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거룩하신 하나님 데이비드 웰스 4부작 시리즈
데이비드 웰스 지음, 윤석인 옮김 / 부흥과개혁사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현대 사회가 던져주는 가치를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치 자신과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양 못내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어느정도 후자에 가깝다. 역사적으로 볼 때 현대사회가 추구하는 바는 인간이 좀더 인간다워질 수 있는 사회적, 문화적 기틀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예외가 되는 나라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인간이 누리는 자유로움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다. 더이상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종교권력과 정치권력 앞에서 죽는 시늉을 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전통가치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정신을 옭죄는 관습을 따를 필요가 없는 세상이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풍요로운 사회에서 인간은 최대한의 소비를 통해 존재감을 맞보며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제약없는 일탈도 맛볼 수 있다. 이젠 '내가' 원하기만 하면 못할 것이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데이비드 웰스의 4부작 시리즈 중 두번째 책인 <거룩하신 하나님>은 현대성의 공격 앞에서 그 본연의 모습을 잃고 줏대없이 흔들리는 교회와 그 교회를 매개삼아 '자아'의 무한정한 확장을 꿈꾸는 기독교인들에 대해 일침을 놓는다. 현대성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그 안에 자리잡은 핵심적인 사상은 거의 변함없다. 바로 모든 것을 상대화, 상황화, 관계화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동성애가 옳지 못하다는 암묵적인 동의가 존재했다. 그러나 현재는 상황에 따라, 또는 개인이 처한 환경에 따라 동성애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처지가 있으므로 동성애를 무조건 배척하는 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라는 사고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실정이다. 바로 '절대적인 가치'에 대한 반항이 이 시대의 조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진리라고 알고 있는 복음주의 교회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현대화에 중심을 내준 교회는 이러한 부담스러운 상황이 연출되지 않도록 입장을 선회하기도 한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 진리가 아닐 수도 있으며 진리는 여러 곳에서 존재할 수 있다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다양한 종교 소비자 또는 '구도자'들을 환영하는 대형교회의 경우 완고한 복음주의의 메시지를 흐리게 만드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현대성의 세례를 환호하는 일부 교회는 종교 소비자의 입맛에 맛는 치유 위주의 메시지를 활용하고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마케팅 기법을 교회 안에 끌어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가 현대성이 주는 단물에 목을 적시는 경우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세상의 인정은 얻을 수 있으나 우리의 영혼을 잃어버릴 수 있음을 경고한다. '성공'은 진리와 지혜를 측정하는 타당한 기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교회마저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형시켜 세상 속에서의 성공을 부추긴다면, 아무리 오랜 시간동안 교회에 다닌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결국 비대해지고 오만해진 자아에 비해 훨씬 왜소한 하나님을 만날 것이라고 경고한다.  

저자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바로 알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설령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 현대 사회에 '먹혀들지' 않더라도 우리가 받은 임무는 바로 하나님과 원수된 세상 속에 하나님의 복음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초월적이고 보편적인 권위가 사라진 시대에 우리가 보다 강건하게 말씀위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스스로의 내장을 갉아먹으며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선사할 수 있는 최고의 메시지라는 것이다. 결국 그리스도인은 세상이 좋아하는 모습을 취하기 위해 고민하기 전에 거룩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여 세상과는 구별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 책은 현대 교회가 잃어가고 있는 중요한 것을 일깨워줬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은 결코 교회를 건강하게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보인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채워지지 않은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저자는 '상황(Context)'에 의존하기보다는 '원칙(진리)'를 지켜나가는게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세상 일이 어디 그런가? 우리나라와 같이 격동적인 변화를 겪는 나라 또는 남미와 같이 제국주의의 비인간적인 권력에 시달리는 나라에서 상황을 보지 않고 원칙만을 고수하는게 옳은 일일까? 현재 겸해서 읽고 있는 강원용 목사의 <역사의 언덕에서> 시리즈를 읽으며 이러한 고민은 깊이가 더해지고 있다. 강목사는 편협한 자기논리속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한국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난마처럼 얽힌 문제를 풀어내고자 '크리스찬 아카데미'를 설립하여 정치, 경제, 종교간 벽을 허문 인물이다. 저자의 관점에서 복음주의의 원칙을 지킨다면 이러한 '범종교적' 대화 자체는 결코 성립되어서는 안될 일이지만 시대적인 요청 속에서는 그러한 운동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여하튼 데이비드 웰스를 알게 되어 무척 기쁘다. 저자가 들려주는 메시지에 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귀를 기울이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을 바꾸는 대안기업가 80인
실벵 다르니 외 지음, 민병숙 옮김 / 마고북스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세상을 이롭게 하면서 돈을 벌 수는 없을까?
퇴보한다는 느낌 없이 인간과 인간, 자연과 인간을 파괴하는 현대 문명의 흐름을 거스를 방법은 없을까?

