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긴 변명
니시카와 미와 지음, 김난주 옮김 / 무소의뿔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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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일본 영화 특유의 색감과 분위기는 평소엔 너무 평면적으로 느껴져서 손이 잘 안 가다가도 가끔 이렇게 눈에 확 띄는 때가 있다.
막상 보면 생각보다 밋밋한 게 영 집중을 못하게도 만들지만 그게 또 매력이라는 듯 이따금 생각이 난다.
이 책은 그런 일본 영화 같은 소설이다.

기누가사 사치오는 동명의 유명 야구 선수로 인해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이름을 싫어했다.
늠름한 야구 선수 사치오와는 달리 곱상하고 유약한 자신의 외모는 놀림감이 되었고 사치오는 그 이름을 증오하면서도 그런 자신의 외모를 미워한 적은 없었다.
사치오와 비교되지 않으려면 절대 야구 선수는 하지 말아야지 생각하던 사치오는 글을 쓰기로 결심하고 작가를 꿈꾼다.
그리고 대학 시절 우연히 갔던 미용실에서 몇 번인가 얼굴이 익었던 후배 다쓰코를 만나고 그는 그녀의 이름을 떠올리지 못해 그녀에게 실망감을 안긴다.
그 순간 다쓰코에게 함락되었다는 사치오는 다쓰코에게 구애를 하고 당신에게는 세상에서 내가 가장 잘 맞아 라는 말로 프로포즈를 하며 둘은 결혼한다.
졸업 후 잡지사에 다니며 화보 사진을 찍는 일에 신물을 내던 사치오에게 다쓰코는 글을 쓰라며 권유하고 그 후로 10년 간 사치오의 뒷바라지를 하며 미용사로 일한다.
그렇게 쓰무라 케이 라는 이름으로 데뷔하며 작가로서 성공하게 된 사치오에게 이제 다쓰코는 너무나도 큰 벽처럼 느껴진다.
둘의 사이는 서로에게 그 무엇도 기대하지 않는, 세상에서 가장 먼 부부였다.
그리고 아내인 다쓰코가 여행을 떠난 날, 사치오는 불륜 상대인 편집자를 집으로 끌여 들어 밤을 보내던 중 갑작스레 경찰에서 온 전화로 다쓰코가 사고로 인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치오는 사고로 인해 다쓰코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전혀 슬프지 않다.
아내의 친구였던 유키와 여행을 갔던 것도, 어디로 갔는 지도 몰랐기에 사고를 낸 버스 회사 사장에게 분개하며 오열하는 유키의 남편 요이치에게 거리감을 느낀다.
그렇게 홀로 남게 된 사치오는 다쓰코의 미용실 직원들에게 장례 절차에 대해 알리지 않았음에 쓴 소리를 듣고, 주변에서 건네는 걱정과 위로에 신물을 느끼며 아무도 없는 집에서 머문다.
정리가 되어가던 중 우연히 걸려 온 전화로 요이치와 그의 아들 신페이, 딸인 아카리를 다시 만나고 식당에서 갑각류를 먹고 알러지 쇼크를 일으킨 아카리로 인해 신페이를 집까지 데려다 주게 된다.
요이치와 신페이, 아카리와 갑작스레 엮이게 된 사치오는 엄마인 유키가 없어 신페이가 학원에도 못 가고 아카리를 보며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자신이 아카리를 봐주겠다 선뜻 나선다.
그렇게 일주일에 두 번 신페이가 학원 가는 날에 아카리를 만나 함께하며 사치오는 자신이 몰랐던 다쓰코를 만나고, 그들과 어울리며 점점 변해 간다.

