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 잔혹극
루스 렌들 지음, 이동윤 옮김 / 북스피어 / 201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소는 오늘도 평소처럼 노트북 앞에 앉았다. 두 권의 책을 바라본다. 한 권은 1995년 영화로 만들어진 루스랜들의 소설 '활자잔혹극'이고, 또 다른 한 권은 곧 영화로 만들어질 '종료되었습니다'다. 변소가 보기에 이 두 소설은 전혀 다르다. 하지만 변소는 두 소설을 비교하는 데에 큰 흥미를 느꼈다. 그리하여 노트북 앞에 앉아서는 두 책을 비교해보겠다 실실 웃는다. 

 

 저는 단번에 많은 책을 읽습니다. 책달력을 보시면 아시다시피, 하루에 서너 권을 읽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독후감은? 안 씁니다. 귀찮거든요. 책달력이 정말 보통 일이 아니었어요. 그렇다면 이 책들 다 어쩔 셈이냐... 하다가 마침내 생각해낸 게 바로 책 vs 책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비슷한 책들을 몰아서 소개하자는 생각입니다.

 

 

 

첫 번째로 비교할 책은 이번 주에 읽은 두 권의 책 루스 랜들의 '활자잔혹극'과 박하익의 '종료되었습니다'입니다. 이 두 책은 상당히 구성이 다릅니다. 이끌어가는 형식도 전혀 다르고요.

 

하지만 저는 이 두 책을 비교하고 싶어졌습니다.

왜냐고요?

이제부터 천천히 풀어보겠습니다.

 

 

1. 반전.

 

'종료되었습니다'는 반전 소설입니다. 예전에도 몇 번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대부분의 반전이나 범인을 잘 맞춥니다. 때문에 안타깝게도 이번 '종료되었습니다'의 범인과 반전도 한참 전에 맞춰버렸습니다. 그만, 예전에 비슷한 영상물을 봤었던 터라. 이런이런. 당신도 맞출 수 있겠습니까? 그럼 도전하세요. 하지만 못 맞췄다고 나한테 뭐라고 하진 마세요. 그건 당신이 나보다 못난 탓이에요. 억울해요? 그럼 변소되세요, 알죠? 변소의 약자는 변태완소의 줄임말이라는 것. 웰컴투변소월드. 하지만 단언하건데, 이 반전은 흥미롭습니다. 분명 많은 분들이 감탄하시리라 믿겠습니다. 또 그 과정도 흥미진진하고요.

 

반면, 루스 렌들은 쿨합니다.

반전따위? 개나 줘버려!

이런 태도로 첫 장의 첫 문장부터 강렬합니다.

 

 

 


 유니스 파치먼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대문에 커버데일 일가를 죽였다.

 

 

 

처음부터 범인을 까발립니다.  

 

 

2. 전개.

 

때문에, 루스렌들은 범인과 피해자가 만나는 장면부터 시작해서, 살인이 일어나는 장면까지 촘촘하고 세세하게 끌고 갑니다. 헌데 그 과정이 결코 지루하지 않습니다. 지리멸렬할 정도로 유니스 파치먼의 이야기를 하며, 어느새 우리는 유니스 파치먼의 안으로 빨려듭니다. 어째서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문맹이기 때문에 사람을 죽일 수 밖에 없었는가, 작가에게 서서히 설득당합니다.

 

박하익은 처음부터 시작합니다. 첫 장면에서 세상에나! 칠 년 전 살해당한 엄마가 나타나서는 돌연 아들을 죽이려고 듭니다. 아들이 자신을 죽였다면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합니다. 알고 보니 엄마는 무시무시한 생명체가 되어버렸습니다. 일명 RV라고 불리우는 복수괴물이 돌아온 겁니다.

헌데 엄마는 아들을 죽이려 들어요.

 

그렇다면 아들이 엄마를 죽였을까요?

정말 그럴까요?

정말로요...? 

 

 

3. 영화.