방법은 어딘가에 존재한다. 프랑스의 젊은이들인 저자 중 한명은 '무하마드 유누스'라는 인물을 통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창의적인 방법이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무하마드 유누스'는 방글라데시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소액신용대출 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은행가다. 일반 은행에서는 대출이 전혀 불가능해서 소액으로라도 자본금을 마련하려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신용대출을 통해 자립을 길을 열어주는 게 '무하마드 유누스'가 운영하는 그라민 은행의 비전이다. 

두 젊은이는 제2, 제3의 '무하마드 유누스'를 찾아 전세계를 떠돌아다닌다. 유럽, 아시나, 남아프리카, 남미를 여행하는 동안 백명이 넘는 소위 '대안기업가'를 만나게 된다. 그 중 가장 영향력이 큰 80인을 뽑아 그들과의 인터뷰를 소개한 게 바로 이 책이다. 책을 읽다보니 이 세상에서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위대한 일들이 참 많이 벌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인상깊었던 만남을 몇몇 소개한다.  

스칸딕 호텔은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큰 호텔 체인이다. 90년대 초반 이 호텔의 재정상태는 매우 나빴다. 그러나 사장인 롤랜드 닐슨은 호텔 경영에 있어 모험을 감행한다. 바로 환경친화적인 호텔로의 변신을 꾀한 것이다. 몇몇의 경영진이 머리를 맞대고 전략을 짠 게 아니라 5천명이나 되는 직원 모두에게 이 비전을 심어줬다. 위에서는 기본적으로 문제에 대한 접근만 유도했을 뿐, 방법과 수단은 직원들이 스스로 찾도록 동기부여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3년간 에너지 사용이 24퍼센트, 물 소비는 12퍼센트, 쓰레기 배출은 45퍼센트 감소했다. 초기 투자비용이 24만 달러였는데, 시행 후 5년 동안 약 240만 달러를 절약했다.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안과병원은 '아라빈드 안과병원'이다. 노화나 영양실조에 의해 생기는 백내장은 혼탁해진 수정체를 인공수정체로 교체하기만 하면 되는데 인공수정체의 가격은 150~300달러에 이르렀다. 당연히 인공수정체 시장은 다국적기업의 차지였다. 아라빈드 병원 설립자인 '닥터 브이'는 아예 다국적기업의 특허를 피해 인공수정체를 인도에서 직접 생산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침내 기존 가격보다 15~30배 저렴한 인공수정체를 개발하여 단돈 10달러에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아라빈드 그룹은 현재 5개의 병원을 운영하면서 연간 20만 건의 수술 중 47퍼센트는 무상으로, 18퍼센트는 원가보다 저렴하게 서비스한다.  

