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케이지 히메카와 레이코 형사 시리즈 2
혼다 테쓰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과 짐승을 구분짓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능입니까?

마음입니까?

저는 이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마음'이라고 말하겠습니다.


 

내 마음 속 새장에 당신을 가두었소

혼다 테쓰야의 소울 케이지

 

  

우리는 누구나 아주 사소한 잘못을 하며 살아갑니다. 때로는 밤잠을 설치며 고민을 하게 하기도 하고, 어쩔 때엔 아무렇지 않게 잊어버립니다. 저는 아직도 가끔 한 가지 잘못을 떠올립니다. 군대에 간 누군가의 전화를 받았더랬습니다. 아주 친한 사람이었습니다. 만나자고 했는데 저는 너무 바빴습니다. 때문에 제대로 통화도 안 하고 되는대로 말했습니다.

 

"들어가야 한다, 꼭. 알았지?"

"응, 걱정 마. 이번엔 안 그래."

 

그 사람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탈영했습니다. 저는 이후 그 사람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죽었거든요. 저는 이때의 전화가 죄책감으로 남았더랬습니다. 만약 내가 저 때에 전화를 받고, 만났다면, 사정을 듣고 다독였다면 그 사람은 지금도 잘 살고 있지 않았을까. 지금도 내 곁에서 아주 즐겁게, 아마도 결혼을 하여 아이도 낳고, 나는 돌잔치도 가고... ... 또 이런 상상도 합니다. 안 죽었어. 이 사람, 안 죽었어. 거짓말이야. 몰래카메라야. 내가 기억력이 나쁘니까, 뭔가 또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면 참, 기쁩니다. 행복합니다.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눈물이 나면서도 잠시나마 기쁩니다.  저 말고도 이때의 그를 알았던 사람들은 다들 비슷한 생각을 했더군요. 다들, 이런 식으로 스스로의 마음 속에 그를 늘 떠올리고 있었더랬습니다.

 

"그 때, 내가 받아줬어야 했어." 라고.

  

 

사람들 틈에서 놓치지 않으려고 내 손을 꽉 잡은 손의 감촉. 무엇이 좋을지 메뉴를 내밀며 주고받던 눈길. '맛있네', '맛있어요' 하고 같은 음식을 맛보는 기쁨. 놀이공원에서 순서를 기다리던 지루함. 동물의 탈을 뒤집어쓴 사람과 찍은 기념사진. 전철 안의 잠든 얼굴. 등에서 느껴지는 묵직함. 어깨 너머로 들려오는 잠꼬대. 아빠!

가슴이 떨렸다. 나는 삶의 기쁨을 되찾았다.

이 아이에게 무엇을 더 해주면 좋을까.

날마다 행복한 고민을 했다.

돈 말고 더욱 소중한 것이 없을까. 어릴 때 내가 가지지 못했던 것 중에서 잊어버리고 살았던 무엇인가가 없을까.

삭막한 묘지처럼 보이던 회색빛 도시가 점차 색채를 띠기 시작했다.

하루라는 시간이 소중했다. 일주일이라는 단위가 그저 7일이 아닌 그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휴일도 빈둥대며 보내지 않았다. 한 주를 마무리하며 포상을 주고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한다는 명확한 구분을 지었다.

여름 더위에도 웃고 겨울 추위에도 웃었다. 자신이 새로운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는 사실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사람은 벌만 받고는 살아가지 못한다. 용서받지 못할 죄만 안고 앞을 내딛는 데는 한계가 왔다.

나는 깨달았다. 아니, 기억을 끄집어냈다.

나에게 누군가가 의지하는 기쁨을, 나를 필요로 해주는 충실감을 온 몸으로 느꼈다.

더 이상 실패는 하고 싶지 않았다. 이 아이를 지키자. 이 아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해주자. 돈은 주지 못해서 가슴이 아프다. 돈을 댜신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아낌없이 몽땅 주리라.

그 대신 조금이면 된다. 아주 조금만, 이 죄 많은 남자에게 삶의 기쁨을 나누어주렴.

pp.178~9

 

 

이 책에는 한 아버지가 등장합니다. 이 아버지의 가슴 속에는 한 아들이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아들입니다. 보이지 않는 아들입니다. 사랑합니다. 곱게 지켜주고픈 마음만 가득합니다. 아버지는 그 아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리하여 슬픔, 아픔, 분노, 희망, 모든 것이 가득한 결정을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자신의 마음 속 작은 새장 안에 아들에 대한 사랑, 죄책감, 의무감을 가득 담고 그렇게 살아갑니다. 아니, 죽어가는 걸까요. 결코 알고 싶지 않지만 우리의 삶은 언제나 죽음과 맞닿아 있으니까요. 지금 이 다음 순간, 죽어도 아무것도 이상할 것이 없으니까요.

 

이 책에는 형사가 등장합니다. 여자입니다. 자신때문에 '누군가가 죽었다'는 기억이 있는 형사입니다. 또 마음 속 깊이 상처가 있는 형사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어떻게든 표현하고, 받아들이려고 하지만 마음 속 깊이 있는 상처가 과연 그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두렵습니다. 때문에 형사는 마음 속 깊이 생각하고, 마음이 따르는 길을 봅니다. 그 길의 끝에는 늘 사건의 해답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형사가 등장합니다. 언제나 차갑고 냉철한 사람입니다. 언제나 논리정연하고 맞는 말만 합니다. '이것이 옳다'는 신념을 결코 버리지 않습니다. 외곬에 옹고집이지만 형사는 늘 옳은 일만 하기 때문일까요, 결과 역시 옳은 것만을 보입니다. 증명합니다. 자신이 옳다는 것을, 앞으로도 이 마음을 지켜가겠다는 것을. 

 

 

문득 그날 밤 레이코의 입술이 떠올랐다.

자신의 철없는 질투심을 단 2초 만에 해소해준 그 부드러운 입술, 양 어깨에 걸쳤던 그녀의 손의 무게, 아련히 느꼈던 봉긋한 가슴, 은은한 머릿결 향기, 피부의 촉감, 감은 눈의 긴 속눈썹, 처음으로 가까이서 본 자그마한 귀, 하얀 목덜미.

그녀가 보인 행동은 어떤 의미였을까.

pp.306~7

 

 

이 책에는 형사가 등장합니다. 겁쟁이입니다. 사랑하는데 사랑한다고 말을 하지 못합니다. 사랑을 받으면서도 사랑을 의심합니다. 그토록 사랑한다고 표현을 해도, 자신의 입술에 닿은 따뜻한 온기를 의심합니다. 불안합니다. 자신이 너무나 부족해서 거절을 당할까 두렵습니다. 자신의 마음 속에 꽁꽁 숨습니다. 그런데 참 우스운 것은, 그 마음이 너무나 빤히 보입니다. 사랑하는 게 보여요. 그런데 왜 말을 못하나요. 기다리고 있는데. 안타깝습니다. 어떻게 좀 하세요.

 

이 책 소울케이지에는 수많은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어쩌면 그 마음들 중 하나나 둘 쯤은 우리들 마음과 닮았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마음을 들여다 보며, 함께 잠시나마 마음을 놓고, 조금은 위안을 얻을 수 있겠습니다. 아니면 이왕 난 상처, 확 건드려서 생채기를 내서 펑펑 울고, 시원하게 풀어낼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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