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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사, 동아시아를 잇다 ㅣ 영조 시대의 조선 6
김현영 지음 /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 / 2013년 10월
평점 :
140회 나오키상을 수상한 소설 『리큐에게 물어라』는 참으로 독특한 소재와 구성을 사용했습니다. 역순 구성을 통해 리큐의 생애를 거꾸로 짚었었는데요, 후에 영화화 되어 클라라가 출연하기도 했었습니다.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은 챕터가 있습니다. 소제목 하여, '조선관백'. 리큐는 이 챕터에서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 풍경을 이야기합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당시 일본에 왔던 조선통신사 일행 중 황윤길과 김성일을 가지고 논 이야기입니다. 저는 예전에 이 부분을 보며 "지나치게 조선통신사를 하대한 것처럼 표현하지는 않았나?"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자, 소설 속 조선통신사를 살펴보죠.
상에는 특징 없는 흑칠 그릇을 놓고 그 위애 구운 찰떡을 다섯 개 얹었다. 그뿐이었다. 그 곁에 질그릇 술잔을 하나, 젓가락은 놓지 않았다.
"그래, 이것만 내라."
요리사는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떡을 손으로 집어 먹으라니 국빈에게 너무 무례한 것 아닙니까."
"그래. 향응하려는 것이 아니야. 복속시키기 위한 음식이다. 감옥에 갇힌 기분을 맛보게 하는 것이지."
요리사는 신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연회의 중대한 의미를 겨우 깨달은 모양이었다.
여자들이 상을 들여왔다. 돌아다니며 작은 병에 담긴 탁주를 따라주는 사람은 이시다 미쓰나리였다. 두번째 잔은 리큐가 따랐다.
당연히 히데요시와 잔을 주고받을 줄 알았던 통신사들은 놀라고 당혹한 듯했다. 막대기를 삼킨 얼굴로, 그래도 유교의 예법대로 손으로 잔을 가리며 술을 마셨다.
히데요시는 술을 다 마시기도 전에 안으로 들어갔다가 비단 고소데와 하오리로 갈아입고 나타났다.
품에 간난아기를 안고 있었다. 작년에 태어난 쓰루마쓰다.
"이애가 일본의 다음 왕이라고 가르쳐줘라."
만면에 미소를 띤 히데요시의 말을 통사가 조선말로 옮겼다. 히데요시는 통신사들뿐 아니라 그 자리에 열석한 다이묘들과 조신들에게도 쓰루마쓰를 보여주며 돌아다녔다.
물론 조선인들이 불쾌해할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예를 중시하는 조선에서는 몸을 굽히고 손을 맞대고 배례하며 수작한다고 들었다. 음식 가짓수가 많고 술잔을 주고받는 횟수가 많을수록 환대의 의미가 커진다.
예우받지 못하면 조선인은 어떻게 느낄 것인가.
실제로 쓰시마에서 이미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교에까지 전해졌다.
통신사 일행을 산사에 초대해 연회를 열었을 때, 도주 요시토시가 가마에 탄 채로 산문을 지나왔다. 부사 김성일은 그것만으로 무례하다고 격노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고 했다. 소 요시토시는 가마꾼의 목을 베어 사죄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진정되지 않을 만큼 격양했던 모양이었다.
쓰루마쓰를 안은 채 툇마루로 나간 히데요시는 정원에서 대기하던 조선 악사들을 손짓으로 불러 모았다.
"연주해라."
손짓으로 지시하자 악사들이 나팔을 불었다.
쓰루마쓰가 오줌을 쌌다. 히데요시는 소란을 떨며 여자를 불러 쓰루마쓰를 건네고 자신은 또 안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황윤길과 김성일은 내내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리큐의 계획대로였다. pp. 209~211
와, 좀 심하죠? 조선통신사라고 하면 왕의 사절단인데, 일본에 가서 천황이 아니라 쇼군이 영접을 했다, 게다가 쇼군이 직접 잔조차 주지 않았다는 건 굉장히 무례한 행동입니다. 저는 이런 일이 정말 가능했을까, 이건 혹시 적당한 픽션이 가미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 책을 보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통신사, 동아시아를 잇다』 영조시대, 동아시아의 조선을 바로 보다
『통신사, 동아시아를 잇다』에 보면 조선통신사의 ‘인식 차이’에 대한 부분이 비교적 책의 앞부분에 등장합니다.
관백이 새로 서면 반드시 우리나라에 사신을 보내줄 것을 청하는데, 사신이 그 나라에 도착하게 되면 여러 섬에 내려 보내는 때문에 “조선에서 조공을 바치러 들어온다.”고 하기에 국가가 욕을 보는 것이 막심하였다. 그러나 사명을 받들고 간 사람은 번번이 일이 생길까 두려워서 그대로 두고 못들은 체하기 일쑤였다. p.27
아, 정말 이랬네? 좀 놀랍니다. 하지만 뒤쪽에는 더 심한 일례도 있네요.
사배례를 행한 것에 대하여 조엄은 “사배례가 어느 때에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실로 한심하였다.”고 분노하였다.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 예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상 사배례는 복종을 서약하는 조공의 의식이고 일본과 조선이 항례를 한다면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형식적이긴 하지만 일본의 최고위에는 천황이 있고 쇼군은 그 임명을 받는 자의 입장이었다. 사신들은 ‘군주도 아니고 신하도 아닌’ 쇼군의 지위에 대하여 혼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고 양측의 전례에 혼란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양국의 정치적 형식에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pp.55~56
이런 식으로 이 책은 조선통신사에 대한 의식 차이를 이야기해줍니다. 물론, 『리큐에게 물어라』의 챕터 ‘조선관백’의 경우엔, 그 시대적 배경이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인 선조 시대이고, 이 책 『통신사, 동아시아를 잇다』는 영조시대 무진통신사, 계미통신사의 이야기로 시기적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이라던가, 또 임진왜란을 끼고 미묘하게 변한 양국의 갈등을 보는 재미가 있네요.
그밖에도 일본의 당시 선진문명(오랑캐가 이렇게 잘 살다니! 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크크)이라던가, 깔끔한 음식 등에 대한 칭찬도 잇따릅니다. 특히 재미났던 것은 에도의 전경 묘사인데요, 우리가 일본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보는 “이건 피라미드만큼 신기해”라고 생각하게 되는 자로 잰 듯한 사각형 구획 구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또 에도에서 아무렇지 않게 사치하는 모습도 나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을 겪은 후라서, 또 영조 자체가 워낙에 사치를 좋아하지 않다 보니 꽤나 깔끔한 이미지였는데, 일본은 화려해서 놀라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는 모습이 즐겁습니다.
전반부가 이렇듯 조선통신사에 대한 이야기라면 후반부는 북학파의 이야기입니다. 학교에 다닐 때에 지치도록 외웠던 반청북벌이니, 박제가니, 백탑파니 하는 이야기를 보자니 빙그레 미소가 지어집니다. 또 이 내용을 이야기하자면 빼놓을 수 없는 소설이 있죠. 바로 김탁환의 백탑파 시리즈입니다……!
『방각본 살인사건』 『열녀문의 비밀』 『열화광인』이 모두 최근 전자책으로 나왔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습죠. (후후) 이 소설을 읽은 분들이라면 아마도, 이 책 『통신사, 동아시아를 잇다』의 후반부가 전혀 다르게 와닿지 않으실는지 싶네요.
사진과 함께 보는 리뷰 : http://cameraian.blog.me/150190541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