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편지의 기술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오근영 옮김 / 살림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3.0
외국 소설의 번역자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다시 깨닫게 된 소설은 <레몬케이크의 특별한 슬픔>이었나, <사랑에 관한 쓸 만한 이론>이었나.
영어 문장을 유추할 수 있을 정도로 직역된 글과 성의 없는 의역, 번역체의 문장들.
하여간 이런 번역을 읽을 바엔 좀 더 언어를 공부해서 원서를 읽고 말겠다는 거다.
이 책의 번역 또한 그렇다.

한 작가의 책이 단 하나의 출판사를 통하지 않는 한 힘들다는 건 알지만 제발 한 작가의 작품은 번역자 한 명이 담당하도록 했으면 한다.
똑같은 축제도, 사람 이름도, 그리고 작가가 지어낸 신조어도 전부 어떻게 의역하는지에 따라 다른 책이 되어버린다.
분명 이전의 소설과 연관점이 있는 걸 알겠는데 이런 식의 번역은 그 답을 온통 흙탕물에 숨겨놓는다.
최소한 작가의 습관을 연구해서 전작을 참고할 용의는 없었던 걸까.

번역때문에 짜증이 난 건 둘째치고 이 소설 또한 이제까지 봐왔던 모리미 도미히코의 소설 중 가장 재미가 없었다.
무엇보다 내용이 없다.
제목따라 `연애편지`라는 테마가 관통하긴 하지만 모리타 이치로라는 인물의 편지로만 이루어져 내용이 너무 빈약하다.
어제 읽다가 잠이 들려던 걸 오늘 다시 읽은 것인데도 지지부진한 내용에 차마 끝까지 읽질 못하겠더라.
뒷부분의 이부키씨에 대한 편지에 뭔가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만 그 앞부분이 너무 지루해 도저히 넘어가고 싶지 않다.

그냥 같이 빌려온 <유정천 가족>이나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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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모르는 책을 고를 때 가장 먼저 보는 건 표지이다.
제목의 어감이나 폰트가 가장 먼저 들어오고, 그 의미를 생각하며 뽑아들었을 때 보이는 전면에 따라 읽을지 말지가 결정된다.
그런 의미에서 <고양이 달>의 표지는 절대 그냥은 보고 넘어갈 수 없는 그림이다.

동화라는 말은 참 포근하다.
어른이 되어서야 그 안에 담긴 의미를 깨닫게 된 수많은 명작이나 교과서 등에서 수없이 분석당한 전래동화들이 떠오르면 비록 그 속에 담긴 어린 시절이 생각나지 않더라도 따뜻함이 전해온다.
`어른을 위한 로맨틱 메르헨`이라는 이 책은 내가 어른이 되어 처음 읽은 새로운 동화다.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는 해도 <거울나라의 앨리스>나 <어린 왕자>같은 이야기만 생각하던 나로선 무미건조한 도서관 책장 속에 꽂힌 이 알록달록한 책이 참 반가웠다.

초반에 등장하는 `나`는 검은색 이외의 색을 사용하지 못한다.
그 때문에 사랑하던 그가 지쳐 떠나버렸고 그가 남겨준 고양이 은율이 또한 떠났다.
고양이 장례식 날, 실의에 젖어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나에게 들려온 울음소리는 매일 밤 나의 꿈에서 달을 그려달라 절규하던 소년의 것이었다.
놀란 나에게 소년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노랑달 안에 그보다 작은 파랑달이, 파랑달 안에 그보다 작은 검정달이 있는 고양이 달.
그 고양이달이 보이던 바라별에서 소년은 가장 뛰어난 연주자였다.

˝바라별에서 내가 가장 연주를 잘했어. 가장 외로운 아이였으니까.˝ -p.161

늘 엄마와 아빠의 품을 그리워하던 외로운 소년 노아에게 고양이달의 눈을 한 고양이가 바라별의 누군가를 몰래 짝사랑하고 있다는 전설을 가진 고양이달은 엄마였고, 친구였고, 연인이었다.
그리고 그 밑에서 노아는 소녀를 만났다.
노아는 고양이달의 마음을 읽는 소녀를 좋아했다.
늘 고향을 그리워하던 소녀가 어느 날 고양이달과 함께 꿈처럼 사라졌고, 노아는 스승을 통해 상상하는 모든 것을 손에 쥘 수 있었던 바라별의 실체를 깨닫고 고양이달을, 소녀를 찾으러 여행을 떠난다.

