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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는 곳으로 ㅣ 오늘의 젊은 작가 16
최진영 지음 / 민음사 / 2017년 6월
평점 :
4.5
이름 모를 바이러스가 어느 날 전세계를 뒤덮었다.
불쑥 죽어버린 친구와 가족들에 적응하는 대신 서둘러 선택해야 한다.
집에 머무르며 그들처럼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 어딘가에 남아있을 안전지대를 찾아 떠날 것인지.
후자를 택하여 정처없는 피난길에 오른 이들의 이야기다.
류, 도리, 미소, 지나, 건지.
팔순 혹은 아흔의 노인이 된 류가 까마득한 과거를 회상하면서 도리가 나타나고 미소가 나오고 지나를 만나 건지를 알게 된다.
사명을 붙들고, 혹은 짐을 짊어지고 이들은 살기 위해 애쓴다.
선이 붕괴하고 무정부 상태가 된 곳곳에서 갱과 폭도들이 활개치고 그 뒤를 따라 당연하다는 듯이 잔인한 단어들이 책을 차지한다.
강한 어조로 현실을 그려가지만 당하는 인물들의 감정은 고요하다.
마치 힘들어 할 여력도 없는 것처럼, 꼭 절망 따위 잊은 것처럼.
그저 살아야지. 살려야지.
재난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그린 점에서 이 이야기는 같은 시리즈인 `날짜 없음`과 정반대의 척도에 있다.
결코 포기하는 인물 없이 모두가 삶에 대한 의지로 가득차, 다시 만나자는 말은 못해도 살아있으면 만날 거라는 메시지를 꾸준히 남긴다.
강간과 노역, 전쟁, 무력 같은 단어들이 재난 상황임에도 어김 없이 등장해서 꼭 인간은 이렇다는 걸 말해주는 것 같다.
이렇게 잔학하고 가혹한 종족이 인간이란다.
그리고 그 잔인한 사람들, 가족조차 믿을 수 없을 때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 사랑.
사랑은 절망 속에 피는 꽃 같아 귀중하고 아름답단다.
흔한 그런 이야기인데 뻔하진 않다.
해가 지는 곳에는 여름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