 

처음에 밝혔다시피, 루스 렌들의 소설은 이미 영화화가 되었고, 박하익의 '종료되었습니다'는 영화화가 될 예정입니다. 박하익의 '종료되었습니다'는 영화화하기에 참 좋은 작품입니다. 일단 쉽게 읽히고요, 장면 하나하나가 박진감 넘칩니다. 근미래 SF에 우와! 액션이 넘쳐흘러요! 덕분에 무척 가독성이 좋고, 읽히기도 잘 읽힙니다. 때문에 잘 쓴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이 떠오르기도 하더라고요. 흐흐.

 

하지만 루스 렌들의 소설 '활자잔혹극'은 영화가 말아먹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모든 일류급 소설이 영화에서는 오히려 자신의 매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는 것처럼 '활자 잔혹극' 역시 영화화되면서 작품의 깊은 주제와 세부를 잃어버렸다.

 

 - '활자잔혹극' 뒤에 붙은 장정일 님의 발문

'문맹과 문해 사이' 첫 장에서 발췌.

 

 

전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아쉽지는 않습니다. 왜냐고요? 장정일 님의 말씀대로 이 소설 안에는 깊이의 울림이 있고, 제 생각에도 그 울림은 영화화했을 때 사라질 듯했습니다. 영화에서 단 한 순간에 멈추는 장면이 소설에서는 한 장, 두 장, 심할 때엔 다섯 장, 열 장, 혹은 한 권 전체가 들어있을 때가 있어요. 저는 그 안에서 가끔 손 끝의 저릿함을 느끼는데요, 이 소설이 그랬답니다. 너무나 많은 의미가 곳곳에 숨어있어요. 단순한 '보기 위한 것'이 아닌 소설 그 자체, '읽기 위한 것'이요. 다른 이름으로 '주제'라 불리는 감동의 결정체 말이에요.

 

 

4. 주제

 

루스 렌들의 소설은 한 여자가 사이코패스가 된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를 통해 단순히 '읽고 쓰지 못하는 것'이 어떤 이에겐 인생 그 자체를 빌어먹을, 말아먹게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여러 생각을 하게 합니다. 결말을 내고 시작해 놓고서는 마치 문맹이 아니지만 문맹보다 못한 나 자신을 일깨웁니다.

 

박하익의 소설은 피해자를 다시 한 번 생각케 합니다.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외로운 자 앞에서 웃지 마십시오.

외로운 자 앞에서 행복하지 마십시오.

 

- 박하익의 소설 '종료되었습니다' 중에서 발췌.

이 문장이 어느 순간, 어떤 인물이 하는지는 스스로 찾아보세요. 일부러 가르쳐드리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소설을 읽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설에서 우리가 집중하는 이유는 살인자입니다. 루스렌들의 소설 역시 그렇습니다. 살인자가 주인공이지요. 물론, 루스렌들의 소설 속 살인자는 더 큰 의미로 볼 때엔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살인자입니다.

 

박하익의 소설 속에는 피해자가 있습니다. 피해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가, 어떤 기분을 느끼는가, 살인이 일어난 후의 삶은 어떻게 흘러가는 과정을 스펙타클하게 보여줍니다. 우리에게 살인자가 아닌 피해자를 보라고, 우리가 살인자가 될 확률은 지극히 낮지만 피해자가 될 확률은 매우 높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루스 렌들과 또 다른 방법으로 우리의 무지가 무엇인가 일깨웁니다.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지와 무구일지도 모른다. 태초의 낙원에서 인간을 타락시킨 것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이었듯 무구함이야말로 신의 선물일지도 모른다. 몰라야 할 것을 몰라야 인간이다. 범죄성과 악마성, 그리고 수성과 대면해 버리면 영혼은 순식간에 변질되고 만다.

 

- p. 154, 종료되었습니다, 박하익, 노블마인, 2012

 

 

 

이렇게 두 권의 소설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어때요?

어딘가 좀 닮은 듯하고, 또 전혀 다른 듯한가요?

또 궁금한가요?

 

그렇다면 여러분도 읽어보세요.

둘 중 어떤 책을 고르든간에,

당신은 그 날 무척 즐겁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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