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밀란 쿤데라 전집 10
밀란 쿤데라 지음, 박성창 옮김 / 민음사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뜬 구름 잡는 이야기

L'ignorance

저는 김영하 씨의 소설 중에서 유독 '아랑은 왜'를 좋아합니다. 김영하 씨와의 사연은 워낙 깊은 관계로 아래의 링크를 참조하시고.

아랑은 왜  http://cameraian.blog.me/130091781032 

와 정말 어마어마하게 깊은 사연이죠? (너네들 안 읽으면 백퍼센트 후회하세요, 난 경고했다.)  물론 저런 사연 딱 하나 때문에 김영하 씨를, '아랑은 왜'를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이 책, 서두부터 끌렸습니다.

아랑은 나비가 되었다고 한다. 나비. 어떤 나비들은 아주 멀리 날아간다. 우리나라에도 서식하는 작은멋쟁이나비의 경우만 봐도, 봄에 북아프리카를 떠나 여름까지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아이슬란드에 도착하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대서양 연안을 따라 모리타니, 기니, 가봉, 콩고, 앙골라 등을 거쳐 희망봉까지 이동하는 것도 있다 한다. (후략) p. 7

보시다시피 소설은 나비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됩니다. 이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랑전설의 사전적 정의, 한국구전설화 등에서 모은 자료 등을 차근차근 보여줍니다. 밀란 쿤데라의 향수 역시 그렇습니다. 2장에서 향수에 대한 정의와 신화를 이야기합니다.

그리스어로 귀환은 '노스토스(nostos)'다 그리스어로 '알고스(algos)'는 괴로움을 뜻한다. 노스토스와 알고스의 합성어인 '노스탈지' 즉 향수란, 돌아가고자 하는 채워지지 않는 욕구에서 비롯된 괴로움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개념을 나타내기 위해 대다수의 유럽인들은 그리스어에 기원을 둔 단어(프랑스어의 '노스탈지(nostalgie)', 이태리어의 '노스탈지아(nostalgia)')나 민족어에 기원을 둔 다른 단어들(스페인어의 '아뇨란자(anoranza)'나 포르투갈어의 '사우다데(saudade)'등)을 쓴다. 각 언어에서 이 말들은 서로 다른 느낌을 지닌다. 대개 이 말들은 고향에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생긴 슬픔만을 의미할 뿐이다. 향수병. 고향병. 영어로 '홈식니스(homesickness)'나 독일어의 '하임베(Heimweh)' 또는 네덜란드어의 '하임베(heimwee)'는 모두 고향에 대한 향수로 생긴 병을 뜻한다 . (후략) p.10

연이어 밀란 쿤데라는 오디세이Odyssey를 이야기합니다. 오디세우스가 고향에 돌아오고 난 후 그가 겪었을 향수는 무엇인가, 돌아온 존재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넌지시 들려주며 이 이야기 속 등장할 남녀들이 각기 오디세우스와 칼립소, 페넬로페, 그리고 숨겨진 인물인 유모 유레클레이아와 같을 것이라 암시합니다. 오디세우스는 향수병에 걸리지 않은 귀환자요, 칼립소는 이국에서 오디세우스가 사랑했던 여자이고, 페넬로페는 고향에 두고 떠난 여인입니다. 그리고 유모 유레클레이아는 오디세우스가 귀환한 직후, 가장 먼저 그를 알아본 여인입니다. 밀란 쿤데라의 향수 속 인물들은 저들과 꼭 닮았습니다. a b c d 네 명의 인물, 망명, 귀환. 체제 안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인간들은 체제가 무너지며 선택을 하고 제각기 다른 미래를 가다... ... 서로를 다시 만났습니다. a는 딱히 귀환을 원치 않습니다. a가 갖는 향수는 고국이 아닌 현재 있는 '이곳'입니다. 사랑하는 여자가 죽은 '그곳'입니다. b는 어린 시절의 향수에 빠져 있습니다.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자신의 텅 빈 귀를 되새깁니다. c는 '이곳'에서 살아남은 인물입니다. 자신에게 돌아온-혹은 우연히 c의 손에 걸려든- 누군가를 탐욕스럽게 먹어치웁니다. 본래 자신의 것이었다는 듯 만들어버리고 마지막으로 d는... ...오디세우스를 알아보지만 오디세우스가 자신을 모른다는 사실에 상처받습니다. 이 모든 일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우리의 곁에서 언제든지 있을 수 있으며 동시에 있을 수 없는 이 모든 일들이 밀란 쿤데라의 소설 향수 속에서 동시에 일어납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손에 잡히지 않을 듯 무거운 그리움을 몸소 깨우치면서 동시에 도대체 이 이야기는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에게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지 막연히 느낍니다. 결코 한 마디로 정의되지 않을, 마치 뜬구름을 잡는 듯한 이 이야기... ... 이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모든 것들에 대한 기이한 향수L'ignorance일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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