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뮤즈
제시 버튼 지음, 이나경 옮김 / 비채 / 2017년 9월
평점 :
4.8
뮤즈가 꼭 여성일 필요는 없다.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선사하는 존재라는 의미의 뮤즈, 성별을 지칭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여성을 떠올리게 되는 뮤즈라는 단어의 고정관념을 깨는 것에서 시작하는 책이다.
1967년 오델은 친구인 신스와 함께 영국의 식민지였던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5년 전 런던으로 와 돌시스 구두점에서 일하고 있다.
고향에서 많은 공부를 하고 부푼 꿈을 안고 온 런던이건만 고작 손님에게 구두를 신겨주는 자신의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 오델은 꾸준히 큰 회사들에 지원서를 넣었지만 피부색으로 인해 매번 면접에서 떨어지고 만다.
그러던 어느 날 오델은 마저리 퀵이라는 사람에게서 자신을 채용을 하겠다는 편지를 받게 되고, 비록 타이피스트지만 주급 10파운드를 받으며 스켈턴 미술관에서 일하게 된다.
바라던 직장을 얻어 행복한 일상을 보내던 중 친구인 신스의 결혼 뒤풀이에서 오델은 로리 스콧이라는 백인 남성과 만나게 된다.
약간의 술 기운 때문인지 둘은 처음 만났음에도 서로의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오델은 로리의 어머니가 2주 전 돌아가셨으며 그는 양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아서 어머니가 그에게 남긴 그림만을 들고 집을 나왔단 걸 알게 된다.
한 편에 한 소녀가 잘린 머리를 들고 있고 다른 한 편에는 웅크리고 있는 사자가 그려진 그림을 본 오델은 그 그림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는다.
로리가 오델을 찾아 사자 소녀들이라 부르는 그 그림을 들고 스켈턴 미술관으로 온 날, 관장인 리드는 그림에 관심을 보이고 마저리는 그림을 보고 경악하며 미술관을 뛰쳐나간다.
I.R 이라는 서명이 적힌 그림에 대해 리드가 조사한 결과 그림은 이삭 루블레스라는 에스파냐의 화가가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며 사자 소녀들을 배경으로 이삭과 환히 웃는 한 여성이 찍힌 사진 하나를 보여준다.
1936년 올리브는 가족들과 함께 런던에서 에스파냐 말라가로 와서 살게 된다.
아름다운 엄마 세라와 유대인 미술상인 아빠 해럴드에게 올리브가 숨기고 있는 비밀은 바로 그녀가 솔레이드 미술학교에서 입학 허가를 받을 만큼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이고, 가족에게 말도 못한 채 그 입학을 포기하고 에스파냐로 따라왔단 것이다.
올리브의 집에서 하녀로 일하기 위해 테레사와 그의 오빠 이삭이 찾아온 날, 올리브는 이삭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이삭을 만난 후 전과는 전혀 다른 느낌과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색으로 그림을 그리게 된 올리브는 테레사와 친해지며 테레사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았고, 테레사가 들려준 성녀 루피나의 전설을 듣고 ‘우물 속에 산 후스타’라는 그림을 그리게 된다.
어느 날 세라가 해럴드에게 선물로 주겠다며 이삭에게 자신의 그림을 그려달라 말하자 올리브는 질투심에 자신도 함께 그려달라고 하게 되고, 드디어 이삭이 그림을 공개하는 날 테레사는 몰래 그림을 바꿔치기 해 이삭의 그림 대신 올리브의 그림을 선보인다.
해럴드는 이삭의 그림에 찬사를 보내며 밀밭의 여인들이라는 이름으로 그림을 런던에 팔기로 결정하고, 올리브는 자신이 그린 그림이라고 말하라는 테레사와 이삭의 말을 무시하고 아버지를 골릴 겸 이삭에게 그가 그린 것으로 해달라 부탁한다.