사치오는 오랜만에 끝까지 읽어도 전혀 정들지 않는 캐릭터였다.
어떻게 저렇게 끝까지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심에 자격지심으로 뒤덮인 인물이 주인공이라니.
갑작스레 떠난 사람의 부재가 이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인데 그를 상징하는 듯한 요이치 가족 이야기가 과연 또 그것을 나타내는 게 맞냐 하면 그건 또 모르겠다.
이쪽에서 부족한 건 그쪽에서 채워야 하는 게 맞을 텐데 그렇게 되었는가 따져보면 아닌 것 같다.
사치오는 분명 요이치 가족을 만나 변했고 그런 자신에게 뿌듯함을 느끼는데 요이치 가족은 과연 사치오로 인해 무엇을 얻었는지, 단순히 아이를 봐주는 손 하나 혹은 의존할 만한 대상이 정말 그 가족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 미심쩍다.
문제의 원흉은 어떻게 보든 사치오인데 그런 사치오는 떠난 자신의 부인보다 가족 같은 존재를 얻었고, 그로 인해 안정감을 느끼고 변화되었다 우쭐해하며 아내에게 내가 잘못했었다는 변명 같은 편지를 남긴다.
용서할 사람은 없는데 자신은 그런 다쓰코로 인해 위안을 얻었다며 말하는 게 뭔가 어이 없게 느껴진다.
남들의 관점에서도 모든 걸 알고 있는 것처럼 여겨져 가까워지기 어려웠다는 식으로 서술되는 다쓰코는 그 짧은 자신의 이야기에서 물론 남편에게 질투도 느꼈고 그의 소설 속의 화자와 괴리감도 느끼며 그를 싫어도 했지만 왜 없어져야만 남편에게 깨달음을 주는 존재가 되었을까.

그 서로를 향한 적대적인 감정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책은 결코 나타내지 않는다.
그저 두 사람의 존재와 시간이 더해졌을 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그러하듯 극적이지 않게 서서히 쌓여진 것이겠거니 하며 불필요하게 취급된다.
하지만 그것이 없으니까 나는 자꾸만 사치오를 미워하게 된다.
남은 자에게 무언가를 강요하는 게 아니라는 건 알지만 왜 저렇게 밖에 그려지지 못했는지 조금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다쓰코가 마냥 불쌍하게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또 묘하다.

일본 소설은 일본 영화에 비하면 훨씬 역동적으로 느껴져 즐겨 읽는다.
소설에서도 역시 특유의 느낌은 지워지지 않지만 오히려 유쾌하면서 희망적으로 쓰인 소설들이 꽤 많고, 현실에서 못해볼 것들을 다 내놓자는 듯 극적이고 판이한 이야기가 재밌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 소설은 일본 영화 같다.
둘 중 무엇이 더 잘났고 못났고 하는 게 아니라 영화를 위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지만 그래서 작가가 직접 연출한 영화는 또 어떻게 나왔을지 궁금해진다.
‘아주 긴 변명’, 제목이 이야기를 시원하게 꿰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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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탱고클럽
안드레아스 이즈퀴에르도 지음, 송경은 옮김 / 마시멜로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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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4.2
잘 나가는 기업 컨설턴트, 잘난 외모와 재력으로 수많은 여성들과 밤을 보내는 가버 셰링의 유일한 취미는 댄스이다.
낮에는 누구보다 유능한 인재로 기업 파트너 제안을 받으며 새로운 프로젝트에 돌입하고, 밤에는 탱고클럽에서 춤과 여자를 만나며 자신의 팬인 펜트하우스 건너편 노부인에게 멋진 바다빙을 선보인다.
그런 그와 기업 파트너 자리를 두고 경쟁하게 된 피츠는 가버의 약점을 노리고 가버는 기업 오너의 부인과 바람을 피우다 교통사고를 내게 된다.
그가 불륜을 저지른 사실이 사장의 귀에 들어가기 직전 가버는 뛰어난 포토샵 실력으로 피츠에게 불륜죄를 뒤집어 씌우고 피츠는 그런 가버에게 복수를 결심하며 회사를 그만둔다.
한편 고소를 하지 말아달라 부탁하는 가버에게 교통사고 피해자인 카트린은 그 대신 자신의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댄스를 가르치라 말하며 이를 들어주지 않으면 사장에게 그날 같이 있었던 여자에 대해 말하겠다 협박한다.
졸지에 가버는 카트린의 다리가 다 나을 1년 동안 IQ 85 이하의 특수학교 댄스반 선생이 되어버렸고, 그 이후 완벽했던 가버의 인생은 점점 엉키고 꼬여만 간다.

