된다든가 하는 그런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누구는 앉을 수 있고 누구는 꿇어앉거나 일어서거나 다리를 활짝 벌리고 드러누워야 한다는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진짜 문제는 누가 누구한테 어떤 짓을 저질러도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다 마찬가지라는 말만큼은 절대 내 앞에서 하지 마라.

우리 후손들에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세상이 올 거야. 리디아 아주머니는 말했다. 
여자들은 모두 한 가족이 되어 조화롭게 살게 될 거야. 여러분들은 그 집의 딸 같은 존재가 될 테고. 출생률이 다시 일정 수준을 회복하면 이 집 저 집으로 옮겨다니지 않아도 될테지. 인력이 많아질 테니까. 이런 상황에서 진정한 애정의 유대가 생겨날 거야. 그녀는 애교를 떨며 우리에게 눈을 찡긋해 보였다. 
공통의 목표를 위해 연대한 여인들! 각자 맡은 일을 수행하면서, 자질구레한  집안일들을 서로 도와 기나긴 인생 길을 함께 걸어가는 여인들. 

어째서 한 집안의 살림을 꾸려나가는 고귀한 일을 한 여자가 도맡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말이야? 그건 합리적이지도, 인도적이지도 않아. 
여러분의 딸들은 훨씬 더 큰 자유를 누릴 거야. 우린 지금한 사람이 작은 정원을 하나씩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 여러분 모두에게 정원이 하나씩. 

나는 그 이야기도 털어놓았다.
그들이 동결시킨 거야. 그녀가 말했다. 
내 것도 마찬가지야. 여성단체의 카드도 마찬가지야. 
M*이 아니라 F라는 글자가 박힌 계좌는 전부 그래. 몇 번 단추만 누르면 되는 일이야. 우리는 철저히 차단당한 거야.

하지만 은행에 2000달러나 입금해 두었는데, 나는 말했다. 세상에 중요한 게 내 계좌밖에 없다는 듯이.

여자들은 더 이상 재산을 가질 수 없게 됐어. 새로 입법된 법이야.
오늘 TV 켜 봤어?
아니.
TV에 나와. 하루 종일 나오고 있어. 

이상하지만 어떤 면에선 들떠 있었다. 자기는 오래전부터이런 일을 예상하고 있었는데 보란 듯이 들어맞았다는 것처럼.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더 생동감 넘치고 결연해 보였다. 
루크가 너 대신
‘컴퓨카운트‘를 사용할 수 있어. 네 계좌 잔고를 그의 명의로 이체할거래 적어도 그들 말로는 그래, 남편이나 가장 가까운 친척이.

하지만 너는 어떻게 하니? 그녀에게는 남편도 친척도 없었다.
지하로 들어갈 거야. 그녀는 말했다. 동성애자들 몇 명이 우리 계좌번호를 위임 받아서 필요한 물건을 사줄거야.
하지만 왜? 왜 이런 짓을 한 거지?

왜 그랬는지 따지는 건 우리 몫이 아니야. 
모이라가 말했다. 
그들입장에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컴퓨카운트‘와 직장을 한꺼번에 빼앗아야 했던 거지. 안 그랬으면 지금쯤 공항이 어떻게됐겠어? 우리가 어디로든 가 버리는 건 그들이 원하는 바가 아니야.
내기를 걸어도 좋다고.

나는 딸아이를 데리러 학교로 갔다. 나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조심스럽게 운전을 했다.

 루크가 퇴근했을 무렵 나는 부엌 식탁에 앉아 있었다. 딸아이는 한쪽 구석에 있는 자기 책상에서 펠트 펜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거기 있는 냉장고 옆에 딸애가 그린 그림들을 테이프로 붙여두고 있었다.
루크는 내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나를 안아 주었다.
소식 들었어. 집에 오는 길에 자동차 라디오에서 걱정 마. 임시조치일 거야.