월가에는 S&P500 지수만 있는 게 아니다. 월가와 썩 어울리지는 않지만 사회적 책임이 있는 지수인 '도미니 사회지수'도 있다. 월가의 열혈여성 에이미 도미니는 윤리적 기준으로 선별된 미국의 400개 대기업들을 편성하여 책임있는 기업에 돈을 투자하는 독특한 펀드를 만들었다. 당연히 담배, 무기, 포르노, 도박, 주류, 핵 분야의 기업은 배제된다. 놀랍게도 '도미니 400 사회지수'는 미국의 500개 우량기업으로 편성된 'S&P 500'의 실적을 지난 10여 년 동안 줄곧 능가했다. 그녀가 해낸 일은 바로 이거다. 훌륭한 윤리의식을 갖고 있는 투자자로 하여금 '원칙과 투자' 사이에서 고민할 필요가 없도록 만든 것이다.  

브라질의 꾸리찌바는 지속가능한 도시의 대명사다. 서른 셋의 나이에 꾸리찌바의 시장으로 임명된 '자이메 레르네르'는 대책없는 대도시 꾸리찌바를 변화시키기 위해 먼저 대중교통망을 재구성했다. 지하철에 비해 돈은 적게 들지만 대중교통의 대대적인 변화는 시민의 극렬한 반대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자이메는 멋지게 해냈다. 1972년에는 30명 중 단 1명만이 대중교통을 이용했지만, 지금은 매일 4분의 3이 넘는 시민들 즉, 190만 명이 이용하고 있다. 수백 개의 버스 노선들이 꾸리찌바의 가장 후미진 곳까지 연결되고, 정류장은 장애인들이 사용하기에 편리하도록 만들어졌으며, 평균 2분 마다 버스가 지나간다. 돈이 없을 때는 '아이디어'로 정면승부한다.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초현대식 쓰레기 분류공장을 만드는 대신 시민들이 스스로 참여해서 쓰레기를 분류하는 공터를 만들었다. 유기물 쓰레기는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는 생물학적 비료로 재탄생했다. 생활환경의 변화는 더 뚜렷하다. 1970년에는 시민 한 사람당 누릴 수 있는 녹지면적이 0.5평방미터였지만 현재는 1인당 52평방미터의 녹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최근 시에서 발간한 연구자료에 따르면, 꾸리찌바 시민의 99퍼센트가 자신들이 세계에서 삶의 질이 가장 높은 도시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이 책에 소개된 80명의 대안 기업가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먼저 '인간'을 생각하고 '환경'을 소중히 여긴다는 점이다. '주주'를 생각하고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관행적인 기업인들은 감히 생각도 못할 일들을 벌이는 괴짜들이다. 지구의 운명은 어쩌면 이들의 손에 달려 있는게 아닐까? 그리고 이 세상은 더 많은 괴짜들을 원한다. 공동체로서의 인간생활,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꿈꾼다면 나 자신부터가 이런 괴짜가 되어야 한다. 이런 괴짜들이 더 이상 괴짜소리를 듣지 않게 될 때 그때야말로 참으로 평화로운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돌아갈 때가 되면 돌아가는 것이 진보다
천규석 / 실천문학사 / 199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슨 말부터 써야 할 지 모르겠다.

여기 저기서 자주 참조되던 천규석를 자신의 책을 통해 이렇게 직접 대하고 보니 이 분의 올곧은 철학이 무거운 돌덩어리처럼 내 어깨를 짓누른다. 이 분은 원칙주의자다. 한 치의 틈을 허용하지 않는다. 자신이 견고하게 세워놓은 생명에 대한 철학, 자연에 대한 철학, 삶에 대한 철학이 삶 가운데 진실되게 어우러져서 사소한 거짓조차, 눈에 띄지 않는 부조리조차 서슬처럼 끄집어낸다. 그의 생각과 이상은 높디 높다. 그러나 그가 겪은 현실, 그가 처한 현실, 그가 온 몸으로 부딪힌 현실은 시궁창과도 같다. 그래서 그 간격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 문득 그가 불쌍해보인다. 그리고 마음 한 켠이 답답해짐을 느낀다. 비단 나만의 감상일까?  