크리스털별의 글로리아, 하얀 설탕별의 샤벳을 만나며 우주를 여행하던 노아는 우주의 꽃이라 불리는 아리별에 불시착한다.
별 가장자리 빨강띠에는 빨간 튤립이, 주황띠에는 주황색 오링고나무가 자라고, 하늘에 뜬 작고 노란 태양은 별 전체를 비추어 노랑띠를 채우며, 초록띠에는 나무들이, 파랑띠엔 파도들이, 남색띠엔 절벽이 있었고, 보라띠에는 세상에서 가장 눈부시게 빛나는 보석을 숨기고 있는 아리별에서 노아는 머리가 셋 달린 고양이인 아리별의 주인, 아리를 만났다.
검정 눈을 가진 모나, 파랑 눈을 가진 마레, 노랑 눈을 가진 루나.
아리마을에서 노아는 아리와 함께 지내게 되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귀여운 삽화들이 중간중간 책을 채우고 있는데 형형색색 무지개빛으로 가득한 아리별의 삽화가 절정이다.

링고와 린의 집에서 지내며 핀의 미움을 사게 된 노아는 곧 아리를 만나 루나와 친해진다.
바다와 같이 빠져드는 마레를 보며 호기심을 가졌고, 어느날 엿듣게 된 아리의 사연으로 모나에게 연민을 느끼게 된다.
노아와 세 고양이를 통해 작가는 외로움을 말하고 사랑을 이야기한다.
별신을 고쳐 소녀를 찾아 떠나야하는 노아, 노아를 친구로서 좋아하지만 마레와 모나가 더 소중한 루나, 빛을 알게 된 어둠처럼 모나가 상처받는 게 걱정되는 마레, 자신의 마음을 열어 빛을 알게 해 준 노아가 누구보다 소중해진 모나.
어영부영 미뤄진 여행을 루나와 모나에게 털어놓지 못한 채 노아는 비밀을 나눈 마레를 좋아하게 된다.
그리고 루나, 모나와 한 몸을 가진 마레가 노아를 거절하며 1권 `세 명의 소녀`의 내용은 끝이 난다.
`단 하나의 마음`과 `선물`, 이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질 지 궁금하다.

˝완전히 까맣거나 하얗기만 한 색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완전한 진실도 거짓도 존재하지 않아. 진실이 되느냐 거짓이 되느냐 하는 것은 어떤 믿음을 갖느냐에 달렸지.˝
˝네가 하는 말을 봐. 하나같이 거짓말 같다고.˝
˝말 자체로 판단해선 안 돼. 말이란 건 때론 진실이 되기도 하고 거짓이 되기도 하니까. 내가 너를 속이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가져. 그럼 나는 네게 언제나 진실일 거야.˝

˝살면서 누군가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적 있어? 혹은 누군가로 인해 네 삶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린 그런 적은? `그 누군가를 만나지 않았다면` 하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고 절대적인 인연이 네게 있었는 지를 묻고 있는 거야, 지금.˝

˝내가 너에게 그럴지 몰라. 너는 나와 친구가 되기 위해 네가 평생을 옳다고 믿어 온 것들을 통째로 버려야 할 수도 있어. 내가 믿는 가치들이 너를 끊임없이 시험에 들게 할 테니까. 의심이 언제라도 너에게 손을 내밀테니 믿는 법을 배우는 게 좋아. 의심하는 순간 나는 네가 기대한 것과 완전히 다르게 네 인생을 틀어 놓고 말테니까.˝
˝그렇지 않아. 대부분 그냥 스쳐 갔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 어떻게 될진 아무도 몰라. 그런데 알게 됐을 즈음엔 이미 되돌릴 수 없을 거야. 그러니까 지금 선택해야 돼. 날 믿을지, 믿지 않을지.˝ -p.24~25


˝저는 잠시 후 비가 되어 사라질 거에요. 그러니 지금 고백할게요. 나는 여러분을 만나서 너무나도 기뻐요. 여러분들과 함께 있는 이 순간이 내게 얼마나 큰 의미이고 행복인지 모를 거예요. 나는 지금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여러분을 사랑하고 있어요. 내 앞에 나타나 주어서 고마워요. 사랑해요.˝
˝잠시 후면 우리 다신 못 보는 거야?˝
˝앞으로 함께할 시간만 충분하다면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을 텐데.˝
˝나는 내 삶의 반을 당신과 보내고 있어요. 얼마만큼의 시간이 더 있어야 충분한 건가요? 난 곧 사라지고 없을 텐데.˝
˝그렇게 금방 사라져 버리면 친구가 필요한 순간이 있긴 해? 같이 시간을 보낼 수조차 없는데.˝
˝지금, 지금 같이 있잖아요.˝

