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가지 이야기 - 1992년 제3회 아유카와 데쓰야 상 수상작
가노 도모코 지음, 박정임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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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그런 질문을 들은 적이 있어요. 인생의 책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그 질문에 저는 뭔가 고민을 하다가 몇 권을 이야기했었습니다. 정말이지 나름, 내 인생의 책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책들이었습니다. 그 질문을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혼자 있을 때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모든 사람에게 인생의 책이 존재하진 않을 거야. 하지만 나처럼 그런 책이 존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책이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참 반가울 것 같아. 또 얼마의 시간이 지나 저는 우연히 저와 같은 사람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건 전혀 다른 이야기로 다음 기회로 넘기기로 하죠.

 

 

 

내 인생의 책을 찾는 특별한 펜팔

가노 도모코의 일곱 가지 이야기

 

 

 

사에키 아야노 님에게.

대체 언제부터 의문을 갖지 않게 되었을까요? 언제부터 주어진 것에 납득하고, 상황에 납득하고, 여러 가지 모든 것에 납득하게 되어 버린 걸까요?

언제고 어디서고 수수께끼는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스핑크스의 심원한 수수께끼 같은 것이 아니더라도, 예컨대 사과는 왜 떨어지는지 까마귀는 왜 우는지 같은, 사소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수수께끼는 일상에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대답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p.6)

 

 

주인공 여대생은 우연히 한 소설을 읽고는, 그 소설에 반합니다. 이 소설의 작가와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는 편지를 보내게 돼요.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첫 눈에 반한 사랑이야길 합니다. 다들 아시나 모르겠어요. 사람이 아니라, 책에도 첫 눈에 반한 사랑이란 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는 천천히 책을 뒤집어 가격을 확인했다.

그래, 이 정도라면 내 빈약한 지갑으로도 감당할 수 있겠어, 그렇게 판단하고 계산대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원래 충동구매는 좀처럼 하지 않는다. 대체로 서점에서 사는 책은 문고본이며, 비싼 하드커버 책은 도서관에서 빌리거나 헌 책방에서 사는 것이 나의 상식이다. 그런데 일곱 가지 이야기만은 어떡해서든 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이 책에 한눈에 반해버린 모양이다.

말 그대로 첫눈에 반한 사랑이다.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청말 줏대 없이 많은 책들을 사랑해왔다. 그 사랑하는 마음에 거짓은 없었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점점 책을 읽는 자신이 싫어졌다. 늘 자신의 나이에 소화하기 힘든 책을 끌어안고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읽어나가는 나. 거기에는 얄팍한 자기만족이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혐오감이 들기 시작한 탓인지 단기대학에 입학한 후로는 오히려 독서량이 줄었다. ‘책을 읽기 위해 읽는짓을 완전히 그만두었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독서가 즐거워졌다. (p.26)

 

 

이 부분까지 읽고 나자 저는, 여대생처럼 이 책의 표지를 다시 한 번 보고, 가격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쩜 나랑 이렇듯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는지……새삼 작가에게 궁금증을 갖게 되었달까요. 그래서 제대로 확인한 작가의 약력을 보고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습니다.

 

오래 알고 지낸 이웃님들은 아시겠지만서도, 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꽤 좋아합니다. 사실 꽤보다는 아주 많이 좋아한다는 편이 맞을 겁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관련된 주석이라던가 그 관련 이야기들을 샅샅이 뒤져본다거나, 재작년 일본에 갔을 때에는 진보초의 한 고서점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삽화와 관련된 오래된 영어권 책을 찾아내서는, 한참 내용을 들여다보다가 당신 뭐하는 사람이냐. 동업자냐. 왜 그렇게 자세히 보냐소리를 듣고는 , 죄송합니다. 그냥 한국에서 온 관광객인데요.”라고 변명을 했다던가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저 말에 기분이 좀 상해 책은 안 사고 돌아왔었던). 그런데 지금 보니 이 가노 도모코가 예전에 제가 무척 재미나게 읽었던 나선 계단의 앨리스무지개집의 앨리스의 작가가 아닙니까. 이 두 작품은 앨리스충을 행복하게 해주기에 충분한 소설이었습니다. 앨리스를 충분히 드러내면서도 작가만의 현대적인 감각을 살린 대단한 작품이었죠. 저는 이 소설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예전 블로그에서 개인적으로 이벤트를 열었었습니다. 이제는 거의 절판이다시피 한 이 책을 이벤트로 뿌렸죠. 그런 일도 있었고 하니 "어머, 이 작가였단 말이야?" 하고는 계속 책을 읽어나갈 수 밖에 없었단 말씀.