그가 한결같이 주장하는 것은 바로 '소농 두레'이다. 소농이 살아야 땅이 살고 땅이 살아야 농촌과 나라가 산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소농이 농사를 지어야 하고 이들이 중심이 되어 두레 조직을 구현해야만이 공동체가 건강하게 되살아날 수 있다. 그러나 넓디 넓은 땅을 경작할 소농을 도대체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귀농학교를 통해 전국적으로 배출되는 젊은이들이래봤자 소수에 불과하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결국 그는 한살림 공동체에서 마련해준 자본금을 토대로 8천여 평의 두레답(畓)을 마련하여 젊은 귀농인 몇몇과 함께 자신의 철학을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요즘 내가 가장 궁금증을 품고 있는 '태평농'의 개척자인 이영문씨와의 만남이 책에 소개되어 있어 깜짝 놀랬다. <녹색평론>의 주선으로 한창 화제가 되고 있던 태평농의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천규석씨가 경남 하동군 옥종면으로 급파되었다. 혼자서 3만 5천평을 짓던 이영문씨는 자신이 개발한 태평농을 쓴다면 혼자서라도 수만, 수십만 평도 농사지을 수 있다고 말한다. 태평농의 핵심은 최대한 생태계를 보존함으로써 자연 스스로가 농사를 짓도록 하는 데 있다. 잡초와 해충이 벼에 큰 영향을 주지 않도록 적절한 관리만 해주면 된다. 잡초제거는 수확기에 전 작물의 줄기를 그대로 땅에 피복함으로써 잡초의 생육을 제지하는 데 있고 해충의 방제는 익충이 살만한 환경을 조성해서 천적관계로 방제를 하는데 있다. 태평농의 효과와 실태를 확인한 천규석씨는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한편으로 태평농의 어두운 그림자에 대해 이야기 한다. 하나는 기계의 사용이다. 추수와 동시에 파종을 해야하기 때문에 콤바인과 파종기(이영문씨가 개발)를 필수적으로 구입해야 한다. 기술 및 자본의 도움에 의존해야 하는 기계의 사용에 대해 반감을 가진 것이다. 두번째는 가장 중요한 문제로서 태평농이 보편화되면 자신이 주창한 소농 두레가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3~4천평의 소규모 논에서 가족 단위로 농사짓고 이러한 소농들이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데 태평농은 어쩌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농법이다. 이영문씨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 그리 유쾌하지 못했던 게 바로 이 때문이다.  

소농두레에 대한 그의 고집은 집착으로 비칠만큼 대단하다. 또한 그는 농사의 지역성, 자립성을 추구하는 그는 세상을 모순덩어리로 이해한다. 물건너 온 농산품은 그 경작 과정과 수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생태 파괴적인 요인때문에 단호히 거부한다. 또한 소농을 죽이는 농정(農政)에 대한 대안으로서 그가 제시하는 방법 또한 대담하다. 땅이 필요한 농부가 땅을 살 수 없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타개하는 차원에서 농업은행-현재의 농협과는 다른-을 만들어 정부예산으로 땅을 일괄 구매하여 귀농지원자들에게 장기로 무상대여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눈 먼 돈처럼 흩뿌려진 42조원의 행방을 추적하다보면 오히려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이 훨씬 현실적이고 농부를 위하는 길처럼 여겨진다.  

저자가 지향하는 바가 현실성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처럼 땅과 농사를 자신의 목숨처럼 여기는 올곧은 학자요 농부의 말에 농정당국이 조금의 관심을 기울인다면 이 땅의 파괴된 농촌 마을이 다시금 되살아나지 않을까? 까탈스런 원칙주의자의 길이 무척이나 험난해보였지만 이런 인물이 이 땅에서 사라지기 전에 그의 사상과 철학을 실현할 날이 속히 오길 기대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디트리히 본회퍼 하나님의 사람 4
에버하르트 베트게 지음, 김순현 옮김 / 복있는사람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본회퍼는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나는 현장의 한 가운데에서 고심한 위대한 그리스도인이다.