어쩌면 은밀한 비밀을 자기만 알고 있다는 데서 만족감을 느끼는사람인지도 모른다. 옛날 표현을 빌자면, 내 꼬투리를 잡고 있다는 사실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종류의 권력은 딱 한 번밖에쓸 수 없기 때문에 아껴두어야 한다.
하지만 그럴 사람은 아니라고, 더 좋게 생각하고 싶다.

내가 직장을 잃은 그날 밤, 루크는 사랑을 나누고 싶어했다. 나는왜 기분이 내키지 않았을까? 절망감에라도 루크에게 달라붙었어야하는데, 하지만 여전히 온몸이 무감각했다. 내 몸을 만지는 그의 손길조차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왜 그래? 그가 물었다.
나도 몰라. 내가 대답했다.
우리에겐 아직도...……. 하지만 그는 우리에게 아직 뭐가 남았는지 말을 끌지는 못했다. 

갑자기 나는 루크가 ‘우리‘라는 말을 쓸 자격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한, 루크는 아무것도 빼앗긴 게없었다.

우리에겐 아직도 서로가 있잖아. 내가 말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그런데 왜 그때 내 말투는, 내 귀에조차 그렇게 냉담하게 들렸을까?
그때 루크는 내게 키스했다. 내 입에서 그 말이 나온 이상, 이제판사가 괜찮아질 거라는 것처럼. 

하지만 뭔가가 달라졌다. 어떤 균형이 무너졌다. 나는 쪼그라든 기분이 들었고, 그가 팔을 내게 두르고 안아 올렸을 때는 인형처럼 작아진 듯이 느껴졌다. 사랑이 나만버려두고 저만치 앞으로 달려나가 버린 느낌이었다.
그이는 마음에 걸리지 않는 거야. 그이는 전혀 마음 쓰지 않아. 

쩌면 오히려 잘됐다고 여길지도 몰라. 우리는 더 이상 서로의 것이아니야. 이젠 내가 그의 것이 되어 버린 거야.
무가치하고 부당하고 비현실적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나 버린 일이다.
그래서 루크 지금 당신한테 묻고 싶은 건, 내가 정말 알고 싶은건. 이런 거야. 내가 정말 옳았던 거야? 우리는 한 번도 그 일을 서로털어놓고 이야기하지 않았잖아. 그 말을 꺼낼 수도 있었을 즈음나는 겁이 났어. 당신까지 잃어버릴 수는 없었으니까.

오늘 밤에는 철저히 격의 없는 모습이다. 상의는 벗어던지고 팔꿈치는 책상 위에 놓았다. 한쪽 입에 이쑤시개만 하나 물고 있으면 판화로 찍은 농촌 지방 선거 홍보 포스터의 모델 같다. 얼룩얼룩한 배경에, 타 버린 낡은 책들 몇 권 내 앞 게임판 위에 놓인 사각형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나는 오늘 밤 아껴두었던 회심의 일격을 가한다.
Zilch‘ 라는 단어를 만든다. 값비싼 Z가 들어간 아주 유용한 모음 한개짜리 단어다.
"그게 단어 맞소?" 사령관이 묻는다.
"사전에서 찾아보면 되잖아요. 고어예요."
"그건 당신한테 내주지." 그가 말한다. 그리고 미소를 짓는다. 사령관은 내가 귀를 쫑긋 세우고 재롱을 부리려 안달하는 착한 애완동물인 양, 탁월한 수를 두고 나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면서 아주 좋아한다. 
그의 평가는 따뜻한 목욕물처럼 나를 감싼다. 
남자들에게서 느끼는, 심지어 가끔은 루크한테서도 느낄 수 있던 적대감이 그에게선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 그는 머릿속으로 ‘나쁜 년‘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는 정말 아빠 같은 느낌이다. 내가 즐거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그는 기뻐한다. 그리고 나는 정말 즐겁다. 정말, 정말로. 그는 능숙하게 우리의 최종 점수를 포켓 컴퓨터로 정산한다.
"이번 판은 당신이 쓸었군."
나는 그가 내 비위를 맞추기 위해, 내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기 위

스마일 배지 그림이 장마다 맨 위에 인쇄되어 있는 메모지 공책이었다. 아직도 이런 걸 만들고 있구나.
나는 문구를 머릿속에서, 내 옷장 속에서 복사해 꼼꼼하게 한 자한자 적는다. 

