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 신화 열린책들 세계문학 255
알베르 카뮈 지음, 박언주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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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에서 읽어보라고 나와 부랴부랴 검색하여 읽게 된 신비한 책ㅎ(진짜다!) .. .어려워 보였지만 열린책들 이번 번역 매끄럽고 술술 읽혔다. 시지프 신화가 뭐야? 찾아보니 시시포스가 굴러떨어지기를 반복하는 돌땡이를 계속계속 산으로 밀어올리고 있다,,, 이거이거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삶에 지친 나의 모습이잖아? 내가 왜 여기 지구에서 이러고 살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구...  그래서 내 잠재의식이 니 얘기니까 읽어보라고 꿈에서 추천한건가 ??


1. 부조리의 추론 


우리가 삶이 요구하는 행위들을 반복하는 데는 수많은 이유가 있지만 첫번째 이유가 습관이다. 자발적으로 자살을 선택한다는 것은 습관의 하찮음, 잃어버린 고향의 기억이나 약속의 땅에 대한 희망이 박탈 된 상태로 연극배우와 그 무대의 단절, 낯섦 속에 생기는 부조리의 감정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는 것을 전제한다. "부조리한 인간"이란 '부조리를 의식하며 살아가는 인간', 즉 '깨어있는 의식을 가진 인간'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나 자신에게 영원한 이방인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부조리를 <의식> 하는 인간이 "희망"-일정한 <자격을 갖추어야>얻을 수 있다는 내세에 대한 희망이나 "자살"을 선택하는 것은 어떠한가.

카뮈는 '부조리'는 본질적으로 어떤 "분리"로서, 인간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세계속에도 없는 그 둘의 대면에서 사이에 태어난 것이라고 했다 .  그러므로 스스로를 부정하는 도피는 강요된 희망, 곧 신을 말하며, 이는 인간의 이성을 부정할 때 존재하는 신이다 . 카뮈가 생각하는 '부조리'란 자신의 한계를 확인하는 명철한 이성이기에  ,

하이데거, 야스퍼스, 키에르케고르 같은 실존주의자나 , 후설 같은 현상학자가 공통적으로 인식한 이러한 '희망'은 철학적 자살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이것은 삶에 대한 회피일 뿐, 카뮈의 관심사는 철학적 자살이 아니라 그냥 자살이다. 자살의 논리와 그 정직함을 알아보는 것 뿐이다.


나는 부조리로부터 나의 반항, 나의 자유, 나의 열정이라는 세가지 결론을 이끌어낸다. 의식의 유일한 게임을 통해 나는 죽음으로의 초대를 삶의 원칙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리고 나는 자살을 거부한다. 


2. 부조리한 인간


카뮈는 부조리한 인간이 인정할 수 있는 도덕은, 신과 자신이 분리되지 않는 도덕, 즉 스스로 부과하는 도덕이라고 했다. 그것은 인간이 무죄라는 원칙에서 출발한다.  개인을 만신창이로 만드는 것은 세계이고 해방시키는 것은 나다. 인간은 자신의 목적이다. 그것도 유일한 목적이다. 그가 무엇인가 되고자 한다면, 그것은 이 삶 속에서의 염원이다 .

카뮈가 말하는 정복은, 한계를 정하지 않고 분리를 해소하고 내면의 향수에 합의를 추구하며,<자신을 극복하는 것>이다.

 부조리를 의식하는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능한 태도들 중 하나는 바로 창조이다. 우리는 자신의 무상성을 지속적으로 의식하며 자신을 극복하는 창조적 태도를 <선택> 할 수있다. 가장 열정적인 부조리 인간은 예술가이다. 니체는 말한다 <예술, 오로지, 예술, 우리는 결코 진리 때문에 죽지 않으려고 예술을 보유하고 있다 >


 정복자, 배우, 돈후안은  자신의 운명에 동의하는 깨어있는 의식, 반항을 통해 위대한 가치를 얻게되는 그 삶에 만족하게 될 것이다 . 여기서 반항은 창조를 말하는 것 같다. 시간에 묶인 채 유배되어있지만 찰나의 행복한 순간이 있고,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죽음에 도전하고 죽음을 경멸할 자유 , 의식을 통해 삶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갈 자유가 시지프(우리 인간)에게 있는 것이다.


3. 부조리한 창조


도스토옙스키 소설에서 제기되는 문제들,  "삶은 거짓이거나, 아니면 영원하다". 

그가 이러한 성찰에만 그쳤다면 철학자였을테지만 ,이러한 정신의 유희가 인간의 삶 속에서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결과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그는 예술가다 . 


<악령>의 키릴로프는 논리적 자살의 신봉자다. 하지만 그는 <네가 이것을 느낄 수 있다면 너는 황제이다. 너는 자살은 커녕 최고의 영광 속에서 살아가게 될것이다> 라며 구지 인간이 인신임을 깨우쳐주기위해 자살까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가장 힘든 길을 택하며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교육적 의미로, 자살을 해야하는 것이다.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에서 알료샤는 <다시 만나게 될거야>라며 영원한 삶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악령>의 질문에 화답하는 것이다. 이렇듯 도스토옙스키가 키릴로프를 통해 제시한 해답은 실제로는 이러하다.  <존재는 거짓이다. 그리고 그것은 영원하다>


카뮈가 <시지프 신화>를 통해 말하려는 결론 : 행복과 부조리는 같은 땅의 두 아들이다.

그림자 없는 태양은 없는 법이기에 어둠이 무엇인지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부조리한 인간은 자신이 자기 삶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고 , 인간이 자기 삶을 향해 되돌아가는 미묘한 순간, 그 연결되지 않는 일련의 행위들을 조용히 바라본다. 그 행위들은 그의 운명이 된다. 인생은 시지프 자신이 만들어 냈고 자기 기억의 시선 아래 통합되어 곧 그의 죽음에 의해 봉인될 운명이다. 시지프는 신을 부정하고 바위를 들어올리는 우월한 성실함을 가르쳐 준다. 그는 모든게 다 잘됐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신성하다.  이제부터 행복한 시지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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