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내가 읽었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다. 내가 알고 있던 앨리스보다 훨씬 더 모험적이고, 생각이 많고, 또 이상한, 그러면서도 어처구니 없게 벌어지는 상황들에 나름의 적응을 잘 해나가는 호기심 많은 아이이다. 예의 바른듯 하면서도 할말은 하고, 겁이 나지만 움츠러들지 않고 나아가며, 이해가 안되는 상황 속에서도 공감을 할 줄 아는 아이이다. 그래서 이상한 나라에 떨어져 이상한 광경들을 목격하고, 동물들이 말을 하는 말도 안되는 상황 속에서도 끊임없이 질문하고, 도움을 요청하고, 함께 나아갈 줄 아는 적응력을 발휘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처음엔 이상한 줄도 몰랐던 상황들을 이상함으로 인지한 이후, 줄곧 벌어지는 말도 안되는 광경들 속에서 앨리스는 생각을 거듭해 나가고 혼잣말을 하며 어떻게 해야될지 자신만의 생각을 정리해간다. 이것이 이 책의 재미있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때론 밖으로 내뱉는 말이나 행동과는 다른 생각들을 혼잣말로 늘어놓기 때문에 우리는 앨리스의 관점에서 이 책을 읽게 된다. 또한 마치 판화인듯, 찍어낸 그림인듯, 그리다 만 듯, 물감이 번지듯, 그 어떤 책보다 이상한 나라를 잘 표현한 그림으로 인해 상상 그 이상의 상상력을 더하여 읽을 수 있었다.
하트의 왕과 여왕을 만난 장면에서는, 낯선 환경 속 위태로운 상황 안에서 스스로도 놀란 용기가 나온 앨리스를 보며 우리가 겪지 못한 그 어떤 일들이 닥칠지라도 용기를 잃지 않으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했다. 정신없이 바뀌는 상황과 계속해서 쏟아져나오는 이상한 등장인물과 함께한 이 책은 상상이 곧 현실이 되는 놀라움을 경험하게 한다.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길어졌다가, 줄어들어드는 앨리스와 함께 어디든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상상을 펼치게 된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자신의 상상의 나라에서 앨리스보다 더 이상한 경험들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상상은 비단 아이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서 벗어나 내가 꿈꾸는 무엇인가가 연결되어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되는 것, 그리고 그것은 앨리스의 언니가 성인이 되어 앨리스의 꿈 이야기를 들려주는 상상을 하듯 또 다시 상상이 현실이 되고, 현실은 다시 과거가 되어 꿈처럼 남아있게 될 것이다. 결코 우리의 이상한 나라는 상상의 나라일 뿐인 것은 아닐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