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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연애의 모든 것
이응준 지음 / 민음사 / 2012년 2월
평점 :
감히 묻고 시작합니다. 사랑, 해보셨습니까? 아직 안 해보셨습니까. 왜요? 아, 그렇구나. 아, 해봤어요? 어땠어요? 아, 그랬구나. 그렇다면 사랑이 뭐예요? 그거 하면, 밥 먹을 수 있나요? 우걱우걱. 사랑이 밥을 먹여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잠시 웃게 해주기는 합디다.
그리하여 세 번째 책 vs 책은 사랑, 사랑, 사랑 이야기입니다.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와 이응준의 '내 연애의 모든 것'으로 사랑을 논해 봅니다.
우리가 겪은 사랑과,
겪지 않은 사랑과,
앞으로 겪지 못할 듯한 사랑을요.
1. 눈 맞았다.
우리가 서로를 열면
너는 너를 내게 그리고 나는 나를 네게,
우리가 깊이 빠져들면
너는 내 안으로 그리고 나는 네 안으로,
우리가 사라지면
너는 내 안으로 그리고 나는 네 안으로
그러면
나는 나
그리고 너는 너.
더 리더에 등장하는 연인은 자그마치 스물한 살 차이의 연상연하커플입니다.
열다섯 살의 '나'는 감기가 걸려서 길을 잃고 헤매다 한나라는 여인을 만납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이 둘은 소년의 풋풋한 사춘기적 망상(?) 덕분에 사랑에 빠집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처음엔 사랑이 아니었어요. 소년은 잘 빠진 암말같은 한나와 '자고 싶었을' 뿐이고, 한나는 한나대로 '성욕의 분출구'가 필요했어요. 때문에 둘은 연결되었고, 서서히 빠져듭니다. 그렇게 서로의 몸을 탐닉해가다 서서히, 서로를 사랑하게 됩니다.
가끔 인생을 살다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사랑에 빠질 때가 있는데, 그래요. 이 둘이 그랬습니다. 이 둘은 결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도 그렇게 빠져들었고, 둘이 서로를 음미하게 되는 첫 번째 계기가 바로 책이었습니다.
때문에 이 소설의 제목은 책 읽어주는 남자입니다.
사랑은 가끔 사소한 오해에서 시작됩니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은 더더욱 그러했습니다. 단 두 명밖에 없는 진보노동당 대표 최고의 미녀 노처녀 국회의원 오소영과 여당 국회의원이지만 아직 때가 덜 탄 김수영, 국회의사당출입기자 사이에서 인기투표 1위와 2위를 양분한 이 둘은 시뻘건 정체불명의 무생명체 덕에 만납니다. (정확한 명칭을 적지 못한 것은 양해해 주십시오. 요걸 말하면 어쨌든 스포일러이기 때문에 저렇게 적었습니다.) 이 시뻘건 정체불명의 무생명체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 두 남녀를 엮습니다. 사실 첨엔 사랑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시뻘건 정체불명의 무생명체는 시뻘겋다 못해 새카맣기까지 한 막막한 상황을 연출하고, 둘은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몇 번이고 만나다가 투명인간은 아니지만 투명하며 가끔은 무기가 될 수 있는 어떤 액체의 주선으로 끌립니다. 이 액체 역시 앞의 시뻘건 정체불명의 무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전혀 의도가 없었으나, 둘은 사귀게 됩니다. 무생명체와 액체의 중매로요.
'내 연애의 모든 것'을 보기 전에 꽤나 리뷰를 읽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리뷰에서 발견한 것이 '이 두 사람이 왜 사랑에 빠졌는지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였는데요, 저는 나이가 실제로 주인공들과 비슷한 노처녀라 그런가, 아 너무 와닿았습니다. 사랑이란 그렇습니다. 무생명체와 액체의 주선으로 빠지기도 합니다. 복잡하고 자존심이 세고 소심하면서도 겉으로는 강한 척하는 사람일수록 더더욱 그렇습니다. 자존심이 세기 때문에 달려드는 사람에게 약하고, 소심하기 때문에 얼떨결에 말려드는 사랑에 약합니다. 때문에 저는 그만, 너무나 이해를 잘 해 버렸습니다. 이 두 남녀의 사랑을. 제가 오소영 같은 사람이라서 말이에요. 저도 모르게 그만, 저 상황이라면, "아 김수영처럼 대시하면 나도 얼결에 넘어가겠다."라고 중얼거렸습니다.
2. 오해와 장애물 들.
인간들은 저마다 예외없이 거대한 벽과 마주 서 있어요.
그걸 부숴야 해요.
그래야 앞으로 나갈 수 있어요.
'내 연애의 모든 것'의 장애물은 로미오와 줄리엣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복잡하기 짝이 없는 허울 좋은 국회입니다. 겉으로는 으르렁거리는 서로의 정당은 이 둘의 사랑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둘이 사랑한다는데 어찌나 귀찮게 하는지 모릅니다. 때문에 둘은 사랑하다가도 싸웁니다. 서로의 믿는 것이 다르니까요.
'더 리더'는 그보다 더합니다. 이 둘 사이엔 스물한 살이라는 어마어마한 나이차가 있습니다. 남자는 여자가 좋습니다. 때문에 일부러 여자가 일하는 곳에도 갑니다. 하지만 남자는 여자에게 아는 체를 하지 않습니다. 서운합니다. 여자가 자기에게 아는 체를 해줄 줄 아는데, 여자는 남자를 모른 체합니다. 남자는 화를 냅니다. 그러자 오히려 여자가 말합니다.
"너, 내가 창피한 거잖아! 그래서 아는 척 안 했잖아!"
이 얼마나 안타까운 오해입니까.
남자는 자신이 너무 어려서 여자가 자신을 창피하리라 생각했는데, 반대로 여자는 자신이 너무 나이가 들어 남자가 자길 창피해 하리라 생각한 겁니다. 일상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저 역시 그러했습니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저와 똑같은 이유로 상대방이 절 오해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게 뭔가 싶더군요. 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게 되더군요. 오해를 풀려고 해봤자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 혹시라도 자신이 솔직하게 말했다가 더 큰 상처를 받을까봐 내면으로 움츠리게 됩니다.
두 소설 속의 주인공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오해를 풀지 못했습니다.
오해를 풀기 보다 서로를 떠나자 생각합니다.
미련이 가득한 채 미련하게요.
그 오해의 다른 이름은,
3. 비밀
입니다.
두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는 숨긴 비밀이 있습니다. 더 리더의 비밀은 이야기의 중심을 꿰뚫습니다. 이 비밀 자체가 소설을 묵직하게 관통하는 주제입니다. 여자의 비밀입니다. 여자는 남자가 상상치도 못할 비밀을 갖고 있었고, 그 비밀을 들킬까 너무 두려워서 그만 떠나버립니다. 더더욱 자신을 상처입혀버립니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의 비밀은 주인공들의 연애 자체입니다. 둘이 사귄다는 사실을 다른 이들이 알았을 때의 사회적 파장, 서로가 서로를 만나지 못하게 될까봐 두려운 마음에 "우리는 연애 중입니다!"라고 말하지 못하고 숨습니다. 적인 척, 서로를 포장합니다. 그러면서 서로를 보며 서로만이 아는 애뜻한 편지를 주고 받습니다. 물론 사람들은 그게 서로에게 주는 연애편지라고는 전혀 생각치 못합니다.
왜냐하면, 오소영은 그 편지를 국회의사당에서 읽거든요.
무슨 편지냐고요?
책을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