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진의 자녀교육 베스트 컬렉션 - 현명한 부모들이 고른
신의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첫 아이가 태어난 후 다양한 육아서적을 접했다. 육아에 관해서는 백지에 가까울 도로 사전 지식이 없었던 내게 소위 괜찮은 육아관련 서적이 던져주는 메시지는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거리낌없이 받아들였다. 그 중에서 가장 깊은 감명을 던져준 책이라 한다면 푸름이 아빠가 쓴 책들과 시치다 마코토라는 일본인이 쓴 '0세 교육의 비밀'이라는 책이었다. 특히나 '0세 교육의 비밀'은 아이들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켜줬고 그 책에 흠뻑 매료된 나는 거기서 주장하는 소위 재능 체감의 법칙(0세~8세까지 급격히 재능이 발달하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발달속도가 느려진다는 법칙)을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엄마 아빠들에게 늘상 소개하고 다닐 정도였다.

 '아이는 누구나 천재로 태어난다'
'환경에 따라 아이의 재능은 꽃을 피울수도, 소멸될 수도 있다'
'8살 이후로는 새로운 재능이 계발되지 않는다'
'어릴적 교육이 아주 중요하다'

이처럼 조기교육 이론가들이 주장하는 바를 나름대로 합리적이라 생각하여 의심없이 받아들였기에 아이의 두뇌성장을 위해 어릴적부터 교구와 서적에 다소 분에 넘치는 투자를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다행히 나와 아내는 아이의 CAPA를 고려하지 않은, 부모의 밀어부치기식 교육방법은 택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가 준비해놓은 값비싼 '준비물'들에 아이가 별반 흥미를 느끼지 못할 때 약간 속상해했을 따름이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인 신의진씨는 다소 과격한 제안을 한다. 이 땅에 시치다 교육이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학술적인 이론으로서 그 뚜렷한 근거조차 희박한 시치다 교육과 그 아류들이 유별난 교육열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 상업주의에 편승하여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해를 끼치는 교육 문화를 양산해내는 현실에 깊은 분노를 갖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시치다 학습법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모르기 문에 그녀가 갖고 있는 적대감에 무조건 동의할 수는 없었다. 부모의 적절한 통제하에서 아이에게 가해지는 적절한 자극은 아이의 성장에 많은 도움을 주리라는 것에는 의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나라의 조기교육 열풍을 비난하는 저자의 논조에는 공감이 갔다. 소아정신과 의사로서 그녀가 다뤘던 갖가지 사례들을 종합해볼 때 우리나라에서 조기교육의 폐해가 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준비되지 않은 사회'와 '준비되지 않은 부모'가 여전히 큰 흐름을 주도한다는데 있다. 저자는 정신적으로 '아픈' 아이들을 치료하다보면 그 근본적인 문제의 핵심에는 언제나 정신적으로 '아픈' 부모(특히 엄마)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또한 영리를 위해 미숙한 부모들에게 '아이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불필요한 학습법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가 아이들을 더욱 더 깊은 수렁으로 밀어넣는다고 경고한다.  

로스실로가 쓴 '유태인의 천재교육'이란 책을 보면 유태인들은 자신의 자녀에게 '남보다 뛰어나라'가 아니라 '남과 다르게 되라'고 가르친다고 한다. 남과 다르게 되는게 목표가 된다면 자녀 교육이 어떻게 달라질까? 남들이 모두 다닌다고 해서 똑같이 학원에 보낼 필요가 없다. 옆집 누구누구가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내 아이에게 괜한 스트레스를 줄 필요가 없다. 궁극적으로는 남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와지고 대신 내 아이의 장점과 특성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남보다 앞서기 위해 어려서부터 선행학습에 길들여지는 아이들을 위해 저자는 '느림보 학습법'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느림보 학습법은 엄마가 아이를 너무 앞지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신경하게 뒤쳐지지도 않고 아이의 성장에 발맞춰가는 것이다. 못다 이룬 부모의 욕심을 자녀에게 투영하는 '짓'은 아이의 인생을 망치는 지름길이다.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서 아이가 자신의 페이스를 찾아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게 부모의 도리라고 할 수 있다. 이 학습법에서는 질책보다는 관심이, 무관심보다는 참여가, 그리고 비교보다는 인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기 중심적이고 꽤나 당돌했던 한 여성이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스스로 겪는 변화의 이야기가 무척 실제적이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저자처럼 똑똑할 순 없지만 저자가 자녀들에게 갖는 애정어린 관심만큼은 누구나 가질 수 있고 또 반드시 가져야만 하리라고 생각한다. 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들이지만 이 책이 돋보이는 이유는 그만큼 우리 사회가 자녀 교육이라는 백년지대계에 있어서조차 상식과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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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카 2007-12-10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신의진교수... 굉장히 똑똑한 여자죠.. 정말..
카리스마의 여의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의사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정말 대단하신 분입니다. ^.^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