1933년 1월 30일,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 제국의 수상이 됨으로써 피의 역사는 시작됐다. 루터라는 인물을 배출한 종교개혁의 나라에서, 교회는 히틀러 정권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독일 기독 신자들'이라 불리는 압도적 다수의 독일 그리스도인은 히틀러를 환영했고 히틀러의 생일에는 충성서약을 맹세하기까지 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본회퍼를 위시한 소수의 '고백교회' 형제들은 정신나간 기관차의 폭주(히틀러)를 막기 위해 현 정권에 대립의 각을 세웠다. 

히틀러의 공약은 '독일 기독 신자들'과 쉽게 영합했다. 아리안 조항(아리안 인종이 아닌 사람, 즉 유대인의 공직 취임을 금지한 법안)은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스도를 탄압한 장본인이 유대인이라면 유대인을 말살하려 시도한 무리는 다름아닌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리스도는 원수를 원수로 갚지 말 것을 촉구했지만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대중의 욕심 앞에 큰 소리를 내지 못했다. 본 회퍼는 아리안 조항을 거부했고 더 나아가서는 히틀러가 주동하는 전쟁의 참여를 거부했다. 즉, 본 회퍼는 독일이라는 나라에서 유대인들이 겪고 있는 인권 문제를 다뤘을 뿐 아니라, 전쟁의 광풍이 휘몰아치는 광야에서 외로이 평화의 메시지를 선포했다. 이는 당연히 독일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심지어는 고백교회마저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 전쟁이 발발하자 고백교회 형제단들은 병영과 참호 속에 있는 신학생들에게 카드를 보냈다. 이런 내용이었다. "전쟁은 개인의 일이 아니라 정부의 일이다. 그러니 마음 놓고 훌륭한 군인이 되어라"

본 회퍼는 히틀러에 반대하는 소수의 장성들과 결탁하여 히틀러 암살을 모의했다. 그러나 그들의 시도는 무위에 그쳤고 회퍼는 감옥에 갇혀 있다가 히틀러가 자살하기 20일 전인 1945년 4월 9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서른 아홉의 길지 않은 인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사상은 여실히 남아 교회가 먹고 자라야 할 자양분을 충분히 제공해줬다.

회퍼의 신학적 고민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리스도는 오늘 우리에게 무엇인가?"

그는 종교개혁이 내건 복음서의 구호 "나를 위하여"(pro me)를 "우리를 위하여"(pro nobis)라는 복수형으로 이해하고자 했고,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를 위하여"를 "타자를 위하여"(pro aliis)로 이해할 것을 촉구했다. (p. 243)

어쩌면 이 짧은 대답이 "그리스도는 오늘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본 회퍼의 결론이었다. 그는 전적으로 '타자'를 위한 삶을 살았다. 심지어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유대인들까지도 그는 포용했다. 오늘날 교회의 모습은 이와 확연히 대비된다. 우리의 질문은 여전히 "나를 위하여"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우리를 위하여" 산다 하더라도 "우리 형제를 위하여" 살 따름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시려 고난을 무릅쓰고 세상의 중심에 오셨건만 하나님의 제자를 자처하는 우리 무리들은 감히 세상의 중심에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또한 하나님의 능력에만 의존하는 삶을 살 뿐 하나님의 고난을 몸소 실천하려 하지 않는다. 본 회퍼는 우리 안에 있는 '종교성'을 강렬하게 비난한다. 우리가 종교적인 껍질에 얽매여 세상을 향해 화해의 메시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고난은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 

또한 회퍼는 교회가 무책임하게 남발하는 '값싼 은혜'를 신랄하게 비난한다. 

