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긴 변명
니시카와 미와 지음, 김난주 옮김 / 무소의뿔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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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일본 영화 특유의 색감과 분위기는 평소엔 너무 평면적으로 느껴져서 손이 잘 안 가다가도 가끔 이렇게 눈에 확 띄는 때가 있다.
막상 보면 생각보다 밋밋한 게 영 집중을 못하게도 만들지만 그게 또 매력이라는 듯 이따금 생각이 난다.
이 책은 그런 일본 영화 같은 소설이다.

기누가사 사치오는 동명의 유명 야구 선수로 인해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이름을 싫어했다.
늠름한 야구 선수 사치오와는 달리 곱상하고 유약한 자신의 외모는 놀림감이 되었고 사치오는 그 이름을 증오하면서도 그런 자신의 외모를 미워한 적은 없었다.
사치오와 비교되지 않으려면 절대 야구 선수는 하지 말아야지 생각하던 사치오는 글을 쓰기로 결심하고 작가를 꿈꾼다.
그리고 대학 시절 우연히 갔던 미용실에서 몇 번인가 얼굴이 익었던 후배 다쓰코를 만나고 그는 그녀의 이름을 떠올리지 못해 그녀에게 실망감을 안긴다.
그 순간 다쓰코에게 함락되었다는 사치오는 다쓰코에게 구애를 하고 당신에게는 세상에서 내가 가장 잘 맞아 라는 말로 프로포즈를 하며 둘은 결혼한다.
졸업 후 잡지사에 다니며 화보 사진을 찍는 일에 신물을 내던 사치오에게 다쓰코는 글을 쓰라며 권유하고 그 후로 10년 간 사치오의 뒷바라지를 하며 미용사로 일한다.
그렇게 쓰무라 케이 라는 이름으로 데뷔하며 작가로서 성공하게 된 사치오에게 이제 다쓰코는 너무나도 큰 벽처럼 느껴진다.
둘의 사이는 서로에게 그 무엇도 기대하지 않는, 세상에서 가장 먼 부부였다.
그리고 아내인 다쓰코가 여행을 떠난 날, 사치오는 불륜 상대인 편집자를 집으로 끌여 들어 밤을 보내던 중 갑작스레 경찰에서 온 전화로 다쓰코가 사고로 인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치오는 사고로 인해 다쓰코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전혀 슬프지 않다.
아내의 친구였던 유키와 여행을 갔던 것도, 어디로 갔는 지도 몰랐기에 사고를 낸 버스 회사 사장에게 분개하며 오열하는 유키의 남편 요이치에게 거리감을 느낀다.
그렇게 홀로 남게 된 사치오는 다쓰코의 미용실 직원들에게 장례 절차에 대해 알리지 않았음에 쓴 소리를 듣고, 주변에서 건네는 걱정과 위로에 신물을 느끼며 아무도 없는 집에서 머문다.
정리가 되어가던 중 우연히 걸려 온 전화로 요이치와 그의 아들 신페이, 딸인 아카리를 다시 만나고 식당에서 갑각류를 먹고 알러지 쇼크를 일으킨 아카리로 인해 신페이를 집까지 데려다 주게 된다.
요이치와 신페이, 아카리와 갑작스레 엮이게 된 사치오는 엄마인 유키가 없어 신페이가 학원에도 못 가고 아카리를 보며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자신이 아카리를 봐주겠다 선뜻 나선다.
그렇게 일주일에 두 번 신페이가 학원 가는 날에 아카리를 만나 함께하며 사치오는 자신이 몰랐던 다쓰코를 만나고, 그들과 어울리며 점점 변해 간다.

사치오는 오랜만에 끝까지 읽어도 전혀 정들지 않는 캐릭터였다.
어떻게 저렇게 끝까지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심에 자격지심으로 뒤덮인 인물이 주인공이라니.
갑작스레 떠난 사람의 부재가 이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인데 그를 상징하는 듯한 요이치 가족 이야기가 과연 또 그것을 나타내는 게 맞냐 하면 그건 또 모르겠다.
이쪽에서 부족한 건 그쪽에서 채워야 하는 게 맞을 텐데 그렇게 되었는가 따져보면 아닌 것 같다.
사치오는 분명 요이치 가족을 만나 변했고 그런 자신에게 뿌듯함을 느끼는데 요이치 가족은 과연 사치오로 인해 무엇을 얻었는지, 단순히 아이를 봐주는 손 하나 혹은 의존할 만한 대상이 정말 그 가족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 미심쩍다.
문제의 원흉은 어떻게 보든 사치오인데 그런 사치오는 떠난 자신의 부인보다 가족 같은 존재를 얻었고, 그로 인해 안정감을 느끼고 변화되었다 우쭐해하며 아내에게 내가 잘못했었다는 변명 같은 편지를 남긴다.
용서할 사람은 없는데 자신은 그런 다쓰코로 인해 위안을 얻었다며 말하는 게 뭔가 어이 없게 느껴진다.
남들의 관점에서도 모든 걸 알고 있는 것처럼 여겨져 가까워지기 어려웠다는 식으로 서술되는 다쓰코는 그 짧은 자신의 이야기에서 물론 남편에게 질투도 느꼈고 그의 소설 속의 화자와 괴리감도 느끼며 그를 싫어도 했지만 왜 없어져야만 남편에게 깨달음을 주는 존재가 되었을까.

그 서로를 향한 적대적인 감정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책은 결코 나타내지 않는다.
그저 두 사람의 존재와 시간이 더해졌을 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그러하듯 극적이지 않게 서서히 쌓여진 것이겠거니 하며 불필요하게 취급된다.
하지만 그것이 없으니까 나는 자꾸만 사치오를 미워하게 된다.
남은 자에게 무언가를 강요하는 게 아니라는 건 알지만 왜 저렇게 밖에 그려지지 못했는지 조금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다쓰코가 마냥 불쌍하게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또 묘하다.

일본 소설은 일본 영화에 비하면 훨씬 역동적으로 느껴져 즐겨 읽는다.
소설에서도 역시 특유의 느낌은 지워지지 않지만 오히려 유쾌하면서 희망적으로 쓰인 소설들이 꽤 많고, 현실에서 못해볼 것들을 다 내놓자는 듯 극적이고 판이한 이야기가 재밌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 소설은 일본 영화 같다.
둘 중 무엇이 더 잘났고 못났고 하는 게 아니라 영화를 위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지만 그래서 작가가 직접 연출한 영화는 또 어떻게 나왔을지 궁금해진다.
‘아주 긴 변명’, 제목이 이야기를 시원하게 꿰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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