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공항에서 - 개정판
무라카미 류 지음, 정윤아 옮김 / 문학수첩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제가 자주 쓰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어디? 여긴 누구?” 바로 만화이자 애니메이션 시리즈 ‘개구리중사 케로로’의 케로로가 나츠미의 외할머니 놀라갔다가 산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한 대사인데요, 저는 이 대사를 본 이후 “나는 누구? 여긴 어디?”가 아니라 “나는 어디? 여긴 누구?”라고 읊었다는 데서 감탄하여 그 이후 이 대사를 자주 따라합니다. 이 대사에 감탄한 이유는 미묘한 어감차이로 인한 웃음과 그 대사 자체가 가진 의미입니다. 사람들은 혼란을 겪거나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모를 때에 “나는 누구? 여긴 어디?”라고 말하는데 “나는 어디? 여긴 누구?”라니, 극심한 혼란을 겪을 때 할 수 있는 대사가 아니겠습니까? 또 우리가 어디에 있고 여기서 누구를 만나는가, 그것으로 인하여 우리는 혼란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요.
그래, 연애가 마지막 희망이다 : 무라카미 류의 『공항에서』
무라카미 류는 설명이 필요없는 일본을 대표하는 문학가입니다. 그의 수많은 작품들 중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아마도 『한없이 투명한 블루』일 것입니다. 처음 우리나라에 출간되었을 때에 원제가 워낙 야해서 이렇게 제목이 붙었었죠. (저는 이 책의 원제 덕에 ‘그 단어’의 뜻을 처음 알았습니다.) 무라카미 류는 이후로도 충격적인 작품을 여러 편 선보였습니다. 그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쓸 때 영감을 받았다는 『코인로커 베이비스』라던가 『69』 『초전도 나이트 클럽』 『오디션』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등이 있겠습니다. 무라카미 류는 이외에도 상당수의 에세이도 썼는데요, 저는 그 중 『그래 연애가 마지막 희망이다』를 무척 좋아합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제 연애관 및 인생관이 잡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궁금한 분들은 책을 찾아 읽어보시고.) 헌데 이 책을 읽다 보니 자꾸 『그래 연애가 마지막 희망이다』가 떠오르더군요.
소설연작집 『공항에서』는 ~에서라는 식으로 소제목을 붙여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이야기는 결코 이어지지 않지만 각기 이야기 속에서 몇 개의 열쇠key가 숨어 있습니다. 이 열쇠는 다른 이야기들과의 모종의 관계가 있음을 상징하기도 하고, 그 열쇠를 통해 공통되는 심상을 우리에게 전달하기도 합니다. 다가가면 사라지지만 뺨에 촉촉한 땀방울로 맺히고 마는 새벽안개처럼 느낌과 분위기가 이야기 전반에 가득합니다.
사람은 에너지가 완전히 바닥나면 무언가 자신을 지탱해 줄 것이 필요해. 뭐 어떤 거라도 상관없지. 지금에 와서 깨달은 거지만 정말로 믿을 만한 건 자기 자신의 생각밖에 없어. 다양한 곳에 가 보고, 음악도 실컷 듣고, 책을 열심히 읽지 않으면 나만의 생각은 손에 들어오지 않아. 그 셋 중에 내가 해 본 일이라곤 하나도 없잖아. 그렇다고 다시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어. (p.27)
첫 번째 에피소드 「편의점에서」는 모두가 엑스트라이고 상품이 주인공인 편의점에서 엑스트라 중 한 명인 누군가의 시선을 보여줍니다. 「술집에서」는 분명 무리에 섞여 술을 마시는데도 타인인 듯 한 발짝 물러난 시선을 보여주고, 「공원에서」는 반대로 모두에게 끼어들어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끼어들 수 없는 누군가를, 「노래방에서」는 결코 한 공간에 있을 수 없는 남녀가 한 공간에 ‘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존재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피로연장에서」 「크리스마스」 「역 앞에서」는 각기 한 여자의 시선을 통해 과거와 미래를 통한 선택의 순간을 보여주고 마지막 에피소드이자 표제작이기도 한 『공항에서』는 그리하여 미래를 선택하는 한 여자의 모습을 그립니다.
화가는 어떤 사람이에요?
하루 스무 시간 동안 그림을 그리고도 질리지 않는 인간이 화가야.
이 여덟 개의 에피소드는 모두 타인에게서 유리된 인간을 보입니다. 또 이 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합니다. 떠나고 싶어하는 곳도 떠나려는 사연도 모두 다릅니다만, 떠나고자 하는 마음만큼은 진실합니다. 그 사연들 중에는 우리가 떠나고자 하는 사연과 같은 것도 있을테고 반대로 결코 그런 이유로 떠나지는 않겠다는 이야기도 있겠습니다. 그 이야기들을 무라카미 류는 에세이를 쓰듯 무심한 손길로 더 이상 섬세할 수는 없을 것만 같은 조심스런 필치로 쓰다듬듯 이야기를 그려냅니다. 때문에 생각하고 맙니다. 아, 우리는 또 어디론가 떠나야만 하는 것인가. 지금도 우리는 어디론가 떠나고 있는 것인가. 우리가 지금 있는 이 ‘어디에 있다’는 곧 ‘어디에 있었다’로 바뀌겠지. 때문에 기대하고 맙니다. 만약 우리가 어디론가 떠난다면 그곳에는 보다 나은 무언가가 있었으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길을 걸어가더라도 마음 한 구석엔 언제나 사랑이라는 이름의 희망을 품고 꿈을 안은 채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class=__se_object id=__se_object_db136397272401217639 style="DISPLAY: block; WIDTH: 406px; HEIGHT: 122px" src="http://static.se2.naver.com/static/db_attach/iframe_template_for_se1_obj.html" frameBorder=0 noResize scrolling=no s_type="db" s_subtype="book" jsonvalue="%7B%22code%22%3A%227132212%22%2C%22genreCode%22%3A%22100%22%2C%22genreText%22%3A%22%EC%86%8C%EC%84%A4%22%2C%22id%22%3A%228983924683%22%2C%22mode%22%3A%22book%22%2C%22thumb%22%3A%22http%3A%2F%2Fbookthumb.phinf.naver.net%2Fcover%2F071%2F322%2F07132212.jpg%3Ftype%3Dw150%26udate%3D20130225%22%2C%22title%22%3A%22%EA%B3%B5%ED%95%AD%EC%97%90%EC%84%9C%22%2C%22type%22%3A1%7D" s_isempty="tr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