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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 시오리코 씨와 기묘한 손님들 ㅣ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1부 1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3년 2월
평점 :
다사다난, 책과 관련된 사건은 언제나 끊이지 않습니다. 어머니께서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기 위하여 무작정 박스를 뜯어버렸는데 내가 산 책이 아니어서 “도대체 누가 보냈지!” 당황하는 일이라던가, 주소를 잘못 적는 바람에 다른 사람한테 가야 할 책이 나한테 온 경우, 혹은 있는 책을 또 샀거나 말 그대로 배달사고까지 참 별 일이 다 있습니다. 때문에 다사다난이 아니라 다서다난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입니다. 이 책 역시 다서다난 중 하나였습니다. 살 계획도 저한테 올 계획도 없는데 갑자기 와버렸습니다. 아는 이에게 갈 책이었는데 잘못 왔네요. 그이에게 연락하여 “어떻게 하지. 나한테 책이 왔네.” 서로 이야기하며 웃고는 제가 먼저 읽고 택배로 다시 보내주기로 하기는 했습니다.
수줍은 미녀가 어설픈 휘파람을 부는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 시오리코 씨와 기묘한 손님들』
작년 11월에 친구들과 함께 인천에 다녀왔습니다. 어떤 곳으로 어떻게 돌아다닐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그저 카메라를 들고 룰루랄라 갔다가 헌책방 거리에 들렀습니다. 천장까지 닿은 수많은 책들과 퀴퀴한 냄새, 책에 대한 수많은 대화가 그저 즐겁더군요. 또 우연히 발견한 좋아하는 책과 그 책 위에 적힌 ‘3’이라는 글자는 어쩌면 그리 신비하던지!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 나오는 암호문보다 훨씬 더 반갑고 즐거웠습니다. (알고보니 그저 가격에 불과했지만. 3은 삼천원 2는 이천원.) 때문에 많은 추리소설가들은 자신의 작품 속에 고서점이나 책사냥꾼을 등장시키거나, 아예 그곳을 배경으로 하는 안락의자탐정을 내세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 시오리코 씨와 기묘한 손님들』(이하 『비블리아~』로 통일)처럼 말이에요.
여기, 작은 고서당이 있습니다. 딱히 의욕이 없어 보이는 고서당입니다. 별로 드나드는 사람도 없고요. 헌데 이 고서당의 주인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남자라면 한 번쯤 로망(!)을 꿈꾸는 검은 긴 머리에 가슴 큰 미녀 시노카와 상, 시노카와 상이 안경을 손가락으로 치켜 올리며 책장을 넘기며 작은 입으로 되지도 않는 휘파람을 불거나, 평소엔 말을 더듬거나 작은 소리로 겨우 말하면서 좋아하는 책 이야기를 할 때면 흥분해서 청산유수 말을 내뱉을 때면, 절로 가슴이 뜁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시노카와 상은 또 다른 매력 포인트가 있습니다. 바로 놀라운 통찰력! 시노카와 상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하여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마치 책 이야기를 할 때처럼 청산유수로 진실을 꿰뚫습니다. 이 책 『비블리아~』는 그 시노카와 상의 이야기입니다.
도움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우리가 서로에게 필요한 사이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달짝지근하지만 가슴을 저미는 말 아니더냐?
p.164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시노카와 상은 나쓰메 소세키의 책에 얽힌 수수께끼를 풉니다. 이 수수께끼를 가져온 남자 다이스케는 묘한 사연이 있습니다. 바로 책을 읽지 못하는데 책을 좋아한다는 사연인데, 그 사연이 나쓰메 소세키의 책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에피소드의 제목으로 등장하는 책과 꼭 닮은 이야기입니다. 마치 그 이야기 속 줄거리에 등장하는 듯한 인물들이 나타나서는 나는 현실 속의 사람이지만 늘 책의 꿈을 꾸고 있소 하고 속삭이듯 자신의 사연을 들려줍니다. 한데 이것 참, 왜 저에겐 그 사연이 거짓말처럼 귀엽고 아름답게만 들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사연 역시 귀엽습니다. 하지만 이 에피소드는 한 인물이 “왜 지금 이렇게 살아가는가?”를 삼단논법으로 구성하기에 귀엽습니다. 소중한 책은 언제 어떻게 되더라도 늘 소중하다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해답을 제시한달까요. 네 번째 에피소드는 설명이 필요 없는 일본의 문호 다자이 오사무를 이야기합니다. 그의 우울한 삶처럼 우울한 이야기, 사연, 조금은 위험한 에피소드가 그간의 가벼웠던 사건들의 무게를 살짜쿵 내려놓습니다. 너무 무겁지 않게 그렇다고 해서 너무 가볍지도 않게 다지아 오사무의 ‘언컷’ 초판을 감싸 안는 조심스런 손놀림으로 하늘하늘 바닥에 이야기를 내려놓고 빙그레 미소 짓습니다. 되도 않는 휘파람으로 덧붙입니다. “이것으로 부족한 분들을 위해 별책부록 겸 에필로그를 준비했어요.”
지난 삼 주 동안 여러 책들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오래된 책을 좋아하고, 책에 대해 말하는 걸 좋아한다는 점 말고는 그녀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사카구치 마사시처럼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격일까.
그래도 상관없다.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즐거우니까. (p.225)
섬세하고 귀여운 이야기로 가득찬 『비블리아~』는 아주 가볍게 이야기를 끝마칩니다. 다소 허전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다음 편, 또 다음 편이 있다고 하니 일단은 기대하기로 합니다. 앞으로의 전개가 기대되는 결말로 끝이 났으니까요. 또 이야기 속 등장하는 캐릭터 하나하나가 매우 매력적이라서 이 인물들이 어떻게 이야기를 끌어나갈지, 책 속에서 책을 닮은 이야기를 어찌 풀이할지 무척이나 기대됩니다.
아, 무엇보다 시노카와 상이 휘파람을 잘 불게 될지가 너무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