모두가 상상할 수 있을 만큼 감동적인 이야기가 이어진다.
나쁜 어른은 개과천선하고 착한 아이들은 성공을 맛보고, 때로는 슬픔과 아픔이 적절히 끼어들며 휴머니즘 드라마를 완성시킨다.
비니, 제니퍼, 마빈, 리자, 펠릭스 다섯 명의 아이들이 가진 사연들은 좀 더 이야기를 풍부하게 하고 몰입할 수 있게 만든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그 길을 단 1cm도 벗어나지 않은 이야기지만 이 이야기가 조금 더 빛을 내는 이유는 당연히 다섯 아이들이다.

반면 아이들을 배제하고 보면 이야기 자체의 매력은 확실히 떨어진다.
어디선가 본 듯한 그런 감동적인 스토리에 그리 끌리지 않는 주인공, 시트콤처럼 벌어지는 일들과 해결책 없이 저질러지는 사고들, 아이들과 만나면서 갑작스레 등장하는 주인공의 아픔, 그닥 치밀하지 않아 보이는 주인공의 성격이나 개연성 없는 직장 동료들 등등.
아이들의 사연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엉성하고 완성도가 떨어지는 내용들 뿐이다.
결말은 당연히 그렇듯 해피엔딩, 그러나 시시하다.

이야기의 진행 방식은 <당신의 완벽한 1년>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 뿐 아니라 번역가의 재량인지 뭔지 몰라도 외국 소설들의 진행 방식은 늘 비슷하다.
마치 몇 페이지까지는 어떻게 쓰고 여기에 사건 사고를 집어넣고 그 다음은 어떻게 하는 작문법이 정해진 느낌.
한 치도 벗어나는 것 없이 단순하고 눈에 훤히 보이는 구성이다.
책 표지는 <사자가 있는 라이언 주점>을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 조금 미심쩍었지만 그보다는 확실히 나았다.
재밌는 책을 만나는 게 어렵게 느껴지니까 책에 손이 가질 않는다.
더 재밌는 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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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즈
제시 버튼 지음, 이나경 옮김 / 비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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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뮤즈가 꼭 여성일 필요는 없다.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선사하는 존재라는 의미의 뮤즈, 성별을 지칭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여성을 떠올리게 되는 뮤즈라는 단어의 고정관념을 깨는 것에서 시작하는 책이다.

1967년 오델은 친구인 신스와 함께 영국의 식민지였던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5년 전 런던으로 와 돌시스 구두점에서 일하고 있다.
고향에서 많은 공부를 하고 부푼 꿈을 안고 온 런던이건만 고작 손님에게 구두를 신겨주는 자신의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 오델은 꾸준히 큰 회사들에 지원서를 넣었지만 피부색으로 인해 매번 면접에서 떨어지고 만다.
그러던 어느 날 오델은 마저리 퀵이라는 사람에게서 자신을 채용을 하겠다는 편지를 받게 되고, 비록 타이피스트지만 주급 10파운드를 받으며 스켈턴 미술관에서 일하게 된다.
바라던 직장을 얻어 행복한 일상을 보내던 중 친구인 신스의 결혼 뒤풀이에서 오델은 로리 스콧이라는 백인 남성과 만나게 된다.
약간의 술 기운 때문인지 둘은 처음 만났음에도 서로의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오델은 로리의 어머니가 2주 전 돌아가셨으며 그는 양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아서 어머니가 그에게 남긴 그림만을 들고 집을 나왔단 걸 알게 된다.
한 편에 한 소녀가 잘린 머리를 들고 있고 다른 한 편에는 웅크리고 있는 사자가 그려진 그림을 본 오델은 그 그림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는다.
로리가 오델을 찾아 사자 소녀들이라 부르는 그 그림을 들고 스켈턴 미술관으로 온 날, 관장인 리드는 그림에 관심을 보이고 마저리는 그림을 보고 경악하며 미술관을 뛰쳐나간다.
I.R 이라는 서명이 적힌 그림에 대해 리드가 조사한 결과 그림은 이삭 루블레스라는 에스파냐의 화가가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며 사자 소녀들을 배경으로 이삭과 환히 웃는 한 여성이 찍힌 사진 하나를 보여준다.