Nolite te bastardes carborundorum, 여기 이곳에서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 글은 기도도 아니고 지령도 아니고 그저 휘갈겨 끼적거린 후 버려둔 서글픈 낙서일 뿐이다. 

내 손가락 사이에 쥐어진 펜은 육감적이고 생명체처럼 살아 움직인다. 펜의 권력이 편이 내포하고 있는 글의 권력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펜은 질투를 불러 일으켜, 리디아 아주머니는 또 다른 센터의 구호를 인용하며 그런 물건을 가까이하지 못하도록 우리에게 경고했다. 

그들의 말은 옳다. 편은 질시의 마음이다. 펜을 들고만 있어도 시기심이 샘솟는다.
나는 펜을 가지고 있는 사령관을 실시한다. 펜 또한 내가 훔치고 싶은 물건이다.

사령관은 스마일 배지가 그려진 종이를 받아들고 그걸 바라본다.

그러더니 큰 소리로 웃기 시작하는데, 지금 얼굴이 붉어진 건가?

"그건 진짜 라틴어가 아니오. 그냥 농담이지."
"농담이라고요?"
나는 어리둥절해진 채 묻는다. 단순한 농담일 리가 없다. 이런 위힘을 무릅쓰고 알려고 손을 뻗었는데, 기껏해야 농담이라고?

"어떤 농담이죠?"
"남학생들이란 족속들이 원래 그렇잖소."
그의 폭소는 향수에 젖어 있다. 
이제야 알겠다. 그 웃음은 옛날의 자신을 너그럽게 돌아보는 폭소였다. 

시작해야 한다‘는 게 그들의 모토였다. ‘한시라도 낭비해선 안 되니까. 하지만 그래도 그 애들은 기억하리라. 그리고 앞으로 3년, 4년,
5년 동안은 그다음에 결혼할 처녀들도 기억하리라. 
하지만 그다음 처녀들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겠지. 
그들은 평생 흰옷을 입고 여자아이들끼리 살아왔을 테니까. 언제나 침묵을 지켰을 테니까.

우리는 빼앗은 것보다 더 많이 주었소. 
사령관이 말했다. 전에 일마나 골치가 아팠는지 생각해 보시오. 
독신 전용 술집이니, 품위 없는 고등학교 미팅 같은 것들을. 그런 것들을 육체 시장이라고 했지.
쉽게 남자를 얻는 여자들과 그렇지 못한 여자들 사이의 괴리감 같은게 기억나지 않나? 
어떤 여자들은 절망해서, 죽도록 굶어 말라깽이가 되거나 가슴에 실리콘을 넣어서 풍만하게 만들기도 하고 코를 깎아내기도 했소. 그 비참함을 생각해 보라고.

그는 낡은 잡지들이 쌓여 있는 쪽을 손짓했다. 그들은 불만투성이지. 이게 문제고, 저게 문제고, 개인 광고란의 광고 기억하오? ‘총명하고 매력적인 여인, 서른다섯・・・・・・ 그들은 모두 이런 식으로 남자들을 얻었소.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말이오. 그리고 결혼을 한 뒤에는 자식을 하나둘 낳고, 남편은 신물이 나서 그냥 사라져 버리면,
여자들은 복지 기관에 신세를 져야 했소. 
안 그러면 남편이 식구들을 두들겨패기도 했지. 여자가 직장을 가지고 있으면, 아이들은 탁아소나 야만적이고 무식한 여편네한테 맡겨야 했지. 그리고 그 한심한 봉급에서 가정부 월급을 직접 줘야 했단 말이오. 
누구를 막론하고 돈이 인간의 값어치를 매기는 유일한 기준이었고, 엄마로서 응당