˝나를 사랑해 줄 수 없는 건가요?˝
˝그게... 나는 너를 알지 못해.˝
˝나는 구름이고, 공기고, 빗물이에요. 강이고, 바다고, 하늘이기도 하죠. 그리고 당신을 사랑해요. 그것 말고 더 알아야 될 게 있나요?˝

˝사랑해. 구름아이.˝
˝내가 사랑의 말을 쉽게 한다고 해서 내게 진심이 아니어도 된다고 여기는 거, 그건 아니에요. 아니라고요.˝

˝시간이 더 있었다면, 나는 분명 너를 사랑했을 거야! 진심이야!˝
˝상대는 끝없이 기다려 주지 않아요. 전하지 못한 진심은 상대에겐 없는 것과 다름없어요.˝ -p.361~363










이 넓은 우주 속 무수히 많은 별들 사이에서 당신이 나의 별을 찾아주었듯, 언젠가 당신의 별에 찾아갈 행운이 주어지기를 바래본다. 설사 그렇지 못한다하여도 당신의 사랑이 늘 안녕하기를 기원한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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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빙과, 그러니까 요네자와 호노부의 고전부 시리즈 그 네 번째 이야기이다.
빙과는 사실 애니메이션이 나온다는 소리를 듣고서야 알게 된 작품이었다.
그로부터 몇년, 드디어 <빙과>를 읽었고 <바보의 엔드크레디트>, <쿠드랴프카의 차례>까지 쭉 읽어나가며 `빙과` 애니까지 정주행을 끝낸 게 작년 여름이었다.
그리고 요즘 신간이 마구 들어와 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우리 동네 도서관에 드디어 네 번째 시리즈가 입고된 걸 보고 당장 뽑아들었다.

내용은 `새해 문 많이 열려라`만 빼고는 이미 애니메이션 내에 등장한 이야기이므로 새롭진 않았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1학기, 여름방학, 2학기, 겨울방학, 3학기, 봄 방학으로 이뤄진 이 이야기들은 애니를 볼 때도 느꼈지만 약간 비하인드 스토리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절대 빠져선 안되는 이야기임에는 틀림없다.
무려 호타로가...!

2012년에 방송된 애니메이션 `빙과` 1기 또한 이 `멀리 돌아가는 히나` 에피소드를 끝으로 막을 내렸는데 그 마지막 장면은 벚꽃이 날리는 풍경과 함께 소설보다 훨씬 예쁘게 표현되었다.
애니메이션을 먼저 보고 원서를 읽는 건 처음인 것 같은데 볼수록 쿄애니가 `빙과`를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 느껴진다.
원작의 내용, 대사까지 그대로 반영하면서 사소한 부분까지도 정말 세심하게 신경쓴 게 티가 날 정도.
OST도 딱 맞고 작화는 물론이며 성우는 말하기 입 아플 정도로 좋다.
`키니나리마스`에서 호불호가 갈리고, 소설의 분위기처럼 애니 역시 잔잔함을 띄고 있는 게 취향이 아닌 사람도 많지만 나한테는 정말 모든 게 완벽한 애니메이션이었다.
진심으로 `빙과`를, 쿄애니를 보고 나면 다른 애니메이션은 절대 눈에 안 찬다.

아무튼 그 사이 작가님은 단편집 <만원>으로 작년 제27회 야마모토 슈고로상을 수상하셨다는 내용이 작가 설명에 덧붙여져 있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다른 작품은 읽어본 적이 없는데 수상 경력이나 작가가 `고전부 시리즈`를 뒷전으로 하는 걸 느낄 때면 꼭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마구 샘솟는다.
그나저나 일본에서 2010년에 출간된 소설이 4년이나 지나서 한국에 번역된 건 참 개탄스럽다.
그리고 한 번도 의식한 적 없었는데 작중에서 호타로가 2001년의 발렌타인 데이를 언급할 때는 말 그대로 충격.
그렇지, 무려 14년 전에 <빙과>가 처음 나왔었지.
일본에선 이미 5권째 고전부 시리즈인 <두 사람의 거리추정> 또한 2010년에 발간되었다는데 그건 또 언제 나올까.
그 속도로 과연 `빙과` 2기는 나올 수 있을까.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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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고등학생 탐정 이야기는 도저히 안 보고는 못 견딜 만큼 매력적인 조합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코난이 그러하고, 김전일과 빙과의 호타로 등등 수많은 시리즈를 지나면서도 더디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그들은 몇 년이 지나건 늘 고등학생으로만 머물러 있다.