1936년 올리브는 가족들과 함께 런던에서 에스파냐 말라가로 와서 살게 된다.
아름다운 엄마 세라와 유대인 미술상인 아빠 해럴드에게 올리브가 숨기고 있는 비밀은 바로 그녀가 솔레이드 미술학교에서 입학 허가를 받을 만큼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이고, 가족에게 말도 못한 채 그 입학을 포기하고 에스파냐로 따라왔단 것이다.
올리브의 집에서 하녀로 일하기 위해 테레사와 그의 오빠 이삭이 찾아온 날, 올리브는 이삭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이삭을 만난 후 전과는 전혀 다른 느낌과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색으로 그림을 그리게 된 올리브는 테레사와 친해지며 테레사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았고, 테레사가 들려준 성녀 루피나의 전설을 듣고 ‘우물 속에 산 후스타’라는 그림을 그리게 된다.
어느 날 세라가 해럴드에게 선물로 주겠다며 이삭에게 자신의 그림을 그려달라 말하자 올리브는 질투심에 자신도 함께 그려달라고 하게 되고, 드디어 이삭이 그림을 공개하는 날 테레사는 몰래 그림을 바꿔치기 해 이삭의 그림 대신 올리브의 그림을 선보인다.
해럴드는 이삭의 그림에 찬사를 보내며 밀밭의 여인들이라는 이름으로 그림을 런던에 팔기로 결정하고, 올리브는 자신이 그린 그림이라고 말하라는 테레사와 이삭의 말을 무시하고 아버지를 골릴 겸 이삭에게 그가 그린 것으로 해달라 부탁한다.
거절하는 이삭에게 자신이 그린 그림이라면 해럴드가 저렇게 좋아할 리가 없으며 이삭이 하는 일에 그림을 판 돈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이번 한 번만이라는 조건을 건다.

관장인 리드는 스켈턴 미술관에서 로리의 사자 소녀들과 함께 다른 이삭 루블레스의 그림을 초청해 사라진 세기라는 이름으로 전시회를 열기로 결정하고 마저리는 어떤 이유에선지 전시에 찬성하지 않는다.
로리와 점차 가까워진 오델은 로리가 미술관에서 그림에 대해 한 말들과 다른 사실에 대해 알게 되고 그를 믿지 말라는 마저리의 말을 떠올린다.
한편 오델은 마저리의 도움으로 오랜 꿈인 작가가 되었고, 마저리가 우연히 사자 소녀들이 이삭이 그린 그림이 아니라고 한 말에 자꾸만 로리와 그림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된다.