받아야 할 존경 받지 못했소. 아예 엄마 노릇을 안 하겠다고 두 손두발 든 것도 무리가 아니요. 
지금 같은 방식이라면 그들은 보호받을 수 있고, 평화롭게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운명을 성취할 수 있소.
전폭적인 지원과 격려를 받으면서 말이오. 자, 이제 말해 보시오. 당신은 지적인 사람이니 의견을 듣고 싶소. 우리가 간과한 게 뭐라고생각되시오?

사랑이요 내가 말했다.
사랑? 사령관이 말했다. 어떤 종류의 사랑 말이오?
사랑에 빠지는 것. 내가 말했다. 사령관은 그 천진한 소년 같은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오 그렇소. 그가 말했다. 나도 그 잡지들을 읽었소. 그 잡지들에서 추구하던 게 그런 것이지? 안 그렇소? 하지만 통계를 보시오, 아가씨. 정말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소? 사랑에 빠질 만한 가치가? 중매결혼도 언제나 연애 결혼만큼이나 성과가 있었소. 적어도 나으면 나았지 못할 건 없소.

사랑이라. 리디아 아주머니는 혐오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 짓하다 걸리면 큰일 날 줄 알아. 여기서 쓸데없이 엉덩이 까고 나쁜 짓하면 큰일 나, 그녀는 우리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리면서 말했다.
사랑은 중요치 않아.
역사적으로 말하면, 그 시절은 그저 돌연변이에 불과하오. 사령관은 말했다. 어쩌다 보니 잠깐 그렇게 됐을 뿐이지. 우리가 한 일은

다시 주위를 돌아본다. 처음 생각과 달리 남자들은 같은 무리가 아니다. 분수 너머 저쪽으로는 일본인들 무리가 연한 회색 정장을입고 있고, 저 멀리 구석에는 하얀 옷을 입은 중동인 한 무리가 있다. 그들은 그네들 고유의 기다란 목욕 가운 같은 옷을 입고 터번을 두른 데다 줄무늬의 머리띠를 하고 있다.
"여기가 클럽인가요?"
‘뭐, 우리끼리는 그렇게 부르지. 클럽이라고."
‘이런 일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요."
"글쎄, 공식적으로는 그렇지만, 결국은 다들 사람이니까."
나는 그가 이 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길 바라지만, 그는입을 꾹 다물어 버린다. 그래서 내가 먼저 말을 꺼낸다.
"무슨 말씀이세요?"

‘자연은 속일 수가 없다는 말이오. 자연의 섭리에 따르면 남자들에겐 다양한 여성이 필요하오. 그건 이치에도 부합하고, 번식 전략의 일환이기도 하지. 자연의 계획이란 말이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말을 계속한다.
"여자들도 그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소. 그게 아니면 왜 옛날에 그렇게 각양각색의 옷들을 많이 사 댔겠어? 남자들로 하여금 자기가 서로 다른 여자들이라고 생각하게 하기 위한 일종의 속임수였지. 매일매일 새로운 여자라고 느껴지도록 말이야."
그는 진심으로 믿는 듯이 말한다. 사실 그는 이런 식으로 하는 말들이 많다. 어쩌면 그런 말들을 정말 믿는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은믿지 않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믿는 동시에 믿지 않는지도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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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서로를 위한 대리로 살아가는 존재일 것이다
그러고보면 인생의 어느 중요한 결정을 두고, 나는 아내의 동의를 구한 일이 별로 없다. 오늘 저녁엔 뭘 먹을까 하는 사소한 말은 주고받으면서도 정작 더 중요한 일들을 제대로 상의하지 않았다. 홀로 고민하고 결정하고, 통보하는 식이었다. 
대학을 그만둘 때도 "나 대학에서 나와도 될까?"가 아니라 "나 대학에서 나오려고 해"라고 말했다. 아내는 나의 결정을 존중해 주었지만, 만약 그러지 않았다고 해도 어쩔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아내에게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믿어달라고 자주 말했다. 가족이 가진 삶의 무게를 온전히 내가 감당하고 끌어올려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되지 않았고 그것이 오히려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함께 있으면서도 외롭고, 서로를 바라보며 지쳐갔다. 
나는 아내와 아이를 위한 대리인생을 살아가는 동시에, 또 그들의 삶을 대리로 격하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가족 중 그 누구도 주체로서 살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 그렇게 ‘가족‘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어느 날 새벽에 아내는 어디냐고 묻고는 나를 픽업하러 왔다. 아이는 잠들었고 내가 늦게까지 오지 않아 걱정되었다고 했다. 
그때 나는 1시간은 걸어갈 각오를 하고 있었기에 정말 고마웠다. 그래도 두 돌이 된 아이를 두고 밖에 있는 것이 걱정되어 서둘러 차를 몰았다. 가는 동안 아내는 일을 그만두면 안 될지를 물었다. 그래서 나는 어디에서나 내가 대리로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글로 쓰겠다