박하익 작가를 처음 봤던 건 디지털 작가상 역대 수상작 목록이었다.
박하익 작가의 이름과 <종료되었습니다>라는 책의 제목이 콕 뇌리에 박혀 있었고, 한참 추리소설에 빠져있던 때 책을 고른답시고 이리저리 인터넷을 뒤지다 발견한 박하익의 `선암여고 탐정단`이란 글씨를 보고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책을 읽고 말리라 결심하고 있었다.
그리고 동네 도서관에 책이 없는 걸 확인하고 기다리던 중 드라마가 제작된다는 걸 알게되었고, 마침내 이번주 도서관에 누구도 손대지 않은 빳빳한 신간으로 입고되어있는 시리즈 두 편을 발견하고선 주저없이 뽑아 들고왔다.

사설이 길었다.
그러니까 그 구김없는 표지만큼 설렘이 큰 책이었다.
마치 기다려왔던 택배를 받을 때의 기분처럼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책을 펼쳐든 순간 보이는 목차가 신선했다.
거기엔 무려 선암여자고등학교 1학년 2학기 중간고사 미스터리영역의 문제지가 실려있다.

문제1. 신종 변태가 이동한 자취의 방정식을 구하고 그에 접하는 돌멩이를 날려라.
문제2. 비밀 파일과 골분 항아리의 연립방정식을 풀고 사라진 핑크 토끼의 좌표를 구하여라.
문제3. 제시된 명제들의 참과 거짓을 구별하여 투명 미로를 미분하라.
문제4. 두 가지 독립 사건에 희생당한 검은 콩 두유의 원한을 풀고 총격의 진범을 잡아라.
문제5. 무한급수의 레플리카가 수렴하는 합을 구하고 살인자를 판별하라.

여기서부터 직감했다.
나는 이 책을 사랑하게 될 거란 걸.

주인공은 당연히 선암여고 탐정단.
고등학교 1학년에 박사 과정을 마친 천재 쌍둥이 오빠에게 열등감을 가진 채율에게 `무는 남자 사건`을 계기로 미도, 성윤, 예희, 하재로 구성된 선암여고 탐정단이 접근한다.
우여곡절 전혀 관심없던 채율은 탐정단에 들어가고 그 중심에서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는 이야기.

여고생은 늘 작품 속에서 비현실적으로 여성스럽게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추리소설의 여고생은 대개가 피해자로 등장하기에, 그 여고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탐정 이야기는 매우 새롭다.
게다가 하루에 12시간 이상을 학교에 붙들려 자율 아닌 자율 학습을 하는 우리나라 고교생이라면 말 다했다.
평범한 고딩에게 추리소설의 소재가 나올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 소설은 그 고등학생이라는 점을 아주 철저히 활용하고 있다.
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수사를 한다.
추리소설하면 떠올릴 만한 굵직한 사건들은 이들의 몫이 아니었다.(물론 그들은 원했겠지만.)
학교에 갇힌 소녀들의 호기심은 기껏해야 동네 변태를 잡고 선배의 토끼인형을 찾아주며 왕따 문제를 해결하는 수준인 것이다.
그 별 것 아닌 어찌보면 평범한 소재에 작가는 사연을 더한다.
그 사연 또한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이며 그 부분에서 굉장히 여고생의 시선을 잘 담아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탐정단이 하라온과 엮이기 시작하기 전 책의 중반부까지는 추리 요소를 섞은 청춘소설에 가까웠다.
하지만 학교를 벗어나고 느닷없는 총기사건을 겪게 되며 탐정단은 조금씩 제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하고 그 폭을 조금씩 넓혀나간다.

사실 악마의 대본 부분은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애매하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그의 죄가 애매하듯 결론 또한 애매하다.
분명한데 확실하지 않은 결말을 내고 탐정단은 새 책에서 2학년 1학기를 맞는다.
2학년 1학기 중간고사 추리논술영역의 문제지는 이러하다.