올리브는 이삭에게 점차 빠져들게 되고 조울증을 앓는 엄마 세라가 점차 안정되는 걸 느끼면서 에스파냐에 줄곧 머물고 싶어 한다.
런던에서 이삭의 그림을 좋은 가격에 팔고 이삭의 그림에 큰 기대감을 품게 된 해럴드는 새로운 작품을 재촉하고 당황하는 이삭에게 올리브는 자신의 또 다른 그림이 있다며 ‘과수원’을 보여준다.
화를 내는 이삭을 보며 절망하는 올리브에게 테레사는 속상해하지 말라며 위로를 하지만 올리브는 이삭이 화를 내면 자신은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 올리브를 위해 테레사는 직접 항구로 가 런던으로 올리브의 그림을 보내주기로 하고 올리브는 몰래 자신이 그린 이삭의 그림을 이삭이 그린 자화상인 것처럼 속여 함께 보낸다.
그리고 테레사와 자신을 모델로 하여 올리브는 ‘우물 속에 산 후스타’의 연작인 ‘루피나와 사자’를 그리게 되고, 그림의 제작 과정을 보고 싶다는 후원자의 제안에 올리브는 이삭과 함께 테레사의 카메라 앞에 선다.

이야기는 오델과 올리브라는 인물을 앞세워 1967년의 영국 런던과 1936년의 에스파냐 말라가를 번갈아가며 보여준다.
작가가 꿈인 오델과 화가를 꿈꾸었던 올리브의 이야기는 전혀 겹쳐지지 않을 듯 평행선을 달리다가 이삭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면서 조금씩 만나기 시작한다.
마저리와 로리가 숨기는 비밀, 올리브의 이삭을 향한 마음, 로리의 엄마와 올리브의 가족인 슐로츠 가의 종적까지, 이 모든 것들에 오델의 호기심이 바싹 붙으며 하나씩 밝혀지는 이야기는 결국 절정을 향해 쉴 틈없이 달려간다.
에스파냐의 내전을 배경으로 이삭과 올리브의 이야기가 비극을 맞이하고 오델은 말기암에 걸린 마저리를 재촉해 점점 진실에 다가간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만나는 순간, 동시에 모든 것이 마무리되며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오델의 말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생각보다 두꺼운 책장에 지레 겁먹었지만 오델, 로리, 신스, 마저리, 리드 그리고 올리브, 이삭, 테레사, 세라, 해럴드까지 단 10명의 주요 인물들이 이야기를 꽉 채워 쉽고도 가볍게 이야기 속으로 파고들 수 있었다.
잔혹하고 비참한 누군가의 결말이 이야기를 온통 진득하게 물들이지만 어쩌면 어중간하다고 느낄 만큼 막연하기만 한 어두움은 아니었다.
마저리에 이어 진실을 손에 쥔 오델이 오랜 시간이 지나 털어놓은 마지막 말은 엔딩이라는 걸 믿기 힘들게 허무하게 느껴지지만 또 한편으로는 결국 살아남은 것이 그녀이기에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매듭짓지 않았다고 이야기를 낮게 보려면 결국 시작부터 모든 것을 전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판단해야 한다.
그러기엔 안타까우면서도 비관적인 이 이야기가 그 루피나와 사자 그림의 금박처럼 빛이 나서, 가장 불행하진 않지만 결코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는 이야기 속 인물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채로운 물감처럼 도드라져서 자꾸만 잔상이 남는다.

“여성을 뮤즈로 이용하고, 많은 경우에 그 뮤즈를 파괴하는 남성 예술가에 대해서 다루어보고 싶었습니다. 남성들이 붓과 물감, 돈과 지위를 손에 넣는 동안, 여성의 몸은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종종 누드로 대상화되었고, 이것이 미술사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남성은 원하는 것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고, 그들의 목소리로 여성의 이야기를 전해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무엇보다, 연애와 욕망을 그들 자신을 창조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으로 삼은 두 여성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성은 오랜 세월 다른 여성과 침묵의 공동체를 형성함으로써 지지받고 영감을 얻어왔습니다. 그리고 남성으로부터의 언어적, 신체적 폭력에 직면했을 때, 공모하고 연대해왔습니다. 남성들은 수백 년 동안, 여성의 삶을 문자 그대로 통제해왔습니다. 여성은 남성의 재산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과거의 역사가 아닙니다. 현재도 지구 곳곳에서 이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소설에서 완전한 자유, 재정적 독립, 그 누구에게도 의존할 필요가 없는 상태, 남성이 여성의 삶 무대 가운데에 서지 않는 세상, 여성이 섹스와 고독 둘 다 고를 수 있는 세상의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남성이 이런 여성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세상의 가능성도 제시했습니다. 오히려, 남성 스스로 자신에게 무엇이 이로운지 안다면 그 세상을 축복하고, 함께 혜택을 누리게 될 겁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여성은 얼마나 놀라운 존재인지요.
세상에 유일한 목소리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불협화음을 수용할 공간 또한 충분합니다. 그리고 이 책 역시 그 중 하나입니다.”

