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넘버 - 제2회 대한민국 전자출판대상 대상 수상작
임선경 지음 / 들녘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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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3.9
죽음에 가까운 사고를 겪은 후 사람들의 등에 써진 숫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고로 부모님을 여의고 엄청난 후유증을 떠안은 원영은 병원에서 곧 백넘버가 죽음까지 남은 날을 의미하는 걸 깨닫는다.
평소에는 은은한 초록색으로 피부에서 떠오르는 것처럼 보여지는 숫자가 1이 되면 빨갛게 변하고 이내 깜박이다가 사라지면 죽음이 찾아온다.
수많은 숫자의 범람은 공황을 일으켜 퇴원 후 사람이 많은 곳은 피하게 되었고 애써 무시하며 때로 방관하며 숫자를 모른 척하고 살게 된다.
우연히 자주 가는 카페에서 만난 커플의 등에 빨간 숫자를 발견하고 살리기 위해 이곳을 나가라며 소란을 부렸지만 결국 구하지 못했고 대신 숫자가 보이지 않는 인물인 사신을 만나게 된다.
사신은 할당량의 죽음의 수를 맞추는 일에 급급한 일개 사원이며 그저 죽음을 안내하고 다른 차원으로 데려가는 일만을 할 뿐이다.
죽음에 대해 개입하지 말라는 경고를 듣고도 태권도 도장에서 아이들의 등에 모두 빨간 1이 깜박이는 걸 본 원영은 사고를 막으려 한다.
사신은 아이들이 정해진 대로 죽지 않으면 대신 같은 수의 노인들이 죽음을 대체할 수 밖에 없다며 그렇게 해도 좋은지 원영에게 선택하라고 하고 원영은 어린 아이들을 살리기로 한다.
그리고 얼마 뒤 만난 사신과의 대화에서 자신과 부모님이 당한 사고를 피해간 로미오 옷을 입은 남자가 `보이는 자`였단 걸 깨닫고 찾으려 한다.

죽음이 보이는 사람 같은 이야기는 흔하지만 소개글을 접했을 때 흥미를 느꼈던 건 죽음에서의 선택이라는 부분이었다.
소재인 백넘버와 더불어 선택으로 인한 리스크와 죽음에의 규칙 같은 게 섞이면 재밌는 전개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다.
결과적으로는 딱 죽음이 보이는 그 설정 이외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 이야기라 아쉽다.
죽음을 보는 것이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얻은 그 뿐만은 아닐 텐데 그저 모든 걸 피하며 애써 무시하며 사는 게 결말이어야 했을까.
주인공이 추적을 포기하게 되는 계기는 이해할 수 있다 쳐도 그렇게 많은 질문들을 떠올리던 호기심 넘치는 성격의 인물이 갑자기 모든 일을 수긍하게 되는 과정의 부재와 그리하여 어떻게 되었는지 설명의 부족은 그저 미완성으로 느껴진다.
지극히도 단순한 이야기는 꼭 여기서 무언가가 나왔어야지 하는 아까움 때문에 이야기의 대상이 누구였을까 하는 의문을 남긴다.
읽는 내내 강풀의 웹툰 `타이밍`이 떠올랐는데 이 이야기는 소설이 아닌 웹툰 형식이었으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 지도.
줄줄 지겹게도 나열한 많은 부연 설명들을 싹 쳐내고 간결하게 장면만을 제대로 보였다면 더 재밌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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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는 곳으로 오늘의 젊은 작가 16
최진영 지음 / 민음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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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이름 모를 바이러스가 어느 날 전세계를 뒤덮었다.
불쑥 죽어버린 친구와 가족들에 적응하는 대신 서둘러 선택해야 한다.
집에 머무르며 그들처럼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 어딘가에 남아있을 안전지대를 찾아 떠날 것인지.
후자를 택하여 정처없는 피난길에 오른 이들의 이야기다.

류, 도리, 미소, 지나, 건지.
팔순 혹은 아흔의 노인이 된 류가 까마득한 과거를 회상하면서 도리가 나타나고 미소가 나오고 지나를 만나 건지를 알게 된다.
사명을 붙들고, 혹은 짐을 짊어지고 이들은 살기 위해 애쓴다.
선이 붕괴하고 무정부 상태가 된 곳곳에서 갱과 폭도들이 활개치고 그 뒤를 따라 당연하다는 듯이 잔인한 단어들이 책을 차지한다.
강한 어조로 현실을 그려가지만 당하는 인물들의 감정은 고요하다.
마치 힘들어 할 여력도 없는 것처럼, 꼭 절망 따위 잊은 것처럼.
그저 살아야지. 살려야지.

