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모르는 책을 고를 때 가장 먼저 보는 건 표지이다.
제목의 어감이나 폰트가 가장 먼저 들어오고, 그 의미를 생각하며 뽑아들었을 때 보이는 전면에 따라 읽을지 말지가 결정된다.
그런 의미에서 <고양이 달>의 표지는 절대 그냥은 보고 넘어갈 수 없는 그림이다.
동화라는 말은 참 포근하다.
어른이 되어서야 그 안에 담긴 의미를 깨닫게 된 수많은 명작이나 교과서 등에서 수없이 분석당한 전래동화들이 떠오르면 비록 그 속에 담긴 어린 시절이 생각나지 않더라도 따뜻함이 전해온다.
`어른을 위한 로맨틱 메르헨`이라는 이 책은 내가 어른이 되어 처음 읽은 새로운 동화다.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는 해도 <거울나라의 앨리스>나 <어린 왕자>같은 이야기만 생각하던 나로선 무미건조한 도서관 책장 속에 꽂힌 이 알록달록한 책이 참 반가웠다.
초반에 등장하는 `나`는 검은색 이외의 색을 사용하지 못한다.
그 때문에 사랑하던 그가 지쳐 떠나버렸고 그가 남겨준 고양이 은율이 또한 떠났다.
고양이 장례식 날, 실의에 젖어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나에게 들려온 울음소리는 매일 밤 나의 꿈에서 달을 그려달라 절규하던 소년의 것이었다.
놀란 나에게 소년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노랑달 안에 그보다 작은 파랑달이, 파랑달 안에 그보다 작은 검정달이 있는 고양이 달.
그 고양이달이 보이던 바라별에서 소년은 가장 뛰어난 연주자였다.
˝바라별에서 내가 가장 연주를 잘했어. 가장 외로운 아이였으니까.˝ -p.161
늘 엄마와 아빠의 품을 그리워하던 외로운 소년 노아에게 고양이달의 눈을 한 고양이가 바라별의 누군가를 몰래 짝사랑하고 있다는 전설을 가진 고양이달은 엄마였고, 친구였고, 연인이었다.
그리고 그 밑에서 노아는 소녀를 만났다.
노아는 고양이달의 마음을 읽는 소녀를 좋아했다.
늘 고향을 그리워하던 소녀가 어느 날 고양이달과 함께 꿈처럼 사라졌고, 노아는 스승을 통해 상상하는 모든 것을 손에 쥘 수 있었던 바라별의 실체를 깨닫고 고양이달을, 소녀를 찾으러 여행을 떠난다.
크리스털별의 글로리아, 하얀 설탕별의 샤벳을 만나며 우주를 여행하던 노아는 우주의 꽃이라 불리는 아리별에 불시착한다.
별 가장자리 빨강띠에는 빨간 튤립이, 주황띠에는 주황색 오링고나무가 자라고, 하늘에 뜬 작고 노란 태양은 별 전체를 비추어 노랑띠를 채우며, 초록띠에는 나무들이, 파랑띠엔 파도들이, 남색띠엔 절벽이 있었고, 보라띠에는 세상에서 가장 눈부시게 빛나는 보석을 숨기고 있는 아리별에서 노아는 머리가 셋 달린 고양이인 아리별의 주인, 아리를 만났다.
검정 눈을 가진 모나, 파랑 눈을 가진 마레, 노랑 눈을 가진 루나.
아리마을에서 노아는 아리와 함께 지내게 되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귀여운 삽화들이 중간중간 책을 채우고 있는데 형형색색 무지개빛으로 가득한 아리별의 삽화가 절정이다.
링고와 린의 집에서 지내며 핀의 미움을 사게 된 노아는 곧 아리를 만나 루나와 친해진다.
바다와 같이 빠져드는 마레를 보며 호기심을 가졌고, 어느날 엿듣게 된 아리의 사연으로 모나에게 연민을 느끼게 된다.
노아와 세 고양이를 통해 작가는 외로움을 말하고 사랑을 이야기한다.
별신을 고쳐 소녀를 찾아 떠나야하는 노아, 노아를 친구로서 좋아하지만 마레와 모나가 더 소중한 루나, 빛을 알게 된 어둠처럼 모나가 상처받는 게 걱정되는 마레, 자신의 마음을 열어 빛을 알게 해 준 노아가 누구보다 소중해진 모나.