서문에서 작가의 말부터 이 책은 페미니즘 도서임을 여실히 드러낸다. 하지만 서문이 없었다면 사실 꽤 모르고 지나쳤을 만큼 이야기 자체가 잘 짜여져있기 때문에 마냥 페미니즘만으로 채워진 책은 아니다.
다만 여성을 주인공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서 적절하게 고개를 드는 요소들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상징하는 바가 거대하게 느껴진다.
단순히 남성을 폄하하거나 얕잡아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이럴 수도 있다는 하나의 역전된 가능성을 시대상에 기대어 풀어놓은 이야기, 나는 책을 읽으면서 이 이야기야말로 가장 정교하면서 완벽한 미러링이 아닐까 생각했다.

길고 긴 이야기 끝에 비록 원하던 결말은 아닐지언정 완성되어 정확히 놓여졌기에 만족스럽다.
마음을 끌었던 아름다운 책의 표지처럼 아로새겨지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배워야 하는 지금의 나는 사실 이 책의 모든 내용을 받아들이지 못한 걸지도 모른다.
함축적인 의미를 찾기 보다 이야기에 집중해버린 탓에 더 중요한 것들을 놓쳐버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기에 <뮤즈>는 언젠가의 내가 꼭 다시 읽길 바라는 책이 되었다.
부디 아름답게 기억하지 않길, 괜찮았다 기억되지 않길.

아버지가 화가를 몇 명이나 파는지 알아요? 지난번에 세어보았을 때, 스물여섯 명이었어요. 그 중에 여자가 몇 명이나 되는 줄 알아요, 이삭? 없어요. 한 명도 없다고요. 여자들은 ‘할 수가’ 없어요. 여자들에겐 ‘비전’이 없어요. 내가 알기론 눈도 있고, 손도 있고, 심장도 있고, 영혼도 있지만. 나는 기회도 얻기 전에 실패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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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기차는 너의 목소리
아베 가즈시게 지음, 홍미화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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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3.9
묘하게 사람을 끌어들이는 듯 사람이 붐비는 허름하고 폐허같은 공원,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한 할아버지가 있었다.
장난삼아 할아버지의 말에 귀 기울인 아이들에게 할아버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랜 세월이 지나도 이 이야기는 잊지 말아달라며 한 소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오리는 19살로 작사가의 꿈을 안고 도호쿠에서 도쿄로 와 살고있다.
노래를 좋아하던 그녀는 자신이 음치인 것을 알고 작사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의 노래로 인해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하는 걸 알게 되고 자신이 학교에서 노래를 부른 후 여학생 3명이 죽음을 맞이하는 일을 겪은 후 시오리는 누군가의 앞에서 노래하지 않기로 했다.
감성적인 시오리와는 정반대로 철저히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여동생 노조미는 어린 시절부터 시오리를 괴롭혀왔다.
불쾌함을 주는 시오리의 노랫소리와는 달리 시오리의 울음소리는 너무나도 황홀하고 아름다워 그 소리를 듣기 위해 노조미는 나쁜 말들을 더해 시오리를 계속 울리려 했고 그 시도는 항상 성공적이라 시오리는 늘 노조미 앞에서 울곤 했다.
시오리가 첫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고 그것을 우연히 알게 된 노조미는 모든 걸 자신에게 털어놓으라 말하며 남자친구인 스즈키는 시오리를 돈줄로만 생각할 뿐이라며 현실적인 말을 늘어놓는다.
시오리는 그럴 리가 없다며 스즈키와 계속해서 사귀게 되고 집에서 노래를 부른 일로 노조미가 화를 내며 벌을 주겠다고 칼로 그은 일을 알게 된 스즈키가 노조미를 싫어하게 된 것에 불편함을 느낀다.
노조미가 낸 상처로 인해 시오리는 강간을 당했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고 친구인 히나코는 스즈키가 낸 소문이라며 스즈키를 믿지 말라 한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파티날 노조미를 피해 나온 시오리에게 노조미는 붙잡은 히나코를 통해 사실 히나코와 스즈키가 사귀는 관계라는 걸 알려준다.
그렇게 사람에게 상처를 받은 시오리는 사이트 게시판을 통해 몸이 아파 학교를 쉬는 고등학생 Z와 포르투칼 출신이라는 마누엘을 알게 되고 점차 그들에게 의지하며 모든 일을 털어놓게 된다.