사회는 우리를 ‘대리인간‘으로 만든다. 나아가 소중한 사람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게 한다. 

그러한 대리사회의 욕망은 결국 모두를 집어삼키고, 주체로서의 자리 역시 빼앗는다.
 하지만 그러한 고난의 시간을 추억으로 남겨서는 안 된다.
 대학에서 10년 가까이 연구자로 있는 동안, 외로운 한 존재를 바라보는 이들은 그보다 더 외롭다는 것을 알았다.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그들이 상처받기 이전에 ‘고맙다‘거나
‘사랑한다‘고 말해 주었을 것이다. 그 시간이 지나가면 모두 추억이될 것이라 믿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원주와는 달리 나의 발이 되어주는 수단 무엇보다 광역버스‘는 정말 감사한 존재였다. 김포 남분당 어디 할 것 없이 서울 광역버스가 반드시  있었다.
그래서 12시 이전에만 운행을 마치면 강남, 사당, 서울으로 돌아가는 광역버스를 탈 수 있었다. 김포에서 합정까지 버스가 15분만에 도착하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여러모로 지하보다 나았다.

막차가 끊긴 시간부터 첫차가 출발할 때까지 1시간에 한 번씩 다니는
‘버스‘도 있었다. 처음 탔을 때는 버스를 꽉 채운 사람들이 거의 취객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대부분이 대리운전 기사들이었다. 
다들 한 손에 핸드폰을 들고 먼저 콜을 잡으려고 간절히 화면을 바라보았다. 콜이 들어올 때마다 여기저기서 뻐꾸기 알림음이 났다. 정류장마다 한두명씩은 ‘네. 곧 갑니다‘ 하는 전화를 하면서 내렸고 새로운 사람들이 그만큼 버스에 올랐다.

지하철은 생각보다 늦게까지 다녔다. 판교에서 신분당선 막차가12시 53분까지 있고, 그걸 타면 15분 만에 강남역까지 도착한다. 광교 테크노벨리, 정자역에서 각각 서울로 올라가는 골을 기다리던 대리운전 기사들이 하나둘 막차에 올라탔다. 
강남행 막차에 오르면 승객의20퍼센트는 나와 닮은 아들이었다. 대개는 핸드폰을 손에 꼭 붙잡고

조교 아르바이트에게 명절 선물을 받는 교직원

나는 그동안 명절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일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2008년 봄부터 2015년 겨울까지 8년 동안 나는 대학에서 언제나 노동자였다. 

학과사무실이나 연구소에서는 행정 노동을 했고 강단에서는 강의 노동을 했다. 학생과 노동자의 경계를 계속 넘나들었다. 하지만 교직원도 교수도 나를 노동자로 인식하지 않았다.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최저 수준의 사회보장이 대개 간단히 무시되었지만 학생/연구자니까 당연한 것이 아니냐는 태도였다.