어영부영 미뤄진 여행을 루나와 모나에게 털어놓지 못한 채 노아는 비밀을 나눈 마레를 좋아하게 된다.
그리고 루나, 모나와 한 몸을 가진 마레가 노아를 거절하며 1권 `세 명의 소녀`의 내용은 끝이 난다.
`단 하나의 마음`과 `선물`, 이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질 지 궁금하다.
˝완전히 까맣거나 하얗기만 한 색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완전한 진실도 거짓도 존재하지 않아. 진실이 되느냐 거짓이 되느냐 하는 것은 어떤 믿음을 갖느냐에 달렸지.˝
˝네가 하는 말을 봐. 하나같이 거짓말 같다고.˝
˝말 자체로 판단해선 안 돼. 말이란 건 때론 진실이 되기도 하고 거짓이 되기도 하니까. 내가 너를 속이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가져. 그럼 나는 네게 언제나 진실일 거야.˝
˝살면서 누군가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적 있어? 혹은 누군가로 인해 네 삶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린 그런 적은? `그 누군가를 만나지 않았다면` 하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고 절대적인 인연이 네게 있었는 지를 묻고 있는 거야, 지금.˝
˝내가 너에게 그럴지 몰라. 너는 나와 친구가 되기 위해 네가 평생을 옳다고 믿어 온 것들을 통째로 버려야 할 수도 있어. 내가 믿는 가치들이 너를 끊임없이 시험에 들게 할 테니까. 의심이 언제라도 너에게 손을 내밀테니 믿는 법을 배우는 게 좋아. 의심하는 순간 나는 네가 기대한 것과 완전히 다르게 네 인생을 틀어 놓고 말테니까.˝
˝그렇지 않아. 대부분 그냥 스쳐 갔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 어떻게 될진 아무도 몰라. 그런데 알게 됐을 즈음엔 이미 되돌릴 수 없을 거야. 그러니까 지금 선택해야 돼. 날 믿을지, 믿지 않을지.˝ -p.24~25
˝저는 잠시 후 비가 되어 사라질 거에요. 그러니 지금 고백할게요. 나는 여러분을 만나서 너무나도 기뻐요. 여러분들과 함께 있는 이 순간이 내게 얼마나 큰 의미이고 행복인지 모를 거예요. 나는 지금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여러분을 사랑하고 있어요. 내 앞에 나타나 주어서 고마워요. 사랑해요.˝
˝잠시 후면 우리 다신 못 보는 거야?˝
˝앞으로 함께할 시간만 충분하다면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을 텐데.˝
˝나는 내 삶의 반을 당신과 보내고 있어요. 얼마만큼의 시간이 더 있어야 충분한 건가요? 난 곧 사라지고 없을 텐데.˝
˝그렇게 금방 사라져 버리면 친구가 필요한 순간이 있긴 해? 같이 시간을 보낼 수조차 없는데.˝
˝지금, 지금 같이 있잖아요.˝
˝나를 사랑해 줄 수 없는 건가요?˝
˝그게... 나는 너를 알지 못해.˝
˝나는 구름이고, 공기고, 빗물이에요. 강이고, 바다고, 하늘이기도 하죠. 그리고 당신을 사랑해요. 그것 말고 더 알아야 될 게 있나요?˝
˝사랑해. 구름아이.˝
˝내가 사랑의 말을 쉽게 한다고 해서 내게 진심이 아니어도 된다고 여기는 거, 그건 아니에요. 아니라고요.˝
˝시간이 더 있었다면, 나는 분명 너를 사랑했을 거야! 진심이야!˝
˝상대는 끝없이 기다려 주지 않아요. 전하지 못한 진심은 상대에겐 없는 것과 다름없어요.˝ -p.361~363

이 넓은 우주 속 무수히 많은 별들 사이에서 당신이 나의 별을 찾아주었듯, 언젠가 당신의 별에 찾아갈 행운이 주어지기를 바래본다. 설사 그렇지 못한다하여도 당신의 사랑이 늘 안녕하기를 기원한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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