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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를 빌려드립니다
홍부용 지음 / 문화구창작동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초등학교 때, 누구나 짝꿍에게 연필 한 자루, 샤프 한 자루쯤 빌려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지우개는 반 토막을 내서 돌려준 적도 있을 텝니다. 허나 빌려주는 것은 좋으나 돌아왔을 때의 모습이 달라졌다면 어떨까요. 또 빌려줄 수 없는 물건인데 억지로 빌려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면?
이 책에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걸 빌려줬습니다.
말 그대로 ‘아빠’를 그만, 빌려줘버렸어요.
아무거나 빌려주면 큰일납니다?!
홍부용의 ‘아빠를 빌려드립니다’
한 남자가 있습니다. 대단한 대학을 나왔건만 회사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해 결국 백수가 되어버린 이름처럼 태만한 태만. 결혼하고 잘 해준다더니 마누라가 미장원을 운영해 버는 수입을 갖다 날름날름 용돈으로 써먹는, 그런 주제에 쇼핑호스트 강미연만 보면 침을 흘리는 나쁜 남편, 그런 주제에 딸네미하고도 잘 놀아주지 않는 나쁜 아빠, 태만. 이 태만에게 그만 큰일(?)이 생겨버렸습니다.
딸네미가 아빠를 친구에게 빌려 줘버린 겁니다.
“잠깐만요! 잠깐만!”
흥분한 태만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니까, 엘리펀트 데인지 뭔가 때문에 아빠를 오라 했다고?”
“선생님이 나에겐 쓸모없지만 다른 사람에겐 쓸모가 될 만한 물건을 가져오라고 하셨거든.”
아영이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태만은 머리가 빙빙 도는 것 같았다. 화내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쓸모없는 물건 취급하는 지수보다 쓸모없는 물건이라며 교환하겠다는 아영이 더 미웠다. 지지배. 도대체 아빠를 뭘로 보고. 태만은 아영을 째려보았다.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그때까지 태만과 아영 사이에서 눈치만 보던 담임이 끼어들었다.
“아영아, 아빠는 물건이 아니잖아.”
"하지만 엄마는 늘 아빠를 쓸모없는 물건이라고 하는 걸요.” (pp.16~7)
어린아이의 장난이라고 웃고 지나치면 좋을 일일텐데 이런! 문제가 생거버렸습니다. 태만의 딸, 아영과 같은 반 친구인 ‘진태’가 아영이의 아빠를 달라고 한 겁니다. 엥? 이게 무슨 상황?! 태만은 당황스러운데, 진태는 아빠가 없답니다. 아빠가 없으니 아빠가 갖고 싶은 거죠. 이런! 쓸모없는 물건의 교환이 제대로 이뤄졌어요! 처음엔 당황스럽습니다. 울컥 하고 진태에게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헌데 이게 왠 일입니까! 진태의 엄마가 태만이 넋을 놓고 보는 쇼핑호스트 강미연입니다! 아주 살판났습니다.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같은 딸네미가 있으면서도 예쁜 여자를 보자 침 질질, 다 좋답니다. 우와, 이래도 됩니까?!
“고맙습니다.”
미연이 태만 쪽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별말씀을, 말씀만 하십시오. 남자의 손길이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고쳐드리겠습니다.”
태만은 남자의 손길이라는 말에 유독 힘을 주며 말했다. (p.25)
물론 알콩달콩한 아빠놀이는 얼마 못 갔습니다. 바로 혼쭐이 났죠, 여우같은 마누라한테. 흐흐. 태만은 본래의 백수 아빠로 돌아옵니다. 헌데 응? 이상한 일이 생겼어요. 자꾸 전화가 와요. “아빠”를 찾는 전화가요. 도대체 무슨 일이지?! 하는데 인터넷에 이상한 글이 떴네요?
아빠를 빌려드립니다. 아빠의 손길이 필요하신 분. 형광등 갈기가 어렵거나, 못질을 못하거나, 아이들과 놀아줄 친구 같은 아빠가 필요하신 분.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p.55)
이게 왠 날벼락이랍니까! 아빠를 빌려주다뇨! 태만은 기가 막하셔 쳐다봅니다. (범인은 네 주변에 있다!) 헌데 화를 내는 것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태만은 이 사업(?)에 큰 흥미를 보입니다. 와, 세상에 아빠가 필요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아빠가 되어주는 것, 꽤 괜찮은 사업이에요! 보람도 있고!
“저, 부탁이 있는데... ...”
소연의 말에 태만이 살짝 긴장했다.
“부탁요?”
“네. 가끔 아빠를 빌려도 될까요?”
가슴 저 아래에서 묵직한 뭔가가 울컥 하고 올라왔다.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한 이 감정의 정체를 태만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기분은 좋았다. 자신을 찾는 사람이 있다니. 비로소 삶의 의미를 찾은 듯했다. 태만은 진심을 담아 대답했다.
“그럼요. 저도 아름이 같은 딸이 생겨서 든든합니다.” (p.107)
그리하여 태만은 본격적인 아빠 렌탈 사업을 시작합니다. 수많은 아빠가 필요한 사람들을 보며 서서히 ‘진정한 아빠’란 무엇일까, 우리 시대에 부성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생각합니다. 그 생각이 가슴을 울립니다. 저도 모르게 잠시 낮게 읊조려 봅니다. “아빠”라는 단어가 낯설어서 “아버지”라고... ...
아주 재미나게 읽어서 어떻게 서평을 써야지 했는데
마침 딱 맞춰서 재출간이 되었더군요.
하여 몇 자 읊조렸습니다.
이미 영화 판권이 팔렸다고 하니,
내년엔 스크린에서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