명절이면 교수와 교직원, 그러니까 정규직들에게는 학교마크가 선명한 명절 선물이 나왔다. 그들은 그것을 들고 고향으로 갔다. 그들이게 상여금이나 교통비 명목의 명절 보너스가 따로 지급되었는지는 잘모르겠다. 다만 대학원생 조교들은 마지막까지 학과사무실에 남아 있다가 문을 잠그고 퇴근했다. 
나는/우리는 명절에도, 그리고 명절이 아닌 일상에서도 언제나 대학의 숨은 노동자였다.

작년 명절에도 대학으로부터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휴강하지 말라는 권고가 선물이라면 선물이었다. 
그런데 추석을 일주일 정도 앞두고 면담을 신청한 학생이 있었다. 대학 부처에서 근로조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그는 고민이 있다면서 나에게 카카오톡 대화창을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1인당 3만 원씩 걷어서 교직원 선생님들 추석 선물을 사드립시다.
우리에게 아버지 같은 분들인데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겠죠?"


나는 기독교 문학을 주제로 학위 논문을 썼다. 딱히 종교가 없으면서도 기독교와는 그렇게 인연을 맺었다. 논문을 쓰면서 성경을 종종읽었는데, ‘신명기‘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 이는 그가 가난하므로 그 품삯을 간절히 바람이라."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는 것은 성경에 명시된 ‘율법‘이다. 
나는 이 대목을 읽었을 때 정말이지 기뻤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 시기에도 노동의 대가를 제때 지불하는 것의 중요성을 모두 알았고, 그것이 노동자를 주체로 대하는 방식임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지금, 합리와 상식으로 가려진 구조 안에서 개인/노동자는 더욱 주체성을 잃고 소외된다. 
말하자면 주체가 아닌 대리가 되어간다. 이것은 우리 시스템의 문제인 동시에, 창작자/연구자의 수고로움을 노동으로 여기지 않는 개개인의 문제이기도 하다.

나는 두 달 전에 쓴 글의 원고료와 어제 한 대리운전의 품삯을 같은날 지급받는다. 어느 편이 더 상식과 합리인지는 명확하다. 타인의 운전석이, 우리가 믿는 그 어느 합리적인 공간보다도 오히려 더 인간을 주체로서 대우한다.


타인의 즐거움을 보며 대리로서 즐거워야 한다핀, 역설적으로 나는/우리는 지금 그만큼 즐겁지 않다는 것이다. 

현실이 만족스럽다면 남들이 먹고 노래 부르는 것에 지금처럼 필요 이상으로 열광할 이유는 없다. 결국 많은 이들이 새벽에 연구실에 앉아서 기약 없는 논문을 씨 내려가는 것만큼이나 외롭거나, 아니면 절박한 심정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이전에는 출연자들이 외국을 배경으로 평생 먹을 일이 없을 것만 같은 미국적인 음식을 먹고 즐겼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주변의 맛집이나 거리로 간다. 평범한 냉장고에서 누구나의 집에 있을 법한 재료를 꺼내 몇 분 만에 요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일상의 공간에까지 이제 그들은 침투했다. 그리고 익숙함을 무기 삼아 우리에게 다가와서는 묻는다. 

"우리는 이렇게 즐겁고 행복한데, 너도 그렇지?"
그들은 가장 익숙한 공간에서 즐거워하고, 우리는 그들을 지켜본다. 그러면서 삶의 고단함과 절박함을 잠시 잊는다. 
익숙한 공간이 재현되며 이전보다 더욱 주체가 되어 함께 그 즐거움에 동참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러한 대리만족은 오래가지 않는다. 곧 누구에게도 대리시킬 수 없는 허탈함이 찾아온다. 특히 자신을 둘러싼 사회구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남들처럼 즐거울 수 없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
고 여기게 된다. 
일상을 특별하게 재현한 지금의 먹방은 보는 이들 더욱 외롭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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