거절하는 이삭에게 자신이 그린 그림이라면 해럴드가 저렇게 좋아할 리가 없으며 이삭이 하는 일에 그림을 판 돈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이번 한 번만이라는 조건을 건다.
관장인 리드는 스켈턴 미술관에서 로리의 사자 소녀들과 함께 다른 이삭 루블레스의 그림을 초청해 사라진 세기라는 이름으로 전시회를 열기로 결정하고 마저리는 어떤 이유에선지 전시에 찬성하지 않는다.
로리와 점차 가까워진 오델은 로리가 미술관에서 그림에 대해 한 말들과 다른 사실에 대해 알게 되고 그를 믿지 말라는 마저리의 말을 떠올린다.
한편 오델은 마저리의 도움으로 오랜 꿈인 작가가 되었고, 마저리가 우연히 사자 소녀들이 이삭이 그린 그림이 아니라고 한 말에 자꾸만 로리와 그림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된다.
올리브는 이삭에게 점차 빠져들게 되고 조울증을 앓는 엄마 세라가 점차 안정되는 걸 느끼면서 에스파냐에 줄곧 머물고 싶어 한다.
런던에서 이삭의 그림을 좋은 가격에 팔고 이삭의 그림에 큰 기대감을 품게 된 해럴드는 새로운 작품을 재촉하고 당황하는 이삭에게 올리브는 자신의 또 다른 그림이 있다며 ‘과수원’을 보여준다.
화를 내는 이삭을 보며 절망하는 올리브에게 테레사는 속상해하지 말라며 위로를 하지만 올리브는 이삭이 화를 내면 자신은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 올리브를 위해 테레사는 직접 항구로 가 런던으로 올리브의 그림을 보내주기로 하고 올리브는 몰래 자신이 그린 이삭의 그림을 이삭이 그린 자화상인 것처럼 속여 함께 보낸다.
그리고 테레사와 자신을 모델로 하여 올리브는 ‘우물 속에 산 후스타’의 연작인 ‘루피나와 사자’를 그리게 되고, 그림의 제작 과정을 보고 싶다는 후원자의 제안에 올리브는 이삭과 함께 테레사의 카메라 앞에 선다.
이야기는 오델과 올리브라는 인물을 앞세워 1967년의 영국 런던과 1936년의 에스파냐 말라가를 번갈아가며 보여준다.
작가가 꿈인 오델과 화가를 꿈꾸었던 올리브의 이야기는 전혀 겹쳐지지 않을 듯 평행선을 달리다가 이삭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면서 조금씩 만나기 시작한다.
마저리와 로리가 숨기는 비밀, 올리브의 이삭을 향한 마음, 로리의 엄마와 올리브의 가족인 슐로츠 가의 종적까지, 이 모든 것들에 오델의 호기심이 바싹 붙으며 하나씩 밝혀지는 이야기는 결국 절정을 향해 쉴 틈없이 달려간다.
에스파냐의 내전을 배경으로 이삭과 올리브의 이야기가 비극을 맞이하고 오델은 말기암에 걸린 마저리를 재촉해 점점 진실에 다가간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만나는 순간, 동시에 모든 것이 마무리되며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오델의 말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생각보다 두꺼운 책장에 지레 겁먹었지만 오델, 로리, 신스, 마저리, 리드 그리고 올리브, 이삭, 테레사, 세라, 해럴드까지 단 10명의 주요 인물들이 이야기를 꽉 채워 쉽고도 가볍게 이야기 속으로 파고들 수 있었다.
잔혹하고 비참한 누군가의 결말이 이야기를 온통 진득하게 물들이지만 어쩌면 어중간하다고 느낄 만큼 막연하기만 한 어두움은 아니었다.
마저리에 이어 진실을 손에 쥔 오델이 오랜 시간이 지나 털어놓은 마지막 말은 엔딩이라는 걸 믿기 힘들게 허무하게 느껴지지만 또 한편으로는 결국 살아남은 것이 그녀이기에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매듭짓지 않았다고 이야기를 낮게 보려면 결국 시작부터 모든 것을 전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판단해야 한다.
