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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 제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글을 썼다는 이야기를 적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다섯 살때인가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던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저 같은 사람이 또 있었더군요. 때문에 모른 체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이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제목부터가... ...
『나는 왜 쓰는가』
구구절절한 조지 오웰의 변명을 듣다.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쓰는 이유를 늘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글을 쓰는 이유라는 것은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언제나 궁핍하기 짝이 없어 결국 한 마디로 대신하게 됩니다.
“응, 어쩌다 보니.”
참으로 편한 표현입니다. “어쩌다 보니”를 깊이 파고들면 정말 많은 이야기가 함축되어 있지만요. 이 조지 오웰의 에세이 집에 수록되었으며 표제작이기도 한 「나는 왜 쓰는가」에서는 그 이유를 네 가지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으로 구분합니다. 구분할 이유가 딱히 없긴 하지만 일단은 구분을 해줍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아마도 대여섯 살 때부터 나는 내가 커서 작가가 되리란 걸 알고 있었다. (p.289)
나는 7년 동안 소설을 쓰지 않았는데, 이제는 조만간 또 하나의 소설을 쓰고 싶다. 그것은 실패작이 될 게 뻔하고, 사실 모든 책은 실패작이다. 단, 나는 내가 어떤 종류의 책을 쓰고 싶어 하는지 꽤 분명히 알고 있다. (p.300)
~모든 작가는 허영심이 많고 이기적이고 게으르며, 글 쓰는 동기의 맨 밑바닥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책을 쓴다는 건 고통스러운 병을 오래 앓는 것처럼 끔찍하고 힘겨운 싸움이다. 거역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귀신에게 끌려다니지 않는 한 절대 할 수 없는 작업이다. 아마 그 귀신은 아기가 관심을 가져달라고 하면 마구 울어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본능일 것이다.~ (p.300)
그밖에도 조지 오웰은 책 전반에 걸쳐 자신이 글을 쓰기까지의 과정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줍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조지 오웰 자신의 식민지 경찰 시절을 속죄하듯 부랑자 시설에 들어갔던 이야기를, 두 번째 에피소드는 자신이 직접 목격한 교수형 장면을, 세 번째 에피소드는 자신이 죽인 코끼리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언젠가의 고서점 아르바이트에 정치적 이야기에... ... 끊임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습니다. 그 이야기 하나하나가 참으로 매력적으로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특히 재미난 에피소드는 조지 오웰의 다른 직업 중 하나였던 ‘서평가’ 이야기입니다.
그 중에 세 권은 그로서는 전혀 무지한 분야라서 적어도 50페이지는 읽어봐야 한다. 그래야 저자뿐만 아니라(물론 저자는 서평자의 습성을 훤히 알고 있다) 일반 독자에게까지 자신을 다 드러내 보이는 황당한 실수를 피할 수 있다. 오후 4시가 되면 그는 책을 소포 꾸러미 밖으로 내놓긴 하겠지만 여전히 펼쳐볼 용기는 나지 않아 애를 먹고 이을 것이다. 그것들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만 해도, 심지어 종이 냄새만 맡아도, 아주까리기름친 차가운 쌀 푸딩을 먹어야 하는 기분이다. 그런데도 그의 원고는 자못 신기하게도 제때 편집자의 책상에 도착할 것이다. 어떻게든 항상 정시까지는 도착할 것이다. 저녁 9시쯤 되면 정신이 비교적 맑아지기 시작할 것이고, 오밤중이 되도록 방에 앉아(점점 추워지고 담배 연기는 점점 자욱해진다) 능숙한 솜씨로 책을 한 권씩 훑은 다음 하나를 내려놓을 때마다 ‘이걸 책이라고!’ 소리를 덧붙일 것이다. (pp.284~5)
아마도 이 부분에서 서평을 쓰는 많은 이웃님들이 고개를 끄덕이실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그러했으니까요. 그렇다면 자, 이제 한 가지 질문을 드리죠.
과연 제가 이 책의 몇 장이나 넘기고 나서 이 서평을 썼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