재난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그린 점에서 이 이야기는 같은 시리즈인 `날짜 없음`과 정반대의 척도에 있다.
결코 포기하는 인물 없이 모두가 삶에 대한 의지로 가득차, 다시 만나자는 말은 못해도 살아있으면 만날 거라는 메시지를 꾸준히 남긴다.
강간과 노역, 전쟁, 무력 같은 단어들이 재난 상황임에도 어김 없이 등장해서 꼭 인간은 이렇다는 걸 말해주는 것 같다.
이렇게 잔학하고 가혹한 종족이 인간이란다.
그리고 그 잔인한 사람들, 가족조차 믿을 수 없을 때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 사랑.
사랑은 절망 속에 피는 꽃 같아 귀중하고 아름답단다.
흔한 그런 이야기인데 뻔하진 않다.
해가 지는 곳에는 여름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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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도미노 오늘의 젊은 작가 15
최영건 지음 / 민음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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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연주는 할머니인 복자의 부탁으로 현석의 집으로 향한다.
복자와 늘그막에 서로 의지하며 살기 위해 현석이 아파트로 짐을 옮기려는 날 도우려는 손님이 찾아왔음에도 아들 내외는 거리낌 없이 외도를 주제로 큰 소리로 싸움을 벌인다.
삽시간에 불청객이 된 연주는 원균, 소현 부부의 갈등과 현석의 노여움이 공존하는 집 안에서 압박감을 느낀다.
연주의 부모가 사고로 죽고 어린 연주를 키워온 복자는 끊임없이 그 완고한 눈빛으로 연주를 억누르고 마구 휘둘러왔다.
연주는 그렇게 존재감이 없는 채로 휩쓸리고 삐걱거리며 살아 오다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는다.
연주의 죽음 이후 두 계절이 지나 현석도 조용히 죽음을 맞고 복자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연주의 카페에서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고 그 곁을 소현이 지킨다.

전지적 작가 시점일까 3인칭으로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서 요란한 감정을 드러내는 인물은 저 편에만 존재한다.
그리하여 무미건조하고 일률적인 감정으로만 뒤덮인 책은 연주의 죽음 이후 이야기의 중심이 될 화자를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초점을 옮긴다.
연주를 떠나 원균의 외도 상대인 해정, 연주 애인인 병식의 동업자인 태영, 그리고 소현의 이야기까지 한 바퀴를 돌아낸 책은 다음을 소현의 딸인 소녀에게 넘기며 끝난다.
주인공이 되어 가던 연주는 결국 무엇 하나도 풀어내지 못한 채 죽어버렸고 불필요한 인물들의 사연들과 감정들은 이야기를 어지럽힌다.
오로지 연주의 편에서만 움직이던 공기 도미노는 그 이후 움직임을 멈추었고 남겨진 이야기는 그저 방치된 것으로만 보인다.
완성되지 못한 도미노는 파급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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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없음 오늘의 젊은 작가 14
장은진 지음 / 민음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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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어느 날 내리기 시작한 빨간 비가 회색 눈으로 바뀌면서 온 세상을 뒤덮었을 때, 사람들의 웃음은 사라졌고 거리에는 시체가 발에 채일 듯 나뒹군다.
통제된 정보 속에 남겨진 소문은 단 하나.
그게 온다고 한다.

179부터 시작하여 0으로 마침표를 찍는 이야기.
책 제목인 `날짜 없음`을 대입해 이 책이 180일 간의 일기라고 생각하면 아마 해인과 반과 그가 만나온 날이 180일이 아닐까 싶다.
세상이 변했고 다시 변하려는 날 함께 있는 것들.
종말을 연상하는 그것이 주는 감정들이 `그게 온다고 한다.`는 반복되는 문장으로 책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전염병이 도는 거리나 버려져 황폐화된 도시처럼 죽음이 줄곧 감도는 세상에서 점점 해골이 되어가는 사람들은 살기 위해 떠나는 회색인들을 무서워하고 피한다.
홀리는 것으로 묘사되는 회색인의 피리 소리는 반과 함께 이곳에 남기를 선택한 해인과 그에게는 유령이나 귀신같은 존재로 여겨진다.
보통의 재난 이야기같은 것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생존을 향한 집착이나 살기 위한 몸부림은 죽음처럼 회색 눈에 덮혀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죽음마저 포기한 채 그것을 기다릴 뿐이다.