값싼 은혜는 싸구려 은혜, 헐값의 용서, 헐값의 위로, 헐값의 성만찬이다. 그것은 교회의 무진장한 저장고에 몰지각한 손으로 생각없이 무하정 쏟아 내는 은혜이다. 그것은 대가나 값을 치르지 않고 받은 은혜다.. (p. 231)

루터가 은혜에 대해 말할 때면, 그것은 그 자신의 삶이 은혜를 통해서 비로소 그리스도께 완전히 복종하게 되었음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이었다. 루터는 은혜만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후계자들도 그 말을 똑같이 되풀이하지만, 다른 점은 그들이 루터가 늘 자명하게 생각했던 것을 빠뜨리고, 그것을 생각하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루터가 자명하게 생각했던 것은 다름 아닌 순종이었다. (p. 233)


본회퍼에 관한 책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여태껏 그가 주장하는 바가 어떤 것인지 전혀 몰랐다. 단지 '값싼 은혜와 값비싼 은혜'라는 단어만 어디서 주워들었을 따름이다. 이 책을 읽고나서 그와 동일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수 있게 됐다. "그리스도는 오늘의 나에게 누구인가?" 얼마전에 읽었던 강원용 목사의 <내가 믿는 그리스도>가 문득 떠올랐다. 그리스도에 대한 인식이 어떠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인생은 이쪽으로 갈 수도 있고 혹은 저쪽으로 갈 수도 있다. 공허한 철학적 질문이 아닌, 역사 속에, 오늘날 한국이라는 나라 속에 살아가고 있는 나 스스로에 대해 이 질문을 무겁게 던져 본다. "그리스도는 오늘의 나에게 과연 누구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연봉 5천이 부럽지 않은 귀농
김태수 지음 / 밀알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귀농의 '연착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 준 책이다. 저자는 서울에서 학교를 나와 직장생활을 했지만 어려서 보냈던 시골생활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떨쳐내지 못해 결국 식구를 데리고 귀농을 했다. 여기엔 도시생활이 가져다 준 팍팍함도 한 몫 했다. 

첫 해 농사 수입은 단 돈 150만원... 초보 농사꾼이 치른 혹독한 신고식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아내가 교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었기에 시골 생활을 접어야 할만큼 타격이 크진 않았다. 귀농 2년차, 3년차가 되면서 노하우도 쌓이고 경작지도 서서히 늘어가면서 어느덧 '연봉 2천만원'을 목표로 내걸 수 있을만큼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농사 지으면서 매출 2천만원 정도 되면 먹고 사는데는 큰 지장이 없다고 본다. 그런데 이렇게 계산해보자.

밭농사는 일반적으로 평당 3,000원의 소득을 올릴 수 있다. 벼농사는 이보다 작아 평당 2,500원의 소득을 낼 수 있다. 만일 벼농사만 짓는다면 단순 계산으로도 8,000평을 농사지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초보 농사꾼한테는 1,000평도 벅차다. 게다가 농약을 안치고 친환경으로 농사를 짓는다면 품이 몇 배는 더 들어간다. 물론 특용작물이나 원예농사로 많은 돈을 버는 사람도 있지만 벼농사하면서 추가로 2~3가지 작물을 윤작하는 농부 입장에서는 연 매출 2,000만원이 결코 쉬운 목표치는 아니다. 

어쨌건 책의 저자인 '무당벌레'님은 자신의 소중한 경험을 토대로 귀농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농사로 자립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귀농을 준비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려는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귀농은 철저한 준비를 필요로 한다. 섣불리 귀농해서 실패하게 되면 견딜 수 없는 열패감에 시달릴 수 있다. 저자의 후배 한 사람은 일년 정도를 수입 없이 일했다고 한다. 아는 선배의 농사일을 틈틈히 도와주면서 일년동안 농사에 대한 감각을 쌓은 것이다. 결국 그 사람은 마을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게 되고 농지도 쉽게 임대해서 아주 빠른 시간 안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일년 동안 수입없이 지냈지만 단지 돈이 오고가지 않았을 뿐 그 일년의 기간동안 귀농에 필요한 인프라를 착실히 구축한 것이다. 농사에 맞게 몸도 만들고 현장 경험도 쌓고 지역 주민으로 인정받고 이웃으로부터 신뢰를 쌓은 것이다. 아주 좋은 모델이라 할 수 있다. 귀농에 있어서 연착륙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