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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일구
시마다 소지 지음, 현정수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사람은 누구나 등에 하나쯤 두려움을 짊어지고 살아가나 봅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우리의 등엔 원초의 두려움이 있을지 모릅니다. 최초의 두려움은 죽음이었고, 그 이후로 우리는 여러가지 이름의 두려움을 알게 됩니다. 사랑도, 우정도, 사회도, 그 모든 것이 두렵겠지만 제가 제일 두려웠던 것은 문을 두드리는 그 손이었습니다.
그 손이 두려웠습니다.
시마다 소지의 '최후의 일구'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남의 돈이 무서운 줄 모르고 빌리고 또 빌리다 그 돈이 굴러서 커지고 또 커져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졌을 때가. 돈이 두려움이란 이름이 되어 등에 올라타고는 채찍질을 하며, 어서 가자! 가자! 하고 말했을 때가 말입니다. 제가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연대책임이란 말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그런 일을 저질렀을 때에 말리지 못했기에, 다 같이 그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고통은 실존입니다. 다가옵니다. 누군가의 손으로 갑작스레 집을 방문합니다. 가끔은 새벽이고, 또 어쩔 때엔 아침입니다. 신호는 간단합니다.
문을 두드립니다.
가끔은 세게, 가끔은 두드리듯, 가끔은 티도 나지 않게 그렇게 문을 두드리며 말합니다. 왜 돈을 갚지 않느냐고 따집니다. 어쩔 때엔 안쓰럽다는 듯 사정을 다 안다고 그래도 어쩌겠냐고 말을 하고, 또 어쩔 때엔 일단 소리부터 지릅니다. 주변의 눈총에 등이 따갑습니다. 왜 그런 일을 벌였느냐고 묻는 듯합니다만, 우리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저 가난해서, 돈을 빌려서 미안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 몇 주 은행을 들낙거리다 보니 저 때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그 때에 전 고등학생이었던 것도 같고, 대학생이었던 것도 같습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집에 누군가 찾아왔고 어렴풋한 공포를 느꼈던 것만 기억에 있습니다. 전화는 받을 수 없었고, 당연히 친구도 찾아올 수 없는 나날이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그저 돈을 빌려쓴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렸을 때였고, 우리집만 그렇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조금 더 커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조금씩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사회.
시스템.
국가.
자본주의.
그 여러 이름의 무엇인가가 나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의 목을 졸라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 책들을 읽으며 더더욱 깨닫게 되더군요. 일전 몇 번이고 말한 '이유'라던가 '화차'를 읽으며 생각이 바뀌었고 "그렇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도 끊임없이 던지게 되었습니다.
이 책,
최후의 일구는 그 질문에 한 가지 답을 던집니다.
최후의 일구는 아주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미타라이 기요시에게 아주 묘한 의뢰가 들어옵니다. 한 악덕 대부업체의 빚에서 해방시켜달라는 의뢰인데요, 시니컬한 점성술사 탐정 미타라이 기요시는 "그것만은 나도 어찌할 수가 없어!"라고 말하며 의뢰를 거절합니다. 기도나 하라고 하네요.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정말 기도가 통했을까요? 갑작스레 대부업체가 마음을 바꿨습니다. 개심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아이큐 300의 명탐정 미타라이 기요시, 감히 셜록 홈즈를 재해석한 캐릭터라 말할 수 있는 미타라이 기요시가 범죄현장에 갑니다. 헌데 그는 아주 묘한 말을 합니다. 이 모든 것은 그저 기적이라고요. 인과응보라고요. 미타라이 기요시답지 않습니다. 미타라이 기요시는 이방의 기사, 점성술 살인사건, 마신유희 등 여러 작품에서 어떻게 하라고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해답을 내놓는 탐정이란 말입니다.
그렇다면 미타라이 기요시는 정답을 안다는 말인데,
그 정답은 우리 독자들이 봐도 뻔히 알 만큼 단순하다는 말인데,
헌데 미타라이 기요시는 범인을 찾아내지 않는다.
왜?
이야기는 2부로 넘어갑니다. 2부는 시작부터 묘했습니다. 미타라이 기요시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전혀 모르겠는 인간이 나오더니 마구 떠들어서 저는 혹시 '숨겨진 몇 장을 실수로 잘못 넘겼나?'라고 생각하여 몇 번이고 페이지를 앞으로 돌렸다가 다시 봤습니다. 하지만 아니더군요. 미타라이 기요시가 안 나오다니! 불만스럽더군요. 이 구조가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저를 비롯한 미타라이 기요시의 팬들에게는 실례가 되는 구조라고 생각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작가 시마다 소지가 이 작품을 '격하게 아낀다'고 하고, 또 이 작품을 한국에서 출간한다니까 여러모로 뒤에서 힘을 써주신데다가 직접 친필싸인까지 선뜻 해서 보내주셨더니 이 작품 안에 무언가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2부를 한 장 한 장 넘겼는데... ... 아아, 마지막 두 페이지에서 알아버렸습니다, 어찌하여 시마다 소지가 2부에서 나오지 않았는가를요.
저는 뼛속까지 2류로 태어난 인간입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보낼 제 2의 인생도 분명 2류로 끝마치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괴롭지는 않습니다. 지금의 저는 그것에 작은 긍지를 느끼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괜찮습니다. 헤처 나갈 수 있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하지만 두 분은 저와 달리 일류인 사람들입니다. 만나 뵈었던 짧은 시간 동안에도 저는 다케치와 마주했으 때와 같은 일류의 광채를 계속 느끼고 있었습니다.
눈부신 그 광채를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발해주십시오. 축복받지 못한 모든 이들을 위해,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그렇게 해주시기를 저는 지금 무엇보다도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pp.274~5
미타라이 기요시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 마지막장면으로 충분했습니다.
2류로 태어났다고 스스로를 말하며,
당신들을 일류라 말하는 인물 다케타니를 통해,
돼지 눈에는 돼지가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이 보인다는 그 격언을 느꼈습니다.
등장하지 않은 미타라이 기요시가
스스로를 2류라 치부하며 일류를 알아보는 다케타니를 통해
계속해서 함께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 얼마나 달콤한 밀행이었는지.
때문에 웃었습니다. 책을 덮었습니다. 일요일 저녁이었습니다. 창밖으로 해가 집니다. 어디선가 참새 소리가 들린 듯도 하였지만 착각이었겠지요. 하지만 개 짖는 소리는 사실이었습니다. 손에 닿는 우리 집 막내 '몽'의 짓입니다. 몽실몽실한 갈색 털을 쓰다듬으며 생각했습니다.
지금의 나는 행복하다. '그 손'에서 벗아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손이 닿은 사람은 어디에든 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나 혼자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것인가.
잠시,
쓰다듬던 손을 멈추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펜을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