졸업 후 도쿄로 와 전문 대학을 다니게 된 시오리는 마누엘의 초대로 그가 속해 있는 밴드 공연을 보러 가고 그 밴드와 친해지게 된다.
순진해보이는 시오리를 이용하려는 밴드 멤버들의 의견으로 시오리는 밴드 매니저가 되고, 고등학교 때 일도 있었으니 사람을 너무 쉽게 믿지 말라는 Z의 말을 무시한 시오리는 결국 그들에게 이용당해 쓰는 모든 돈을 담당하게 된다.
먼저 시오리가 계산하면 나중에 자신들이 지불하겠다는 명목으로 시오리는 아르바이트까지 하며 그들에게 돈을 대고 그 와중에 꼬치공장을 하던 아빠의 사업이 조류 인플루엔자로 인해 파산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설상가상으로 다니던 대학마저 이사장 등 경영진의 횡령으로 문을 닫고, 막막한 그녀 앞에 마누엘이 나타나 사과를 전하며 밴드 멤버가 시오리의 신용카드로 구입한 기타를 돌려준다.
마누엘의 이야기를 듣고 대화를 하다 잠이 든 다음 날 시오리는 자신의 집에 못 보던 슈트케이스가 놓여 있는 걸 알게 된다.
마누엘에게 남겨진 메시지를 확인한 시오리는 그것이 슈트케이스형 핵무기이며 마누엘이 자신에게 남긴 것임을 알게 된다.

아주 얇은 책인데 의외로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
시오리의 성격은 물론 핵무기를 양도받게 하려고 설정된 것이겠지만 너무 지나치게 답답해서 보고 있기가 힘들어진다.
핵무기를 갖게 된 후의 시오리의 행동 역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더 많아서 그냥 시오리라는 인물 자체가 마지막의 감동을 위해 일부러 미움 당하게 만들어진 캐릭터인 것 같아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좋아할 수는 없지만 안쓰러운 그런 이상한 느낌.
노조미라는 캐릭터는 그런 면에서 시오리에게 고통을 주는 인물로 그려진 것인데 그런 것 치고는 중반부부터 아예 존재감이 사라진다.
물론 시오리와 노조미는 그런 이상한 관계임에도 사이가 좋다고 언급되어 있지만 그래도 피해다니고 싶을 만큼 불편함을 느끼는 존재인데 그런 인물이 사라졌음에도 시오리에게 아무런 변화가 없는 건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약간씩 디테일이 떨어지는 건 만화 같은 설정 때문이려나.