그러기엔 안타까우면서도 비관적인 이 이야기가 그 루피나와 사자 그림의 금박처럼 빛이 나서, 가장 불행하진 않지만 결코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는 이야기 속 인물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채로운 물감처럼 도드라져서 자꾸만 잔상이 남는다.
“여성을 뮤즈로 이용하고, 많은 경우에 그 뮤즈를 파괴하는 남성 예술가에 대해서 다루어보고 싶었습니다. 남성들이 붓과 물감, 돈과 지위를 손에 넣는 동안, 여성의 몸은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종종 누드로 대상화되었고, 이것이 미술사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남성은 원하는 것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고, 그들의 목소리로 여성의 이야기를 전해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무엇보다, 연애와 욕망을 그들 자신을 창조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으로 삼은 두 여성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성은 오랜 세월 다른 여성과 침묵의 공동체를 형성함으로써 지지받고 영감을 얻어왔습니다. 그리고 남성으로부터의 언어적, 신체적 폭력에 직면했을 때, 공모하고 연대해왔습니다. 남성들은 수백 년 동안, 여성의 삶을 문자 그대로 통제해왔습니다. 여성은 남성의 재산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과거의 역사가 아닙니다. 현재도 지구 곳곳에서 이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소설에서 완전한 자유, 재정적 독립, 그 누구에게도 의존할 필요가 없는 상태, 남성이 여성의 삶 무대 가운데에 서지 않는 세상, 여성이 섹스와 고독 둘 다 고를 수 있는 세상의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남성이 이런 여성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세상의 가능성도 제시했습니다. 오히려, 남성 스스로 자신에게 무엇이 이로운지 안다면 그 세상을 축복하고, 함께 혜택을 누리게 될 겁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여성은 얼마나 놀라운 존재인지요.
세상에 유일한 목소리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불협화음을 수용할 공간 또한 충분합니다. 그리고 이 책 역시 그 중 하나입니다.”
서문에서 작가의 말부터 이 책은 페미니즘 도서임을 여실히 드러낸다. 하지만 서문이 없었다면 사실 꽤 모르고 지나쳤을 만큼 이야기 자체가 잘 짜여져있기 때문에 마냥 페미니즘만으로 채워진 책은 아니다.
다만 여성을 주인공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서 적절하게 고개를 드는 요소들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상징하는 바가 거대하게 느껴진다.
단순히 남성을 폄하하거나 얕잡아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이럴 수도 있다는 하나의 역전된 가능성을 시대상에 기대어 풀어놓은 이야기, 나는 책을 읽으면서 이 이야기야말로 가장 정교하면서 완벽한 미러링이 아닐까 생각했다.
길고 긴 이야기 끝에 비록 원하던 결말은 아닐지언정 완성되어 정확히 놓여졌기에 만족스럽다.
마음을 끌었던 아름다운 책의 표지처럼 아로새겨지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배워야 하는 지금의 나는 사실 이 책의 모든 내용을 받아들이지 못한 걸지도 모른다.
함축적인 의미를 찾기 보다 이야기에 집중해버린 탓에 더 중요한 것들을 놓쳐버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기에 <뮤즈>는 언젠가의 내가 꼭 다시 읽길 바라는 책이 되었다.
부디 아름답게 기억하지 않길, 괜찮았다 기억되지 않길.
아버지가 화가를 몇 명이나 파는지 알아요? 지난번에 세어보았을 때, 스물여섯 명이었어요. 그 중에 여자가 몇 명이나 되는 줄 알아요, 이삭? 없어요. 한 명도 없다고요. 여자들은 ‘할 수가’ 없어요. 여자들에겐 ‘비전’이 없어요. 내가 알기론 눈도 있고, 손도 있고, 심장도 있고, 영혼도 있지만. 나는 기회도 얻기 전에 실패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