해인은 그와 자신이 과거보다 미래가 더 많은 오래되지 않은 연인이기에 남은 것이라 말한다.
서로에게 해줄 이야기나 서로를 향한 호기심이 남지 않았더라면 추운 컨테이너 속에서 회색인의 유혹에 버틸 수 없었을 거라 한다.
그게 좋았다.
이게 사랑 이야기라면 가장 좋았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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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왕국의 성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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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책을 읽다 보면 자꾸만 비슷한 이야기를 찾게 된다.
주로 전개 방식이나 인물 특성 같은 걸로 책 전반의 분위기를 보는 편인데 비슷한 분위기의 이야기는 같은 색으로 묶이기 마련이다.
이야기가 끝나면 나름대로 평가되어 있는 머릿 속의 서열들 중 지레짐작으로 그 주변 어딘가에 놓아두고 책을 덮는다.
제목을 보고 퍼뜩 내용을 떠올리지도 못할 만큼 잊고 살다가 비슷한 책을 만나면 또 언젠간 생각나겠지.
이 책은 내 마음대로 붙인 청춘 미스터리라는 갈래에 들어갈 텐데 대표적인 예로 요네자와 호노부의 소시민, 고전부 시리즈가 있다.

신은 이른 고교 합격으로 다른 학생들과 달리 한가로운 중3이다.
카레집을 하는 부모님의 심부름으로 들른 은행에서 우리 집을 주제로 한 초등학생들의 전시를 보게되는데 그 속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림 하나를 발견한다.
다른 그림과 달리 서툴게 전시되어 있는 그림 속 고성은 누가 봐도 어른이 그린 듯한 솜씨로 잘 그려져 있어 신의 시선을 끌었고 창구로 가 업무를 마친 뒤에 다시 본 그림은 이미 바닥에 떨어져 지나가는 아저씨에게 밟힌 후였다.
묘한 느낌을 받은 신은 그냥 가기에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고민하다 결국 그림을 주워 집으로 가져온다.
그날 밤 그림을 바라보다 신은 그림 속으로 빨려가는 느낌을 느끼고 며칠의 시간 동안 관찰한 결과 그림 속에 다른 세계가 존재하고 그림에 자신을 대신할 무언가를 그리면 그것을 통해 그림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의 그림 실력으로는 몸의 균형도 못 맞춰서 그림 속에서 움직일 수조차 없었기에 그림을 잘 그려 상도 몇 번 받았지만 성격 탓에 주변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고 왕따를 당하는 시로타에게 그림을 들고 찾아간다.
그리고 시로타 역시 그림에 빨려드는 경험을 하고 둘은 고민 끝에 그림 속에 들어가 보기로 한다.
시로타가 그려 준 산제비가 되어 시행착오 끝에 하늘을 나는 경험을 한 신은 날아다니다 성 안에 있는 소녀를 발견하고 구출해주기 위해 시로타가 인간의 모습을 얼른 그려주길 바란다.
시로타는 그림의 정체에 의문을 품고 인간 형상은 안 된다며 거절하다 지나친 괴롭힘으로 상처를 입자 포기하는 심정으로 둘의 모습을 그림 속에 그려 함께 들어가기로 한다.
혹시 나오지 못할 때를 대비해 안전장치까지 설치한 후 그림에 들어간 둘은 그림 속에서 한 남자를 만난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휴대폰 번호까지 건네 받은 둘은 남자가 설치해 놓은 문을 통해 밖으로 나오게 되고 현실로 나오자마자 기진맥진해 쓰러지게 된다.
자신을 파쿠라 칭하는 남자와 현실에서 만나 이야기한 결과 그림은 들어오는 사람의 정기를 빨아먹으며 세계를 유지하는 듯 하고 그로 인해 들어갔다 나오면 일시적이지만 신체적인 손상까지 입는다는 것.
파쿠가 페가수스로 자신을 그려 세 명이 동시에 접속한 날 신과 시로타는 그림이 자신들을 거부하는 느낌을 받고 나가려고 할 때 자신을 괴롭히는 인물의 얼굴을 가진 뱀과 원숭이의 환상을 발견한다.
겨우 현실로 돌아와 파쿠를 꺼낸 뒤 쓰러졌고 정신을 차린 후 파쿠가 꺼낸 말은 성 안에 있는 소녀가 10년 전 실종되어 행방불명된 9살 이온이라는 것이었다.

별 기대 않고 빌려온 책인데 꽤 재밌어서 금방 읽었다.
실종, 가정폭력, 왕따 같은 문제들이 나오는데 해피엔딩이라고 해서 이 모든 것들이 해결되고 가해자들이 반성하는 게 아니었다.
가해자는 어떻게 될진 모르지만 벌을 받지도 않았고 정말 변한 건 없지만 그 작은 손길로 한 사람의 인생이 구해진 셈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성장소설.
이제 겨우 고등학생이 되어 다른 인생을 살아 갈 청춘들의 소설은 이상하게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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