거의 끝까지 답답하게만 흘러가는 이야기는 마지막 10장 정도만을 남겨두고서 겨우 실체화된다.
그조차 깊이 빠져들 만큼의 감동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야기다운 결말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미한 한 명의 희생으로 구해낸 위협이라는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어쩌면 너무나도 흔한 설정 자체가 진부하고, 그 진부함을 깨뜨릴 그 무엇도 이 이야기에는 빠져 있다.
알카에다, 우크라이나, 핵무기, 미스테리어스 세팅 같은 것들을 앞에 내놓은 의도가 단순히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이야기의 완성도를 높여보려고 쓰였다는 게 참 안타깝다.
기대했는데 아주 아주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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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마짱의 심부름 서비스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7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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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막 스무살이 된 타마미는 심부름 서비스로 창업을 할 생각으로 대학을 자퇴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여차저차 아버지의 자동차 수리점에서 일하는 친구 소스케의 도움으로 좋은 가격에 캐리를 얻고, 불현듯 도시에서 돌아와 방 안에 틀어박혀 히키코모리가 된 마키의 도움으로 전단지를 만들어 결국 타마짱은 심부름 서비스를 시작한다.
벽지나 시골에 거주하며 몸이 불편해 자주 집 밖을 나갈 수도 없는 쇼핑 약자를 위해 타마짱은 점점 생필품들을 구비하고 물건의 수요를 맞춰가며 익숙해져간다.
한편 계속해서 쌓여 온 필리핀 출신의 새엄마 샤린과의 불화와 돌아가신 엄마를 향한 그리움과 죄책감 같은 모든 것이 터진 그날, 엄마의 엄마였던 외할머니 시즈코가 돌아가시고 소식을 들은 타마짱은 사고를 당한다.

말 그대로 ‘타마짱의 심부름 서비스’다.
애니메이션 등에도 자주 등장하는 작은 마을 특유의 분위기와 소소함이 이야기를 더 포근하게 만들어주고 심부름 서비스라는 독특한 소재로 경쾌함을 더한다.
평범하지만 그 나름대로 매력적인 이야기들, 대체로 따뜻한 느낌이라 싫어하진 않는다.
필리핀에서 가족을 잃고 일본으로 온 새엄마의 사연, 야쿠자 출신의 스승 후루타치 아저씨의 기억, 마키의 아픔과 소스케의 고민들, 엄마라는 존재를 잃은 아빠 쇼타로와 외할머니 시즈코의 마음들이 코니 프란시스의 베케이션 음악과 함께 타마짱의 캐리에 실려 나간다.
저자 후기를 보니 마오짱의 심부름 서비스라는 이동판매를 창업한 히가시 마오라는 젊은 여성의 실제 사연을 모티브로 쓰여진 이야기인가 보다.
아무래도 일본은 노인들에 대한 복지도 그렇고 여러모로 먼저 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에야 우리 나라에서도 시골 등에서는 마을 당 노인을 위한 운송수단을 마련하고 목욕탕 같은 여러 시설들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지하철이 있는 도시에서만 이용 가능한 무료 승차가 가장 큰 혜택이니 갈 길이 멀다.
한 없이 펼쳐진 이상 같은데 실화라니 아득하다.
지금 탁한 마음으론 순수하게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못났다.
받아들이기 싫어도 새겨야지, 좋은 말은.

지금 내 앞에는 먼저 지나간 사람들이 남긴 바퀴 자국은 있어도 정해진 선로는 없다. 내 마음을 나침반 삼아 나만의 길을 걸으면 된다. 그것만이 후회 없이 죽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타인에게 기대하기 전에 우선 나한테 기대하고, 그 기대에 부응하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 타인에게 할 것은 기대가 아니라 감사라고.

인상을 살면서 ‘작은 모험’에 나서지 못하는 사람은 ‘용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놀이 정신’이 조금 부족한 거라고. 인생은 딱 한 번뿐인 ‘놀이 기회’래. 그러니까 즐기자고 마음먹은 사람만이 ‘작은 모험’의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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