 

출퇴근하며 하루에 한 꼭지씩 읽어나간 이 연작소설은 참 좋았습니다. 중간에 보다가 요즘 다정하게 대해주시는 한 분께 선물로 보내드리기도 했어요. 펜팔 이야기니까 펜팔하는 분께 보내드려야지 하고는. 나중에 이 책을 모두 읽은 후에, 이분이 농담으로 던진 댓글을 진담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진지해지기도 했었죠. 여러 이유가 있었는데, 이 책 자체에도 이유가 있었답니다. 그 이유는 이 책의 후반부에 밝혀지니 비밀로 하고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서.

가노 도모코의 일곱 가지 이야기는 그 제목처럼 일곱 가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수박쥬스에서 시작돼요. 어느 날 아침, 점점이 이어진 수박쥬스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여대생은 이 의문을 품고 작가에게 편지를 씁니다. 큰 기대를 한 건 아니었건만, 추리소설가는 그에 대해 나름 확실한 답변을 줍니다. “, 이게 정말 정답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추리죠.

 

저는 그걸 보며 그건 사실이 아닐지도 몰라.”라고 피식 웃었습니다. 저도 추리소설을 써서 아는데 말이죠, 현실과 허구는 많이 다릅니다. 추리소설을 쓴다고 해서 평소에 추리를 하고 살지는 않아요. 그냥, 삽니다. 그러다가 뭔가 너무도 말도 안 되는 우연의 일치가 단시간 안에 거듭해서 일어난다, 무의식중에 추리를 하게 되죠.

최근에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났었더랬습니다. 많은 우연이 한꺼번에 일어난 까닭에 저는 한 시간을 넘게 뭐지?” “이게 뭐지?”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하다가 결국 펑! 자멸했었죠. 흐흐. 그래서 저는 이 소설을 보며, 저 추리는 틀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피식피식 웃었습니다.

 

작가 역시 그런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가노 도모코는 현명하게도작가가 추리를 해서 편지를 보내기는 했지만서도 그 뒤를 확인하지는 않았다만이라는 태도를 견지합니다. 여대생이 바로 그 역할을 맡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어요, 어떻게 생각해요? 라고 편지를 보낸 후 답장을 받습니다만, 여대생은 그 편지의 내용을 확인하진 않는 거죠. 이게 바로, 이 소설의 미덕입니다. 다른 추리소설과의 차별점입니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아마도 상을 탔던 겁니다. 3회 아유카와 데쓰카 상.

 

지나치게 새로운 글은 등한시 됩니다. 너무 타인과 비슷한 글을 써서도 안 됩니다. 작가에게 소설이란, 헌 것과 새로운 것 사이의 중간점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이 중간점이란 것은 하나의 일직선 사이의 중간점이 아니라 입체적 공간의 어느 점입니다. 꼭지점이 되긴 하나 누군가의 시점에서 딱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어떤 것이 바로, 이야기의 핵심이 것이죠.

이 소설, 일곱 가지 이야기는 그런 점에서 상당한 소설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가노 도모코만이 쓸 수 있는, 가노 도모코만이 가진 독특한 색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걸작이었죠.

 

 

 

추신.

(선략)

그 이후 어떻게 지내시나요?

빨강머리 앤을 흉내내자면, 오늘은 내 생애 최고의 날’, 또는 최고의 놀라움으로 가득한 날이었습니다. 소포를 받고 내용물을 본 순간, 나는 숨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말해두지만, 이건 조금도 과장된 표현이 아닙니다. 정말 지금까지도 호흡이 괴로울 정도입니다. (p.287)

 

리뷰 원문 보기 http://blog.naver.com/cameraian_2/220691915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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