문제1. 다음 <보기>를 읽고 `선암학사의 여학생 귀신`의 세가지 유형을 참고하여 각각 알맞은 해결책을 제시하시오.
문제2. 그룹 `슈가 걸즈`의 래인의 비밀을 파악하고, 하라온의 숨겨진 의도와의 연관성을 서술하시오.
문제3. 사라진 책가방이 다시 나타난 원인을 분석한 뒤, 채율이 라온과 체결한 조약의 정당성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시오.

문제만 봐도 알 수 있듯 <탐정은 연애금지>에서는 본격적으로 스케일이 커진다.
이쯤되면 `평범하지 않은` 게 아니라 `특별`한 거다.
스포는 생략하고 결론적으로 행동 반경이 넓어진 만큼 활약할 사건 또한 많아졌다.
그리고 제목만큼 로맨스 역시 깊어졌다.
사실 어리석게도 끝까지 난 책가방의 주인이 수능을 지나면 골든퀘스트를 깨고 돌아올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결말은 예상을 보기 좋게 뒤엎으며 일종의 충격을 남겼지만 추리소설을 청춘소설처럼 여긴 대가인 셈이니 뭐.

일본 작품은 수없이 읽었어도 우리나라의 `추리소설`하면 당장 떠오르는 게 없다.
특히나 캐릭터를 전면에 세운 소설은 더더욱 보기 힘들다.
그렇기에 이 소설이 택한 방식은 탁월하다.
개성넘치는 캐릭터들은 이야기가 클리셰 덩어리에 깔려 지루해지도록 절대 놔두질 않고, 짧지만 굵게 설명하는 트릭은 그 캐릭터들이 수사한 과정에 의해 특별해진다.
때로 독자에게 트릭을 숨기는 에피소드도 재밌지만 그들이 가는 길을 생생히 보여주어 독자를 독자가 아닌 탐정단의 일원이 되도록 만든다.
선암여고 탐정단의 아이들은 추리소설을 심각하게 만들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들이 여고생 탐정단이라는 위치를 너무나도 잘 활용해 선생과 경찰의 수사망이 닿지 않는 범위를 건드리는, 누구도 따르지 않고 오로지 그들만의 수사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보면 될 거 같다.

조금 아쉬운 건 주인공인 탐정단과 엮이는 굵직한 인물들이 대부분이 조력자인 것.
탐정단을 적대시하거나 무시하는 대다수의 학생들은 많지만 이들이 앞을 전진해나가는데 나서서 막을 라이벌은 없다.
셜록 홈즈에겐 모리아티 교수가, 김전일에겐 지옥의 광대, 그리고 코난(신이치)에겐 검은 조직(괴도키드는 포지션이 애매하고 애초에 쫓는 목표도 다르므로 제외.) 등.
무릇 탐정에겐 꼭 숙적이 필요한 법이다.
이제 2권, 겨우 2학기 째, 다음 이야기가 더욱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두 권을 그 자리에서 단숨에 읽어내릴 만큼 재밌었다.
아무래도 사건이란 건 피해자와 가해자가 존재하기에 본질은 결코 유쾌한 상황이 아닌데도 즐거웠다.
그만큼 참 안타깝기도 하더라.
이게 소설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으니 현실은 어떨지.
나올 이야기가 남았다는 점에서 아직 2학년인 건 좋은데 이 아이들도 3학년이 될 생각을 하니 슬프다.
정말 고등학생들한테 이 정도의 낙이라도 주어지면 좋겠다.
적어도 자신이 원하는 취미 생활 하나는 할 수 있게.
그냥 좀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드라마도 꼭 봐야겠다.
책도 다음편이 얼른 나오면 좋겠다.
사야지.
또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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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메로스 - 모리미 도미히코의 미도리의 책장 7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시작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5.0
작가 설명엔 분명 `신역` 달려라 메로스 라고 적혔는데 정작 책에는 어딜 찾아봐도 앞에 그 말이 붙질 않는다.
신역이 무슨 뜻인지는 아는데 `달려라 메로스`를 몰라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 때까지도 작품을 이해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뛰어 넘겼던 작은 글씨를 정독하고서야 그 의미를 깨달았다.
그러니까 이 책은 교과서에 등장하는,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선 황순원이나 김유정, 현진건 등등 이름만 들어도 알 작가들의 단편을 본인의 입맛대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정말 어떻게 이런 발상을.(절레절레)

참 알면 알수록 신기한 작가다.
이런 아무도 상상 못할 일을 자처하면서 자신의 이야기에 원작을 교묘하게 버무려낸다.
사실 원작을 몰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어떤 부분을 땄는지, 뭘 말하려고 했는지는 알 만 하다.
여기저기 널부러진 색색의 천쪼가리 같은 각자의 이야기를 퀼트처럼 요리조리 엮어내는 게 보통 솜씨가 아니다.
꼭 그가 사는 교토에 이 모든 인물이 정말 존재하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
혹시 몰라, 그만의 교토에서 살고 있는 인물들의 실화를 자신의 문체를 빌려 세상에 내놓는 지도.

이쯤하면 눈치챘겠지만 역시다.
교토에서 또 그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전작들에서 늘 만났던 그 사람들을 포함한 인물들과, 그 대학교를 포함한 교토가 다시 눈앞에 나타나는 거다.
이번엔 명작이라 불리는 고전들의 옷을 걸치고.

이 작품 전체가 그러하지만 `벚나무 숲 만발한 벚꽃 아래`는 특히 이제까지의 그의 방식과 문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띠고 있다.
굳이 유사함을 찾자면 앞에서 등장하는 사이토와 다다미 넉장 반 정도.
사실 작가가 원래 쓰던 이야기는 이런 류의 정적인 이야기들이었다고 하는데 확실히 그를 알려 준 작품들을 읽고 보면 이쪽은 싱겁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이런 글도 쓸 줄 아는 작가라는 게 좋다.
교토와 대학 생활(아마도 교토대)을 다룬 모든 그의 이야기의 남자 주인공이 비슷하다는 것에서도 느낄 수 있듯 이름이 부여되지 않은 모든 인물은 흡사 작가 자신처럼 읽힌다.
특히 이 책은 어쩌면 본인이 하고 싶었을 글들로 쓰인, 작가 자신을 가장 많이 투영시킨 이야기라는 게 느껴진다.
마지막 `햐쿠모노가타리`의 나는 무려 `모리미`이니 말이다.

혹시 그만의 문체와 그의 작품이 주는 엉뚱한 재기발랄함을 기대한(초반의 나 포함) 독자들에겐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작품일 것이다.
하지만 `달려라 메로스`에서 그 매력을 잃지 않았음을 마치 팬서비스처럼 보여줘 웃음을 자아내고, 나머지 두 장에서 감정의 여운을 남긴다.
솔직히 글을 읽는 입장에선 그의 특유의 고루한 문체는 술술 읽힌다는 장점과 함께 사족이 엄청 많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 불가피하게 문단의 시작에서 끝으로 단숨에 뛰어넘도록 만드는 경우가 있는데 이 작품은 그렇지 않다.
과감히 버린 그 문체 덕에 조금 심심해졌지만 이 마니아 층 바깥의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는 가능성을 남겼다.
(원작을 아는 사람 또한 끌어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대담한 방법을 택한 게 실로 작가답다.)
다른 이야기들과 유사하면서도 다른, 하여튼 새로운 작품이다.

이 책을 진지하게 논하려면 물론 이 다섯 가지 이야기의 원작을 읽어야 할 것이다.
원작을 읽고 나면 오히려 별로라는 말을 담게 될 지도 모르지만, 이 책을 읽고 원작을 찾아 읽고 싶은 마음을 주는 것만으로도 꽤 성공적인 리메이크였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쓰다가 깨달았는데 이 작품 곱씹을수록 놀랍다.
1. 일단 작가는 특유의 문체가 아닌 자신의 새로운 글을 선보이면서 차츰 독자들이 익숙해질 수 있는 물꼬를 틔웠다.
2. 그로 인해 벽처럼 느껴지던 그만의 문체는 희석되어 팬이 아니던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3. 또한 그 문체를 선보이기 위해 택한 방식이 무려 고전의 리메이크. 교과서에 실리는, 명작이라 일컬어 지는 작품들을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호기심을 갖기 마련. 자신을 모르던 사람들도 자신의 글을 읽을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다.
4. 거기다 `달려라 메로스`에서 작가 특유의 즐거움을 선사하며 자신의 팬들 또한 만족시켰다.

이 모든 걸 과연 작가가 계산해서 글을 썼는지는 알 길이 없다.
원작을 읽지 않았기에 과연 3번의 사람들이 다음 작품을 읽을 수 있도록 만족감을 줬는지도 알 수 없다.
작가에 빠져도 너무 빠진 내가 망상의 결과로 혼자 너무 앞서 나간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진짜 이 모든 게 계산된 것이라면?
정말 소름끼칠 정도로 사랑스러운 작가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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